Bavarde 잡담2012.06.29 14:06

프랑스, 미국, 벨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등지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국 인양인들이 어제 파리에서 국제적인 모임을 가졌다. 전후 해외 입양된 한국아이들 수가 총 2십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수치(number)고, 수치(shame)이다. 프랑스에 올 때, 홀트 에스코트로 왔고, 이후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한국출신의 동년배들을 만나면서 가슴이 참 많이 아팠다. 만나도 어떻게 또 가슴아픈 사연, 상처깊은 사연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받은 마음의 짐이 참으로 컸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내 안에 생긴 한의 매듭을 풀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각처에서 한국 입양인들이 파리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 처음 그 자리에 갔다. 세느강에 둥실둥실 떠있는 바지선 위에 수 십 명의 한국인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한국인들 모임이지만 실은 한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이는 없다. 프랑스 입양인, 다른 프랑스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던 중, 한국에서 나온 홀트 관계자가 테이브에 잠시 와서 인사만 하고 가시려는걸 내가 우리말로 이런 저런 질문을 드렸더니 대화가 길어졌다. 어떤 이유로 아이들을 버리는지, 왜 상처깊은 입양인들이 미국보다 프랑스에 더 많은지,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가 거두지못하고 왜 프랑스 고아원으로 보내게 되는지, 누구는 친부모를 찾고, 누구는 친부모를 찾지 못하는지, 왜 친부모를 찾았다가 다시 안 만나게 되는지 등등. 한참 얘기를 나눈 뒤 그분이 자리를 뜨시자 우리 둘 사이의 한국어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며 아는 한국어를 들어보려고 애쓰던 프랑스애가 날 보고 "너 한국말 잘 하는구나! 몇 년 공부했니?"한다. ㅍㅎㅎㅎ

그 프랑스애가 한국친구가 있다고 했다. 누구? 했더니 프랑스 한국입양인을 가리켰다. 내가 그래서 "아니야. 걔는 한국인이 아니야. 한국출신의 프랑스인이지." 프랑스애가 나보고 '아주 정확한걸'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 어딘가에, 프랑스와 한국 사이의 어느 바다 위에 나의 정체성이 둥둥 떠돌아 다니고 있노라고 믿던 시절을 상기했다. 출신도, 국적도, 언어도, 부모도 100% 한국인인 나마저도 두 나라 사이에서 정체성을 헤깔려하는데 아무렴.

바지선 위에서 나와 똑같은 피부색과 얼굴 모양을 한 그들과 때로는 불어로, 때로는 영어로 얘기하면서, 깔깔 웃으면서, 마치 어학연수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듯이 친절하게 대하고 즐겁게 대화 나누면서,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잊은 채 내가 과거에 입양인들로부터 받았던 힘든 마음의 짐을 그제서야 해가 저물어가는 세느강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같은 피부를 가진 이들과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게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던 우려는 맑게 개인 하늘의 구름처럼 다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들에 대한 애틋함도 연민도 없었고, 그들이 한국인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들과 외국어로 소통하는게 난 즐겁기만 했다. 어쩌면 한국인답지 않게 불어를 하고, (발음만) 미국애처럼 영어를 하는, 그리고 우리말로 수다도 치는, 그 가운데 어딘가에 내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과 어제 자리가 편하고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지난 6월6일에 개봉된 'Couleur de peau : miel'을 포함한 입양 관련 영화상영이, 내일은 하루 종일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다. 어제는 카메라가 무기처럼 보일까 싶어 가져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들과 며칠 남지 않은 만남을 필름에 기록하기위해서 들고나가려고한다. 출산과 양육을 거치면서 나라는 정체성과 기나긴 투쟁의 터널을 통과한 지금, 이제는 그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듣게된다해도 내 마음에 위치한 천칭이 균형을 잃지않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들도 행복하기를. 


La Libération, Enfant adoptés : dans le pays d'origine, "nous nous sommes que des touris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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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