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2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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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10.17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의 모든 것 (2) - 선거비용
  3. 2016.02.08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의 모든 것 ① (1)
  4. 2015.12.17 직업 없는 서른살 남자, 이렇게 행복해도 돼?
  5. 2015.08.24 녹색당 후보로 프랑스 도의원선거에 출마하다 (녹색전환연구소)
  6. 2015.05.15 프랑스 도의원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다
  7. 2014.05.17 Photos in London 2014
  8. 2013.09.08 아리랑 없는 아리랑, 류승완의 '베를린'
  9. 2013.07.25 에누리도 덤도 없는 프랑스에서 - 인정(人情)
  10. 2012.02.06 군사시설 확장계획에 10년간 맞써 승리한 프랑스 농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적인 다큐, 'Tous au Larzac(모두 라흐작으로)' (3)
  11. 2011.12.24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동지제에서 기원한다
  12. 2011.11.13 크레타 여행기 (2) - 길 위에서 만나는 만남과 깨달음, 그것이 여행이고 인생인 것을
  13. 2011.11.13 파리 '우리는 99%' 시위현장 (Occupy France)
  14. 2011.11.08 크레타 여행기 (1) : 그리스 파업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고향과 만나다
  15. 2011.10.06 열흘간 유럽을 돌아? - 오랜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5)
  16. 2011.08.20 프랑스, 무상급식을 거부해? (5)
  17. 2011.08.16 A Separation(별거), 감동적인 이란 영화! 별 7개 준다 (1)
  18. 2011.08.14 만4세 여아를 물어뜯은 개를 변호하는 브리짓 바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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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1.05.21 프랑스의 급식제도
  26. 2011.05.19 꼴루쉬, 사랑의 밥집 창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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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1.03.03 유기농 급식과 평등
France 프랑스2016.10.17 23:00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투표와 개표는 그 꽃의 꽃,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프랑스 선거, 그것이 알고 싶다!' 마지막 편으로 프랑스의 투표방법, 투표용지, 투표함, 해외국민투표 등 투표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 한국인이 보기에는 이곳의 투표방법이 생소하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스템이 좋고 나쁘다를 가르기에 앞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투표용지의 예. 2015년 3월, 프랑스 지방 선거에서 내가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우리의 투표용지. 이렇듯 각 정당마다 자신의 후보들의 투표용지를 디자인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투표용지는 단색이어야 하고, 선거 전에 모든 후보의 공약과 함께 가정으로 배달된다. 투표하는 날, 여러 당의 투표용지 중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접어서 투표봉투에 넣은 뒤 투표함에 넣는다.



12. 투표용지 

한국은 투표용지 한 장에 여러 명의 후보가 적혀있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해 투표소에 비치된 도장을 찍지 않는가? 이러한 기표식 투표방법에 반해 프랑스에는 투표용지 선택 투입식 투표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용지가 후보의 수만큼 나오고,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준비된 종이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는다. 선택되지 않은 후보들의 투표용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 제1편에서 보았던 선거 포스터와 선거 후보 리스트 용지를 기억하는가?(관련기사: 프랑스에선 후보 기호를 '제비뽑기'로 정한다). 앞면에 선거 포스터, 뒷면에 후보의 공약이 적힌 종이 한 장, 후보 리스트가 필요한 선거의 경우 후보 리스트가 앞뒷면에 실린 종이 한 장, 그리고 그 정당의 투표용지 한 장, 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모든 후보의 해당 용지들을 종이봉투 하나에 담아 각 선거인에게 우편 발송한다.  

이 세 가지 용지는 선거법이 정하는 크기와 규정에 맞춰서 각 정당에서 알아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디자인한 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색 선택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투표용지는 어떤 색을 선택하든 간에 한 가지 색이어야 하고, 선거 포스터의 경우, 빨강, 파랑, 하양, 세 가지 색이 포스터에 동시에 있으면 안 된다고 선거법이 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3. 투표방법 

이렇듯 투표용지가 가정에 미리 배달되기 때문에 선거일 전에 내가 선택할 후보의 투표용지를 미리 눈에 익혀둘 수가 있다. 그걸 들고 투표소에 가는 것은 아니고, 투표소에는 신분증과 선거인 카드만 달랑 들고 가면 된다. 선거인 등록을 한 경우에 선거인 카드를 분실했다면 신분증만으로도 투표할 수 있다.  

투표소에는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없고, 대신 묘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투표소에 도착하면 입구에 긴 테이블이 있고, 각 정당의 투표용지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애들 손바닥만 한 우편봉투를 우선 하나 집고, 내가 누구를 찍을지 알 수 없게 모든 정당의 투표용지를 하나씩 집어 든 뒤 커튼막에 들어가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우편봉투에 넣고 나머지 투표용지는 내 주머니에 넣든, 내 가방에 넣든, 투표소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버리든 하면 된다. 

이래서2차 선거의 경우, 후보가 대개 둘이기 때문에 투표소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투표용지를 보면 어느 후보의 지지도가 높은지 얼추 알 수 있다. 

커튼막에서 나오면 긴 테이블에 다섯 명의 투표소 보좌인이 기다린다. 첫 두 사람 앞에는 선거법 책이 놓여있어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 바로 선거법을 열람할 수 있다. 가운데 사람은 투표소장으로 투표함 앞에 앉아있으며, 마지막 두 사람은 선거인 목록을 갖고 있다. 

선거인이 투표함에 다가가면 앉아있던 투표소장은 일어나서 선거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소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선거인의 이름을 부른다. 선거인 목록을 가진 사람에게 선거인 카드를 주면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선거인 목록에서 선거인의 이름을 찾는다. 목록에 적힌 선거인의 이름과 신분증, 선거인 카드에 적힌 이름이 같다고 확인되면 투표소장은 투표함 윗면에 있는 작은 레버를 당긴다. 투표함의 작은 틈이 열리고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봉투가 떨어진다. 투표소장이 레버에서 손을 떼면 틈이 닫히고, "홍길동 투표했습니다"라고 크게 말한다. 


이제 선거인 목록에 사인해야 하는데, 서명을 크게 할 수도, 길게 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 가로 약 30cm, 세로 약 5cm 되는 긴 투명한 플라스틱 자에 5cm x 1cm 정도의 직사각형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자를 선거인 목록에 올려놓고 그 칸 안에서 사인을 해야 한다. 타인의 서명란을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명하고, 선거인 카드에 투표 일자가 찍힌 스탬프를 받고 투표소에서 나온다.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투표봉투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매우 작다. 그 또한 레버를 당겨야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틈이 닫히고 레버 옆에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당일 저녁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이 투표함은 절대로 있던 자리를 뜰 수 없다.





14. 사전 투표? 대리 투표? 

선거인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출두할 수 없는 경우, 한국에서는 사전 투표를 하는 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를 한다. 한국의 위키페이아에 의하면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는 '부정 선거의 위험 때문에 정치적인 선거에서는 금지'한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사전 투표를 허가하지 않고 위임 투표를 하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투표는 투표 당일에 한해서 투명한 투표함에 들어가야 유효하다는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 같다. 

대리 투표 조건은 선거인등록을 한 사람이어야 하고, 같은 선거구에 있어야 하며, 또 다른 대리 투표를 위임받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소는 달라도 같은 선거구에 등록된 선거인은 대리 투표를 할 수 있으며, 한 선거에서 단 한 사람의 투표만을 위임받을 수 있다. 

대리 투표를 신청할 경우, 투표 전까지 투표대리인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을 경찰서에 등록한다. 투표 당일, 투표대리인이 위임자의 투표소에 가면 경찰서에서 받은 대리 투표자 목록과 대조한 뒤, 선거인카드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위임투표를 한다.  



15. 투표함 

고대 그리스에서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불투명한 항아리를 투표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명한 투표함을 사용하고, 윗면에 레버를 당기면 투표용지가 들어갈 만한 틈이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다시 틈이 닫히면서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레버가 한번 당겨질 때마다 몇 개의 투표가 그 안에 들어갔는지 센다는 얘기다. 투표를 시작하기 전에 투표함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지, 레버 옆에 숫자가 영(0)인 지 확인한 뒤, 투표함을 열쇠로 잠근다. 

우리 딸애가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반장선거를 하던 날, 시청에서 초등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줬다. 아이들은 '진짜 투표함'으로 반장선거를 치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체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참고로 프랑스의 모든 시청이 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딸애 학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6. 투표일, 투표시간, 투표소

투표일은 늘 일요일, 투표시간은 아침 8시부터, 대도시의 경우, 저녁 8시까지 12시간 동안 투표소가 열려있고, 인구가 작은 소도시나 마을의 경우,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 기타 대중을 위한 시설과 마찬가지로 투표소 또한 지체장애인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문제없이 출입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용이해야 한다. 

참고로, 호텔, 사무실, 상가, 영화관, 식당, 화장실 등 대중에게 열려있는 시설은 지체장애인에게도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프랑스 법이 명시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 제한된 기간 내에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17. 개표 


선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은 개표가 아닐까 싶다. 저녁 6시 혹은 8시에 투표소가 문을 잠그면 그 순간부터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다.

투표소장과 투표소 비서를 제외하고 투표소 보좌인이 되고 싶으면 선거인 등록된 자에 한해 선거일 24시간 전까지 시청에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가 많으면 시간표를 짜서 교대근무를 설 수 있어서 좋다. 개표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청에 미리 신청할 수도 있고, 투표 당일 아침까지 신청할 수도 있다. 개표 참관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다. 모든 개표는 반드시 수개표를 하며, 시의원이나 정당의 후보나 대리인은 개표에 참관은 할 수 있되 절대 개표에 간여할 수 없고, 개표는 오로지 시민만이 할 수 있다. 

투표소 내에 테이블을 2~3개 설치하고, 테이블마다 4개의 의자를 준비하는 동안 투표소장은 열쇠로 투표함을 열어 투표봉투를 꺼낸 뒤 참관인들이 보는 앞에서 100개 단위로 묶어 각각 우편봉투에 담는다. 각 테이블에 투표 100개들이 우편봉투 하나씩을 나눠준다. 

첫번째 사람이 투표봉투에서 투표용지를 꺼내 기권이나 무효표인지를 확인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 건네면 두 번째 사람은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을 부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개표결과를 적는 용지를 받아들고 있다가 호명된 후보가 해당하는 칸에 작대기를 긋는다.

100개의 투표용지를 개표하고 나면 투표소 비서는 작대기를 그은 두 사람의 결과가 동일한 지 확인하고, 기권과 무효표를 포함해서 총합이 100개가 되는지, 투표용지도 100개가 되는지 확인한다. 결과를 투표소장에게 넘긴 뒤 새로 100개의 투표용지 묶음을 받아 개표한다. 

개표가 완전히 끝나면 테이블마다 두 개씩 배부된 개표결과 용지에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무효표 봉투에도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투표소장이 개표 결과를 전화로 시청에 알리고 나면 개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건물을 나갈 수 있다. 시청은 모든 투표소의 개표결과 집계를 당일 밤 지체없이 시청 앞에 게시한다. 


18. 해외국민투표 


한국도 2012년부터 해외국민투표를 시행해오고 있는데, 재불 한국대사관 공무원의 말에 의하면, 해외국민도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류를 만들어 청을 넣은 이들이 바로 재불 한인들이라고 한다. 

이번 총선의 경우, 유권자 등록 신청이 11월 15일(일)부터 2016년 2월 13일(토)까지 91일간이었고, 투표는 3월 30일(수)부터 4월 4일(월)까지 6일간 해외공관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해외국민투표 경험담을 말씀드릴까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해외국민투표에 참여했던 바에 의하면, 투표용지는 한쪽 모서리에 일련번호가 적혀있고, 선관위의 빨간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 모서리는 점선에 따라 뜯어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한 교포가 투표했을 때는 빨간 도장이 아닌 흑백의 복사본이었다고 내게 증언했다. 

투표함은 흰 종이로 엉성하게 싸여있고 투표봉투를 집어넣는 틈은 여자 손이 하나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열려있었다. 투표소 보좌인으로 있었던 지인의 말을 빌리면, 투표함은 매일 저녁 개봉되어 표를 다른 자루에 담고 빈 투표함은 다음 날 투표를 위해 다시 포장된다고 했다. 해외국민투표가 끝나면 자루에 담긴 표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표하기 위해서. 

자, 그럼 프랑스의 해외국민투표는 어떻게 진행될까? 

유권자등록은 선거 전년도 마지막 날까지이다. 내년에 프랑스 대선이 있으니 유권자 등록은 올해 12월 31일까지다. 프랑스의 선거일은 늘 빨간 날(일요일)이고, 전 세계 재외 프랑스 국민도 동일한 날, 즉 일요일 하루 동안 선거를 치른다. 시차가 있어서 시간은 각 도시의 현지 시각을 따른다. 

개표도 프랑스 선거법을 따른다. 투표가 끝나는 즉시 투표소의 문을 잠그고 프랑스 재외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개표하고 결과를 프랑스 선관위에게 전달한다. 투표함은 투명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투표 시작부터 개표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투표가 끝나는 정시에 투표소 문을 잠그고, 투표함을 열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4인 1조로 수개표가 진행되며, 정부 및 정치 관련인은 절대 개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것이 프랑스 개표의 원칙이다. 

4월 13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한국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할 수가 없다. 2012년 해외국민투표를 마치고 나왔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지난 10년 넘게 모국에도, 체류국에도 투표를 할 수 없었던지라 그 감격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해외국민투표를 끝으로 나는 프랑스 국적으로 지방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으며, 7.30%라는 지지를 받았다. 투표소 보좌인도 해봤고, 개표에 직접 참여도 해보았다. 선거가 어떻게 준비되고, 선거자금이 어떻게 유통되고 운영되고 감독받는지, 투표와 개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험을 통해서 그 어떤 프랑스인보다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 독자들에게 총 3회에 걸쳐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내 나라 한국에서 민주주의 꽃을 시민의 손으로 부디 아름답게 피워내기를 멀리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소망한다. 



2016년 3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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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6.10.17 22:52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의 선거에 관한 모든 것! 이번에는 제2편으로 선거비용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7. 선거비용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프랑스에서 선거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 : 캠페인 계좌 협회와 대리인. 두 가지 방식 중에 어느 것을 쓸지는 선택의 문제다.


1) 캠페인 계좌 협회

같은 정당의 여러 후보의 선거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하나의 협회를 만들고, 그 협회에서 다수 후보의 선거자금을 관리한다. 

2) 대리인 

후보가 선거자금 대리인을 지정한다. 선거운동 중 지출이 필요한 경우, 선거자금 대리인이 수표로 지급한다. 


두 경우 다 선거자금 운용의 법적 책임은 소속정당이 아니라 후보에게 있다. 

내가 후보로 출마했던 2015년 3월 도의원 선거의 실례를 들어보자. 이블린 도의 모든 녹색당 도의원 후보들의 선거자금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협회를 하나 설립했다. 그렇다고 하나의 은행계좌에서 여러 후보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블린 도의 선거구마다 각 선거자금 은행계좌를 만든다. 지출이 있는 경우 수표로 후급 정산하고, 계좌 폐쇄까지 총관리했다. 

선거자금 예산은 원칙적으로 각각의 후보가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내 경우, 윤리적인 은행에서 대출하려고 했는데 대출 최소금액이 우리가 필요한 예산의 10배를 웃돌았기 때문에 이블린 도의 모든 녹색당 후보들이 필요한 예산을 합해 정당의 이름으로 한 번에 대출을 받았다. 이어 녹색당은 이블린의 각 선거구 후보들에게 대출계약서를 쓰고 선거자금을 빌려주었다. 그래서 나도 내 개인 통장으로 2500유로(한화로 약 341만 원)를 받았고 다시 선거자금 계좌에 고스란히 2500유로를 입금했다. 이후 관리는 캠페인 계좌 협회에서 일체 관리했다. 

선거가 끝나고 약 한 달 뒤, 캠페인 계좌 협회는 각 선거구 후보가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모든 증빙서류를 준비하도록 상세 서류목록을 알려준다. 서류를 다 준비한 뒤 전문회계사와 약속을 잡아 만나러 가면, 전문회계사는 후보가 준비해온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여 제출서류가 완비되었는지 확인한다. 

후보는 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1차 선거일로부터 10번째 되는 금요일까지 CNCCFP (Commission nationale des comptes de campagne et des financements politiques), 즉 선거비용과 정치자금을 담당하는 국가위원회에 우편으로 보낸다. 이때 우표는 붙이지 않는다. 





CNCCFP는 선거자금 환불뿐 아니라 선거자금 감사를 맡는다. 선거자금과 관련해서 특정액에 관련된 의문사항을 후보에게 우편으로 질의하면 후보는 지체없이 답신을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5% 이상의 지지를 받고, 선거자금 지출이 선거법이 정하는 최대금액(A)을 넘지 않으면 국가는 최대 제한금액(A)의 47.5% 한도 내에서 환급해준다. 다시 말해서 선거법이 정하는 최대 제한 금액의 절반 이하의 선거자금을 쓴 경우, 전액 환급된다. 

필자가 출마했던 선거구는 인구 6만3564명으로,선거자금 최대지출 한도액이 3만8768유로 62쌍팀('쌍팀'은 센트에 해당되는 프랑스어로, 1유로는 100쌍팀). 환급 최대한도액은 1만8416유로였다. 필자의 선거자금 총액이 2280유로라서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선거 자체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항목은 각 후보의 선거비용에서 제외한다. 선거 공식게시판에 붙이는 포스터, 각 가정에 배달되는 공약 홍보물, 선거용지 등은 국가에서 결제하므로 후보의 부담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공식게시판 이외에 포스터를 더 붙이고 싶어서 포스터를 추가 주문하게 되면 추가분은 선거계좌의 지출목록에 올라간다. 공약 홍보물을 환불받기 위해서는 재활용 섬유질이 최소한 절반이 넘는 종이이거나 지속적인 관리 국제인증을 받은 숲에서 베어낸 나무로 만든 종이여야 한다. 



8. 선거자금의 한도액이 있나? 

있다. 선거인 수에 비례해서 선거법이 선거자금 한도액을 정하고 있다. 이 한도액은 2~3년마다 바뀐다. 만일 선거비용이 선거법에서 정한 한도액을 넘은 경우, 선거자금 일체를 환불받지 못할 뿐 아니라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당선이 취소된다. 

최근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가 대선 선거자금 위반으로 법정에 서게 됐는데, 2012년 당시 사용한 선거 비용이 선거법에서 정한 한도금액을 넘어섰다는 혐의 때문이다. 대선 캠페인 당시 사르코지는 비그말리옹에 UMP(대중운동연합) 정당 모임을 의뢰했는데, 정당 모임을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화려하게 가졌다.

맞수인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가 2012년 1월부터 4일까지 10번의 정당 모임을 가졌던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는 43회의 정당 모임을 가졌다. 게다가 특수조명, 대형 스크린, 정당 모임을 위해서 작곡한 음악, 비디오 촬영까지 동원했다. 단적인 예로, 안시와 빌팡트, 단 두 도시에서 열었던 UMP 정당 모임에만 자그마치 50만 유로(약 6억8천만 원)가 들었다. 




참고로 1차 선거 당선자의 선거자금 총액은 2250만 유로(약 307억 원)를 넘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대선 캠프 관계자가 지난 대선에서 선거비용 초과 사용을 은폐하려 비그말리옹에서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행사를 연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서 1850만 유로(약 253억 원)의 영수증을 위조했다는 것. 사르코지는 선거자금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이 사건으로 비그말리옹과 UMP 관계자 13명이 기소됐다. 

흥청망청 정당 모임의 기획을 맡았던 이벤트 회사 비그말리옹은 사르코지의 UMP동료이자 한때 UMP의 당대표이기도 했던 프랑수와 코페의 친구 둘이 경영을 맡았다. 현재 모(Meaux) 시의 시장으로 있는 코페는 2012년 11월, 당내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부정을 일으켜 18개월 만에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2017년 대선을 딱 일 년 앞두고 4년 전에 사르코지가 위조했던 영수증과 USB키를 발견돼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UMP는 현재 '공화당'이라는 이름으로 당명을 바꾼 상태다. 


9. 기탁금은 얼마인가? 

없다. 프랑스에서 '선거 기탁금'이란 제도는 없다. 대신 최소 5%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선거자금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은 후보가 갚는다. 단, 대선은 예외이다. 

대선은 선거구가 넓고, 참여하는 선거인이 많으며 선거자금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워낙 크다. 그러다 보니 1차 선거에서 5% 이상 지지를 못 받고 낙선했더라도 2012년 대선의 경우 지출 최고 한도액의 4.75%인 80만422유로50쌍팀까지 환불해주었다. 5%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경우, 지출 최고 한도액의 47.5%까지, 즉 800만4225유로까지 환불해주었다. 


10. 개인이나 기업에게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나? 

4600유로에 한해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의 한계액은 150유로, 그 이상인 경우 반드시 수표로 지불해야 하며, 개인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이 선거자금 지출총액의 20% 이하여야 한다. 

반면에 1988년부터 개정된 선거법에 의하면, 기업으로부터는 일체의 기부금을 받을 수도 없고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다.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거나 공간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경우,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서비스가가 시장가보다 훨씬 높거나 낮으면 CNCCFP에서는 그 사유에 대해서 물을 것이고, 사유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그 액수만큼은 환불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선거활동이 아닌 경우, 정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는 있다. 한 해 한 정당에게 기업은 최대 7500유로, 가족은 1만5000유로까지 기부할 수 있다. 


11. 후보 자신의 재산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나? 

은행 대출 안 받고 자기 돈이 충분히 많아서 자기 돈으로 선거하겠다면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돈을 선거계좌로 집어넣으면 되니까. 단, 후보는 선거기간동안 선거계좌에 들어간 돈을 단 한 푼도 만질 수 없고,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도 쓸 수 없다. 캠페인계좌 협회와 대리인만이 선거비용을 관리할 수 있다. 



다음 편에는 '프랑스 선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종결판으로 투표방법, 투표용지, 투표함, 해외국민투표 등 투표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한다.




2016년 2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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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6.02.08 23:02

지난해 이맘때쯤 프랑스 도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후보 등록 마감을 불과 일주일 앞둔 때였다. 평생 선거 캠페인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집안 어른이나 지인 중에도 정치는커녕 이장 한 번 지내본 사람이 없었다. 

정치인이 되려고 마음먹고 저지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2015년부터 선거법이 바뀌어 남녀 1조로 후보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마저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 선거구에서 녹색당이 후보 명단에서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후보 수락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아니까.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내가 사흘 동안 고민 끝에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원인은 나를 추천했던 동료의 추천사에 있었다. 

"정치는 '정치가'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2015년 이블린 도의원선거 후보 기자회견 사진 이블린(Yvelines)에서 가진 녹색당 도의원선거 출범식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체 기념촬영. 이블린은 파리 서쪽에 위치한 데빡뜨멍(departement; 도)으로, 이곳의 수도는 베르사이유다. 위 사진의 링크> http://yvelines.eelv.fr/les-ecologistes-battent-la-campagne-yvelinoise/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봐. 그 때문에 나도 지난해에 시의원으로 출마했고, 시의원이 됐어. 나는 네가 녹색당 여성 후보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너의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몹시 필요해. 넌 아주 좋은 여성 후보야."

내 선거 파트너는 운도 대단히 좋지. 마침 그때 내가 백수여서 두 달간 밤낮으로 선거 운동에 오체투지를 할 시간이 있었다. 내 선거 파트너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단칼에 무시해버리는 선거 운동을 다 해내는 고집과 '포스'가 있었다. 

집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경시청(Prefecture of Police,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 조직)에 후보등록부터 시작해서 포스터에 들어갈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뿌리고, 보도 자료를 만들고, 시민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준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열어 운영하는 등 선거 캠페인의 모든 과정을, 선거 8개월 후 국가로부터 선거 자금을 환불받을 때까지 혼자서 다 해냈다. 



015년 우이(Houilles) 선거구 도의원선거 포스터 내가 2015년 도의원선거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선거 포스터. 우이 선거구에는 우이, 까리에르 쉭센느, 몽테쏭의 세 도시가 포함된다. 이 사진 촬영과 색보정을 내가 직접 했다.



녹색당 동료들로부터 "적당히 해, 이건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고"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확실히 미쳐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개정된 프랑스 도의원 선거법 조항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선거 자금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통달했다. 

내 선거구뿐만 아니라 옆 동네 삭투루빌 선거구에 출마한 녹색당 동료의 선거 캠페인도 물심양면 도왔다. 그 결과 삭투루빌 선거구의 1차 선거에서 녹색당은 7.44%를, 우리 선거구에서는 7.30%의 지지를 얻어냈다. 내겐 나름의 승리였다. 3%도 넘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선거 파트너의 배신을 맛봐야 했던 건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내 선거 파트너는 전년도 시의원 선거 때보다 갑절 이상 뛰어버린 녹색당 지지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 사무소별로 집계한 결과표를 신줏단지처럼 고이 품 안에 넣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14년 시의원 선거에 그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고, 1차 선거에서 389표를 받아 지지율 3.27%를 기록했다. 일곱 명의 후보 중 꼴찌였다. 

그런데 2015년, 인구와 면적이 3배 이상 커진 도의원 선거에서 일곱 후보 중 4위를 기록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참고로, 도의원 선거 우리 선거구의 면적은 약 17km²에, 인구는 약 6만3000명이다.  

이후 1차 선거를 통과한 사회당이 우리에게 2차 선거에서 본인들을 지지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우파와 대결할 좌파인 사회당을 지지하는 일은 나로선 재고할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선거 캠페인 동안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며 도와주었던 이가 40년 동안 사회당원이었고, 나의 시어머니는 18년간 사회당 당원이자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프랑스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색당이 도의원으로 선출된 곳도 다름 아닌 시어머니가 계신 도였다. 어머님은 그 사실을 내 일처럼 기뻐하셨다. 사회당이신 어머님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녹색당인 나를 물심양면 도와주셨다. 때문에 녹색당인 나와 가까운 사회당의 2차 선거를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당연히 사회당을 지지해야지! 우파가 이기게 놔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내 말에 나의 선거 파트너는 주저 없이 "글쎄, 난 아니야, 사회당에 실망해서"라고 말했다. 3월 22일, 밤바람이 아직 쌀쌀한 자정에 우리는 각자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선거 파트너의 배신에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집을 나서니 사회당 선거 게시판마다 '녹색당 아무개 남자 후보, 사회당 지지'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더군다나 일은 다 내가 했는데 생색은 그가 내다니. 

며칠을 앓고 드러누웠다가 일어나 같은 길에 위치한 사회당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돕고 싶다고 했다. 전단에 내 지지 의사를 인쇄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내 사진과 지지 의사를 그들의 페이스북에 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흘간 그들의 선거 캠페인에 동행했다. 바로 그때 나는 진짜 선거 캠페인이라는 게 뭔지를 보았다. 

나에게 '대선 준비하느냐'던 녹색당 동료들의 비아냥을 잊게 만든 진짜 선거 운동을 체험해보았단 말이다. 프랑스 전국에 있는 녹색당원들이 우리 선거구 동료들 같지는 않다. 내 선거 운동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나를 응원해주던 타 선거구의 녹색당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든 과정을 모두 감수할 수 있었다.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지지하기위해 사회당원과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는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행하던 때. 왼쪽에서 두 번째가 도의원선거 사회당 여성 후보 마리셩딸 듀플라이고, 맨 오른쪽이 사회당 남자 후보 실방 티아롱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거나 내 인생에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덕분에 2015년 초에 개정된 도의원 선거 관련법규를 통독했고, 프랑스 선거 절차에 대해서 그 어느 프랑스인보다도 훨씬 잘 알게 되었다. 

4월에 있을 한국의 총선을 맞아 프랑스의 선거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전반적으로 소개할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언제 어떤 선거를 치르며, 선거 운동은 어떻게 하며, 기탁금을 얼마나 내며, 선거 자금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차로 나누어 소개해볼까 한다. 

1. 프랑스에서는 어떤 선거가 언제 있나?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의원을 한 날에 뽑기 때문에 투표용지 여러 개를 들고 투표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한 선거에서 한 종류의 의원을 뽑는다. 프랑스에서 시의원 선거, 도의원 선거, 지방 선거는 6년마다 치러지고, 유럽의원 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진다. 

총선을 앞둔 한국은 정치인들의 '줄서기'가 한창이던데, 프랑스는 선거가 없어 조용하다. 내년 4월 23일과 5월 7일 대선을 시작으로, 6월 총선, 2020년 초 시의원선거, 5월 유럽의원 선거, 2021년 3월 도의원 선거, 12월 지방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유럽의원 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1차와 2차 투표를 거친다. 유럽의원 선거는 프랑스만의 선거가 아니므로 앞으로는 이 글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2. 결선투표제는 어떻게 진행되나? 

1·2차, 두 차례에 걸쳐 선거를 치르는 결선제를 도입한 나라마다 상세 규정에 차이가 있다. 프랑스라 하더라도 총선과 시의원 선거는 규정이 다르다. 총선과 도의원 선거의 예를 들어보면,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등록된 선거인 중 25%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다시 말해서 50% 이상의 지지율이 나왔다 하더라도 선거율이 저조해서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했다면 2차 선거를 치러야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도의원 1차 선거에서 삭투루빌(Sartrouville) 선거구의 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UMP)후보가 55.74%라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지지율이 아닌 득표수를 집계해보면, 등록된 선거인 (혹은 전체 등록유권자) 5만1177명 중 23.74%인 1만2016표를 얻었다. 

즉 선거율이 낮은 탓에, 과반의 지지율에도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해서 2차 선거를 준비해야했다. 후보 다섯 팀 중 12.5% 이상 득표한 팀이 UMP밖에 없었으므로 최다득표한 두 팀의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렀다. 참고로, 이 선거구의 선거참여율은 1차 선거 43.18%, 2차 선거 38.90%이었다. 

3. 프랑스에도 비례대표제가 있나? 

대통령, 국회의원, 도의원은 2차 선거를 통과한 후보만이 실무를 수행하고, 시의원과 지방의원은 2차 선거에 오른 후보들 사이에 비례대표제가 적용되어 의원직을 차지한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후보자 단독출마가 아니라 '리스트'라고 불리는 팀을 구성해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다. 

후보자는 선거구의 인구수에 비례해서 정해진 홀수의 팀을 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시의원선거에서 해당 시의 인구에 비례해서 39명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시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1번이 되고, 그와 함께 시의원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 38명 찾아서 명단을 채워야 한다. 1번이 남자면 이어지는 순서는 반드시 여자-남자-여자-남자순이 되고, 1번이 여자면 2번 이후는 남자-여자-남자-여자순이어야 한다. 

지방선거의 경우, 하나의 지방 안에 여러 개의 도(département)가 있어서 명단등록과 의원점유율 계산이 아주 복잡해진다. 지난번 프랑스 지방선거에 대한 글에서 상세한 설명을 했는데,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다시 설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일드프랑스(파리와 인근)의 경우 녹색당 후보로 에마뉘엘 코스가 나섰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도가 있고, 각 도마다 인구수에 비례해 명단을 작성해야만 에마뉘엘 코스가 지방의원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파리는 에마뉘엘 코스를 필두로 한 리스트에 총 42명, 센에마흔느에 77명, 이블린에 27명, 에쏜에 24명, 오드센느에 30명, 센생드니에 29명, 발드마흔느에 25명, 발드와즈에 23명해서 일드프랑스에서 총 225명(반드시 홀수!)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녹색당과 시민연합(CAP21)이 연합했다. 다른 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각 도마다 같은 수의 지지자를 찾아 총합 225명의 명단을 작성해서 경시청에 제출해야만 후보등록이 된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앞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뒷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없거나, 과반을 넘었다 해도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의 표도 얻지 못했을 때는 12.5%를 넘긴 후보1, 후보2, 후보3이 2차 선거를 치른다. 만일 지지율 12.5%를 넘긴 후보가 하나밖에 없거나 아무도 없다면 최다득표를 한 두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른다. 지난 지방선거 1차 선거 결과의 실례를 볼까? 

파리에서 1차 선거 결과, 우파연합과 좌파연합이 각각 32.93%와 31.42%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녹색당이 10.92%, 극우전선이 9.66%의 지지를 받았다. 이하 후보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파리 주변 지역을 통합한 '일드프랑스'에서의 득표수를 집계한 뒤, 등록된 선거인 수를 분모로 득표 비율을 산출해보면 각각 30.51%, 25.19%, 8.03%, 18.41%로 순위가 뒤집힌다. 파리에서는 녹색당 지지율이 3위, 극우전선 지지율이  4위였지만 일드프랑스에서는 극우전선이 녹색당을 월등히 앞질러 12.5%를 넘기면서 2차 선거 후보로 오른 것이다.  

1차 선거 결과, 프랑스 전국에서 극우전선의 파도가 넘실댔다. 전국의 52%가 넘는 시에서 극우전선이 선두를 달리는 경악할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에마뉘엘 코스는 녹색당의 이름으로 좌파연합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2002년 극우전선이 대통령 2차 선거 후보로 오르던 그 악몽이 반복될 것인가? 프랑스는 긴장상태에 놓이고, 선거참여율을 높이자는 시민캠페인이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선거참여율 속에 치러진 2차 선거 결과, 극우전선은 프랑스 전국 그 어디에서도 최다득표를 이뤄내지 못했다. 파리의 경우, 좌파연합이 녹색당의 지지를 흡수하면서 1차 선거의 순위를 뒤집고 49.64%로 1위를 달렸고, 우파연합은 44.26%, 그리고 극우전선은 높아진 선거참여율에 밀려나 6.10%를 기록했다. 하지만  파리가 포함된 선거구획 일드프랑스 집계에서는 우파 43.8%, 좌파 42.18%, 극우전선 14.02%를 기록해 전체 판도가 달라졌다. 

이 경우, 지방의원 좌석점유율을 어떻게 계산할까?

일드프랑스 지방의원의 총 좌석 수가 209석이다. 최다득표를 한 우파연합이 먼저 '보너스'로 25%를 차지한다. 따라서 52석 선 점유. 이어서 남은 157석을 세 후보가 득표율로 나눠 각각 68석, 66석, 22석을 차지한다. 다 더하면 총 208석, 한 자리가 남는데, 이건 최다수 득표를 한 당에게 돌아가 우파연합은 총 121석을 차지하게 된다. 각 당의 도별 의원수 배정은 일드프랑스의 각 도별 득표비율에 따른다. 

4. 연합 출마와 2차 선거 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파리회의로 이곳에 오신 한국의 녹색당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니, 어떻게 '연합' 출마가 가능할 수가 있나? 합당을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면 만들었지 서로 다른 당이 어떻게 연합을 해서 출마를 할 수 있나? 한국에서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며 깜짝 놀라하셨다.  

선거구역이 작은 시의원 선거에서는 연합하는 일이 없지만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연합해 출마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의원 선거와 지방 선거가 그렇다. 

도의원 선거는 리스트가 없고, 2015년부터 여성의 정치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남녀 후보가 한 조가 되어 출마해야 한다. 남녀 후보에, 부후보 두명까지 총 4명이 한 조가 된다. 선거가 끝나고 의원이 된 후에는 남녀 후보는 각각 독립적으로 의원생활을 한다. 

도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는 보통 세 개의 도시에서 많게는 약 40개의 마을을 포괄하게 되는데, 그중 한 도시에 사는 후보들끼리 출마하는 경우는 드물고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에 사는 서로 다른 당 후보가 연합해 4인1조를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의 지역적인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어 하나의 도시·마을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여러 도시·마을을 포괄한 도 단위의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당과 연합하는 경우,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극우전선과 연합하려는 당은 더욱이 하나도 없다. 보통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연합하고, 녹색당은 좌파와 연합해왔는데, 사회당과 연합했다가 지난해에는 극좌파와 연합했다. 

공약 프로그램 작성 과정부터 함께 참여하고, 리스트를 같이 짜게 되므로 다수 정당은 소수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수 정당 지지자의 표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당선이 될 경우, 소수정당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노선을 공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1차 선거에서 패배한 당이 2차 선거에서 아무개당 지지를 공식으로 표명하는 경우, 리스트를 다시 짜는 경우는 드물다.  

5. 후보의 기호는 늘 고정되는가? 

한국에서는 여당이 기호 1번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선거 때마다 바뀐다. 경시청에서 선거 후보들을 어느 한 날 일제히 소환해 그 자리에서 제비뽑기로 정하기 때문이다.  

6. 창당이 쉬운가? 

프랑스 녹색당의 현재 당원이 1400명이라는 말에 한국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한국 녹색당 당원 수보다 훨씬 적다"며 놀라워 했다. 한국에서는 창당하는 데 최소한 5000명의 당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당원이 1400명밖에 안 되는 당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장뱅상 플라세가 지난해 여름 녹색당을 탈퇴하고 가을에 새 당을 만들었다는 말에 역시 놀라워하며 창당이 그렇게 쉽냐고 나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는 당원수가 창당의 조건이 아니다. 창당은 협회(association)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하다. 최소한 회장과 총무만 있으면 되고, 간단한 서류절차를 경시청에 제출하면 가능하다. 문제는 당을 얼마나 쉽게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당이 동시대 시민의 소리를 얼마나 많이 대변하고, 얼마나 많은 당원을 확보해서 재정적으로,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다음번에는 많은 분들이 굉장히 궁금해 할 프랑스의 선거자금, 그리고 한국에서 보면 생소할 투표용지와 투표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016년 1월 31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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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5.12.17 10:05

교실에서 자리를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학교, 급식을 성적순으로 먹인다는 학교, 그렇게 잔인하게 공부시켜서 대체 뭐에다 쓰려는걸까? 그렇게 경쟁하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자격증에 졸업증에 식스팩을 준비해서 '좋은'직장에 가고, 학벌과 집안이 '좋은' 배우자를 구해서 결혼하고, 태교에 '좋다는' 성문영어와 정석수학을 임신 중에 공부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학원을 한 달에 서너 개씩 보내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사례들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보여주고자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프랑스인들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스케이트보드를 원없이 타기 위해 찾은 직업, 요리사 

트리스텅을 만난 것은 유기농 빵집에 견학갔을 때였다. 새벽 4시부터 빵 반죽을 하는 빵집에 6명의 불렁줴(빵 굽는 사람)가 있었는데, 트리스텅은 그중에 가장 친절했다. 일하는 동안 방해되지 않게 피해다니며 틈 나는대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이것저것 먼저 설명해주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잘 구워진 빵을 먹어보라고 건네준 것도 그였고, 막 구워 나온 빵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때문에 한 김 식혔다가 먹으라고 조언을 준 것도 그였고, 견학을 마치고 자리를 뜰 때 아쉽다는 기색으로 페이스북 연락처를 물어온 것도 그였다. 




'나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푸는 흔치 않은 프랑스인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빵을 구운 지는 몇 달 안 됐다는 그의 지난 10년간 직업은 실은 요리사였다. 내가 견학갔던 빵집에는 휴가 간 직원들을 대신해 2주간 일손을 도우러 왔던거였다. 요리사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시간이 날 때면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   

한국같으면 대학 들어가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학교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에 각종 자격증 따느라 바쁘고, 졸업할 때면 직장 구하느라 피가 마르고, 나이 서른이 되면 여자 친구 하나쯤 있어서 주말에는 데이트하고 결혼자금과 집 장만을 이유로 적금과 은행대출에 허리가 휘어질 텐데, 서른의 나이에 어쩌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신나게 살 수 있지? 12월부터 3월까지 알프스 스키장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스키를 즐기러 간다기에 현재 실업자가 된 그를 서둘러 만났다. 

문학 전공했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트리스텅이 스케이트 보드에 빠져있는 한때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넝테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학사를 마치고 1년간 요리를 공부했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고학력 실업자가 늘고 있는 추세 아니던가?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실업교육에 있다고 믿었고, 프랑스를 떠나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행자금을 모으는 방법으로 워킹 홀리데이도 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과일 따는 일이고, 게다가 계절을 잘 맞춰야 한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방식은 요리사가 되는 것! 세상 어디를 가도 칼만 있으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사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대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 2년동안 준비했다.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1년, 그리고 1년짜리 요리 전문과정을 다니면서 돈을 모았다. 교육과정상 학교에서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 식당에서 연수생으로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1살에 첫월급을 받았다. 대학 동창 중에 가장 먼저 돈을 벌었다. 대학 동창들은 지금 유명 출판사나 '라 리베라시용'같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친구 중 한 명이 트리스텅이 쓰는 책의 교정을 봐주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엄마에게서 배운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일을 구했다. 그 다음은 호주로, 멕시코로, 캘리포니아로, 태국으로. 

태국에서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했고 요리는 돈을 주고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보드 타는 친구와 어울리다가 한명이 채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쉐프를 소개해줬다.

쉐프네 집에서 1주일을 먹고 자면서 채식요리를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시장에 나가서 재료 고르는 법을 배웠다. 또다른 잊지 못할 경험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석 달동안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여행을 했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공부 마치면 구직하고 연애하고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등의 일련의 사회적 기대감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런 기대감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란다. 다만 자기는 그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뿐이라고. 이제 서른인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 4년간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각자 서로 다른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중요한 건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난 지금이 행복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난 행복해"

강가를 거닐며 얘기하다가 운동 중인 내 지인을 만났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트리스텅은 그에게 바로 악수를 청하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고는 지인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아직도 존댓말로 대화하는 지인에게 바로 반말을 건넨다. 

지인에게 "당신도 아는 그 유기농 빵집에서 일했던 블렁줴다"라고 그를 소개했더니 지인은 "아, 당신네 빵 정말 맛있다. 빵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리스텅이 바로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레시피를 적어준다. 여행에 의해 단련된 열린 마음 때문에 초면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걸까.  

앞날에 대해 걱정이 없느냐 물었더니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는 답이 날아왔다. 

"중요한건 현재야. 내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았어. 보험, 대학교육, 쉔겐조약 등 그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해.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싶은 건 다 했어. 난 지금이 행복해."

맞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행복이 올꺼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현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깨닫는건데. 나니 모레티의 영화 '아들의 방'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뒤 아버지는 그제야 '아들이 같이 야구하며 놀자고 했을 때,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  

"내가 만일 프랑스에서 살면서 집 장만을 해야 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거야. 프랑스에 돌아오면 엄마 집에 머물기 때문에 내 집이 따로 필요없었거든. 앞으로는 내가 프랑스에 돌아오면 묵을 아파트가 하나 필요할 것 같아."

자유롭게 산다고 계획없이 사는 건 아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생활비는 프랑스보다 해외가 더 적게 먹혀. 한 달에 1000유로로 예산을 잡아. 프랑스에서는 월세가 비싸서 1000유로로 한 달을 살 수 없잖아. 잠은 캠핑에서 자고, 먹는건 직장에서 해결이 되고, 남는 시간은 스케이트보더들과 보드를 타러 다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6개월 정도 준비를 해."

오랜 시간의 여행과 타지생활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냐고 물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고급 아파트를 보면서 트리스텅이 말한다.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예전엔 싫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건 그들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걸 인정해. 요리사가 돼서 세계를 여행하면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며 사는 건 내 방식이고. 내 인터뷰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모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다른 방식이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겨울에 알프스에서 일하려고 해. 스키장에서 일하면 스킨장 시설을 무료로 쓸 수 있거든. 내년 3월까지 거기서 지내고, 그 다음은 인도로 가려고해. 알프스에 아직 구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일 찾는건 어렵지 않아.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 아마도 10년 후쯤에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 유기농이나 채식처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는 먹거리 관련사업 말이야." 

행복과 감사함과 자신감에 꽉 찬 그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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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5.08.24 22:28

지난 3 22일과 29, 파리와 리옹을  제외한 프랑스 전국에서 도의원 선거(les élections départementales)가 치뤄졌다.  어쩌다보니 본의아니게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어 베르사이유 경시청에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선거 캠페인 전과정에 걸쳐 모든 일을 하는 바람에  프랑스인들도 다 모르는 선거법도 자세히 읽게 되었고, 선거자금이 어떻게 준비되고 유통되는지 선거를 둘러싼 일체의 준비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내가 후보로 나섰던 건 옆동네 녹색당 시의원의 추천사유 때문이었다.  «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봐. 그 때문에 나도 작년에 시의원으로출마를 했고, 시의원이 됐지. 나는 네가 녹색당 여성 후보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너의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몹시 필요해. 넌 아주 좋은 여성 후보야. » 이 동료의 추천을 받고 사흘간 고민했다.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사회라, 얼마나 좋을까 ?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출마를 결정했고 캠페인 내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에 이 동료의 추천사가 내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프랑스의  행정 및 선거제도를 다 설명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지만 프랑스 녹색당을 소개하는데 앞서 프랑스의 행정적인 골격을 이해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서 도의원선거와 관련된 사항만을 간략하게  소개할까한다. 이 골격을 보고나면 프랑스 녹색당이 프랑스 사회 전체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예년과 다르게 이번 도의원선거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먼저, 도의원선거의 선거구 단위가 되는  껑똥’(cantons)의 수가 반으로 축소되었다.  다시 말해서 선거지구의 면적이 두 배로 늘어 자신이 거주하는 곳이 어느 선거지구에 소속되는지 투표 전에 확인해야했다. 여러 개의 꼬뮨(communes; )’이 하나의 껑똥을 이루고여러 개의 껑똥이 하나의  ‘데빡뜨멍(département; )’을 이룬다한 껑똥의  주민수는 약 10만명으로 껑똥은 행정적인 구획 단위데빡뜨멍은  지리적인 구획 단위다.  프랑스는 현재  시  36 700, 101, 지역(régions)  22개로 나뉘어져있다. 작년에 시의원선거, 올해 도의원선거, 올 연말에 지역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로, 이번 선거부터 도의원 명칭이 꽁쎄이 제네랄(conseil général)’에서 꽁세이 데빡뜨멍딸 (conseil départemental)’로 바뀌고임기도  3년에서 6년으로 늘어나고, 과거에는 한 명의 후보였던 것이 « 여성의 정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 반드시 여자와 남자가 한 팀이 되어 출마하는걸로 바뀌었다. 내가 도의원선거 개편 상세를 말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는 남성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앞으로는  여성의원과 남성의원이 동일한 비율로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각각의 후보는 동성의 대타후보가  있어야하므로  41조가 되는데, 한 껑똥이 걸치고 있는 여러 시에서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 넷이 공동의 선거공약을 만들어 출마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좌파와 우파가 손을 잡는 경우는 없다. 좌파든 우파든 소수정당들이 여럿 있으므로 좌파는 좌파 내에서, 우파는 우파 내에서 결합한다.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지는 르펜(Le Pen)  대를 물려 거의 독재체제로 군림하는 극우파는 어느 누구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극우정당 후보들은 선거포스터만 걸었을 뿐 (돌 맞을까봐 ?) 선거 캠페인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당별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선거포스터가 훼손당한 경우는 대부분 극우정당의 포스터들이었다. 프랑스는 지금 극우파가 일어나는 배경과 원인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 중이다

 

녹색당은  도의원 선거에서 좌파의 대표격인 사회당(PS: parti socialiste)과 손을 잡지 않기로 애초에 당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왔었다. 사회당의 올랑드가 대통령으로서 그다지 좌파적이지 않은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겉만 좌파 속은 우파라는 조롱을 받아왔고그에대한 보이콧이었다. 제 갈 길을 제대로 가지 않은 정당의 결과는? 그렇다. 참패였다. 국민의 믿음을 져버린 뻔한 결과였다. 그리고 우파와 극우파의 대승이었다. 국민 앞에 철저하게 선거로 재판받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2차선거를 통해 당선된  4 108명의 도의원 중 녹색당 소속은 전국에서 딱 3!  녹색당의 당지침과는 역설적이게도 사회당과 손잡은 보르도의 녹색당 후보들이었다. 사실 프랑스 남서부는 대규모로 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연대감이 그무엇보다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우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당의 터다.

 

프랑스 녹색당의 정식 명칭은 ‘Europe Ecologie Les Verts’ ‘유럽 친환경 녹색당이란 뜻이다. 2008년에 그냥 녹색당(Les Verts)’이라고 시작했다가  2009년에 유럽선거를 앞두고 유럽 친환경(Europe Ecologie)’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2010년에서야 ‘Europe Ecologie Les Verts (유롭 에꼴로쥐 레베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정회원은 약 1만명, ‘조합원(coopératifs/ coopératrices)’이라고 불리는 준회원이 2013년까지만도 2만명이었는데 현재 1400명으로 줄었다.  녹색당 조합원이란 다른 정당에는없는 독특한 시스템인데, 녹색당을 지지하는 친환경주의자이지만 직접적인 정치적인 활동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이들이다. 녹색당  회의에 참여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도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반면,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나서는건 가능하다.

회비를 낸 정회원수로 프랑스의 각 정당의 규모를 가늠해볼까 ? UMP 우파가 압도적으로 많아  270 000, 그 뒤를 잇는 정당은 다름아닌 극우정당으로   83 000. 공산당이 사회당보다 더 많은 정회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공산당 정회원이 7만명, 사회당이  6만명. 기타로 민주적 운동당이 2만명, PRG 좌파와 녹색당이 각각 1만명, 멜랑숑이 이끄는 극좌파가 9천명 등이다. 어느 당이든 당수가 신임을 얻지 못하면 내부분열이 일고 지지가 주는 법이다.

궁금해할 것 같아 내가 뛴 선거 캠페인의 결과를 말하자면, 두 달간의 선거운동 기간동안2280유로의 선거자금을 썼으며 (한화로 34십만원), 전체적으로 50%를 밑도는 선거율 속에서1차선거에서7.30%의 지지를 받았고, 우리 선거지구에서 출마한 일곱 팀 중에 4위에 올랐다. 지난 해 내 파트너가 시의원선거에  녹색당 대표로 출마해  3%의 지지를 받고 일곱 팀 중에 꼴찌를 한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국회로 갈꺼냐고 농담삼아 물어오는 분들이 계신데, 계속 정치활동을  할 생각은 없고, 친환경 시민운동을 전개하는데 역점을 두고싶다. 녹색 전환 연구소에 이보다 더 정치적인 글은 앞으로 쓰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첫글을 마친다.

 

사진 설명: 이블린(Yvelines)의 녹색당 도의원선거 출범식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념촬영. 참고로, 이블린은 파리 서쪽에 위치한 데빡뜨멍(도)으로, 이곳의 수도는 베르사이유다.

프랑스 녹색당 공식 사이트 : http://eelv.fr/


녹색전환연구소 해외소식 6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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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5.05.15 06:17

지난 3월 하순, 프랑스에서 치뤄진 도의원선거(les élections départementales)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다. 내 생애 첫 출마였을 뿐 아니라 첫 선거캠페인이었다. 2015년 도의원선거는 여성의 정치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1명의 후보 대신 반드시 한 여자 후보와 한 남자 후보가 1조가 되서 출마하도록 바뀌었고, 각 후보마다 같은 성별의 대행인이 있으니 총 4인1조, 임기도 3년에서 6년으로 바뀌었고, 선거구의 대대적인 재정립이 따르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쩌다보니 후보 제안을 받았고, 어쩌다보니 4인1조임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이 시간날 때마다 가끔 조금씩 도와주긴 했지만 1월 중순부터 약 두 달간 선거 캠페인을 풀타임으로 혼자서 거의 다 도맡아했다. 베르사이유 경시청에 선거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인구 5만명, 선거인 9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우리 선거구 선거 공식 게시판에 포스터를 다 붙이고 다녔고, 우리 후보의 페이스북 페이지, 인터넷 홈페이지, (옆동네 녹색당 후보의 스케줄을 포함해서) 6회의 시민들과의 자리 스케줄 잡기, 언론자료 작성, 이메일링, 선거 포스터 사진 촬영, 전단지 내용 문구 작성 등 지긋지긋하리만큼 도맡아한 일이 많았다. 선거가 끝난 지금은 다음 주에 회계사와 만남에 앞서 선거자금 뒷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두 달 후면 국가에서 선거자금 감사가 나오는데, 그때 2명의 후보 중 대표로 내가 감사에 응답을 하게 된다. 


이렇다보니 경험이 없어서 좌충우돌했지만 프랑스의 선거법 조항을 유심히 읽게 된 계기가 됐고, 선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준비되는지 여느 프랑스인보다 더 잘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일을 같이 하다보니 사람을 제대로 다시 보게 된 인간도 몇몇 있었고, 반면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멋진 친구들을 알게 된 기회이기도 하다. 


더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형식적이지 않은 연설


지난 5월 10일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정말 우연히 들린 녹색당 Conseil Fédéral 회의에서 어안이 벙벙해진 놀라운 경험을 했다. 9일과 10일, 연이틀간 하루 종일 치뤄졌던 Conseil Fédéral 이 나는 사실 뭐하는지 모임인지도 모르고,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발표자 등록을 해야한다는 것도 몰랐다. 프랑스 전국에서 모인 녹색당 회원들이 모인 회의라는 것밖에. 내가 있던 일요일 오전에 휴식시간도 없이 9시부터 12시반까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이 자리에서 12월에 있을 프랑스 지역선거의 각 선거구 녹색당 대표들이 투표로 선출됐다. 

일요일 아침에 최근 여론의 도마에 오른 Loi de reseignement 에 대한 토론이 있을꺼라고 해서 갔는데, 동료가 프로그램을 착각했는지 새 법안에 대한 토론은 없었고, 지난 도의원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에게 3분간 자유발표 시간이 주어졌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맨마지막에 단상에 올라가 내가 느낀걸 말하고 내려왔다. 그곳을 뜰 때까지 몇몇 사람들이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나를 지나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내 발표가 멋있었다고 그러는거다. 이해가 잘 안갔다. 내가 단상에서 내려올 때, 사회자가 "더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고 한건 기억이 난다. 나에게 칭찬을 하는 사람에게 마침내 물어봤다. "나한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지금 3번째인데, 내 연설이 뭐가 좋았어요? 뭐가 마음에 들던가요?" 답하기를, "신선했어요!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였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형식적인게... 주저하지말고 연설(발표)하세요." 하더니 갔다. 나 감동 먹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거지?


Conseil Fédéral 에서 3분간 연설 중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게 아니라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것 


한국인 친구들은 '오, 프랑스 정계 진출!'이라고 띄우는데, 무엇보다 우리 선거구에서 여성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후보 제안을 승락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내가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를 후보로 추천한 동료의 추천사유 때문이였다. 

"나는 정치적인 감각도 없고,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인데, 어째서 나를 후보로 추천하느냐" 물었더니 그 친구 말이,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봐. 그 때문에 나도 작년에 시의원으로 출마를 한거고, 시의원이 됐지. 나는 네가 녹색당 여성 후보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너의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몹시 필요해. 넌 아주 좋은 여성 후보야." 이 동료의 추천을 받고 사흘간 고민한 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출마를 결정했고, 캠페인 내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에 이 동료의 추천사가 내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3월 22일, 50%도 넘기지 못한 저조한 선거률 속에서 우리는 1차선거에서 7.30%를 끌어냈다. 일곱 팀의 후보 중 4위였다. 내 파트너였던 남자 후보가 작년에 녹색당 시의원 후보였는데, 39명 1조로 출마해서 고작 3%를 받고, 선거후보들 중 꼴찌를 했던 기록에 비하면 투표인 거주지역이 두 배나 넓어진 올해, 매우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내가 뛴 첫 선거캠페인이자 첫 출사표 치고는 무척 좋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책임감을 가지고 묵묵히 열심히 뛴 내가 자랑스럽다. 



살다보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끔 찾아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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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des Images에서 9월 5일부터 시작하는 l'Etrange Festival 개막작으로 나왔던 류승완의 '베를린'을 어제 재상영으로 보았다. 영문 제목은 'The Agent'로 나왔는데, 'Berlin File'로 했던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난 사실 첩보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가기 힘든 뇌구조를 가졌기에 겸손하게 내가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을 조심스럽게 말해볼까 한다.

007를 능가하는 액션 첩보 영화. 오~! 하정우 오빠, 너무 멋져~~!  @.@!! 아, 단순한 뇌세포! 그러나 어찌하랴. 좋은 배우를 스크린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어찌 숨기랴! 내가 하정우를 처음 본 영화는 '러브 픽션'. 마스크가 상큼한 것이,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안정적인 저음의 목소리. 안경이 어울리지 않는 남자. 악역을 맡아도 사랑스러울 배우.. 애숭이같은 냄새가 살짝 나기는 하지만 체격과 연기를 조금만 갈고 닦으면 이 사람 배우로 크게 성공하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까 이미 한창 잘 나가는 배우였던 것이야!) 그 다음으로 본 영화가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김기덕의 '시간'과 '숨'. 그러니까 나는 하정우의 필로그래피를 거꾸로 봤던 것이다.

한석규야 두 말하면 무엇하리!

재미난 건,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쫓기는 자로 나왔던 하정우는 이 영화에서도 쫓기고, 그 영화에서 검찰을 맡았던 배우가 이 영화에서 국정원 책임자로 나와 하정우를 쫓는다는 거. ㅎㅎㅎ



베를린에 소재하는 북한 대사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류승완 감독이 이곳 파리에 있는 북한 대사관을 먼저 보셨다면 배경이 파리가 되었을 수도. 흑~ 하지만 파리보다는 베를린이 이 영화에 적합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남과 북으로 갈린 한국의 첩보영화를 풀어가는데있어 동과 서로 갈렸다가 통일된 독일의 현재 수도만큼 더 적절한 곳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자칫하면 한국 관객만 잡게 될 위험이 있을 남북간 첩보전에 더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바뀐 정권 교체, 이스라엘, 아랍, 러시아 등 현 세계 정세가 반영되어 현실감을 높였던 점이 좋았다. 예를 들면, 우리 동네 3일장에 DVD 장사꾼이 오는데, 여기서 우연찮게 구한 '천군'! 남북한 군인들이 접전 중에 과거로 돌아가 이순신을 만나게 되어 대첩을 함께 치룬다는 상당히 깨는 영화였는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한국 관객만 잡게 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국민을 위해, 또는 자국민만이 십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어느 나라가 있게 마련이고, 또 그런 영화들이 꼭 나와주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천국'은 모티브가 상당히 신선하고 창의적이었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살짝 감동받았던 영화였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제목과 영화 배경답게 이 영화에서는 남북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세계 정치적 구조가 등장하여 현실성을 살린게 좋았다.

이 영화가 다른 '한국 영화'에 비해 특이하게 맘에 들었던 점은 러브씬이 안 나온다는 거!!!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양념처럼 등장해주는 -굳이 꼭 필요하지 않은- 베드씬이 한 장면도 안 나온다는 건 정말이지 한국 영화의 틀을 깨는 놀라운 발상이었다! 오~!! ! 베드씬이 다 뭐야, 키스씬도 안 나오는 저 깔끔함!!!
액션첩보영화에서 쉽게 놓칠 수도 있을 법한 인물의 심리 표현을 영상을 통해서 전달하는 감독의 세심함! 꼭 집어 장면을 말하자니 스포일러가 되서 패스~

아리랑 악보가 나온 이상 아리랑 음악도 한번 나올 법도 한데, 그럴만한 장면도 있었고, 아리랑을 한번도 틀지 않은 센스에 감사드린다. 아리랑을 편곡해서 내보냈어도 좋을 법 한데..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리랑 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다시 한번 그 센스에 감사드린다. 

잘 만든 한국 영화가 Forum des images 의 페스티발 개막작으로 나와서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무척 자랑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파리에 사는 북한 사람들도 와서 보고 있겠지'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정명훈이 북한 오케스트라 '은하수'와 함께 연주하는 콘서트에서 받았던 그 느낌처럼.. (관련 포스팅 바로가기: http://francereport.net/963 )

류승완 감독님, 속편 '평양'을 기대해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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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3.07.25 11:14

칼로 자른 듯이 에누리도 없고, 덤도 없는 프랑스에서 미담을 적기란 결코 쉽지않다. 어제 내게 믿기 힘든 인정(人情)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적는다.

수요일과 토요일 아침이면 우리 동네에 장이 선다. 평소같으면 1주일에 한번씩 생협에 가서 트렁크 가득 싣고 오는데, 요즘은 혼자 있으니 것도 별로 없어서 가까운 장에서 장을 보기로 하고는 장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양파 3, 가지 1개, 빨간 고추 하나, 오이 10, 못난이 복숭아 3, 살구 6 등등 주섬주섬 골라 얼마냐고 물으니 20유로랜다. 동전지갑을 털털 털으니 현금이 16유로하고 쌍팀이 주렁주렁. 아뿔싸 ! 그날따라 신용카드가 지갑도 들고 나왔다. «돈이 모자르네요. 장바구니 맡겨놓고 집에 가서 갖고 나올께요. » 하니 주인아줌마가 «그럴 없이 다음에 주세요. »하지 않는가 ? 20유로나 되는뎅 ? 옆에 있는 아줌마도 놀라서 쳐다보는데 주인아줌마는 게의치않는다는 듯이 « 그냥 다음에 지나갈 주세요. » 한다. 허어내가 바캉스를 떠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

그래서 « 그럼 지금 수중에 있는 16유로 드리고, 나머지 4유로는 다음에 드릴께요고마와요, 아줌마 !»하고는 집에 돌아왔다. 일전에 한국에서 세계여행 나온 후배가 들렀을 야채와 과일을 사던 가게이기도 하고, 지난 5월에 작업하는데 필요해서 야채/과일담는 상자를 찾으러 다니던 그 가게이기도 하다. 그렇듯 내가 집에 와서 물건을 사는걸 여러 봤기 때문에 나를 믿거니 하는걸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화로 3만원이나 되는 장바구니인데. 프랑스 출신은 아니고 (프랑스 출신은 그럴리가 없어 ! 그럴리가 !!!),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그쪽 출신 사람같던데. 고마운 아주머니. 그런 사람을 만나면 집에 데리고 와서 먹이고 싶어진다. 오는 토요일 아침에 시장에 가면 잔돈 4유로에다가 식혜 쥐어 드려야지.

그 미담 이후로 어제 하루는 내게 좋은 일들만 연거푸 일어났다. 하늘이 내게 선물을 준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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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옆 MK2 Beaubourg에서 다큐필름 'Tous au Larzac(모두 라흐작으로)'를 보고왔다.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 중에 가장 감동적인 영화였다. 실제이야기를 '바탕으로' 한게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을 겪은 이들의 증언으로 만들어진 다큐라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가슴을 덮히는 영화, Tous au Larzac. 감동 감동.. 보는 내내 얼마나 여러 번 눈물을 훔쳤는지. 영화가 끝나자 영화관은 박수갈채로 가득했다.

양치고 농사지으며 사는게 전부였던 '르 라흐작' 농부들이 국가의 군사시설 확장계획에 맞서 10년간 시위하는 동안 파리에 세 번 간다. 첫번째는 양떼를 몰고가 에펠탑 밑에 푼다. (웃는 양 그림은 르 라흐작의 상징임) 이 사건으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68혁명 직후였던 이때, 프랑스 도처에서 지지자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 후 몇 년 뒤, 트랙터를 몰고 파리에 올라간다. 그 후 또 몇 년 뒤, 양을 몰 때 쓰는 지팡이를 짚으며 8만 명이 침묵 속에 710km를 간다, 걸어서!

이전에는 서로를 모르던 르 라흐작 농부들은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알게 되며 친구가 되고 진정한 이웃이 된다. 국가의 이런 저런 회유책과 계략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연대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투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한 증언자가 이런 말을 한다.
"이웃이 떠나가는 걸 보려고 10년간 투쟁한게 아니었다구요."

그렇게 장장 10년간을 투쟁하다가 1981년, 르 라흐작 군사건설 확장계획을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내 건 프랑스와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르 라흐작 농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국,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 자세한 영화 줄거리 상세는 링크된 기사 참조 > 농부들은 왜 에펠탑에 양떼를 풀었나


Tous au Larz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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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12.24 03:25
12월 25일 성탄절은 태양신을 섬기던 고대의 동지제에 근거한다. 농경이 주였던 고대 문화에서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니 태양은 그 자체로 신이었다. 율리시스력에 의하면 12월 25일은 당시의 동지(solstice)로, 어둠에 먹혀들어갔던 태양이 조금씩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날이니 태양신을 섬기던 이들에게는 동지제는 연중 가장 큰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로마의 동지제에 대한 기록을 보면, 먹고 마시고 난잡하기까지해서 축제를 기리는 모습 중에는 만삭의 여인을 옷을 벗겨 산모의 배에다 채찍질을 했다고한다. (약 20년 전에 읽었던 내용이라 기억이 아사무사.. 딱 요 충격적이었던 내용만 기억이)

미트라(Mithra)와 태양신 솔인빅투스(Sol Invictus)

기원전 2세기부터 고대 페르시아에 '미트라'라는 신이 있었다. 미트라의 탄생일은 12월 25일이었으며, 미트라는 인도로 넘어가 힌두교의 신으로 발전한다. 한편, 다신교였던 3세기 로마 제국에 '솔인빅투스'라는 신을 위한 축제가 있었다. Sol Invictus는 라틴어로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이란 뜻이다. 콘스탄틴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로마 제국은 공교롭게도 이 두 신에다가 예수를 결합하여 서기 354년, 예수탄생일을 12월 25일이라 공표하게 된다. 거대한 로마 제국이 이교도를 흡수하기 위한 방편이었던걸까. 그 전까지는 1월 6일을 성탄으로 여겼으나 성탄절이 12월 25일로 바뀐 뒤로는 1월 6일은 에피파니(동방박사가 찾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린 날)로 기념하게 된다.

* 미트라와 예수, 신기하리만큼 흡사한 둘의 생애 > 크리스마스에 탄생한 사람이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가?


호루스(Horus)

태양신 축제 혹은 동지제의 흔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로마 이전으로 거슬러가서도 물론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최고의 신 호루스는 한 쪽 눈은 해, 다른 쪽 눈은 달, 그리고 독수리 모양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범상치않은 (신다운) 탄생, 죽음과 3일만의 부활 등 성경에 적힌 예수의 생애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 즉 해가 가장 낮은 고도로 뜨는 날로 호루스의 죽음을 의미했다. 태양의 고도는 그 자리에서 사흘간 머문 뒤, 그 이후부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다시 말해서 동지가 지난 사흘 뒤, 12월 24일 밤에서 25일 새벽을 기해 호루스가 부활함을 의미했고, 이 날은 대대적인 축제가 벌어졌다.


성경은 예수가 돌아간 후 70년이 지난 이후에 적혔다고 보는데, 성경에 적힌 예수의 일생과 예수 탄생 전에 있었던 미트라와 호루스 신의 생애에 유사한 점이 많은 걸 보면 예수가 누구였을까, 의문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기록에 없는 예수의 생일

한편,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기록은 성경 어느 한 구탱이에도 실려있지않다. 성경에서 예수의 탄생을 언급한 자료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인데, 예수가 탄생한 계절은 물론이거니와 날짜는 더더욱 적혀있지 않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12월 말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적힌 바에 의하면 예수가 태어난 날, 양들이 풀밭에서 자고 있고, 마리아가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았다고 적혀있는데, 이스라엘 만세력과 기후를 추적해보면 당시 12월 말에는 양들을 밖에서 재울 수 없을 정도로 추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태어난 날은 겨울이 아니라는 소리다. 말을 바꿔 생각해보면, 예수의 탄생일이 중요한게 아니거나 날짜가, 계절이 언제든 예수가 우리 곁에 왔다가 갔음을 기억하는게 의미있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에 고기를 먹는 풍습

크리스마스면 서양에서 식탁에 닭, 거위, 오리, 소, 돼지는 물론 사냥해서 얻은 멧돼지와 사슴, 게다가 훈제연어, 굴, 푸아그라 등이 판을 친다. 누가 그날 그렇게 많은 고기를 식탁에 올리라 했을까? 성경에는 예수의 생일도 적혀있지 않지만, 예수의 생일을 기념했다는 기록도 없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라'며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돌린 기록은 있어도. 성탄 만찬을 위해 다량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의 천문학적 수치는 현기증이 돌 정도다. 이 역시 동지제와 관련있다는걸 알면 이해가 쉽다. 봄이 올 때까지 겨우내 풀도 없고, 사람들조차도 지난 9개월동안 거둬들인 것으로 겨울을 나야했기 때문에 가축에게 먹일 사료는 당연히 부족했다. 때문에 거의 모든 가축을 잡아 동지축제에서 먹었다고 한다.

성탄절의 의미

이제 12월 25일은 더이상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았다. '성탄일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가 이 땅에 왔음을 기념하고/축하하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자.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겁게 보내려는 이들 중에 대체 누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희생된 예수의 숭고한 의미를 기억하는가? 왕의 아들도 아닌 목수의 아들로, 따뜻한 방도 아닌 낯선 곳의 마굿간에서 태어난 그 의미를 누가 되짚어보는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우리와 같은 삶을 살다간 예수의 의미를 크리스마스에 이해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우리는 예수의 탄생이 아니라 미트라의 생일이나 호루스의 부활일을 기념한다고 보는게 훨씬 정확할 듯 싶다. 화려한 조명과 장식, 연중 최고의 판매액을 올릴 절호의 기회가 된 크리스마스, 4세기에 공인된 고대 태양신의 잔치를 21세기인 우리는 지금도 그대로 따라 이교도의 잔치를 하고있는건 아닐까?

예수탄생과 전~혀 관계없는 산타클로스는 어쩌다 크리스마스의 원형(stereotype)이 되었을까?
산타클로스와 그 기원이 된 실제 인물 생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언제라고는 장담못함)


성탄절을 정말 특별하고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멸종해가는 동물들을 돕기위해  WWF에 기부하고, 시간이 있다면 자원봉사도 뛰어보고, 냉랭했던 이웃과 이날만큼은 화해하고, 진수성찬보다는 빵과 포도주로 검소한 크리스마스 식탁을 차려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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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그곳에서 내 여행 역사 중 단연코 최고로 꼽는 아침식사를 했다.






영어로 어떤 재료가 든 요리인지 일일이 설명하시는 주방 언니. 



이게 아침상이다! 끼약~~~~ 


사진 찍는동안 손대지 말랬는데도 먹는걸 보고 정신을 잃은 우리 막내. 앞으로도 계속 음식 사진을 보면 저 노무자슥 손이 안 들어간 사진이 없다. '그리스인들은 아침식사를 다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주방언니 왈, "그리스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은 맞지만 이걸 다 먹진 않고, 이들 중 몇 가지를 먹는다. 근데 당신들은 하루만 자고 가니 맛보라고 다 내놓는거다." 무한감동!




짜꾸가 날 정도로 먹고 남겼는데 주방언니가 오더니 사과 3개랑 사진 속의 종이 봉투를 한 장 준다. 남은거 싸갖고 가서 점심에 먹으란다! 무/한/감/동! 사진 오른편에 빈 접시 쌓은거 보이는가? 싸갖고 간 음식은 우리가 길에서 점심식사로 때우기 충분할 정도였다.


이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카테리나의 무릎에 아이 둘을 앉히고 넷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카테리나는 연신 그리스어로 아이들에게 솰라솰라~ (동영상으로 찍어둠) 프랑스식 뽀뽀와 포옹을 하고 이별의 정을 나누는데, 카테리나가 뭐라고 하면서 손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골뱅이 모양의 제스춰를 했다. '날아간다(voler)'는 불어와 비슷한 단어였다. 하늘로 날아오를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자로스 주택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카테리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고르티나. 기원 전 3000년 말경~기원 전 2000년 초의 도시 유적인 고르티나(또는 고르틴 ; Gortyna, Gortyne, Gortys)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목이라든지 가이드북에 상세한 위치 안내가 없고, 네이게이터의 주변 목록 검색에서도 이곳은 나오지 않았다. Tomtom 네비양의 최근 크레타 데이타를 다운받은건데, 이 데이타가 기본적으로 허술하다. 예컨대, 가라고 표시가 나오는데 길이 없거나 막힌 경우가 있었고, 오른쪽으로 돌아야하는데 '좌회전'이라고 안내가 나오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그리스어 지명 표기 자체에 알파벳이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도에 적힌 지명, 가이드북에 적힌 지명, 네비양에 적힌 지명의 철자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예를 들면, 지난 번 포스팅에서 소개한 이라크리오는 Heraklion, Iraklio의 두 개 표기가 있고, 고르티나 지명은 Gortyna, Gortyne, Gortys 세 가지가 있다.



고르티나 찾다가 얼떨결에 들른 아지데카(Aghii Deka)의 한 교회.


4세기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의 지하무덤이 있었다.




'여기가 아닌게벼~'하고 나와 한참을 찾다가 포기할 무렵,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해서 겨우 찾은 고르티나! 가이드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행 정보는 안 올리는데, 헤매고 헤매다 결국 포기하려다가 겨우 찾은 이 곳을 찾아가는 방법을 적어두는게 다음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배낭여행객이라면 페스토스(Festos)행 버스를 타고 고르틴에서 내려 언덕쪽으로 10분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어린애 둘 데리고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우리같은 경우는 Aghii Deka에서 Mitropoli로 가는 길에 Mitropoli 방면 안내표시판 나오면 오른편 공터에 차를 세우면 된다. 다시 말해서 도로가 T자형으로 꺽어지는 곳에 T자의 바로 머리 부분에 있다.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이 없고, 돌이 널부러진 유적지가 보이면 바로 그곳!

왼쪽 페이지 가운데 v표 한 곳이 고르티나.

아지데카는 동쪽에, 미트로폴리는 남쪽에 있다. 도로가 꺽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 고르티나 유적지가 있다. 





* 고르티나 (B.C. 3000 말경이나 B.C. 2000 초기)

입구가 이래갖고 눈에 띄겠냐고요... ㅠㅠ 파란 글씨마저 그림자와 어울렁 더울렁.
이 근처를 차 타고 지나다가 오른편에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공터가 보인다하면 바로 그곳임!






원형 극장 뒤편에 돌에 새긴 고르틴 법문서가 있다.

(클릭하면 제가 놓친 고르틴 법문서를 찍은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 올리브나무

크레타 전국에 올리브 나무 재배지가 널렸다. 전적으로 올리브유로 요리하고, 올리브 열매를 꼭 샐러드에 넣어먹는 그리스인들에겐 올리브 나무는 삶 자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 수많은 올리브 재배지에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은 한결같이 키가 작다. 열매를 잘 맺는 기간동안 심었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뽑아버리는걸까? 아니면 나이든 나무는 물을 많이 먹기 때문일까? 크레타 도심이든 올리브 재배지 산에까지 물주는 호스가 뻗어있는걸 보며 낮아지는 지하수위가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런 반면, 백 년 이상된 올리브 나무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처럼 나이 많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 물을 굳이 따로 줄 필요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영험한 기를 뿜는 오래된 올리브나무는 프랑스 남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무 안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번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는 신비한 플라타너스.

이 나무 밑에서 제우스(Zeus)가 에우로페(Europe)와 사랑을 속삭였다고.. 



자, 그럼 이제 히피의 해변 마탈라(Matala)에서 해수욕이나 해볼까? 10월 하순에?!











* 고속도로가 없는 섬

그러고보니 크레타엔 고속도로가 없다. '적어도 해변가를 따라 고속도로를 뚫으면 도시간 이동이 수월할텐데 왜 안 하지?' 싶었다. 하지만 하늘과 경계가 없는 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 그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그 자체가 크레타 여행이라는걸 깨닫는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산과 바다를 끼고 운전하다가 길가에 염소떼가 나오면 속도 늦추며 늦게 가면 되지,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는가? 인생도 과정인 것. 목적지에 누가 빨리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만남과 깨달음이 곧 인생 그 자체인걸.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만끽하고 음미하며 몰락하는 그리스에서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크레타를 느끼는 것이 내겐 소중했다.



여자의 젖가슴같은 섬



불새와 함께 지는 노을




글과 사진이 맘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추천 좀.. 긴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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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11.13 00:46

어제 금요일 저녁, 라데팡스 개선문 아래 '우리는 99%' 시위를 400명이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오늘 파리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라데팡스에 들렀다. 이곳에서 occupy 시위가 열리고, 시민들이 숙박을 하기 시작한 지는 1주일 됐다고.


'우리는 99%' 시위 가면



'우리는 99%.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당신의 자리를 찾는 독립공화국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신개선문 아래 깔린 경찰 차량을 보라. 총 12대 대기 중.



오른편에 보이는 부스는 안내소. 이곳에서 occupy시위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받을 수 있고, 인쇄자료를 얻을 수 있으며, 그날의 스케줄과 캠프 안내도를 볼 수 있다.


시위대 주변을 둘러싸고 같이 밤새는 경찰들.

한 젊은 학생에게 경찰과 무력충돌은 없었냐고 물어보니 시민쪽에서 폭력을 쓴 적은 없는데
며칠 전 경찰이 시위대의 물품을 부수고 시위자 몇 명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11월 12일 토요일 일정. 

매일 저녁 7시면 회의가 시작된다.


시위자들에게 필요한 목록과 캠프장 안내도. 

시위자들에게 필요한 목록에는 생필품 뿐만 아니라 대자보와 포스터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적혀있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길래 '사먹을 수 있는건가요?' 물어보니 '돈 내는거 아니'란다. 옆에서 하는 회의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이리로 오면 먹을꺼란다. '저도 먹을 수 있나요?' 물어보니 '그렇'단다. 이들이 빵을 자르고 뭔가를 바르고 있길래 식사를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랜다. 모두가 다 각자 자기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거랜다. 같이 앉아 먹고 얼마 기부를 하고 오려고 했는데 밤 10시까지 있다가 추워서 그냥 왔다. (집에 왔더니 먹을게 없더만.. 쪼로록~)




이곳이 시위장 한가운데에 있는 회의장.

서로 모르는 낯선 대중이 모여 질서있게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발언을 원하는 사람은 사회자가 갖고 있는 종이, 즉 목록에 등록해야 한다. 목록에 적힌 순서대로 일어나서 시위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현상황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고, 2년 전 해고된 자기 얘기일 수도 있으며, 시위분위기에 대한 개선점을 토로하기도 한다. 외국인이든 청소부든 유색인종이든 누구에게나 발언할 권리는 평등했다. 1시간 반 앉아있다 왔는데 어느 누구도 육두문자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이들에게 무언의 제스춰들이 있다는 사실! 중간에 누가 질문을 하는 바람에 사회자가 설명을 해줬다. 얘기를 듣는 도중 동의를 나타날 때는 박수 대신 양손을 높이 들어 반짝반짝 손을 흔드는 시늉을 한다. (사랑해~ 많이 많이~할 때, 그 '많이 많이' 동작.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신 분들은 이해하리라!) 마이크가 없는 상황에서 발언 도중 박수를 치면 말이 안 들리기 때문이다. 발언이 끝날 때, 박수는 원칙적으로 치지 않았다. 하지만 발언에 동의하는 바가 크면 발언자가 앉을 때 박수가 나왔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 여성이 말했다. "난 발언이라기보다는 여기서 느낀 2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첫째, 여기 시위자 중에 여기서 자는 사람과 안 자는 사람 사이간에 위계의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여기서 자든 안자든 이 시위에 동참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중들이 침묵 속에서 찬성 몸짓을 열렬히 보냈다) 둘째, 이 시위는 비폭력 원칙인데, 우리 안에서도 폭력을 쓰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를 존중하면서 친절하게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청중들 다시 침묵 속에 찬성 몸짓만)"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동작도 정해져있긴 하지만 내가 앉아있는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한 팔을 들어 위아래로 흔듬)

발언권도 없는 사람이 말을 해서 발언자의 말을 끊는 경우가 생기면, 머리 위에 양팔로 큰 항아리를 만든다. '그만 얘기해. 말 끊지마!'의 표시.

지루하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 양팔로 물레방아를 돌리듯이 둥글게 둥글게를 그려보인다.

발언시간이 너무 늘어난다 싶으면 양팔을 가위모양으로 만들어 보인다. '그만 혀!'

술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누군가 시끄럽게 하거나 소란스러우면 대중들이 대번에 서로 '쉬잇~!'하며 주의를 준다. 사회자가 주의를 줄 필요도 없다. 대중들이 알아서 주의를 주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몸을 덮힌다는 이유로 술 마시는 걸 자제하라는 의견이 자체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위에 적힌 몇 가지 제스춰를 갖고 발언자이면서 동시에 청중인 시민들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면 샌드위치를 각자 싸먹으리라. 그리고 달밤에 잠을 자겠지. 라데팡스 광장을 점거하고 이렇게... 얼마나.. 갈까... Occupy 시위에 찬성은 하지만 시위를 해도 잠은 집에 들어가서 자고 씻고 했으면 좋겠는데.


Occupy France 전경. 왼쪽 상단에 밝게 뜬 건 어영청 뜬 보름달

난 밤 10시경에 집에 들어왔다. 춥더라고... 이곳에서 자는 사람들은 더하겠지. 다음 주면 3~10도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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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그리스가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던 바로 그날, 비행기가 과연 뜰까 안 뜰까? 왜 하필 그날 파업을 하냐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24시간 전까지도 취소되지 않았다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갔다. 하지만 이륙선 전광판에 크레타행 노선이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선 당일 아침 6시에 파업 결의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공항에서 샌드위치으로 피크닉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48시간동안 하는 이 파업은 다음 날 저녁 8시에 끝나기 때문에 비행기는 밤 10시에 뜰꺼란다. 밤 10시발, 새벽 3시 도착이면 아이들 수면리듬이 모조리 깨질텐데.. 호텔과 비행기를 다 취소하나 고민을 하던 끝에 딸에게 물었다. "가고싶냐?"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표정을 지으며 '가고싶다'한다. 그래, 가자! 까짓거! (그랬던 이 년이 크레타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집에 가자'고 성화를!!!)

에라클리옹(Heraklion, Iraklio; 한국에선 '이라클리오'이라고 하던데,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지명은 제 편의상 불어발음으로 표기합니다. ^^;;;) 공항에서 렌트한 차에 파리에서 크레트 지도를 다운로드한 네비양을 설치했으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는 인도하는 네비양 덕분에 꼭두새벽에 한참을 헤매다 호텔에 당도하니 새벽 4시. 테라스가 딸린 호텔방이 널찍하기도 하지, 바닥은 또 마룻바닥이네! 아무리 좋으면 뭐하남? 전날 밤 호텔비는 날아갔고, 고작 3시간 자고 나오려니 돈이 아까워~ 꺼이꺼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아니 바다 위로 태양은 떠오르고!




설친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얼르고 깨우고 먹이곤 호텔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시장과 아지오스 미나스 사원을 들렀다. 강한 햇빛을 받아 새빨갈꺼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토마토는 오히려 옅은 색을 띄고, 호박은 꽃이 붙은 채로 시장에 나오더군! (사진 업뎃만으로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각 지명마다 상세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 아지오스 미나스 사원







에라클리옹의 고고학 박물관은 명성에 비해 아주 자그마한데 그림, 장신구, 조각 등 그 콜렉션의 놀라움은 도끼를 든 골리앗이었다!









고고학 박물관 앞에서 나른한 한 때 (잠결에 이렇게 몰카에 걸릴 수도 있으니 주의요망)



36시간의 여행일정을 놓친 상황에서 우리는 첫날 예정 경로였던 에라클리옹 시내 구경을 과감히 포기하고, 스케줄대로 크놋소스(Knossos)로 향했다. 이리하여 베네젤루 광장의 모리시니 분수는 구경도 못하고 크놋소스로 고고씽~

* 크놋소스 궁터 (기원 전 1700~1450년)










* 자로스 (Zaros)

크놋소스를 나와 크레타 남부로 내려가기 위해 남북을 횡단하다 자로스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예약한 숙소에 들어갔을 때, 한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호두를 까면서 긴 테이블 반대편에 있는 노인과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그리고 난 이 곳에서 평생 잊지못할 매우 특이한 순간과 맞닥뜨렸다.


벽난로 옆에서 호두를 까는 주인 할머니.


그러고보면 크레타는 전혀 춥지 않았는데 왜 한겨울처럼 벽난로에 불을 붙이셨을까? 거실을 훈훈하게 덮히시려고 했던걸까? 애들과 가방을 한짐 지고 들어가 'Hello~'하자 그녀는 마치 먼 길 갔다가 돌아온 딸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간단한 그리스 인삿말 몇 개 밖에 모르는 내가 느낌과 추리를 동원한 자의적 해석에 의한 우리의 대화.


할머니 : "오~~~~~! 너 왔구나! 이라클리온에서부터 운전하고 온게야?"

나 : " 네 "

할머니 : "피곤하겠구나. 앉아서 뭐 좀 먹으렴. 차를 마실래? 커피를 마실래?"

나 : (양손에 든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당황하며) "먹으려고 온게 아니라 방을 예약했는데......"

할머니 : "힘들텐데 앉아서 뭐부터 먹으렴. 급할꺼 없잖니. 커피 줄까? 차 줄까?"

나 : "그럼 차 주세요." (속으로 : 이거 charge(부가요금)으로 붙는거 아닐까? 상술이래도 할 수 없지모. 일단 앉아서 마시자.)



수저가 놓여있는 접시엔 꿀에 절인 건포도가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여기다가 까고 계시던 호두를 한 줌 주셨으니, 호두와 건포도와 꿀, 환상의 콤비!!!


난 이 할머니에게 묘한 친밀감을 받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한 쥬스를 갖고 나왔을 때, 나를 가리키면서 내 이름을 알려줬다. '당신은?'했더니 '카테리나'란다. 그녀는 아이들의 이름도 물어봤다. 막내의 이름에 "아~~!!" 하시더니 자기 가족사를 꺼내신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식구가 있나보다. 자기 가족 중에 카테리나가 셋이나 있다는 얘기도 하시면서, 물론 이걸 눈치로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여러 번 반복하셨으니까. 



카레리나의 파푸스(그리스어로 '아빠'를 뜻하는 것 같다)



그리스어밖에 못하는 카테리나와 그리스어를 못하는 나의 무력한 소통이 벽난로처럼 훈훈하게 오가고나서 카테리나는 호두를 까던 쟁반에서 남은 호두조각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뻔히 보이는 호두 조각을 카테리나가 호두껍질과 함께 걷어내고 있었다. '카테리나가 눈이 잘 안 보이는구나' 난 쟁반 가까이 다가가 호두 껍질과 섞인 호두 조각을 빠른 손놀림으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뒤통수에서 남편이 "애들을 돌봐줘야지" 했으나 대꾸도 안했다. 애아범이 있는데 왜 굳이 엄마가 애를 돌봐야되는거냐 말이다. 조그만 호두 조각들이 점점 모여들자 카테리나가 깔깔대며 웃었다. 호두 발리기가 다 끝나고 카테리나가 그리스어로 '고맙다'고 말했다. '뭘요'라는 그리스어를 몰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스어로 '고맙다'(에프샤리스토)와 '뭘요'(에프카리스토)는 한끝차이라는걸 나중에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식구들은 나만 놔두고 사라졌다.


"얘들아~ 어딨니?" 큰애 이름도 부르고, 작은애 이름도 부르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큰애의 대답이 저 편 복도에서 들린다. 방을 찾아 들어오니 가지런한 방에 호텔방같지 않은 알록달록한 이불이 깔린 것도 정겹고, 테라스로 보이는 산골마을 정경도 아늑하다.







한국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산골 정경을 내려다 보고 있으려니 마치 고향같다. 짐을 풀고 있는데 카테리나가 먹을꺼리를 '또' 올려보냈다!



몽글몽글 진 이 것은 불어로 lait caillé(레 까이예)라고 하는데, 우유를 발효한 음식이다. 난 락토즈 때문에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해 우유를 마시면 하루 종일 방귀가 나오는데, 크레타섬에서 먹은 우유나 발효우유는 어찌된 영문인지 속이 편했다. 이 섬에서 소를 본 적이 없는 걸 봐서 소젖이 아니라 염소젖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니 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드라. 로컬푸드유기농, 거기다가 vegera라고 써있는걸 봐서 채식식당이라는 얘기 같은데! 이건 완전히 나를 위한 식당이잖아! 띵호와~ 야호! 야호!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를 테이블에 앉히더니 메뉴판도 주지않고 음식을 하나 하나 내오시더라. 채식요리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메뉴판이 없으니 그저 주는대로 이름도 모른 채 먹는 수 밖에. (이름을 봤다해도 기억이 다 안 나지..) 그리스 음식들 하나같이 정말 맛있더라! 상에 내온걸 다 먹지 못하겠어서 저 위 사진 중 토마토 접시는 식당에 돌려줄 생각으로 아예 손도 안 대고 있었다. 그 안에 프랑스 요리 tomate farci처럼 고기가 들어있을꺼라고 여겨서, 그 요리를 느끼해서 싫어하는 나는 먹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식당에서 먹어보니 고기가 아닌 밥이 들어있더군! 어쨌거나 부픈 배를 튕기고 있을 무렵, 디저트라고 또 내오신다! 맛을 보니 맛있어서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 댄 것은 남김없이 싹싹! 냠냠..



어른 2명, 아이 2명이 상이 휘어지도록 먹고도 남은 식사값으로 30유로 냈다. 프랑스같으면 어림없지! 50유로는 내야했을 터. 이렇게 산골마을 자로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크레타 섬에서 기원 전으로의 여행은 둘째날 여행기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글과 사진이 맘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추천 좀.. ^^;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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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10.06 00:42
Q) 친구가 열흘동안 유럽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어왔는데요. 어떤 일정이 가장 좋을까요? 자유로운 추천 함 부탁드려봐요.

A) (열흘간 유럽을 돌아? 무슨 수로? 라고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대답을 해야.. 흠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자유로운 경로대로 짜시면 됩니다. 제가 한 달 남짓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동안 2주를 런던에서, 2주를 파리에서, 나머지 1주를 파리->뮌헨->프라하->빈->파리 일정으로 돌았기 때문에 '열흘간 유럽돌기' 조언을 드리기엔 짠밥(?)이 모자라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인데, 흘러간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답하렵니다.

한파가 불어닥치던 한겨울 (두둥~), 짝사랑에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을 안고 배낭을 메고 훌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여자임) 혼자 여행하면 엄마, 아빠가 보내지 않으실 것 같아서 아빠에겐 여행 전날까지도 말을 안 했고, 엄마에겐 '먼저 떠난 친구가 파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었죠.

당시 제 계획은 '미술관과 뮤지컬을 뽕빠지게 보고온다!'가 목표였기 때문에 런던에서 매일 밤이면 밤마다 뮤지컬을 보러다녔고, 낮에는 대영 박물관, 테이트 갤러리 등 미술관을 전전했습니다. 파리에서는 박물관급 미술관을 싸그리 훑었습니다. 파리에서 딱 공연 하나를 봤는데 갸르니에 오페라에서 롤랑쁘띠 발레단을 당일 할애가격으로 30프랑에 샀었죠. 무대의 1/5은 보이질 않았어요.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OTL

나머지 1주일을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보러 프라하에서 사흘을 보내기로 했어요. 뮌헨과 빈은 파리와 프라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정도였어요. 파리에서 빈이나 프라하까지는 기차로 16시간을 가야하는 거리거든요. '런던-파리-프라하', 누가 보면 참 무식하게 짰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건 각자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에요. 타인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자신만의 여행경로를 짠거죠.

여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배낭객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때 길에서 저와 짧은 만남을 나눴던 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각자 자기의 길을 가고 있겠죠. 아직도 저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씁쓸한 만남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합니다.

예컨대, 한 달간 30개국 이상 돌았다고 자부하던 학생은 런던에서 2주, 파리에서 2주 있었다는 저를, 파리라는 도시의 황홀함에 취해 3시간동안 (한겨울에!) 에펠탑에서 내려오지 못했던 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뭘 그렇게 오래 볼 게 있냐면서. '한 달간 어떻게 34개국을 돌 수 있느냐?'는 제 질문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트라팔가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그 뒤에 있는 대영박물관은 건너뛰고, 그렇게 다니면 가능하다고 그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프라하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 학생은 물가가 싼 프라하에서 왕처럼 먹고 다닌다며 어깨에 힘을 주더군요. 문화강대국인 프라하 앞에서 교양과 겸손은 빈털털이요, 갖은 건 돈 밖에 없어 빈 깡통에 동전 굴러가는 소리를 내다니. 지난 밤에 공연을 봤다길래 뭘 봤냐고 물었더니 어깨에 힘을 주며 '매직 플륫 인형극(!)을 봤다'고 대답하더이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말이군요?'했더니 깜짝 놀라며 "아니, 그걸 아세요?" OTL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싫은 숱한 씁쓸하고, 때론 악몽같았던 만남들 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두 만남이 있어요.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북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과의 만남을 이 자리를 빌어(뭔 자린데???) 공개할까 합니다. 그는 머리손질도 잘 안했고 옷차림도 남루했고, 별로 친절하지 않은, 또는 별로 말이 없는, 또는 퉁명스러운, 여튼 그런 남학생이었어요. 빈에서 여행코스가 같아서 도나우 강이 먼 발치 보이는 눈길을 밟으며 하루 동행했었죠.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낭만적인 대화도, 낭만적인 분위기도 없었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이미 말했잖아요. 짝사랑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으로 여행을 나왔다고. 그 가슴에 어느 새가 둥지를 틀겠슴둥? 남루하고 퉁명스런 남학생이라면 더더욱 아니잖아요~! 이런 말하는 저도 매력적인 외모를 풍기는 여학생은 전혀 아니었어요, 전혀.

그 친구는 한 나라마다 한 도시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로 옮기는데, 각 나라마다 사흘의 일정을 잡더라구요. '얘도 다른 애들이랑 마찬가지로 많이 돌고보자 위주로 여행을 하나보다' 했죠. 근데 경제학과 학생답게 '어디 어디 어디를 돌아보면 사흘동안 그 나라의 경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아주 독특한 기준을 갖고 있었어요. 남루하게만 봤던 이 친구를 그 시각 이후로 다시 보게 됐죠. 그 친구, 지금쯤 경제분야 한 자리 잡고 있을 듯도 한데... 눈이 많이 쌓여 방향도 감지할 수 없었던 비인, 사람도 식당도 보이지 않아 무섭기까지 했던 그 길을 그가 하루동안 무지룩하게 동행해주어 든든하고 감사했었죠. 버스에서 먼저 내리며 헤어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하얀 눈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시던 눈길만 생각나요.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할 수 있다면 혼자 여행하세요.
여행경로요? 자기 취향대로, 자기 기준대로 짜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Bon voy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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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08.20 10:01
'프랑스의 급식제도'를 포스팅한 뒤, 프랑스의 무상급식제도를 쓰기로 했는데, 무상급식하는 학교를 알아보니 실제로 몇 군데 없었다. 우리 동네 유아학교 학부모대표에게 무상급식에 의한 의견을 물어보니 '몇 푼이 되든간에 밥값은 내고 먹어야잖겠나?'란다. 무상급식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어중간한 것은 아니고, 절충안을 갖고 있는 나로선 포스팅했다가는 오시장이 울궈먹을게 분명해서 글을 안 쓰고 있었는데, 무터킨터님의 글을 읽고 동감하는 바가 커 그의 생각에 무게를 더 싣는 쪽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유료급식 but 각종 보조금

프랑스는 아이가 있는 집에 국가가 (원칙적으로) 만 16세까지 양육비를 보조한다. 임산부와 산모의 정기검진은 보험으로 처리되고, 출산하면 출산장려금이 나오며, 이후 다달이 육아보조금이 나온다. 정비례는 아니지만 아이가 많을수록 육아보조금도 더 받는다. 그렇다고 육아보조금 받으려고 애를 더 낳는 바보는 없다. 피임에 실패해서 낳는 경우는 많지만. 보조금만으로는 애들 옷값, 식비, 취미활동 모두 충당할 수는 없지만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집 경우도 보조금 내에서 아이들한테 나가는 돈을 배정하고 관리한다. 가정마다 총소득에 따라 육아보조금은 차이가 있다. 고소득층은 육아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만 3살이면 유아학교에 가는데 (참고로, 의무교육은 만6세부터 시작되는 초등학교부터다), 유아학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다. 무료 학비에 육아보조금까지 받으면서 급식까지 무료를 바란다는 것은 파렴치한 짓일께다. 이러니 '몇 푼 된다고, 밥값은 내고 먹어야지 않겠나?'는 말은 태아 때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경제적으로 보조한다는 맥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유아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이 (의무가 아닌) 선택인 프랑스로선 의무 급식을 전제로 하는 무상급식은 실현되기 힘들다.


무상급식 이유가 다르다 !

프랑스에 무상급식제를 실시하는 학교는 별로 없다. 부모들이 급식비조차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들이다. 보조금을 받고도? 하겠는데, 월세에 살면서 엄마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근데 무상급식하는 이유가 '어차피 낼 돈 없으니 너희는 그냥 먹어라'는 깔보는 이유도 아니고, 한국처럼 '공짜 밥 먹는 아이들이 왕따를 당해서'도 아니었다. '프랑스의 급식제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프랑스 급식비 산정과 지불은 '학부모-학교'의 관계가 아니라 '학부모-시청'의 관계로 되어있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도, 급우들도 서로 얼마를 내고 먹는 지 모른다. '얘들아, 너희들은 먹기나 하고, 돈 문제는 우리 어른들끼리 알아서 해결할께'다. 아이들을 돈문제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하여, 적게 내든 많이 내든 모든 아이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급식비를 낸다. 게다가 프랑스에선 급식비의 많고 적은 차이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왕따시킨다는건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아이가 '애들이 나보구 중국애라고 놀려'라며 뾰루퉁해서 들어온 적은 있다.)

 "급식비조차 내기 힘든 집 아이들은 집에서조차 균형잡힌 식사를 하기가 힘듭니다. 부모들이 다들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집에서 먹이기도 쉽지 않은 집들이거든요.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만이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균형잡힌 식사를 먹이려고 하는거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하루 한 끼만이라도 고른 영양을 위해서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이 교장샘 말씀에 난 무한감동 받았다.

동네 공원에 시 예산으로 설치한 거대한 모래사장에서 체육수업을 받는 프랑스 초등학생들


과열경쟁, 영재교육, 부담스러운 사교육비 등 한국의 교육환경은 개선해야할 점이 분명히 많다. 하지만 육아보조금 땡전 한 푼 지불되지 않는 한국에서 '무상급식할 돈이 없다'는건 한낱 핑계거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서, 시민을 위해서, 푸르고 맑고 씩씩하게 자라야할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 어디에 먼저 돈을 풀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답은 나온다.

* 관련글 :
프랑스의 급식제도
시 예산이란건 이런데다 쓰는거다 - 빠리 쁠라쥬
일본: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하는 그들의 천박함
독일: 무상급식없는 독일, 한국보다 못한 복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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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2011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이란 영화 'Separation'을 보고난 뒤, 감동의 쓰나미가 며칠동안 가시질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아랍사회를 제대로 그려냈다면 내 편견을 접고 앞으로 아랍인들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그들의 가족관계, 종교가 관장하는 생활 속의 가치관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이별, 헤어짐이란 뜻의 Separation. 영화는 부부의 별거와 이혼으로 시작한다. (첫번째 separation) 영화의 초반 5분를 놓쳤는데, 이건 영화소개를 통해 감잡을 수 있었다. ^^; 외국으로 가려는 아내 씨민,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는 남편 나데르. 10대인 딸과 남편을 뒤로하고 씨민은 짐싸들고 친정으로 나와 이혼을 준비한다. 낮동안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볼 사람을 찾자 딸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 자기의 올케 라지에를 소개한다. (영어샘은 딸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키고 하고, 집에와서 개인레슨도 한다.) 남편이 몇 달 째 실업자로 있어 돈에 쪼들리는 레지나는 어린딸을 데리고 임신 5개월인 몸으로 그 먼 길에도 불구하고 간병인 및 파출부 일을 시작한다. 마누라가 집에 없는 남자 집에서 남자의 간병인을 한다는걸 남편에게 차마 알리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날 사건이 터진다.

퇴근을 일찍 하게된 나데르가 집에 와보니 라지에는 집에 없고, 문은 잠겨 있으며, 집에 들어가보니 아버지는 침대에 한쪽 팔이 묶인 채로 바닥에 떨어져있고 산소호흡기가 빠져있던 것. 게다가 라지에에게 일당으로 주려고 서랍 속에 놓아뒀던 돈이 사라진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데르, 딸애 손을 잡고 돌아온 라지에에게 '일당도 이미 가져갔으니 우리집에 다시는 오지 말라!'며 그녀를 내쫓는다. 라지에는 결코 돈을 훔치지 않았다며 멀리서 왔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며 울며불며 일당을 달라고 하고. 문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라지에는 계단에서 구르고 뱃속의 아기가 사산하게 된다. (두번째 separation) 이혼소송에 더불어 살해범으로 몰린 나데르는 법정에 서게되고, 아내가 지금껏 파출부로 일했던 집이 마누라없는 남자네 집이었다는걸 알게된 남편 홋자는 오랜 실업으로 인한 우울증과 아이를 잃은 분노가 합쳐져 나데르를 잡아죽일 듯이 덤벼드는데... 이하 스토리는 생략. 영화를 직접 보시며 카타르시스와 감동의 쓰나미를 느끼시기를.. ^^;

마지막 separation은 나데르와 씨민의 이혼절차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딸아이가 엄마와 함께 하느냐, 아빠와 함께 사느냐를 결정하는 장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선의로 한 거짓말들이 역설적이게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만다. 진실은 어디 있을까...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말이 없고. 따스한 아랍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던, 그래서 아랍사회를 다시 보게만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강추!!!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일곱 드리리다.


감독 : Asghar Farhadi (아스가르 파랏지)
원제 : Jodaeiye Nader az Simin  (<-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
제작연도 : 2010년
시간 : 2시간 3분
배포: 메멘토 필름 디스트리뷰션
제61회 베를린 영화제 6개 부문 노미네이트, 3개 부문 수상(최우수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위 영화 장면 중
씨민 : "당신 아버지는 자기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잖아!"
나데르: "내가 내 아버지를 알아보면되지!"

* 별 다섯 만점에 일곱을 준 이유 *


+ 또 추가분: 긴 글 다 써놓고 무슨 맥주 김 빠지는 소리냐? 하시겠는데.. 아랍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 친구에게 이 영화의 원제가 아랍어로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변이 왔어요. "나도 그 영화를 봤는데, 그건 아랍어가 아니라 이란어야. 그래서 나도 무슨 소린지 몰라. 이란은 아랍이 아니고, 이란인은 아랍인이 아니거든. 페르시아 친구가 있는데 그애가 아마 알꺼야. 물어보고 너한테 알려줄께." 아.. 이 무지를 용서하소서. 무슬림, 아랍, 페르시아에 대해서 좀 배워야겠어요. 여튼 그게 그거랑 같은게 아니라니까 별 7개에서 5개로 강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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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1.08.14 08:41
7-8월이 여름방학 기간인 중 프랑스에선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어린이가 개에게 물린 사건이 3차례 발생했다. 가해견은 주인없는 개가 아니라 부모의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부모 친구의 개에게 물렸거나 할버니, 할아버지네 놀러갔다가 그 집 개에 물린 경우가 충격이 크다. 만4세 여아의 얼굴을 물어뜯은 개는 후자의 경우인데, 안락사에 처하게 될 불테리어를 브리짓 바르도가 변호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있다.

어제 판 르몽드(Le Monde)지에 의하면, 브리짓 바르도는 '이 개를 자유롭게 풀어달라는게 아니고 휴머니티를 요구하는거다. 사형제는 폐지하면서 동물의 안락사는 인정하는가?'라며 인도적인 처사를 호소하고 있으며, 아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을 묻고 있다. 불론뉴 시장에게 올린 인터넷 청원서에 1만1천명이 서명을 했으며, 시장은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여 '왕자(Prince)'란 이름의 불테리어는 법적 변호를 받게됐다.

이에 대한 반응들

같은 날 이 기사를 읽으신 우리 시어머님, "오, 이런! 브리짓 바르도가 즈 손녀가 물렸어도 이런 말을 할까?"는 반응을 보이셨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트위터에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래 들어온 멘션을 소개합니다. (새 멘션이 들어오는대로 추가합니다)

인간이 다른 종으로부터 당해보질 않아서
저도 안락사반대요..;
어느 무엇보다 중요한건 사람이죠. 사형제 폐지도 사람을 중심으로 한거지 동무릐 안락사와는 같은선상에서 볼수가 없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브리짓 바르도는 다음 생에 꼭 개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동물보호 좋지만 개는 개답게 길러야 한다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간중심 인간이 판결하는 것이니 개는 인간에게 도구일 뿐이죠. 개는 안락사를 개주인은 보상을 해야하죠.
음....참....말못하는 동물에게 변호할 기회도 없고 그 개가 알고 그랬나???그 개를 죽인다고 없던일이 되는건 아닌데..
용서하면 피해자는 트라우마로고생한다 치유될때까지새로운고통
ㄷㄷ개같은놈
미쳤군 ㅉㅉㅉ
브리짓 바르도... 노망든 노파!!


*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는 누구?
1934년 파리생, 본명은 브리짓 안느-마리 보르도. 60년대 섹스심볼로 부상한 프랑스의 영화배우이나 가수로 이름의 이니셜을 딴 BB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불어로 BB를 '베베'라고 읽는데, 베베(bébé)란 '아기(baby)'를 뜻한다. 수 차례의 결혼과 이혼 및 연문으로 타블로이드를 장식했으며, 70년대 들어 동물보호운동을 펼치기 시작해 1986년 자신의 이름을 딴 동물보호협회를 설립했다.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돌보지 않아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한 기자가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엄마가 필요한건 나라구요"라고 응수했다는.. 한국과는 2001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개고기 논쟁 인터뷰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방송상세)


네이버에서 찾은 '브리짓 바르도': http://movie.naver.com/movie/bi/pi/bio.nhn?code=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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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08.10 01:46
프랑스에서 뽀로로를 '뽀호호'(Pororo의 프랑스식 발음)라고 부른다. "그게 아니구. 자, 따라해봐. 뽀~로~로~"하면 딸애는 "뽈~롤~로~"(Pololo). 뽀로로는 뽀호호(Pororo)도 뽈롤로(Pololo)도 아니다. 뽀,로,로,다. 내가 애들에게 프랑스 TV에 나오는 불어판 뽀로로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다. 유투브에서든 DVD든 한국어로 된 뽀로로만 보여주고 있다. 우리집에 한국어로 된 유아용 DVD는 뽀로로, 뿡뿡이, 토마스 밖에 없는지라 '오늘은 뭐 볼래?'하면 레파토리의 다양성면에서 늘 불어 DVD에 뒤진다. ㅠㅠ

어쨌든 딸애는 "난 뽀로로를 '원어로(original version)' 본다. 뽀로로는 엄마 나라에서 만든거!"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준 김일호 오콘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조원을 제시하며 뽀로로를 팔라는 디즈니사에게 뽀로로를 넘겨주지 않고, 한국 아이들의 것으로 지켜주신 것,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련기사: 서울경제) 근데 이 기사에서 눈에 유별나게 띄는게 있는데, 뽀로로의 '동시간대 시청률이 57%'라는 점이다.

시청률이 51%에 육박해 국민드라마 수준이라는 둥, 2005년 11월 27일자 네이버뉴스에 소개된 한국경제 매거진에 의하면, '지난해 말부터는 프랑스 TF1에서 방영돼 아침방송 최고시청률(56%)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는 둥. 하지만 이들 시청률이 대체 언제 통계인지 상술되지 않아 모르겠는데, 내가 조사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딸애가 엄청 좋아하는 뽀로로 여행가방
한국에서 날아온 오리지날 버젼임. 헴헴..



키플러님의 글을 한 달 전에 읽었는데, 이제야 실태조사를 해보는 게으름이란.. ㅋㅋ 사실 그때 제가 바캉스 중이라 외지에서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혀 자료 검색이나 포스팅을 일체 할 수가 없었어요. ^^; 여기 프랑스 사이트 두 곳에서 뽀로로 시청률을 찾은 자료를 보자. 

자료 1: TF1
TF1에 의하면, 'Tiji에서 방영됐으며, 2006년 1월 1일부터 2007년 7월 28일까지 만4~10세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38%의 시청률을 보였다'고 적고 있다.

자료 2: 키디툰(KidiToon)
키디툰은 더 상세하게 적고 있는데, 뽀로로는 2004년 8월 23일 첫방을 시작해 Tiji(티지)에서 5분씩 52회 방영됐다. 대상은 만 3~6세. 2005년 여름에는 매일 방영, 그 외 기간에는 일요일에만 방영. (필자 주: 7-8월 여름방학에는 바캉스 가느라 TV 앞에 앉을 기회가 적다) 2004년 9월 2일부터 2006년 1월 8일 사이, 150회 방송의 시청률은 다음과 같다.
만 4~10세 : 40%, 40 024명
만 4~14세 : 31%, 58 171명
만 4~14세 여아 : 31% 24 403명
만 4~14세 남아 : 31% 33 245명  

 Un succès phénoménal en Corée :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 De nombreuses récompenses
- La seconde série est en préparation !
 - 상 여러 개 받음
- 2번째 시리즈 제작 중!

Sortie fin 2005 : livres (co-édition TF1 Publishing / Hachette Jeunesse) et DVD (TF1 Vidéo)
En 2006 : 6 nouveautés en édition (TF1 Publishing) et des cartes de voeux (Top Choice)
2005년 말, TF1출판사와 하쉣어린이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뽀로로 책 출간, DVD(TF1 비디오) 발행. 2006년, TF1 출판사에서 6권, Top Choice에서 축하카드로 발행.



다시 말해서, 한국에 소개된 기사에 의하면 '국민드라마' 수준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심했고, 마치 평균시청률이 57%인 듯한 착각을 유발할만한 유혹적인 기사들이었다. 시청률 계산도 4~10세 아동이 있는 집을 분모로 한 것이지, 프랑스의 전체 시청자를 분모로 한 것이 아니다. 뽀로로의 대상연령이 만3~6세인데반해, 만4~10세 대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41%의 시청률을 보였다는 건 아이들에게 상당히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면에, 뽀로로만 유독 인기가 많았던건지, 뽀로로 앞뒤로 1시간50분 동안 나가는 어린이채널의 시청률이 마찬가지 수준이었는지, 그니까 1시간50분 동안 아예 채널을 TF1에 고정시켜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몇 개 검색해봤는데, 캐릭터마다 시청률이 나오진 않았고, '도라(Dora)'가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나온다. 도라는 '만2~7세를 대상으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TF1, 니켈로데온, Tiji에서 방영되며, TF1의 경우, 회당 3십만명의 시청자를 모아 평균시청률 34.9%'를 보인다고 적고 있다. 회당 3십만명이라니 어마어마한 인기다. 3만~5만명인 뽀로로 시청자 수와 비교해 봤을 때, 도라의 시청률 계산은 (어린이가 있는 집이 아니라) 프랑스 전국 시청자를 분모로 하고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올 상반기에 뽀로로가 TV에 나왔는지는 모르겠고, 현재 여름방학 동안 TV프로그램에는 뽀로로가 없다.
참고로, TF1는 시청률이나 봉급 명세서면에서 BBC를 앞서는 유럽 제1의 채널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채널로 가장 오래된 국영채널이었으나 지금은 사기업 소유다. 아침 6시30분부터 8시20분까지 1시간 50분동안 만화 위주의 유아용 프로를 틀어준다. (학교 문 걸어잠그는 시간이 8시30분이거든요. '이제 그만들 보고 등교해라' 이거죠.)

우리는 첫애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침 먹으면서 France2에서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Telematin(텔레마땅)을 보곤했다. 1985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아침 7시에 시작해 9시에 끝나는데, 매 30분마다 뉴스가 나오고, 건강, 문화, 생활 정보들이 여러 리포터들에 의해 소개된다. 텔레마땅은 '아침TV'란 뜻인데 '아침마당'이라고 해도 발음이나 뜻이나 어지간하게 비슷하다. ㅎㅎ


프랑스에서 애 키우는 부모나 애들 사이에선 뽀로로가 잘 알려져 있다. 근데 아쉽게도 뽀로로 캐릭터 상품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뿌까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뿌까를 일본 캐릭터로 알고 있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뽀로로 캐릭터 상품을 프랑스에 선보여주시면 참 좋을텐데...

인터넷에 올라간 불어판 뽀로로를 보며 이만 마칠까한다. 뽀통령님, 만수무강하세여~!!!! ^^


Pororo - Episode 1 par Tiji


위 동영상을 보려고 클릭했더니 한국 인터넷 사용자께서 '너네 나라에서는 안돼'라는 메시지가 뜬다고 하시네요. 아, 이런.... ㅠㅠ 일전에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을 때, 그 영상을 보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한국 사이트를 클릭하니까 '방송계약상 한국에 있는 사용자만 볼 수 있슴'이란 메시지가 뜨더라구요. 같은 방식인가봅니다. 어쨌든 위 동영상이 안 보이는 분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Tiji 홈사이트로 이동해서 '뽀호호'를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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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1.08.09 00:05
한국은 소비자가 왕이지만 프랑스는 왕은 무슨? 소비자를 개똥쯤으로 안다. 서비스가 막말로 개망나니. 설마 프랑스가??? 하시는 분을 위해 실례를 들어보자.

실례 1) 인터넷
6~7년 전, 어느날 문득 인터넷 연결이 끊겨 AS를 불렀는데, 장장 3주 기다렸다. 결국은 인터넷회사를 바꾸는걸로 끝냈다. '3주가 지나도록 인터넷 서비스가 안되면 계약해지시 해약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버를 바꾸겠다고해도 '어서 기술자를 보내겠습니다' 하지않고 눈하나 깜짝 안 하더라.

실례 2) 전기공사 -1
약 2 년 전, 프랑스 전기공사(EDF)에서 전기소비량을 측정하러 온다고 언제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 방문할꺼라고 약속을 주길래 집에서 기다렸는데 오질 않았다. 다음달 편지가 오기를 '전기소비량 측정이 안되었으니 사람을 보내겠다. 이번 방문은 유료다 (한화로 약 4만원)' 우린 펄쩍 뛰었다! 나는 딴데 가지도 못하고 일부러 집에 있었고, 오지 않은건 EDF 기술자였거덩! 우린 유료통화료 펑펑내며 시정전화를 수 차례 했고, '추가방문비를 낼 수 없다'고 버텼다.

실례 3) 전기공사 -2
결국 무료방문을 다시 해줬고, 계량기를 적어갔는데, 어느날 전기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댁의 계량기 측정이 안됐습니다. 지금 계량기 앞으로 가서 저에게 읽어주십시요" 허참, 환장하겄다!!!
"이웃집은 죄다 전기소비량을 가가호호방문 안하고 하는데 왜 우리집만 방문약속 잡아서 매번 일이 생기게하느냐? 우리도 원거리측정기 설치해주라" 이걸 전기공사 직원이 올 때 마다마다, 전화를 걸어서도 여러 번 요구했다. 이래서 잘 안되고, 저래서 잘 안되고.. 하더니 어느날 약속도 잡지 않고 불분명한 한 남자가 짠~하고 나타나서 실행에 옮겨주고 갔다. 장장 '1년반(!!!)' 기다렸다! 전선 두 개를 자리만 바꾸는 상당히 단순한 작업이던데, 이걸 18개월을 기다리게 하다니, 이해가 안 간다.

실례 4) 신축 부실공사
신축한 건물의 부실공사로 말많은데가 프랑스라면 믿으시겠습니까? 프랑스 건축사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건설회사가 공사비 줄이느라 빨리 공사 끝내놓고, 분양 후 수리비를 보험회사에 넘기는 술법'이랜다.

여튼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프랑스 건설회사에서 신축하고 입주하려고 보니, 어느집은 욕실에 타일이 반만 깔려있고, 어느집은 욕조 밑 오버플로(overflow; 물이 욕조에 어느 정도 차면 연결된 호스를 통해 배수시키는 구멍)에 호스가 연결되있지 않았다. 살고나서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집은 화장실 배수가 안되고, 현관에서 물이 떨어지고, 지하주차장 천정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에 늘 물이 고였다. 신축한 지 겨우 몇 달도 안되는데! 보수공사 신청으로 입주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장 심했던 집은 화장실 배수가 안됐던 집. 오죽 냄새가 났겠는가? 수리 요청 후 자그마치 한 달이 지나서야 배선공이 왔다고!

우리집은 분양 후 1년 뒤, 천정에서 물이 새서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 콘크리트를 적셨다. 천정과 벽 페인트가 일어났고, 나무 마루가 들고 일어났으며, 집이 습하니 천정 모서리에는 곰팡이가 끼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서 환기를 오래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집에 어린아이가 있어서 호흡기질환이 생기는게 아닐까 걱정에 태산이었다. AS출동하기까지 -남편과 나의 기억차를 조율해보니- 자그마치 여섯 달을 기다렸나보다. 그 다음 해 2월께 수리하러 왔었으니.

천정에서 물 샌다고 전화했을 때 바로 나왔으면 바닥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을텐데, 건설회사와 보험회사가 서로 책임전가하느라 늑장을 부려서 결국은 마룻바닥을 드러내는 공사까지 했다. 마루 일부를 다시 깔고, 표면을 곱게 갈고 (이때 날리는 입자 작은 먼지들이 엄청나다!), 칠 하고, 말리고. 프랑스에서.. 새 집에.. 상상이 되십니까?

벽을 따라 흐르던 물이 페인트에 갇혀 물주머니를 이뤘다.


짙은 갈색으로 보이는 모서리들이 물에 젖어 들고 일어나는 부분이다.



벽과 천정이 만난 바로 저 곳에서 물이 내려왔다. 곰팡이가 슬었다.



습기가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실 모서리에 갇혀 곰팡이를 만들어냈다.








실례 5) 택배서비스
한국에서 택배로 소포부친다고하면 소포가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좌불안석이다. 한국에서 EMS로 부치면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크로노포스트(Chronopost)'가 인계해서 들여오는데, 이 크로노포스트의 우편 배달서비스는 개망나니 서비스 목록에서 결코 빠질 수가 없다. 최강자라면 모를까! 크로노포스트의 개념없는 서비스를 받고 있노라면 대체 여기가 21세기의 선진국 프랑스인지, 19세기 남아프리카의 한적하고 외진 마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claim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장황한 얘기는 여기서 -> http://francereport.net/205
해도 해도 너무 심해서 A4용지 5매에 출력(!)한 편지를 보냈더니 사과답신이 왔다. 오~!
그 편지 전문은 여기서 -> http://francereport.net/735

프랑스에서 설마~? Believe it or n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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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1.06.23 03:23
프랑스는 타국의 문화를 수용하는데도 관용적이지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도 잘하고, 그걸 세계에 수출하기도 한다. 하지 음악축제(La fête de la musique)와 빠리 쁠라쥬처럼 돈 안 드는 문화수출도 있다 !

빠리 쁠라쥬(Paris plage; '파리 해변', '파리 백사장'이란 뜻)는 7월과 8월, 파리의 세느강을 따라 펼쳐지는 3.5km의 인공 모래사장이다. 인공 모래사장은 실은 1996년 '생-껑땅'시에서 시작됐다. 두 달 간의 여름 휴가철 기간에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서 시청 앞 광장에 모래를 부어 모래사장을 만들었다. 2002년, 벡트렁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여름 바캉스에도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이 프로젝트를 파리에 적용시켰다. 파리 세느강을 따라 백사장도 만들고, 썬탠하는 긴 의자도 설치하고, 놀이시설, 식수대, 물안개를 뿜어내는 시설 등 어른들에겐 휴식을, 아이들에겐 놀이공간을,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무료로' 여가와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파리 플라쥬'를 탄생시켰다. 최근엔 풀장과 체조시설도 추가됐다. 파리 시민이든, 다른 도시에서 왔든, 다른 나라에서 왔든, 관광객이든간에 이곳의 모든 사용료는, 풀장을 포함해서, 무료다.

하지 음악축제가 현재 전세계 110개국, 340개 도시에서 따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리 플라쥬에서 자극받아 프랑스의 여러 도시는 물론이고, 베를린, 브뤼셀, 부다페스트, 프라하, 메츠 등 외국의 주요 수도에서 이를 본따고 있다. 문화란 창조하는 것!!!
(아래 사진은 2005년도 모습)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노는 모습을 보면 시에 낸 세금이 아깝지않다.





음악인, 연극인들이 모이면 즉석에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거리공연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아프리카 음악에 흥이 올랐다.



모래 조각으로 미술공간이 탄생하기도!





우리 동네에도 4년 전부터 시청 뒤 공원에 인공 백사장이 들어섰다. 첫해엔 모래사장이 하나였고, 한 달동안이었다. 이듬해에는 나무그늘에 유아용으로 작은 모래사장을 하나 더 만들고 두 달로 길어졌다. 그 이듬해엔 간이화장실이 2개 들어섰다. 올해는 모래 둔덕도 더 튼튼하게 쌓고, 작년에 청소가 안되는 냄새나는 플라스틱 간이화장실 대신 자동청소되는 철제 간이화장실이 들어섰다. 그리고 7~8월 방학 때만 설치했던 모래사장이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로 길어졌다!!!

첫해엔 직사각형의 대형 모래사장이 하나 지어졌었다. 개장기간 7월 한 달. 

예정된 폐장일이 다가올 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가 아쉬워했다. 8월까지 한 달만 더 늘리면 안되겠냐고.


결국 폐장일이 며칠 안 남았을 무렵, 시에서 '한 달 연장'을 결정했다!


이듬해엔 '어린이용'으로 정사각형의 작은 모래사장이 추가되고, 개장기간이 아예 두 달로 공고됐다. 저연령 아동을 위한 작은 모래사장은 주위에 나무가 둘러져있어 오후내내 뜨거운 땡볕을 막아준다. 애기도 어린이도 삽과 양동이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잘 논다. 아니, 그것도 필요없다. 손으로 성, 터널, 두꺼비집, 거북이를 만들고, 모래 속에 발가락을 꼼지락대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해가는 줄 모르고 참 잘도 논다.

위 두 모래사장을 합쳐 총 300톤(!)의 모래가 부어진다. 모래가 희고 부드럽다. 대체 어디서 이 많은 모래들이 오는 지 모르겠다.


어린 아이들 모래밭 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는 바로 이것, 피나무.

이걸로 차도 끓여 마시는데, 요즘 한창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어서 그 밑에 앉아 맡게되는 은은한 향기란.. 음~



동반한 부모를 위해 잔디밭에 설치된 벤치.

평상시에는 없다가 인공 모래사장과 함께 들어선다. 



저 오두막에서 아이들 하교시간부터 저녁 8시까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준다. 필요에 따라 안내방송도 나가고, 모래밭에서 놀 수 있는 놀이기구도 무료로 대여한다. 여름방학 2달간은 색깔 찾기 놀이, 비눗물 깔아놓고 점프해서 멀리가기, 구기종목 경기, 모래성 쌓기 대회 등 애니메이터가 아이들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다. 작년엔 그 자리에서 바로 모래성 쌓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낚여서 '누가 가장 창의적인 모래성을 쌓았나' 평가에 참여했다. ^^v


학교 밖으로 나가 학교 앞 대형 모래사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방과 후의 모래사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 동반이 아니어도 그저 햇빛 쪼이고 싶어서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도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아기와 어린이, 청소년과 어른, 노인들에게 이르기 까지 공원에 설치된 인공 모래사장은 모든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곳으로 굳게 자리잡았다. 특히나 여름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 여름방학 내내 뭐하고 놀 지 모르는 막막한 어린이들에겐 더없이 사랑받는 곳이 되고있다.


서울 사는 누구라고 꼭 집어 얘기하지는 않겠는데, 시 예산이란 이런데다 써야되는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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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1.06.22 03:07
 6월 21일, 이날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하지. 이쯤이면 밤 10시반이나 되야 하늘이 깜깜해진다. 하지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프랑스 전역은 음악으로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이름하여 'La fête de la musique'(라훼뜨 들라뮤지끄; 음악 축제)! 쟈끄 랑이 문화부 장관으로 있었을 때, 비공식적으로는 1982년, 공식적으로는 1983년 6월 21일에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15년이 지난 현재 세계 110개국, 340개 도시로 하지 음악축제가 퍼져나갔다. 가장 최근에 등록된 도시는 상하이!

저녁 무렵, 일과 학업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파티라고 머리에 몸에 무쓰를 바르고 노는 아이들.

니들은 이제 집에 돌아가면 오늘밤 엄마한테 뒤졌다.



아주 드문 클래식 악기부터, 아카펠라, 샹송, 재즈, 록앤롤, 메탈, 아메리칸 팝송, 이태리 팝송, 아랍 팝송, 남미 음악, 아프리카 음악 등등 음악의 종류도 가지가지.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리듯 다른 쟝르의 음악이 여기서 또 저기서 흘러나온다. 잔치에 마시고 춤추는거 빼면 그림이 그려지나? 탱고, 살사 등 녹음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라이브에 맞춰 즉석에서 춤추는 인파로 거리가 막힐 때도 있다. 길 거리거리마다 골목마다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마시는 사람, 듣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집도 있고..



스트레스 풀러 굳이 어디 멀리 갈 필요도 없고, 프랑스 전역 어디든지 거리에만 나가면 너나없이 쟝르를 불문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모두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음악파티!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집도 있고 (우리집처럼), 애어른할 것 없이 모두가 거리에 나와 음악축제를 즐긴다. 난 이렇게 프랑스에 단체로,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짜로, 정신나가게, 끝내주게 노는 날이 있다는게 너무 너무 맘에 든다. 가끔은 미친 듯이 놀 필요가 있다! '노는 날'이라고해서 공휴일이란 소리가 아니다. 일도 학교도 할꺼 다 하고, 축제는 저녁 7시부터 시작해서 대개 12시나 새벽 1시만 끝이 난다.



출산 전엔 이런 기회만 보이면 그냥 '밤드리 노니다가~'였는데, 이젠 그러진 못하고 동네 한 바퀴 훠~이 돌고 왔다. 나도 언젠가는 '라훼뜨 들라뮤지끄'에서 마이크 들고 노래부르는 날이 오리라. 불끈!!!

음악아, 너, 잘 만났다! 어디 신나게 놀아나보자!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가 흘러나오는 중. 까만티 입은 청년이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고있다.

아니, 젊디 젊은 자네가 그렇게 오래된 명곡(?!)을 알다니!!!



보라. 거리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는 군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더워지지 않는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길을 가득 메우고 함께 춤을 추는 모습에 가슴이 뛴다. 카메라 때려치고 같이 춤추고 놀고 싶어 온몸이 근지러워 혼났네.. ㅎㅎ 이 멋진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아왔습니다. 저녁에 막 찍어온 뜨끈뜨끈한 동영상 2편, 즐감하세요. ^^



보고 보고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 오늘의 명장면 ! 가슴이 콩당콩당~
특히 여자친구 핸드백 목에 걸고 춤추시는 까까머리 청년, 의상도 한센스하시고 너무 멋지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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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인간적인 배신으로 '폐인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메가폰을 놓은게 아닌가 염려되었던 김기덕 감독이 3년만에 영화계로 돌아와주셨습니다. 지난 3년간의 자신의 얘기를 담은 영화로 김기덕은 보란 듯이 승리했습니다. 인간승리네요. 감동적이고, 눈물나게 축하드립니다. 수상식 장에서 무대 위에서 수상소감을 묻자 김감독은 '아리랑'을 즉석에서 불러 청중들의 갈채를 받았다고하죠.


올해 '주목할만한 시선' 후보작으로 19개국에서 온 22편의 감독, 21편의 영화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김기덕의 '아리랑'과 나홍진의 '살인자'가 후보로 올랐었죠. 에밀 쿠스타치카를 심사위원장으로한 '주목할만한 시선' 결과는 지난 21일에 났는데, 김기덕 감독의 기쁜 수상소식을 트위터에서만 전했습니다. 자세한 결과는 아래 보시죠. 


PRIX UN CERTAIN REGARD Ex-æquo
ARIRANG de KIM Ki-Duk
HALT AUF FREIER STRECKE (Arrêt en pleine voie) d’Andreas DRESEN

주목할만한 시선상 (공동수상) : 김기덕의 '아리랑', 안드레아스 드레센의 '길 한복판에서 정지된'






PRIX SPECIAL DU JURY
ELENA d’Andrey ZVYAGINTSEV

심사위원 특별상 : 안드레프 즈비아긴체프의 '엘레나'


PRIX DE LA MISE EN SCENE
BÉ OMID É DIDAR (Au revoir) de Mohammad RASOULOF

감독상 : 모하메드 라술로프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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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망의 제64회 깐느영화제 결과가 어젯밤 발표되었습니다. (어제는 일찍 자느라 쿨쿨~ 아침에 포스팅해요. ^^;)

Caméra d'or (meilleur premier film) : Las Acacias, de Pablo Giorgelli
황금카메라상 : 아카시아 (파블로 조르젤리 감독)

Prix du Jury : Polisse de Maïwenn

심사위원상 : 폴리스 (마이웬 감독)

Prix du scénario : Footnote de Joseph Cedar

각본상: 각주 (조셉 세다르 감독)

Prix d'interprétation féminine : Kirsten Dunst dans Melancholia

여우주연상 : 커스텐 던스크 (영화 '멜랑콜리아')

Prix d'interprétation masculine : Jean Dujardin dans The Artist

남우주연상: 쟝 뒤자흐당 (영화 '예술가')

Prix de la mise en scène : Nicolas Winding Refn pour Drive

감독상 : 니콜라스 와인딩 레픈 (영화 '드라이브')

Grand Prix : ex-aequo Le gamin au vélo, des frères Dardenne et Once upon a time in Anatolia, de Nuri Blige Ceylan

대상 : 자전거 소년 (다흐덴 형제 감독), 옛날 옛적에 아나톨리아에서는 (너리 블리즈 실런 감독)

La Palme d'or est attribuée à : The Tree of life de Terrence Malick

황금종려상 : The Tree of Life (테런스 말릭 감독)


남우주연상을 받은 쟝 뒤자흐당, 용 됐네요. ㅎㅎ
뒤자흐당은 'Un gars et une fille(남자와 여자)'라는 단 6분짜리 프랑스의 TV연재물에 출연했던 배우랍니다. 동거하는 젊은 남녀커플 사이에 일어나는 시시콜콜하고 치사뽕인 일상사를 매우 코믹하게 연출한 이 짧은 연재물은 당시 엄청난 시청자팬을 거느리고 있었죠. 2003년 10월에 연재가 끝났고, '남자와 여자'에 같이 출연했던 여배우는 TV연재물 이후 활동을 볼 수가 없는데, 뒤자흐당은 이후 연극 무대, 영화 스크린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물론 다 코믹영화들이었구요. 재작년인가 프랑스에서 출연료 많이 받는 남자 영화배우를 선정했는데, 내로라하는 프랑스의 간판스타들을 다 제끼고 뒤자흐당이 1위에 올랐더랬습니다. 올해는 깐느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다니 대단합니다.

그럼, 수상작들의 예고편을 보실까요? ^^

심사위원상 : 폴리스 (마이웬 감독)



각본상: 각주 (조셉 세다르 감독)



여우주연상 : 커스텐 던스크 (영화 '멜랑콜리아') 



남우주연상: 쟝 뒤자흐당 (영화 '예술가')



감독상 : 니콜라스 와인딩 레픈 (영화 '드라이브')



대상 (공동수상) : 자전거 소년 (다흐덴 형제 감독)



대상 (공동수상) : 옛날 옛적에 아나톨리아에서는 (너리 블리즈 실런 감독)



황금종려상 : The Tree of Life (테런스 말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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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05.21 02:01
6월이면 학기가 끝난다. 9월에 시작하는 다음 학기 급식비 산정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라고 딸애 학교에서 통지서가 왔다.
급식비 산정은 양쪽 부모의 벌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필요한 서류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가족형태에 따라
1-1.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 부나 모 중 1인과 같이 사는 경우 : 가족관계 증명서 (livret de famille)나 해당 아동의 출생증명서
1-2. 부모가 이혼한 경우 : 이혼 혹은 별거 증서
1-3. 재혼한 경우 : 아이를 돌보고 학비를 대는데 동의한다는 2번째 부/모의 동의서, 2번째 부/모의 신분증 사본

2. 거주형태
2-1. 월세인 경우 : 월세 영수증
2-2. 자기집인 경우 : 부동산 대출 상각표 (맞는지 틀리는지? 우리말 전문용어로 정확히 뭐라고 하는 지 모르겠네요)
2-3. 누군가 재워주고 있는 경우: 그 사실을 밝히는 (재워주는 사람이 작성한) 서류, 재워주는 사람의 주거증명서 사본, 재워주는 사람의 신분증 사본

3. 정부보조금
정부보조금 증명서 또는 정부보조금이 입금된 것을 증명하는 통장사본

4. 부모의 수입 (부와 모, 각자의 서류를 모두 제출)
4-1. 봉급자인 경우 : 지난 해 세금신고서, 지난 3개월간의 월급명세서
4-2. 상인, 기업의 고용주, 자유직 : 지난 해 세금신고서, 회계 명세서
4-3. 구직자 : 상공업 촉진 협회에서 받은 실업보조금 지불증명서 또는 실업보조금 통지서
4-4. 오랜 병을 앓고 있는 경우: 보험국에서 나날이 지급한 수당 증명서
4-5. 퇴직자 : 지난 해 세금신고서, 또는 퇴직연금 지불증명서
4-6. 장애인이나 상해군인 : 지난 해 세금신고서, 또는 상해연금 지불증명서
4-7. 부동산 수입의 혜택을 입은 자 : 지난 해 세금신고서


프랑스의 유아학교(만3~5세)에서 급식먹는 아이들
(출처 http://www.allauch.com/index.php5?id=4&page=ecole_cantine.html)

해당 서류를 mairie(메리)에 제출하면 일체의 소득과 월세 등의 지출을 참고로 메리는 1에서 10까지 '가족지수(quotient familial)'를 산정한다. '가족지수'가 10이면 상한가를 내고, 가족지수가 1이면 하한가를 낸다. 가족지수에따라 국립유아원의 시간당 탁아비, 국립 유아학교의 급식비, 국립 초등학교의 급식비, centre loisirs 시간당 비용, garderie 비용 등이 일제히 계산된다. 부양가족이 늘면 이 단위가격이 낮아진다. 우리 둘째가 태어난 다음 해에 큰애의 급식비가 20센트 줄었다.

* 용어설명: livret de famille, mairie, centre loisirs, garderie 란?




프랑스 급식비는 얼마나 하나?
국립학교의 급식비는 4유로 미만, 한화로 6천~6천8백원. (1€=1500~1700원 변동)
사립학교 급식비는 회사 급식비와 같은 7유로 정도로, 한화로 10,500~11,900원.
바깥 식당에서 사먹으면 한 끼에 12~18유로, 중간값 15유로로 봤을 때, 한화로 22,500~25,500원이다.


급식비는 어떻게 통지되고, 어디다 어떻게 내나?

급식비 청구서가 우편으로 날아오면, 그 달 안에 메리에 가서 직접 납부하고, 체납되는 경우, 다음 달에 국세청에서 우편으로 청구서가 날아온다. 다시 말해서 급식비 산정 및 청구는 학교에서 하는게 아니라 모두 메리에서 하는 행정업무다.
따라서 담임 선생님은 물론 학교는 학생의 급식비 내역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애들은 밥이나 먹고, 돈은 어른이 내며, 돈 문제는 어른끼리 해결한다. 아이들을 일체 급식비 문제에 얽히게 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이 급식을 먹나?
아니다. 급식을 먹고 안먹고는 자유다. 급식을 하지 않으면 11시반에 부모가 학교에 아이를 찾으러와서 집에서 점심을 먹여 오후 1시반까지 학교에 데려다준다. 급식 유무는 연초에 급식 먹을 요일을 지정해서 학교에 제출한다. 급식비는 메리와 국세청에서 관할하지만 급식을 먹고 안 먹고의 유무는 학교에서 체크한다. 그래야 외부 급식회사에 '몇 개 보내주세요'하고 주문을 할 수 있다.

급식 신청 요일을 연초에 정하는게 원칙이지만 간혹 변동사항이 생기는 경우, 당일 아침에 학교에 얘기하면 가능하다. 매일 먹던 급식을 하루 빼달라고 할 수도 있고, 평소에 안 먹던 급식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유동적인 경우는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 교문 앞에서 매일매일 체크한다.


급식은 어디서 만드나?
국가로부터 청결과 위생 점검을 받은 외부의 급식 전문회사에서 만들어져 정오에 배달된다. 반면에, 학교 내에서 자격증을 갖춘 요리사가 직접 급식을 만드는 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런 급식은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오늘은 무엇을 먹을 지 교문 앞 게시판에서 검색할 수도 있고, 해당 메리의 홈페이지에서도 검색할 수 있다. 2~3주의 메뉴를 한눈에 미리 알 수 있다. 


채식 급식도 있나?

채식 급식을 신청하는 란은 없고, (종교문제로) 돼지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를 신청하는 란은 있다.


유기농 급식도 있나?
유기농 급식으로 하면 일반 급식비보다 약 30% 비싸다. 프랑스의 그르넬 환경정책에 따르면 2012년까지 학교 급식과 회사 급식의 20%를 유기농으로 할 예정이다. 목표달성까지 1년 남은 지금, 딸애 학교 급식표를 보면 한 달에 1번 전식(샐러드)이나 후식(떠먹는 야쿠르트나 과일)으로 유기농이 나오고, 식단 전체가 유기농인 급식은 석 달에 1번꼴로 유기농 급식이 나오는 것 같다. 한 해 급식의 20%가 유기농이려면 1주일에 한 번은 유기농 급식이 나와야한다는 소린데, 1년 내로 목표달성하려면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상 프랑스의 급식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했구요. 다음 번엔 무상급식 사례에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이만 자러 가요. 여기 시간 새벽 2시.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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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05.19 22:3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2&sid2=59b&oid=001&aid=0002284625

네이버 머릿기사에 올라간 '둥지잃은 사랑의 밥집'이란 기사를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에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건 '어르신'이란 단어를 반복하고 강조하는 점이다. 노인공경, 웃어른 공경은 한국문화의 좋은 면이지않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아 있겠으나 내가 주창하고 싶은 건 '인간 존중'이다. 왜냐면 나이가, 때로는 단 몇 줄- 많다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내 의견이 묵살되야 하는 경험을 한국, 또는 한국인 사회에서 너무나 많이 서럽게 겪었기 때문이다. 또는 어려'보인다'는 이유로 애취급 당하거나 초면에 반말 찍찍받기가 일쑤였던 지라 내게는 '웃어른 공경'이 '나이가 어린 -또는 어려보이는- 사람 무시'와 동의어로 들렸다.나이를 먹었든 덜 먹었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어린이든 존중받아야 한다.왜? 인간이기 때문에.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의견이 존중되고, 나이를 덜 먹었다고 무시되야 하는 건 웃어른 공경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위 기사에서 진정으로 안타까와야 할 포인트는 '어른신'들이 사랑의 밥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끼니를 떼울 수도 없는 극빈층을 위한 사랑의 밥집을 잃은 것이어야 한다. 물론 대상이 임산부, 장애자, 어린이를 모두 포함한 노약자(노인+약자)라면 일반인보다 우선 순위로 올라간다. '노약자'란 단어에서도 심히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한국에선 노약자라하면 '노인'만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삭이 된 임산부가 버스에서 노약자 자리에 앉았다가 꿀밤을 먹고 일어나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유명인사 가운데 사랑의 밥집을 창설해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 있다. 이름하여 꼴루쉬(Coluche, 1944년생). 평생을 코믹배우로 이름을 날리는데 그의 펀치 먹이는 유머 탓에 그는코믹배우라기보다는 사실 '유모리스트'라고 알려져있다. 이 사람의 어록은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 신랑도 꼴루쉬 팬 중 하나로 그의 어록을 줄줄 왼다. 우리 신랑이 어느날 해준 꼴루쉬의 어록 하나.

“Les journalistes ne croient pas les mensonges des hommes politiques, mais ils les répètent! C'est pire!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안 믿지. 근데 그 거짓말을 반복해! 그게 더 나빠!"

 

그는 정치와 언론에 대해 많은 풍자를 했다. 기타 어록을 한번 보자.

«Le plus dur pour les hommes politiques, c’est d’avoir la mémoire qu’il faut pour se souvenir de ce qu’il ne faut pas dire.»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든건 절대로 말하면 안되는 것들을 잊지않고 기억해야 하는 능력이다.

 

«La politique c’est comme le flirt : si on veut aller plus loin, faut aller plus près.»

정치는 꼬시는 것과 같다.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면 더 가까이 접근하라.  


“Je croirais vraiment à la liberté de la presse quand un journaliste pourra écrire ce qu'il pense vraiment de son journal. Dans son journal.”

기자가 자기가 쓴 기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쓸 수 있을 때야 비로서 나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믿을 것이다.

 

 

콜루쉬는 70~80년대에 다수의 코믹 영화를 찍고1984년 세자르 영화상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탄다.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꼴루쉬는 그 지지를 등에 엎고 1981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유모리스트로서의 인기와 대통령 후보로서의 인기는 등급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선거 전 후보를 유보한다.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를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유명하게 만들고 칭송받게 한 것은 '사랑의 밥집(restaurant du coeur)'을 창시하게 되면서다. 극빈층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열자는 의견을 국가에 제시한다. 이로서 꼴루쉬의 사랑의 밥집은 국립기관이 되고 프랑스 전국에 확대된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1986년,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회연대의식에 동의하고 그 정신을 기리려는 여러 사람들이 동참해restaurant du coeurs(사랑의 밥집)을 운영하여 지금까지도 프랑스 전국에서 극빈층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유모리스트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무엇보다 사랑의 밥집의 창시자로서 프랑스인에게 영원히 존경받으며 잊혀지지 않을 인물로 남은 꼴루쉬. YouTube에 올라온 그의 동영상을 소개하는 걸로 글을 마칠까 한다. YouTube에 가면 그가 찍은 영화의 일부도 볼 수 있어요.

 

 

 

 

네이버에 뜬 사랑의 밥집도 회생해서 극빈층들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길 바랍니다.

  

* 몇 년 전에 썼던 글인데, 새 글쓰기에서 꼴루쉬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공개발행으로 전환하고 등록일을 갱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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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영화제만 아니면 깐느는 연중 내내 조용~~~~한 도시다.
생활비가 파리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으며, 커피값은 파리보다도 때로 더 비싼 곳.
바닷가 휴양지, 깐느 영화제로 알려진 이 도시는 은퇴한 노년의 삶을 보내는 이들이 많이 정착하기 때문에
개를 산책시키는 멋쟁이 노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다와 면한 대로는 유명 (일명 명품) 부띠크와 사성호텔로 삐까번쩍한 반면,
다른 한 켠엔 상설벼룩시장과 마치 남대문처럼 싼 값에 쇼핑하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공존하는 재미난 도시기도 하다.
깐느에서 배를 타고 깐느 앞에 있는 섬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를 음미할 수도 있다.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로 꽉 채워진 이 섬에 다가가면 유칼립투스향과 솔향, 그리고 바닷내음이 진동한다.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언덕에 올라서 내려다 본 풍경












깐느영화제가 열리는 컨퍼런스 건물의 평상시 모습.

세미나 간판 내리고, 계단에 붉은색 양탄자 깔고, 양 갈래로 정장한 기자들을 깔아놓으면, 스타들 등장~! 



먹자골목이 있는 쪽에 위치한 벼룩시장. 1주일에 2번 벼룩시장이 섬.



깐느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지가 맞은편에 보이지요.






요트마다 주인이 있대요. 난 한번도 못 타봤는뎅...



느 부산 갈매기가???



저 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나 한 판 뒀으면.... 싶었던 곳.



소나무가 무성한 것이 꼭 한국의 동해 풍경을 닮은 것 같아서 고향생각 나게 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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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깐느, 사진,
5월에는 봄만 오는게 아니라 올해도 어김없이 칸느영화제가 시작됩니다.
평상시에는 썰렁~한 이 도시가 5월이 되면
세계에서 날아온 스타들과
그 스타들의 사진과 인터뷰를 취재하려는 프레스와
한군데 집결한 스타들을 가까이서 보고자하는 영화팬들과
영화관에서 개봉하기 전 영화를 보고, 점수를 줘보고자하는 영화팬들과
영화를 팔고사는 영화산업 관련자들로
칸느를 지글지글 달구지요.

5월 11월부터 22일 깐느영화제가 막을 내리는 날까지 날이면 날마다 후보작들으로 뽑힌 배우와 감독들이 도착하고,
붉은 양탄자(레드 카펫.. ^^;)를 밟고 눈이 부시게 사진빨을 받으며 컨퍼런스 건물로 입장합니다.


http://www.festival-cannes.com
칸느영화제 공식 사이트는 영어, 불어, 중국어, 일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감독과 배우들은 후보작으로 뽑힌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예리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떻게 만들었는 지 성의껏 설명해야 합니다.
작년에 초대돼 온 임상수 감독처럼 빈 깡통처럼 답했다가는 빈 깡통 신세됩니다.
참고자료 :
'하녀'의 굴욕: 워스트 드레서
레드카펫 밟는 '하녀'팀과 막나가는 인터뷰

이창동 감독님과 '시' 팀은 매우 겸손하고 성의있게 인터뷰를 하셨고, 아주 좋은 결과를 안고 귀국하셨죠.
참 보기 좋았더랬습니다. ^^

칸느영화제 홈페이지는 그날 그날 도착한 영화인들의 사진으로 매일 바뀝니다.
어제 초대된 팀을 보니까 김기덕의 '아리랑'이 있네요!!!
'주목할만한 시선' 후보작으로 올라있군요.
이번 영화로 김기덕 감독은 깐느에 3번째 초청됐습니다.
작년엔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하하하'의 홍상수 감독이 받았었죠.
유럽에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김기덕의 새로운 영화,
심란했던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온 작품이 어떤지 개인적
으로 무지~~~하게 기대됩니다.
^^;
(추가분) 연합뉴스에서 김기덕감독과 현지 인터뷰를 한 기사가 뒤늦게 떴네요. 기사보기




2011년 제64회 깐느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을 볼까요?
심사위원장 : 로버트 드니로
심사위원 : 올리비에 아사야스, 말티나 구스만, 마하마트 살레 하룬, 쥬드 로, 난순 쉬, 우만 써먼, 죠니 토, 린 울만

각설하고, 이곳을 클릭하시면 어제 저녁에 도착한 팀들의 화려한 사진빨 보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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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1.03.21 00:07
파리 Porte de Versaille에서 도서박람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어제 갔다왔어요. 첫날인 금요일엔 영부인 카를라 브뤼니가 문맹퇴치운동을 위해 잠깐 왔다갔다고 뉴스에 났지요. 토요일, 역시나 빠글빠글 합디다. 매표구가 3군데인데, 각 매표구마다 줄을 10미터씩 섰더라구요. 입장 줄이 따로 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 인터넷에서 표를 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음 줄 서다 날 새겠어요. 작설하고 오늘은 사진으로 스크롤 압박 해볼랍니다.

부스마다 하루에 4~5회씩 저자 사인회가 있다.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와 직접 마주보고 친필사인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책 첫페이지에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선 독자들.


어디 사인 뿐이랴. 같이 다정하게 사진도 찍고 !



CD로 들을 수 있는 책. 맹인들에게 좋을 것 같다.


세미나도 박람회장 내 4~5군데에서 열린다. 북유럽 작가들을 모신 자리.


작가의 사진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독자들.


북유럽 작가인데 이름은 모르겠고 스타일이 눈에 확 튀네. 나도 저러고 다니고 싶어.. ㅠㅠ


레이몽 드파르동. 사진사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진작가였는데 최근엔 영화만 찍는다.

꽤 유명한 사람인데 줄을 별로 안 섰더라고.. 난 그래서 사인 받아왔지롱~ ^^;


중학생 정도의 독자를 겨냥한 '차츰차츰' 시리즈. 하늘, 프랑스인의 선조, 선사시대, 화산 등 중에

'에너지'를 주제로 한 신간이 눈에 띈다.


표지가 감각적이고 몽상적인 이미지 일색인 출판사 부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쌓인 책 좀 보라


일본 만화(망가)만 출판하는 부스



휴지를 찢어다 붙인 것 같은 디자인의 천정갓

큰일을 오래 보시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시도해볼 수 있을 듯. ^^;


이런 모습...


저런 모습...



사람이 왜 이렇게 몰려있나..... 해서 들어가봤더니


남미 작가들이 열띤 세미나를 열고 있었다.

의자가 별로 없어서 뒤에 서있던 거로군.


저작권에 대해 질의응답을 받아주는 부스도 있고.. 

자신의 저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몇몇 한국 작가들의 슬픈 현실이 떠올랐다.




동구와 아랍권에서도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고.


서점같은 분위기..


천정엔 출판사 이름들이 '나 여기 있어요~' 대롱대롱


뭐하는덴지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국제공간'이라는데도 있었고.. 아무도 없어서 썰렁~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기회를 주는데도 있고..



집에 가기 전에 들른 화장실에서 마주친 안내문 '마루타 454' !

일본이 1930년대 중국인들을 마루타로 썼던 실화를 그린 만화.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서 불어로 옮겼나?' 싶었는데,

퀘벡 역사학자 '폴-야닉 라께르'가 쓴 탓에 놀랍게도 원본이 불어다.

'송 양'이란 중국인이 그림.

영화 일본 731부대에서 행해진 생체실험 '마루타'를 20년 전에 대한극장에서 봤다. 

20분 삭제된 필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겐 엄청 쇼크였다.

이렇듯 중국은 일본의 만행을 잊지않고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럴 수 있는 힘과 정신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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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1.03.03 20:44

오늘은 딸애 학교 점심에 급식이 유기농으로 나오길래 '학교에서 먹으라'고 했다.

보통은 점심에 아이를 찾아와서 밥을 먹이고 오후 수업을 위해 다시 데려다주곤 한다.

지금까지는 샐러드나 과일만 유기농으로 나온다던가 했는데,

오늘은 점심 메뉴가 모두 유기농이라고 공고되어 있었다.

 

매일 유기농은 아니고 오늘 처음 있는 일이다. 내일 메뉴는 유기농이 아니다.

참고로, 샐러드 하나만 유기농으로 나오는 날도 1주일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유기농으로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집밥 먹는 나도 마음이 편하다.

 

한국에서 무상급식, 그것도 유기농 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들이 많다.

허튼데 삽질하느라 꼴아박는 돈을 전환시키면 물론 그 예산 나온다.

하지만 복지국가라는 프랑스에서조차 무상급식을 못하는 형편에

복지의 기반이 부실한 한국에서 과연 유기농 무상급식을 실현할 수 있을까.. 진한 의구심이 든다.

의료복지, 장애자복지, 여성복지, 임신/출산과 관련된 복지, 노후복지 등 그 많은

복지의 대상과 정책엔 대해선 나몰라라~~~ 뒷전인 한국 복지정책에서

왜 꼭 전아동 유기농 무상급식이 급우선이어야 하는가?

 

난 여기서 한국의 평등과 프랑스의 평등에 대한 단적인 시각차를 짚어보고 싶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평등은 '너도 그거 하니? 나도 그거 할랜다!' 라면,

프랑스인들이 여기는 평등은 '너는 그거 하니? 나는 이거 한다'다.

 

한국인의 평등은 '너도 공짜냐? 그럼 나도 공짜다!'라면

프랑스인의 평등은 '당신은 적게 버니까 적게 내고, 나는 많이 버니까 많이 낸다',

다시 말해서 '버는만큼 낸다'다.

 

프랑스는 국립학교 급식과 국립 탁아소 등 지불액이 부모의 전년도 세금납부액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세금납부가 많다는건 그만큼 재산이나 소득이 많다는 얘기.

1에서 10단계까지 나뉘어 있는데, 우리집의 경우,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세금납부액도 줄었고, 큰애의 급식비도

20상팀('센트'에 해당. 20상팀이라면 한화로 300원) 줄었다.

급식을 매일 먹는건 아니고, 보통 난 아이를 점심에 찾아와 집에서 먹여 보낸다.


없이 사는 집도 급식비를 내긴 낸다. 그 부모가 버는 만큼.
서로가 '당신은 얼마 내요?' 묻지 않는다. 알 필요도, 물어볼 필요도 없다.
한국같으면 아마도 남은 얼마 내는 지 궁금해서 물어볼 것 같다.
저 집은 차도 있는데, 아파트 몇 평 짜리가 있는데 등등등 얼마를 낼까 궁금해할 것 같다.
급식비로 얼마를 내는 지, 그것마저도 경쟁하려 들 것 같다.


여튼 그 사람의 형평에 따라 배려하고 책정하는 것,

이것이 '평등, 자유, 박애'를 주창하는 프랑스에서의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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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