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ents 교육/육아2012.07.19 01:19

큰애가 유아학교(école maternelle; 3년과정)를 마치고, 9월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이제 책가방 메고 등교해서, 하교하면 숙제부터 하는 시절이 시작되는거다. 아이는 아빠 나라의 언어인 불어와 엄마 나라의 언어인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읽을 줄 안다. 3년 전에 연재했던 국제커플의 언어교육의 중간보고를 해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처음 가던 한글학교

지난 해 가을, 아이를 한글학교에 데려가던 첫날, 아이가 유아학교에도 안 갖고가는 책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으며 내게 던진 질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 엄마도 나만할 때 한글학교에 갔어? » 미소.

지난 9, 5살이었던 딸애를 처음으로 파리 한글학교에 등록시켰다. 약간 늦은 감이 있기는 했다. 집에서 한글학교까지 1시간반이나 걸리기 때문에 우선 아이가 많이 피곤해할 것 같았고, 둘째를 데리고 다녀야했기 때문에 둘째가 크기를 기다렸던게 이유였다.

나와는 늘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에 일상회화는 잘 하지만 집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설명하는게 서툴렀던 지라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중간으로 보고 어학당에 배치해달라고 했다. 다른 한국 엄마들은 우리 애가 뭐를 뭐를 잘해요. 한 단계 높은 반으로 배치시켜주세요.’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판에 나는 동년배의 다른 반보다 쓰기 숙제가 적고 수업의 강도가 덜한 반으로 배정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얌전하다고 소문난 애니까 한글학교에서만큼은 얌전하다는 말을 애 앞에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저 나이 때 애들은 명랑하고 씩씩하게 아무하고도 잘 어울려 놀아야지 얌전한게 칭찬인줄 알고 계속 얌전하기만 하면 안되니 절대 애 앞에서 너 참 얌전하구나라고 하면 그게 칭찬인줄 안다고.

어학당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랑스 유아학교에서도 나오지 않던 쓰기 숙제가 매번 나왔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한글을 떼야해서 집에서 한글 가르치느라 아주 힘들어 죽겠다고 한국 엄마들이 혀를 차는 그 한글쓰기를 배우다가 한국어 어렵다고 때려칠까봐 난 맘이 조마조마했다. « 숙제가 많은거 아닌가요? » ㅠㅠ 했더니 어학당 담임선생님은 동년배의 토끼반에 비하면 숙제가 반 밖에 안되는거라고 위로하셨다.

유모차를 끌고 파리 시내에 전철타고 나갔다 오는 미친 짓을 1주일에 한 번은 해야하는 내 상황은 차치하고, 4존에서 파리까지 자동차가 아닌 기차와 전철로 이동하는게 피곤하고 다리 아프다고 투덜대지는 않을까, 숙제가 많다고 하기 싫다고 하지는 않을까, 아이를 한글학교에 데려가는 첫날 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첫날 한글학교에 갔다오더니 재밌다고, 수요일마다 여기 오겠다고 아주 신이 났다.

어학당에서 토끼반으로

놀멘 놀멘하면서 말이나 많이 늘어라는 기대로 어학당에 배정을 부탁하고 돌아선 뒤 아차차 ! 내가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과소평가했구나 !’라고 깨달은 건 2012년 설이 되어서였다. 그전까지도 아이가 한글학교 수업을 좋아하고 잘 따라간다는건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 한글학교에서 다른 애들은 선생님~ !’라고 부른 뒤에 질문을 불어로 하는데, 나만 선생님~ !’하고 부른 다음에 질문도 한국말로 해. » 아이를 대견해하면서도 다들 지 새끼가 잘난 줄 아는거려니 했는데..

평소에는 애들을 교실에 데려다주고 뿔뿔이 흩어지던 보호자들이 설 잔치 때는 다 모여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보모나 할머니가 데리고 왔던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하루 휴가를 얻은 엄마나 아빠가 동행했다. 어학당 반 아이들과 부 혹은 모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자녀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집은 우리밖에 없었다. 딸애와 우리말로 얘기하는 걸 옆에서 보던 한 엄마가 말했다. « 어머, 한국애처럼 한국어를 하네 ! 한국말을 저렇게 잘 하는 애가 왜 어학당에 있어요? »  실은 나도 놀랐다.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은 한국인인 집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고 어떻게 아이가 1주일에 4시간 밖에 안되는 수업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걸까? 외지에 나와 살면서 아이가 한국말을 하기를 바라면 부/모가 한국어로 대화를 유도하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프랑스에서 아이가 1주일에 4시간 밖에 안되는 수업을 통해 배운 한글을 집에서조차 쓰지 않으면 어디서 쓰라고? 언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이잖은가말이다.

설 잔치가 끝난 뒤, 한글학교에 반을 바꿀 수 있겠냐고 의뢰드렸다. 내가 학기 초에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2월 방학에 한국에 갔다오면 아이의 한국말이 부쩍 늘텐데 프랑스에 돌아와 아이가 어학당 수업을 지루해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평소에도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는데 내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아이가 먼저 숙제를 들고 내게 올 정도로 적극적이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한국어 동요들이 있기 때문에 반을 바꾸어도 아이가 어렵지않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으니 좀더 어려운 반으로 반을 옮길 수 있겠느냐고. 무엇보다, 어학당에 친구가 있었다면 반을 바꾸려하지 않았을꺼다. 하지만 너무~얌전했~기에~~ ㅠㅠ

교사회의가 몇 주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주에 토끼반 청강을 해보라며 학교측에서 배려를 해주셨다. 나이대는 똑같지만 쓰기숙제가 많고 아이든 선생님이든 불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는 토끼반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토끼반 선생님의 판단과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 저희 반이 사실 정원이 넘어서 다른 반 아이들을 안 받고 있어요. 오늘 다른 반 아이들 두 명이 저희 반에서 청강을 했는데, 한 아이는 기존 반으로 돌려보낼꺼고, 따님은 토끼반에 있어야되는게 맞아요. 토끼반에 있어야돼요. »

한글쓰기 진도는 어학당과 토끼반이 같았지만, 쓰기숙제는 2배가 늘었다. 그래도 딸애는 재밌다고 한다. 아직 복모음, 받침 등을 다 배우지 않았지만 1년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만큼은 쓰기도 곧잘하고 책이나 인터넷 화면 상에서 더듬더듬 아는 글자를 찾아읽기도 한다. 유아학교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있어서 헤깔릴까봐 한글을 가르칠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한글학교에서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아이가 능숙하게 하는 언어는 불어다. 한국말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 엄마인 나하고 얘기할 때 외에는 한국말을 쓸 일이 없는 아이가 이만큼 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 지 모른다. 게다가 한글학교에서 하는 받아쓰기도 잘하고 글씨도 예쁘게 쓰고. 오늘도 시어머님이 '이제 초등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불어로) 읽는걸 배울텐데 한글학교까지 가서 한글 읽는걸 동시에 배우려면 애가 많이 힘들겠구나.' 하시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애가 '아니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하니 얼마나 기특하던지. 

아, 여기까지 이렇게 쓰고나니 자화자찬이구나. 타지에서 한국어를 잘 교육시키는 비법 등을 쓰자니 얼굴이 간지럽겠고나. 아직은 아이도 어리고, 무엇보다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텐데.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고 정리.


관련 포스팅 )

  1. 2009/04/26 국제커플의 언어교육: 니도 애 커봐
  2. 2009/03/04 국제커플의 언어교육: "한국말로 해!"
  3. 2008/09/02 국제커플 자녀의 언어교육 : 어느 언어로 말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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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프랑스2010.06.18 00:36

월드컵에서 국제커플은 어느 나라 팀을 응원할까요?

각자의 모국을 응원한다? 아닙니다. 답은 잘 나가고 있는 나라 팀을 응원한다! 입니다. ㅎㅎㅎ


지금으로부터 4년 전(두둥~!), 큰애 낳고 몸조리하고 있을 무렵, 요즘처럼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그때 하필(?!) 프랑스와 한국이 맞대결을 벌였죠. 당시엔 대통령이 국민을 속썩이는 때가 아니었던 지라 한국팀이 출전하면 진심어린 마음으로 TV 켜놓고 열심히 응원하곤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프랑스와 한국이 경기를 벌인다는 거에요. 저는 '한국이 이긴다', 남편은 '프랑스가 이기지'. 어느 팀이 이겨도 부부싸움 날 듯한 살벌한 분위기가 예상됐어요. 남편 나라가 이기면 내가 기분 나빠 저녁을 안 해줄 판이고, 한국이 이기면 신랑이 밥맛 없어할 참인거에요. 두 상황에서 고르라면 차라리 한국이 이기는게 낫죠. 적어도 두 어른과 애는 신나게 먹을 수 있으니까. ㅋㄷㅋㄷ 중간에서 친정엄마는 '두 나라가 한 골씩 골고루 넣고 무승부로 끝났으면 좋겠다' 셨어요.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프랑스가 먼저 한 골을 집어넣었어요. 남편이 '만세~!' 환호를 지르려다말고 제 눈치를 봅디다. 제가 시큼털털한 눈으로 째려봤죠. 집안에 한국인이 둘이나 있으니까네 남편는 소리는 안 지르고, 좋아도 좋은 척을 차마 못하고 있는 폼이었어요. 저녁밥은 얻어 먹고 싶었던 게지요. 한참을 1대0으로 가다가 경기가 끝나기 10분 전인가.. 한국이 한 골 넣자 엄마는 동네 시끄럽게 저희가 다 깜짝놀라 기절하도록 괴성을 질러대셨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가는 쫓겨나가는 수가 있는데.. 흠. 그날 하늘이 보우하사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는 1대1, 무승부로 끝났어요. '거봐라. 내가 말한대로 되지 않았느냐'며 신이 나신 엄마는 경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뒀던 맥주를 가져와 -저만 빼고- 둘이 건배까지 하며 마시더군요. 그 더운 여름, 병 위로 땀 흘리는 맥주가 참 시원하게 보이더이다. 올 6월은 약간 추워서 아직도 긴 팔 입고 있어요. 요상한 날씨..


이후, 프랑스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신랑은 잘 나가는 마누라의 나라를 응원하기로 하더군요. 조국을 헌신발짝처럼 버리고 참...... 저녁밥이 뭔지. 그리고 한국은 4강까지 진출하는 신화를 만들어 냈더랬지요. 올해도 남편은 한국을 응원하기로 했어요. 특히나 올해 프랑스팀은 욕을 좀 많이 얻어먹고 있어요. 아까도 저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안 봤는데 경기 끝나고 회사에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한국이 4대1로 졌어. 그중 하나는 자살골이야." 니 시방 회사서 일은 하는기가? 아니믄 모니터에서 경기 관전하는기가? 지금 프랑스랑 멕시코랑 경기하고 있는 중인데 남편은 아까부터 자러갔네요. 인터넷으로 슬쩍 보니 2대0으로 프랑스가 죽쑤고 있다는군요. 올해도 한국을 응원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탁월한 선택인 듯 합니다. 음핫핫핫핫~


한국 국민 여러분,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선전하는 것도 좋지만 천안함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한나라당이 선거 이후로 정신차리고 있는 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천안함을 북풍으로 몰다가 조작설 뜨고, 4대강삽질하다가 문수스님 공양하시고, 선거가 야당의 득세로 끝난 이판에 월드컵한다고 '짝짝~짝짝짝~' 박수치며 신나게 좋아할 사람은 광화문 앞이 아닌 바로 청와대 안에 있습니다 ! 안 그래도 선거 후 폭풍으로 할 말이 없어 고개도 못 들고 있었는데 얼마나 신이 날까요. ' 월드컵을 보라! 내 모든걸 싸그리 잊게 해주마!!!' 4대강은 지금쯤 어디까지 짓밟히고 파헤쳐졌습니까? 국민의 알 권리 목이 터저라 주장하는 한국 언론 여러분, 국민들에게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세요. 침묵하지 맙시다. 눈 감지 맙시다. 문수스님이 지하에서 울고 계십니다. 천안함 조작설이 재미 한국 과학자들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요즘, 저는 그래서 이 동요가 자주 뇌리에 스칩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 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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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Parents 교육/육아2008.09.02 20:22

국제결혼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다 혼혈아라 부르는건 아니다. 서로 다른 인종의 부모를 둔 아이를 혼혈아라고 부른다. 따라서 부모의 국적이 같아도 그 아이를 혼혈아라 부를 수 있고, 부모의 국적이 달라도 혼혈아라 부르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한국입양인과 프랑스 백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가 둘 다 프랑스인이지만 아이는 혼혈아이고, 미국인과 룩셈부르크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의 국적과 대륙이 다르지만 혼혈아라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혼혈아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조상세대에서 몇 번 섞인 피, 혼혈이라 할 것이 없지 않은가? 반대로 같은 인종이어도 한국인과 동남아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혼혈아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혼혈아'에 대한 개념이 조금 혼동이 온다. 아따, 이렇게 서론을 늘어놓고 보니 제목을 '혼혈아의 언어교육'이 아니라 '국제커플 자녀의 언어교육'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제목을 바꾸자.

 

혼혈아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국제결혼으로 아이를 낳은 부모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큰 고민 중 하나를 토로해보자.아이가 한 살 지나 처음 했던 단어들은 '엄마/아빠/아~ 예뻐'를 비롯해서 다 한국어였다. 내가 스물네시간 끼고 살면서 한국어를 하니 당연히 아이가 하는 말은 한국어겠지?아빠가 하는 불어도 이해는 하지만 하는 말은 한국어였다. 예를 들어, 어휘가 늘기 한참 전이었는데, 불어책이든 한국어책이든 같은 imagier(단어공부하는 그림책)를 갖고 엄마는 한국어로, 아빠는 불어로 읽어줬다. '불가사리 어딨어?'를 해도, 'Ou est l'etoile de mer?'를 해도 아이는 단어를 발음하지는 못해도 불가사리 그림을 정확히 집어냈다.

 

아이가 한 살을 넘기고 내가 북경에 일주일, 뉴욕에 열흘을 혼자 다녀와야할 일이 생겼을 때,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맡아주셨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의 불어가 눈에 띄게 늘어있었다. 신기한건, 시어머니 말에 의하면서 내가 없을 때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안 하다가 내가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한국어 단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는거다. 시어머니가 놀라서 "나하고 있을 때는 한국말 하나도 안 하더니???"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관찰에 의해 얻은 결론은, 아이는 상대방이 한국어를 알아듣는지, 불어를 알아듣는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현재 아이는 나한테는 한국어도 불어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도- 지 내키는대로 말하는 반면에, 아빠한테는 불어만 한다. 아빠가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가 한국말 못 알아듣는 아빠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 하루는 한국어 동요테입를 듣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빠에게 'poussin poussin' 이라고 하더란다. 그때 흘러나왔던 동요가 뭐였는지 다시 틀어보니까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쫑쫑쫑 놀고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였다. poussin은 불어로 '병아리'다.

 

국제커플 자녀들은 2개국어를 하려니 또래보다 말이 늦다. 결혼식장에서 만났던 한 국제커플은 첫아이가 만 4살이 되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내게 '아이가 말을 늦게 하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애는 다행히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시기에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또래 아이들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하는데 반해 우리 아이는 아직은 그 수준이 아니다.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집밖에 나가면 말을 한 마디도 안 한다. 나, 애 아빠, 시어머니, 그리고 자기가 마음이 편한 사람, 편한 장소에서만 말을 한다.

 

울애가 또래나 6살 된 어린이를 만나 놀 때보면, 한참동안은 말 한 마디 안 하고 논다. 그러다가 상대 아이가 자기가 잘 놀아주면 어느 순간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신기한 건, 상대 아이가 불어를 하는 아이면 불어로 하고, 상대 아이가 한국어를 하면 울애도 한국어로 한다. 'moi aussi!'라고 하거나 '나두~'라고 하거나 상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거다.

 

아이가 상대방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달라진다는건 아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먹혀듣는 말을 인식하고 그에따라 말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아이가 탁아소나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프랑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는 한국엄마가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직장을 안 다녀도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낮시간의 절대다수를 불어로 소통하는 애를 데리고 한국어로 얘기하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의 불어 어휘 수와 어휘 수준은 점점 높아져가는 반면에 엄마와 집에서 하는 한국어의 어휘 수와 어휘 수준은 그다지 발전되지 않는다는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국엄마에게 아이가 불어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왜? 아이는 엄마가 불어를 잘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때로는 엄마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불어로 다시 말해달라고 하기도 한댄다.

 

매주 수요일 오후, 프랑스 학교는 문을 닫는다. 여가활동 등을 하는데, 많은 한국엄마들이 자녀들을 한글학교에 보낸다. 백인 하나 없이 한국인 피가 섞인 -또는 한국인 피가 100%인- 아이들과 100%로 만나서 노는 시간이다.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느냐?고 물어보니 한글학교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아이들이 지들끼리 놀고 얘기할 때는 불어로 하니 '별로' 안 는댄다. ㅠㅠ

 

그럼 엄마인 나는? 집밖에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불어로 하나 한국어로 하나 갈등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칭찬을 하고, 야단을 칠 때, 불어로 하나 한국어로 하나 갈등할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불어로 말하는게 더 명확해서 불어로 할 때가 있고,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나 표현을 말해야 할 때 나도 아이에게 불어로 얘기할 때가 있다. 내가 바라는거... 아이가 더 컸을 때, 내가 한국친구들과 수다떨듯이 아이하고 한국어로 수다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일기와 블로그에 적은 글을 아이가 커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내 일기장을 뒤적거리기를 원한다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내 사후에라든가- 내가 쓴 수많은 글들을 내 아이가 읽어낼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한국에가서 친척들을 만났을 때, 아이가 언어장벽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마음이 좀 쓰릴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수고를 안 했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아직은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아서 장애가 덜하지만 한-불 언어교육에 관한 고민은 출산 전부터 쭈욱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로선 책, 한국어 동요 테입/CD, DVD 등으로 아이가 한국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어 책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불어 책을 한국어로 읽어준다. 뿡뿡이 DVD를 허구헌날 아이에게 보여줬더니 '저러다 불어가 밀릴까' 괜한 걱정하시는 시어머니, 불어로 된 유아용 DVD를 사서 보내셨다. 한국에 전화해서 한국어 책과 시디를 구한다고 했더니 '여긴 영어교육시키느라 난린데 넌 우리말 교재를 찾느냐'이라며 웃는 이도 있다. 당신에게 영어는 외국어지만 우리 아이에게 한국어는 엄마의 모국어란 사실을 잠시 잊었군요.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이나 한국엄마를 둔 프랑스인들이 성인이 됐을 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거나 한국에 가보고 싶어하거나 하다못해 한국인 친구를 두고 싶어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엄마가 한국인인데, (엄마와 늘 불어로 하느라) 한국어를 할 줄 몰라서 18살이 된 나이에 파리 한국문화원을 찾아와 한국어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짠 했다.학교에 들어가 몇 년은 아이가 불어로 말하길 원해도15~18년 뒤 상황을 상상하면 한국어로 대화하도록 꾸준히 유도해야 할 것 같다. 대화 수준에 따라 어휘도 달라지는건데.. 아이 수준에 맞는 한국어 책도 계속 잊혀줘야 할 것 같다. 말은 참 쉽지만 그 노력은 한국에서 사는 엄마가 자식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야 마음만 먹으면 TV를 틀어도 라디오를 틀어도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학원이든 교재든 쉽게 구할 수가 있지만 프랑스에서 한국어 교재는 다양하지도 않을 뿐더러 핵심은 한국어는 소수민족의 언어라는거다. 사실 그때문에 한국엄마가 프랑스 사회에서 아이와 밖에서 한국어로 얘기하는 것이영어권 엄마가 아이와 영어로만 대화하는 것만큼 당당하게 느끼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캐나다-프랑스 커플은 남자가 캐나다인인데 처가댁에 놀러가서 프랑스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아이들과는 반드시, 예외없이 영어로만 얘기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아빠와는 반드시 영어로 말할 것'을 강요한단다. 근데 그는 나에게도아이에게 '꿋/꿋/하/게' 한국어로'만(!!!)' 말해야 한다면서 그건 영어여서, 한국어여서, 어떤 특정언어여서가 아니라 '엄마의/아빠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라는거다.

 

뉴욕 체류 중에 숙소에서 만난 미국인 여성이 내게 '아이에게 어느 나라 말로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이와 한국어로 말한다고하자 그녀는 매우 흡족해했다.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태생이었는데, 그녀 설명에 의하면 러시아 옆의 작은 나라라고 한다. '그럼 슬라브계 언어냐?'라고 묻자 절대 아니라면서 자기 모국에 대한 자신감에 꽉 차있었다.미국에는 어린 나이에 이민을 와서 미국인이기도 한 그녀는그런 소수민족 태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도 자기의 모국어를 할 줄 알며, 자기 손녀도 그녀의 모국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도 역시 내가 꿋꿋하게 아이와는 한국어를 고집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 갈 길이 멀다. 손녀까지 한국말을 시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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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