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프랑스2011.10.06 00:42
Q) 친구가 열흘동안 유럽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어왔는데요. 어떤 일정이 가장 좋을까요? 자유로운 추천 함 부탁드려봐요.

A) (열흘간 유럽을 돌아? 무슨 수로? 라고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대답을 해야.. 흠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자유로운 경로대로 짜시면 됩니다. 제가 한 달 남짓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동안 2주를 런던에서, 2주를 파리에서, 나머지 1주를 파리->뮌헨->프라하->빈->파리 일정으로 돌았기 때문에 '열흘간 유럽돌기' 조언을 드리기엔 짠밥(?)이 모자라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인데, 흘러간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답하렵니다.

한파가 불어닥치던 한겨울 (두둥~), 짝사랑에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을 안고 배낭을 메고 훌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여자임) 혼자 여행하면 엄마, 아빠가 보내지 않으실 것 같아서 아빠에겐 여행 전날까지도 말을 안 했고, 엄마에겐 '먼저 떠난 친구가 파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었죠.

당시 제 계획은 '미술관과 뮤지컬을 뽕빠지게 보고온다!'가 목표였기 때문에 런던에서 매일 밤이면 밤마다 뮤지컬을 보러다녔고, 낮에는 대영 박물관, 테이트 갤러리 등 미술관을 전전했습니다. 파리에서는 박물관급 미술관을 싸그리 훑었습니다. 파리에서 딱 공연 하나를 봤는데 갸르니에 오페라에서 롤랑쁘띠 발레단을 당일 할애가격으로 30프랑에 샀었죠. 무대의 1/5은 보이질 않았어요.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OTL

나머지 1주일을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보러 프라하에서 사흘을 보내기로 했어요. 뮌헨과 빈은 파리와 프라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정도였어요. 파리에서 빈이나 프라하까지는 기차로 16시간을 가야하는 거리거든요. '런던-파리-프라하', 누가 보면 참 무식하게 짰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건 각자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에요. 타인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자신만의 여행경로를 짠거죠.

여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배낭객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때 길에서 저와 짧은 만남을 나눴던 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각자 자기의 길을 가고 있겠죠. 아직도 저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씁쓸한 만남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합니다.

예컨대, 한 달간 30개국 이상 돌았다고 자부하던 학생은 런던에서 2주, 파리에서 2주 있었다는 저를, 파리라는 도시의 황홀함에 취해 3시간동안 (한겨울에!) 에펠탑에서 내려오지 못했던 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뭘 그렇게 오래 볼 게 있냐면서. '한 달간 어떻게 34개국을 돌 수 있느냐?'는 제 질문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트라팔가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그 뒤에 있는 대영박물관은 건너뛰고, 그렇게 다니면 가능하다고 그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프라하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 학생은 물가가 싼 프라하에서 왕처럼 먹고 다닌다며 어깨에 힘을 주더군요. 문화강대국인 프라하 앞에서 교양과 겸손은 빈털털이요, 갖은 건 돈 밖에 없어 빈 깡통에 동전 굴러가는 소리를 내다니. 지난 밤에 공연을 봤다길래 뭘 봤냐고 물었더니 어깨에 힘을 주며 '매직 플륫 인형극(!)을 봤다'고 대답하더이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말이군요?'했더니 깜짝 놀라며 "아니, 그걸 아세요?" OTL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싫은 숱한 씁쓸하고, 때론 악몽같았던 만남들 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두 만남이 있어요.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북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과의 만남을 이 자리를 빌어(뭔 자린데???) 공개할까 합니다. 그는 머리손질도 잘 안했고 옷차림도 남루했고, 별로 친절하지 않은, 또는 별로 말이 없는, 또는 퉁명스러운, 여튼 그런 남학생이었어요. 빈에서 여행코스가 같아서 도나우 강이 먼 발치 보이는 눈길을 밟으며 하루 동행했었죠.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낭만적인 대화도, 낭만적인 분위기도 없었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이미 말했잖아요. 짝사랑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으로 여행을 나왔다고. 그 가슴에 어느 새가 둥지를 틀겠슴둥? 남루하고 퉁명스런 남학생이라면 더더욱 아니잖아요~! 이런 말하는 저도 매력적인 외모를 풍기는 여학생은 전혀 아니었어요, 전혀.

그 친구는 한 나라마다 한 도시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로 옮기는데, 각 나라마다 사흘의 일정을 잡더라구요. '얘도 다른 애들이랑 마찬가지로 많이 돌고보자 위주로 여행을 하나보다' 했죠. 근데 경제학과 학생답게 '어디 어디 어디를 돌아보면 사흘동안 그 나라의 경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아주 독특한 기준을 갖고 있었어요. 남루하게만 봤던 이 친구를 그 시각 이후로 다시 보게 됐죠. 그 친구, 지금쯤 경제분야 한 자리 잡고 있을 듯도 한데... 눈이 많이 쌓여 방향도 감지할 수 없었던 비인, 사람도 식당도 보이지 않아 무섭기까지 했던 그 길을 그가 하루동안 무지룩하게 동행해주어 든든하고 감사했었죠. 버스에서 먼저 내리며 헤어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하얀 눈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시던 눈길만 생각나요.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할 수 있다면 혼자 여행하세요.
여행경로요? 자기 취향대로, 자기 기준대로 짜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Bon voy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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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