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3개월에는 쉽게 피곤해져서 버스나 전철만 타면 주저앉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임신 기간 중에 '서럽다'고 할만한 시기는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유산의 위험은 가장 높은 시기라는데 이건 모.. 배가 나와주지 않으니 겉으로 봐서는 멀쩡~. 바람불면 쓰러질 듯한 청순가련형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같은 나이대의 유럽여성들보다 10년은 젊어보이는 관계로 이팔청춘으로 보이는 젊은 처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손잡이에 온몸을 의지해서 흔들흔들 흔들리며가는 수밖에. 어쩌다 전철, 버스가 만원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 손은 배 위에 얹어 배를 보호하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잡이는 잡고, 피로에 약간의 현기증과 메스꺼움까지 겹친다. 신랑에게 전화해서 '나 좀 업어데려가!' 달라고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한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엮인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교통이나 상점 등에 '임산부 우선'이라고 써붙어있다. 그러나 겉으로 임신이 드러나지 않는 임산부는 해당이 안된다. 이제는 무슨 수로도 가릴 수가 없을만큼 배가 불러와보니 또다시 발견하는 건, '임산부 우선'이라는 푯말 따위를 지키는 모범시민은 프랑스에도 없다는거다. 그렇다고해서 노약자석에 임산부가 앉았다고 머리를 쥐어박거나 눈치밥을 주는 한국같지는 않지만,축구공만한 배를 한 임산부가 옆에 손잡이를 잡고 만원전철 속에서 흔들리며 가고 있어도 이팔청춘의 젊은이들, 피가 절절 끓어 넘치는 청년 하나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법 없다.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 사람들을 파고들어가 '내 자~리, 찜!'할만한 속력을 낼 수도 없고, 앞사람에 바짝 붙여 밀고 밀리는 짓에 동참할 수도 없다. 행여 누가 배를 치고 지나갈까 염려되어 외려 한 발 뒤떨어져 타고나면 젊은 것들에게 빼앗긴 빈 자리가 서럽다. 차라리 걷는건 힘들지 않다. 부동자세로 가만히 서서 가는게 힘들지.

 

임산 후기의 임산부에게 나타나는 몸의 이상 중에 종아리에 쥐나는게 있다. 자다가 새벽녘이면 생쥐 한 마리가 종아리에 찰싹 달라붙어 또아리를 꽁~하게 틀고 있다가 휘리리~ 도망가는 듯한 느낌이다. 자다말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데, 기분 되게 이상하다.임신으로 등짝 아파, 다리에 쥐 나서 잠깨, 태동으로 밤에 잠 못자, 악몽꾸다 깨나.. 자기 전 종아리 마사지를 해주면서 안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신랑이 그런다. "아기 갖는거... 많이 힘들지?"

 

그런 와중에 임산부 마음을 알아주는건 아홉 달의 소리없는 전쟁을 치뤄본 동지, 아줌마들이다. 만원전철 안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는 (프랑스) 아줌마에게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미소지어 답례하자 아줌마 왈, "사람들은 몰라요. 임산부들이 얼마나 힘든지." 눈가에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울컥!연극을 보러갔을 때도 그랬다. 공중화장실에서 내 앞에 선 (프랑스) 아줌마가 뒤돌아보더니, "먼저 들어갈래요?" 한다.  "괜찮습니다" 했더니 "아직 급하지 않아요? 참을 수 있겠어요?"하며 웃어보인다. 임산부들이 소변이 자주 마렵고, 비임신기와는 달리 소변참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 아줌마는 아는거다. 곧이어, 젊은 것들이 수다를 떨며 떼거지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말기 내지는 중학생으로 보이니까 '젊은 것들'이지?) 그전까지는 화장실 밖에서 일자로 줄을 섰었는데, 줄 선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이것들은 내 앞에서 저마다 칸 하나씩을 맡았다. 화장실에서 얼라들하고 실랑이 벌이기 싫어 '아니, 막 쌀 것처럼 급한 것이냐 싸가지가 없는 것이냐?' 먼저들 일보라고 내버려뒀다. 니들이 세월이 흘러 15년 또는 20년 후에 임신하게 되서 10kg짜리 축구공 배에다 싣고 다니는 날이 오거든 그때서야 알 것이다. (알기나 할렁가? 기억이나 할렁가?) 줄서는 질서마저 깡무시하고 오늘 니들이 산모 앞에서 무슨 주책바가지를 떨고 있었는지를.

 

해산을 두 달 앞둔 지금, 임신 전보다 8.5kg가 늘었다.

 

Posted by 에꼴로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