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logie 친환경2015.12.17 09:55

새벽 4시 불렁줴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우리는 지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소비가 미덕인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이게 아니다!'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계화에 퇴색된 인간성에 가치를 두고, 개인주의로 희박해진 나눔을 주장하며,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방식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우위에 두며, 느린 속도로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들,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그런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실천하는 장소를 하나 하나 찾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대안적인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지도 모르므로. 연재 그 두 번째로 파리 근교에서 불가마로 굽는 유기농 천연효모 수제 빵집을 방문했다.

프랑스에서 빵집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인구 7천 명의 도시 Épône(에뽄)에 매우 보기드문 특별한 빵집이 있다. '라 쿠론 데 프레', 우리말로 '초원의 왕관'이란 이름의 이 유기농 빵집은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효모를 쓸 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빚어서 전기가마가 아닌 장작으로 지핀 불가마에 빵을 굽는다. 게다가 반경 50km 내에서 생산되는 지역산 밀가루를 고집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프랑스의) 우리밀 수제빵을 만드는 이곳을 오래 전부터 꼭 방문해 보고 싶었다. 참고로, 프랑스 절대 다수의 빵집들이 기계로 반죽을 하며, 전기로 된 가마에 빵을 굽는다. 


근처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뛰었다. 새벽 4시부터 빵 만들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몽사몽으로 도착하니 피에르가 가마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세게 지피고 있었다. 전기 가마가 아니기 때문에 몇 시간 전부터 불을 때고, 가마실을 덥히기 위해 문을 꼭 닫아 놓아야 한다. 사실 며칠 불을 때지 않아도 이 불가마는 사시사철  식지 않는다. 빵을 굽지 않는 오후 내내 혹은 일요일 내내 가마 안에 공기의 유통이 없도록 구멍을 닫아놓으면 며칠이 지나도 훈훈함이 유지된다.




새벽 4시, 불가마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빵집의 하루가 시작된다.


피에르는 어제 한 켠에 만들어 둔 르방(levain, 밀가루에 물을 섞어 오래 두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천연효모)을 물에 개고, 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짜깁기된 직사각형의 큰 통에 밀가루, 25~30도의 물, 천일염을 넣고는 맨손으로 섞기 시작한다. 집에서 500g짜리 빵을 반죽하고 쳐대는데도 팔이 아프던데 20kg짜리 반죽을 하면 팔이 얼마나 아플까? 반죽을 한숨 쉬게 하는 동안 다른 편에서 바게트 빵 만들 준비를 한다. 천연효모에 물을 섞더니 나보고 개어보겠느냐고 한다. 손을 깨끗이 씻고와서 뜨뜻미지근한 천연효모를 주물락거리며 훠이훠이 섞는 동안 그는 바게트빵 만들 준비를 한다. 기계 반죽통에 밀가루, 물, 천연효모, 회색의 천일염, 이 네 가지 재료를 섞고 기계가 반죽을 시작한다.


르방


삐에르가 맨손으로 20kg짤리 빵 반죽을 하고 있다.


기계로 바게트 빵 반죽을 한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빵 바구니들.


수시로 가마실 온도를 체크하면서 피에르가 이번엔 '글루텐 프리(글루텐이 없는)' 빵 만들 준비를 한다. 프랑스는 요즘 소화불량, 알레르기 등의 문제로 글루텐 프리 빵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늘고있다. 글루텐은 밀 속에 있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을 하면 점성을 만들어내는데, 글루텐 때문에 바로 이 점성이 생긴다. 발효로 인해 부푸는 반죽을 글루텐이 잡아주기 때문에 빵 안에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이왕이면 같은 값에 큰 빵'을 선호하다보니 빵을 크게 부풀게 하려고 밀 종자를 개량해 글루텐을 인위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원래 염색체가 14개였던 밀이 오늘날은 염색체가 (3배가 많은) 42개나 된다. 사람의 경우, 염색체가 단 한 개만 더 많아도 다운증후군이 되거나 사망한다.

하여튼 글루텐 프리 빵은 밀가루 대신 쌀가루, 모밀가루, 콩가루로 만들고, 점성이 없기 때문에 쳐대지 않아도 되고, 쳐댈 수도 없기 때문에 재료의 무게를 재서 고루 섞은 뒤에 빵틀에 붓고 구우면 끝. 아주 간단하다. 글루텐 프리 빵은 재료를 기계로 섞어서 전기가마에 굽는다.


글루텐 프리 빵 반죽을 틀에 담아 전기가마에 넣고 있다.



새벽 5시 빠른 손동작으로 빵 반죽이 태어난다 

새벽 5시 다른 직원과 견습공들이 도착한다. 두 명의 직원과 세 명의 견습생, 총 여섯 명의 불렁줴(빵을 굽거나 파는 사람)가 빠른 동작으로 작업실과 가마를 오가며 질서정연하고 리드믹하게 빵을 척척 만들어댄다. 가수 비욕이 출연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댄서 인 더 다크(Dancer In the Dark)'의 공장 댄스 장면을 연상 시켰다.

빵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통밀빵, 호밀빵, 흰빵, 바게트 빵, 양귀비씨를 바른 바게트 빵, 올리브를 넣은 빵, 크랜베리와 호두를 넣은 빵, 표면에 설탕을 바른 빵, 해바라기씨와 아마씨를 섞은 빵, 밤을 넣은 가을빵, 브리오슈 등. 일일이 다 맨손으로 반죽하고 (기계로 빵을 자르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으로 반죽을 뜯어 저울에 달아 무게를 맞추고, 동글동글하게 성형을 하고, 불가마로 옮긴다. 가마의 온도가 220도에 도달했는지 확인한 뒤, 가마 양쪽에 물을 한 컵씩 붓고 뚜껑을 닫는다. 기화된 물방울이 빵을 노릇노릇하게 만든다고 한다. 증기가 없으면 빵이 익어도 노릇노릇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새 면도칼을 꺼내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Kill Bill)'처럼 날렵하게 칼집을 낸 뒤 길이가 3m에 이르는 나무로 된 긴 도구 위에 빵 반죽을 올려놓은 뒤 가마 안으로 밀어넣고 쪽문을 닫는다. 그러고 손잡이를 돌리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가마 속에 동그란 밑판이 돌아가고 빵의 위치가 바뀐다. 다시 쪽문을 열고 빵 반죽을 밀어넣고 문을 닫고 손잡이를 돌린다.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돌리고나면 처음에 들어갔던 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나올 때가 되기 때문에 재빨리 익은 빵들을 꺼내야 한다. 빵 바닥을 두들겨 봐서 속이 빈 소리가 나면 다 익은걸 안다. 덜 익었으면 다시 화로에 집어넣고, 정신을 집중해서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전기가마 같지 않아서 타이머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어느새 빵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갓 구워진 바게트 빵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유기농 빵집 주인으로

내가 방문한 '라 쿠론 데 프레'는 유기농 빵을 만들어 도매로만 팔기 때문에 카운터를 두고 소비자를 마주하는 일은 없다. 생산량이 많아서 도매로만 거래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다. 인근 지역의 유기농 매장, 직거래시장, 학교, 농장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주문량만큼만 생산한다.

아침 10시반에 첫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라 쿠론 데 프레'대표 다니엘 부아타르(만 49세)와 이야기를 나눴다. "파이프 한 대 피고 하지요"라고 말하더니 그는 정말 담배가 아닌 파이프를 한 대 물고 나왔다.



- 이 빵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2011년에 문을 열었고, 그전에는 유아학교 선생님이었어요."

- 어떻게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불렁줴가 될 생각을 하셨어요? 
"45살이 되었을 때였는데 학생에서 선생님이 되어 쉬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게 싫증났어요. 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일을 쳤죠. 그 전에도 집에서 제가 빵을 자주 만들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불렁줴인 친구 루이즈 네 집에서  멍트라빌 비오콥(Biocoop ;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유기농 매장) 지배인으로 있는 브느와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에뽄 비오콥 옆에 빵집을 열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해왔어요."

- 유기농에 대해서 인식하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0년 전부터요. 관행농에 대해 피에르 라비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맛있게 드세요 !'가 아니라 '행운을 빈다!'라고. 

(필자 주: 피에르 라비는 1938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유기농 농부,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철학가이자 농업생태학 전문가이자 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발적인 시민생태운동 '콜리브리'의 창시자이며 한국에는 '환경 운동가이자 농부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피에르 라비는 먹거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On mange tellement de choses toxiques, que ce n'est pas bon appétit que j'ai envie de dire aux gens, mais bonne chance." '오늘날 우리가 정말 유독한 음식을 많이 먹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하렵니다.)

- 이 빵집에서만 만들어 파는 '빌락소 빵'은 밀가루가 독특하다고 들었는데요.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도멘 드 빌락소(Domaine de Villarceaux)에서 생산된 밀로 만든 빵이에요. 밀 종자가 다양한데, 몇 년 전부터 밀 생산자와 함께 여러 종자의 밀로 빵 만드는 실험을 했어요. 소량의 밀을 심어서 그걸로 매번 빵을 만들어 본 다음에 어떤 밀이 그 지역의 땅과 잘 맞는지, 빵으로 만들었을 때 결과는 어떤 지 보기 위해서요. 그중에 '에르메스 리터'라는 밀 종자가 빌락소 땅과 가장 잘 맞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지역명을 따서 '빌락소 빵'이라고 이름붙이고, 이후에 수 헥타르에 심어 경작하고 있습니다."

- 전통 종자인가요?
"전통 종자는 아닌걸로 알아요." (필자 주- 필자가 빌락소 빵의 밀가루를 만드는 유기농 밀 생산업자를 찾아 직접 물어 본 바에 의하면, 에르메스 리터는 전통 종자는 아니며, 1960년대에 독일인 베르톨트 하이든이 고른 종자라고 한다. 밀 생산지인 도멘 드 빌락소는 에폰에서 30km 떨어져 있다.)

빌락소 빵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직접 손으로 다루어 대접한다

- 저 많은 빵을 기계를 안 쓰고 손 반죽을 하는 게 참 특이하던데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기계를 쓰면 반죽하는 힘이 세서 소화가 안되는 글루텐이 늘어납니다. 반면에 손으로 반죽을 하면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 생겨요. 그리고 기계에 반해서 사람과 사람의 손에 더 가치를 두려는 윤리적인 의미도 있어요.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는 거죠.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지고 만들어서 대접한다는 고결한 측면도 있구요."

(필자 주 – 다니엘이 복잡한 화학적인 설명을 피하려고 단순하게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글루텐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게 아니고 소화가 잘 되는 글루텐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밀에는 글루아딘(밀 속에 들어있는 프롤라민)과 글루테닌이라고 하는 단백질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물과 섞이고 치대는 행동이 가해지면 –SH (황화수소) 결합에서 결합력이 강한 –SS (이황화) 결합으로 바뀌면서 글루텐이 생성된다. 손 반죽과 비교했을 때, 기계 반죽을 하게 되면 반죽 과정에서 열이 생기고, 치대는 힘이 세기 때문에 글루텐 조직이 더 많이 생성된다. 몸에서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면 배에 가스가 차거나 심하면 복통, 설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글루텐이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의 체내 흡수를 방해되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는 증상을 셀리악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경우, 글루텐에 민감한 이들의 프랑스 협회(Association française des intolérants au gluten)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인구 6600만 명 중 0.23%인 15만 명이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 불가마의 불꽃과 익어가는 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자연의 다섯 원소 오행이 결합하기 때문에 불가마 빵이 기계 빵보다 훨씬 더 맛있는거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어떻게 다섯 원소가 되죠?"

- 나무(木)를 때면 불(火)이 가마의 벽돌을 달구잖아요. 벽돌은 흙(土)으로 만들어졌지요. 그 가마를 싸고있는건 금속(金)입니다. 손잡이도 금속이구요. 빵을 굽기 전에 반드시 가마 안에 물(水)을 넣지요. 그 물이 기화해서 가마 속을 돌면서 노릇노릇하게 맛있는 빵을 탄생시키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 주문받은 양만큼만 만드시는데 어디 어디에 납품하세요?
"우리 빵집 옆에 있는 비오콥을 포함해서 비오콥 아홉 군데하고 아맙 여덟 군데, 학교 급식으로 열 세 군데, 그리고 농장에 한 군데, 이렇게 됩니다." (필자 주: 아맙은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장터로 일주일에 한 번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정된 장소에 모여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받아간다. 대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주종을 이루지만 어떤 생산자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빵, 생선, 닭, 고기 등 종류가 다양해진다.)

새 직원을 뽑기 위한 면접이 예정되어 있는 다니엘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적 삶을 찾는 일본 불렁줴다. 그는 노동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이윤을 남기지 않고,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빵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천연균과 빵만들기 연구로 시간을 보낸다.

그가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이사까지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연균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못해 감동적이었다. 다니엘에게 며칠 일하냐고 물어보니 일주일에서 하루를 제외하고 엿새 일한다고 했다. 아직 자기는 와타나베 이타루의 수준에 비할 바가 못된다면서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했다. 원어는 일어고 번역서는 한국어라고 했더니 아쉬워한다. 돌아오는 길에 땅과 나무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눈 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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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