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루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19 꼴루쉬, 사랑의 밥집 창설자
France 프랑스2011.05.19 22:3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2&sid2=59b&oid=001&aid=0002284625

네이버 머릿기사에 올라간 '둥지잃은 사랑의 밥집'이란 기사를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에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건 '어르신'이란 단어를 반복하고 강조하는 점이다. 노인공경, 웃어른 공경은 한국문화의 좋은 면이지않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아 있겠으나 내가 주창하고 싶은 건 '인간 존중'이다. 왜냐면 나이가, 때로는 단 몇 줄- 많다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내 의견이 묵살되야 하는 경험을 한국, 또는 한국인 사회에서 너무나 많이 서럽게 겪었기 때문이다. 또는 어려'보인다'는 이유로 애취급 당하거나 초면에 반말 찍찍받기가 일쑤였던 지라 내게는 '웃어른 공경'이 '나이가 어린 -또는 어려보이는- 사람 무시'와 동의어로 들렸다.나이를 먹었든 덜 먹었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어린이든 존중받아야 한다.왜? 인간이기 때문에.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의견이 존중되고, 나이를 덜 먹었다고 무시되야 하는 건 웃어른 공경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위 기사에서 진정으로 안타까와야 할 포인트는 '어른신'들이 사랑의 밥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끼니를 떼울 수도 없는 극빈층을 위한 사랑의 밥집을 잃은 것이어야 한다. 물론 대상이 임산부, 장애자, 어린이를 모두 포함한 노약자(노인+약자)라면 일반인보다 우선 순위로 올라간다. '노약자'란 단어에서도 심히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한국에선 노약자라하면 '노인'만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삭이 된 임산부가 버스에서 노약자 자리에 앉았다가 꿀밤을 먹고 일어나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유명인사 가운데 사랑의 밥집을 창설해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 있다. 이름하여 꼴루쉬(Coluche, 1944년생). 평생을 코믹배우로 이름을 날리는데 그의 펀치 먹이는 유머 탓에 그는코믹배우라기보다는 사실 '유모리스트'라고 알려져있다. 이 사람의 어록은 엄청나게 많은데 우리 신랑도 꼴루쉬 팬 중 하나로 그의 어록을 줄줄 왼다. 우리 신랑이 어느날 해준 꼴루쉬의 어록 하나.

“Les journalistes ne croient pas les mensonges des hommes politiques, mais ils les répètent! C'est pire!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안 믿지. 근데 그 거짓말을 반복해! 그게 더 나빠!"

 

그는 정치와 언론에 대해 많은 풍자를 했다. 기타 어록을 한번 보자.

«Le plus dur pour les hommes politiques, c’est d’avoir la mémoire qu’il faut pour se souvenir de ce qu’il ne faut pas dire.»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든건 절대로 말하면 안되는 것들을 잊지않고 기억해야 하는 능력이다.

 

«La politique c’est comme le flirt : si on veut aller plus loin, faut aller plus près.»

정치는 꼬시는 것과 같다.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면 더 가까이 접근하라.  


“Je croirais vraiment à la liberté de la presse quand un journaliste pourra écrire ce qu'il pense vraiment de son journal. Dans son journal.”

기자가 자기가 쓴 기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쓸 수 있을 때야 비로서 나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믿을 것이다.

 

 

콜루쉬는 70~80년대에 다수의 코믹 영화를 찍고1984년 세자르 영화상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탄다.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꼴루쉬는 그 지지를 등에 엎고 1981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유모리스트로서의 인기와 대통령 후보로서의 인기는 등급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선거 전 후보를 유보한다.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를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유명하게 만들고 칭송받게 한 것은 '사랑의 밥집(restaurant du coeur)'을 창시하게 되면서다. 극빈층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열자는 의견을 국가에 제시한다. 이로서 꼴루쉬의 사랑의 밥집은 국립기관이 되고 프랑스 전국에 확대된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1986년,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사회연대의식에 동의하고 그 정신을 기리려는 여러 사람들이 동참해restaurant du coeurs(사랑의 밥집)을 운영하여 지금까지도 프랑스 전국에서 극빈층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유모리스트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무엇보다 사랑의 밥집의 창시자로서 프랑스인에게 영원히 존경받으며 잊혀지지 않을 인물로 남은 꼴루쉬. YouTube에 올라온 그의 동영상을 소개하는 걸로 글을 마칠까 한다. YouTube에 가면 그가 찍은 영화의 일부도 볼 수 있어요.

 

 

 

 

네이버에 뜬 사랑의 밥집도 회생해서 극빈층들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길 바랍니다.

  

* 몇 년 전에 썼던 글인데, 새 글쓰기에서 꼴루쉬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공개발행으로 전환하고 등록일을 갱신했습니다.

신고

'France 프랑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급식제도  (0) 2011.05.21
꼴루쉬, 사랑의 밥집 창설자  (0) 2011.05.19
파리 도서박람회 (Salon du livre 2011)  (0) 2011.03.21
유기농 급식과 평등  (0) 2011.03.03
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