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ents 교육/육아2008.05.13 08:20

23개월동안 아이가 40cm 자랐다. 아홉 달 품고 배를 갈라 낳은 내 자식이건만 난 아직도 '얘가 정말 내 자식 맞아?' 싶을만큼 신기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가 만나서 깜빡이던 불빛이 저렇게 쑥쑥 커서 웃고 애교 떨고 말하고 움직이고 성장하는 걸 보면 봐도 봐도, 암만 봐도 참 신기하다. 신생아 때 얼굴이 가끔 표정에 스칠 때, 팔 다리 목 하나 가누지 못하던 것이 뛰고 말하고 말을 알아들을 때, 정말 신기하다. 내 배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아이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저 곳에서 온 존재 같다.

 

한국에 있을 때, 내 생일에 받았던 선물이 하나 있다. 인형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보라색 곰인형인데, 이 녀석을 아이에게 갖고 놀라고 줬다. 그리고 곧 아이의 가장 아끼는 인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행방불명되버린 여행가방과 함께 녀석은 사라져버렸다. 4월 3일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아이는 아직도 그 곰을 잊지 않고 있다. 말이라고는 몇 마디 못하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할 뿐 생각하고 기억하고 알아듣는 능력은 내가 알아듣는 아이의 언어능력 이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정말이지 암만 봐도 신기하다. 가끔 '파~'를 찾으며 울며 잠든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제 더이상 '파~'를 찾지 않길래 '머리 속에서 사라졌나보다' 했는데, 난 오늘 다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새로 생긴 동화책에 '엘메'라 불리는 코끼리가 있는데,  오색빛깔 알록달록하다. 오늘 아이가 엘메의 몸덩이 중에서 보라색들만 짚어내는거다. '보라'라고 읽어줬다. '보라'..'보라'..'보라' 처음엔 아이가 보라색을 굉장히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다. 실은 한 달 전부터 다시 못보고 있는 그 곰인형의 이름이 바로 '보라보라'다. 아이는 '보라보라' 발음이 안되서 '파~'하고 한 마디로 부르곤 했었다. 울며불며 '파~'를 찾아도 세상에서 돈으로 어디가서 살 수 없는 보라보라를 되돌려낼 수 없어 발만 동동거리며 같이 슬퍼하는 엄마를 더이상 보기가 딱했던걸까? 아이는 오늘 그렇게 내 입을 통해서 보고싶은 곰인형의 이름을 다시 듣고 싶었나보다.

 

행방불명된 짐 속에 아이의 동요 CD가 다 들어있었다. 현지에서 하는 수 없이 동요 CD를 하나 샀다. 나도 남편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된 동요. ㅠㅠ 그걸 한 일주일 정도 듣고 프랑스로 돌아온 후로 그 CD를 잊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어제, '이거나 한번 들을까?' 싶어 틀었더니 왠걸? 아이 눈빛이 빛나면서 신난다고 웃는거다. 입으로 말은 못해도 '나 이거 알아. 오랜만이네!' 싶은 표정. 그 CD를 들으며 아이는 잠이 들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여자가 왜 남자보다 말수가 많은지, 아이가 어릴 때 왜 말을 못하게 만들었는지, 왜 다섯 살 쯤 되서 이빨이 빠지고 영구치가 돋는지, 조물주의 뜻을 알겠다.

 

아이가 요즘 하는 말 중에 나를 단번에 무방비로 만들어 버리는 최강의 무기가 있다 : "엄마/아빠 상해~(사랑해)"

Posted by 에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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