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프랑스2007.06.27 01:31

프랑스에서 살려면 헝데부에 익숙해져야 한다. 헝데부(rendez-vous)란 불어로 사람과의 시간약속을 말하는데 (영어 appointement에 해당),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갈 때도, 어디가 아파 의사를 볼 때도, 은행에 계좌를 틀 때와 닫을 때는 물론이고 계좌 담당자를 볼 때도아무 때나 불쑥가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헝데부를 잡지않는 일반의가 있기도 하지만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헝데부가 없으면 의사를 볼 수 없다고 보면 된다. 결혼을 할 때도 넘버원으로 처리해야할 일이 시청에 결혼날짜 헝데부를 잡는 것! (참고: 프랑스에는 결혼식장이 없고, 모든 결혼은 의무적으로 시청에서 치루게 되어있으며 시장이 결혼식 주례를 한다.) 넘버 투는 피로연을 할 식당 예약이다. 이 두 예약을 보통 6개월에서 12개월 전에 한다. 분만을 할 때도 임신 3개월 전에 분만실 예약이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예약을 일찌감치 잡고 헝데부를 잡아두면 지체됨없이 일이 착착 진행될까?

 

대개는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미리미리 헝데부를 잡는 습관에 익숙한데, 이는 한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트 프로젝트의 경우, 이들은 5년 전부터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작년에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아 한국의 문화관련기관에서는 그 전해인 2005년에 프랑스측에 컨택을 했다고들 하는데, 너무 '늦어서'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다고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의미의 중요성을 실은 행사를 프랑스인들이 준비했다면 컨택과 프로젝트 제안이2000년부터 들어갔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의 헝데부 문화는 어떨까? 헝데부를 잡아놓으면 병원에서 삽질(?)하고 줄창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라. 줄창까지는 아니오마는정시에 도착을 해도 15분 정도 기다리는 경우가 통례이며, 30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많지는 않지만 때로는 1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헝데부없이 보는 일반의의 경우는 1시간 기다리는건 다반사다.분만 통증이 오는 것 같아서 택시 잡아 뛰어간 산부인과 응급실에서 4시간 기다린 적도 있다. 다행히도 애가 나올 때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지만 신랑하고 나하고 그날 병원에서 얼마나 씩씩거렸는지 모른다. 기다리기를 우선 2시간인가를 기다렸는데, 진료실이 간신히 하나 비어 들어간 순간, 한 산모가 소방차에 실려 앵앵~거리며 실려오는 바람에 나는 비교적 덜(?) 급한 환자로 취급되서 줄창 기다려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택시 잡지말고 소방차 부를껄... 푸념을 하면서 남산만한 배를 까고 천정을 하염없이 보며 누워있기를 1시간. 시간은 자정이 다 되가고 있었다. 난 배에 연결된 태아심장측정기를 슬금슬금 치우고 일어나서 바지를 줏어입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니 지금 뭐하는거냐?!'는거냐며 놀래는거다. 성질좋은 우리 남편이 오죽하면 간호사에게 성을 냈을까? 응급실에 온 산모를 이렇게 수 시간 방치할 수 있냐면서.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만 낄낄.. 

 

반면, 헝데부보다 늦게 나타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고 '새로 헝데부를 잡으라'라고 퇴짜를 놓는 의사도 간혹 있다. 지금까지 두 번 봤다. 개인적인 헝데부나 단체모임에서 잡히는 헝데부에 '코리안 타임' 비스무리한 건 없다. 전부들 10분 전쯤에 나타나서 헝데부 정각에 이동을 하든지 행사를 시작해버린다. 이 나라 시스템은 헝데부에 늦으면 늦은 당사자에게 손해가 돌아가게 되있다. 행정적인 헝데부들은 특히 칼같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난 친구와의 약속이나 모임약속이나 10분에서 많게는 30분 늦게 나타나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집에서도 '출동준비~!'하면 맨꼴찌로 현관문을 나서곤 했는데, 프랑스에 살고부터는 그 버릇이 싸악~ 고쳐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헝데부를 잡으면 좋을 것 같지? 앓느니 죽는 경우도 있다.한번은 쇼크를 받아 심장이 며칠간 비이상적으로 뛰길래 급하게 심장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 얘기를 했는데, 비서가 한 달 후에야 시간이 난다면서 헝데부를 한 달 후에 잡아주더라! 한 달 후에는 장의사를 봐야할 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거참. 또 한번은치과에 정기검진을 갔는데 (치과와 안과는 1년에 한번씩 정기검진 받는거 아시죠? ^^), 대체 언제 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사랑니 4개가 다 났더라. 문제는 그중 아래 사랑니 2개가 비이상적으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4개를 다 빼라는 진단이 나왔다. 프랑스는 치과의(dentiste)가 사랑니 제거 수술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관련의사를 찾아 헝데부를 잡으러 전화를 거는데... 그때가 지금처럼 6월이었나보다. 의사들이 바캉스를 간다고 헝데부를 석 달 후로 주더라고.. 이 사람들이 정말. 물론 며칠 안에 헝데부를 잡아주는 시간많은(?) 전문의들도 많다. 다만 그들의 진료비는 보험국에서 책정한 금액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내가 부담해야할 진료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의사들이다.

 

헝데부를 잡고도 황당했던 top 1은 분만예정일에 일어났다. 제왕절개수술 날짜를 받아두고 멀리서 TGV를 타고 올라오신 시어머니와 신랑까지 대동해서 예정된 바로 그날, 큰맘을 먹고 병원에 갔다. 소방차 타고 분만실 들어가는게 꿈이었으나 현실은 꿈처럼만 흘러가는 것이 아닌 법. 택시를 타고 우아하게 걸어들어갔다. 아니 왠걸? 그날따라 왜 하필이면 온동네 산모들이 다 같이 통증이 와가지고 분만 후 쉴 침대가 없다면서 우리 셋은 퇴짜를 맞았다. 난다긴다하는 의사들이 결정해서 헝데부를 잡아도 신의 뜻이 아니면 아닌겨.. 어흑~임신 초기에 분만실 예약잡느라 들고 뛴 에피소드는 엮인글에서 읽으시고.. 임신 중 정기검진을 가도 모든 검사가 총괄적으로 산부인과에서 이뤄지지 않고 각 전문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치뤄진다. 때문에 한번의 산부인과 헝데부로 끝나지 않고 여러 개의 헝데부를 잡아야 한다. 예를 들면 소변검사, 혈액검사 및 기타 임신관련 검사들은 lab에서 치뤄지니 lab에 헝데부 잡고, 초음파촬영이 있는 날은 radiologue와 헝데부 잡고, 그 결과를 다 들고 다음 번 산부인과 의사와의 헝데부에 가야한다.헝데부가 이쯤 되면 골치가 쪼금 아프지 않은가? 흠흠...

 

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