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프랑스2005.08.06 02:49

부모님이 떠나시고 난 후, 버스와 지하철로 시내를 오가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특산품도 마땅히 없는 파리가 대체 전세계 관광객에게 파는 것이 무엇일까?

 

결과는 도시 그 자체였다.

다시 말해서, 파리는 도시 그 자체를 팔면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다시 더 쉽게 말해서, 파리에 와서만 볼 수 있는, 파리만이 갖고 있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생산해내는 것은 굳이 프랑스까지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서울식구들이 이번에 왔을 때, 아는 분이 프랑스 유명브랜드 양산을 세 개 빌려주셨다고 한다. 양산을 쓰고 같이 시내를 다니면 사람들이 다 힐끗힐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왜? 프랑스에서 5년반 살면서 양산쓰고 다니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양산은 만들어서 수출만?

 

화장품도 마찬가지. 유명화장품 가게가 많지만 그 메이커를 사쓰는 구매자의 대다수는 외국인인 것 같다. 주변에 유명브랜드 화장품을 쓰는 프랑스 여자들을 보지못했다. 길을 다녀보면 알지만 대부분이 기초화장만 하고 다니고, 화운데이션에 색조화장한 여자는 극히 드물다. 화장품도 수출만?

 

로마든 파리든 런던이든 명품가를 가보면 현지어는 사실 거의 안 들린다. 세금 안 내고 사가려는 외국인들이 쓰는 타지어만 들린다. 그게 자신을 위한 것이든 선물용이든. 명품도 수출만?

 

외국인들에게 저렴한 특산품보다 비싼 명품을 판다?

프랑스까지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들인데, 프랑스에 간 김에 산다, 이거지.

역시 장사 잘하는 유럽인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파리가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나폴레옹이 계획한 정렬된 도시와 하수구계획,

그 위에 하우스만 시장이 계획한 시가지,

미테랑이 중국건축가를 데려와 재설계한 루브르박물관,

밤이면 화려한 조명 밑에 다시 살아나는 파리의 밤,

역사 이전부터 초현대까지, 훔쳐오고 사오고 기증받아 일궈온 숱한 박물관과 미술관,

런던, 뉴욕과 쌍벽을 이루며 세계 미술의 주류를 끌어오는 숱한 갤러리들,

파리의 제1의 상징이 되는 에펠탑과 짐 모리슨의 무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푼돈을 주고 사간단 말인가?

 

남산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낮은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봐야 뭐가 보이고,

한강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개울로밖에 안 느껴지는 센느강을 가로질러가봐야 몇 분이 걸리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마르트르와 센느강을 보러 파리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높은 것이, 넓은 것이 다는 아니라는 답을 냈다. 그렇다면?

 

서울보다 역사가 짧은 파리, 그러나 '직접 가보고 싶은 도시, 파리'를 만든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계획자만도 아니고, 시장만도 아니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대통령 하나만도 아니고, 조명건축가만도 아니고, 갤러리스트들만도 아니고, 우연찮게 객지에서 숨진 짐 모리슨 탓?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볼품없는 파리를 가능한 한 포장을 해댄 사람들이 늘 역사적으로 있어왔다. 도시계획가로서, 행정가로서, 정치가로서, 건축가로서, 예술가로서, 문학가로서, 영화인으로서, 시장으로서. 그들은 파리를 찬미했고, 파리를 그렸고, 파리를 꾸몄고, 파리를 썼다. '예쁜 파리만들기!'하고 일부러 각계 각층이 협력을 한게 아니다.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파리를 전통 속에 잠자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현재 속에서 늘 새롭게 살아나는 파리를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는 건축가로서, 행정가는 행정가로서, 예술인은 예술가로서, 문학인은 문학인으로서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파리에 헌정했을 뿐이다. 프랑스인들은 한국인 저리가라로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자기 문화 자랑하는 거 보고 있으면 때로는 눈꼴이 실 정도. 어우~ 그렇게라도 노래하고, 헌정하고, 과거의 자료는 티끌하나라도 남기지않고 박물관에 보관하며 가꾸다보니 지금의 파리가 건설됐다.

 

문화부장관과 파리시장이 프랑스를 '일신우일신' 하도록 만드는 노력은 눈물겹다. 전국의 문화유산을 민간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문화유산의 날'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리지 않고 진짜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1년에 거리로 쏟아져나오게 만든 '음악축제'나, 옛사진부터 현대사진까지 다양한 양식의 사진을 한눈에 보여주는 '파리 포토'나 파리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려는 행정가들의 이벤트이다. 여름 센느강가에 모래사장을 만든 최근의 아이디어도 같은 맥락. 위의 행사들이 다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유럽 각지로 퍼져가고 있다. 대중에게 문화와 예술을 확산시키고 유행을 이끌어가며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배울게 많다. 존경, 존경..

 

공교롭게도 <다빈치코드> 덕에 파리로 몰리는 관광객은 작년부터 훨씬 증가했다. 저자는 프랑스인이 아니고, 영화감독도 프랑스인이 아니다. 브라운은 책 팔려서 부자가 됐고, 그덕에 파리는 가만히 앉아서 관광수입이 는다. 내년에 개봉된다는 <다빈치코드>의 촬영을 파리는 허용했고, 런던은 거부했다고 한다. 파리에 소재하는 그림과 교회를 배경으로 그린 <다빈치코드> 덕에 파리는 아무짓 안 해도 관광수입이 쭉쭉 오른다. 왕 부러움..

 

전통이 남겨준 별다른 특산품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이렇게 잘 팔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라는 물살을 유유히 헤엄쳐 나가면서.

 

 

이집트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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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