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ents 교육/육아2009.05.12 15:03

파리의 한 한국식당에 식구가 함께 외식을 나갔을 때였다. 식당 입구에서 우리를 한국어로 맞아 자리로 인도하자 애가 아빠한테 "Qu'est-ce que maman a dit?"(엄마가 뭐라 그랬어?) 하는거다. 애아빠가 '엄마가 뭐라 했는지 네가 나한테 통역을 해줘야지. 넌 한국말을 알잖아.' 난 그때 종업원과 나의 대화를 아이가 이해하지 못했는 줄 알았다.

 

시어머님이 올라오셔서 주말에 차를 렌트해 가까운 곳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아이와 시어머님은 뒷자석에 탔다. 아이와 내가 한국말로 얘기를 하고 난 뒤, 아이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Qu'est-ce que maman a dit?"(엄마가 뭐라 그랬어?) '아니, 뻔히 알아듣고 대답까지 한 녀석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람?'하고 있는데, 아이가이어서 "Qu'est-ce que j'ai dit?"(내가 뭐라 그랬어?) 나는 그제서야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감을 잡았다! '엄마가 뭐라 그랬어?'가 아니라 '엄마가 뭐라 그랬게?'라고 떠본 거였단 것을! 아이는 프랑스인들이 우리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그 사실을 불편해 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키득거리며 재밌어 하고 있는거다!!!

 

한국에서 아는 후배가 여행나와서 아이와 함께 봤는데, '얘가 한국말을 할 줄 알까?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수준일까?' 싶어했다. 아이의 '안녕하세요'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르더니우리 아이랑 조금 놀아보고는 한국에 있는 또래의 한국 아이들만큼이나 한국말을 잘한다면서 너무 신기해하고 놀라했다. "얘 불어도 이만큼 잘 해요?" "불어는 한국말보다 더 잘하지. 나만 빼고 주변에서 들리는게 다 불어니까."

 

아이가 한국에서 온 손님한테 우리말로 노래도 해주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실을 보니 나도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는 지 모른다.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도 얘기를 듣고는 매우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언니, 애가 한국말을 너무 잘 해. 너무 잘 키웠어요!'라는 칭찬에 육아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더군. 봐주는 사람없이 혼자 애 키우며 힘들어 죽을라카면서도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전업주부로 꾹 눌러앉은 지난 3년에 대해 이만하면 눈물나게 대만족이다. 

 

지난 밤, 아이를 재우며 말했다. "난 네가 자랑스러워. 딸아, 멀리 멀리 한국에 가면 말이지.. 친척이 굉장히 많아. 엄마의 엄마랑 아빠, 그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식구가 많거든.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큰이모할머니, 또 큰이모할머니, 큰할아버지, 등등등.... 아빠 친척의 3배, 4배가 넘어. 한국에 가면, 네가 아빠랑 하는 불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꺼야. 그들은 다 한국말을 쓴단다."

 

참고로, 저희 아이는 보름 후면 만 세 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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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2009.04.26 09:25

요즘 어째 계속 육아 관련 글만 올리는 듯한데.. 여튼. 한국 엄마든, 중국 엄마든, 뉴질랜드 엄마든간에 국제결혼한 여성들과 어쩌다 마주쳐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언어교육을 대화의 소재로 꺼내게 된다.

 

'한국어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기에 '자녀분들과 한국말로 얘기하지 않으세요?'했더니 '다 불어로 얘기한다'고 하셨다. 말은 안 하시는데 '이유가 있었다'고 하시고, '한국말을 어디 쓸데가 있겠냐'며 '우리 윗세대같지 않아서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해서도 안되고, 나이가 들어 선택을 할 나이가 되었을 때, 한국어를 배우겠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해서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셨다. 만 세 살 된 자식 키우면서 '나는 한국말로 말하게 시켜요'라고 해봐야 '니도 애 커봐. 그러면 알어'하는 듯한 표정. 그분의 자녀는 중국어를 포함해서 4~5개 국어를 하는 인텔리인 듯 했다. '그러니 이런 애들에게 한국어까지 하라고 할 수가 없죠'

 

솔직히 말해서 나도 현재진행형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10년 후, 20년 후, 내 아이가 한국어를 계속 하게될 지, 한국어로 말할 지, 불어를 포함한 외국어만 구사할 지, 한국어를 더 깊이 배우고 싶다고 할 지. 사람마다 육아방식도, 자녀 교육방식도 다르다. 내 방법이 옳다고만 할 수 없다. 그 분은 그분의 생각대로 키웠을 것이고, 자녀들도 다 바르게 컸을 것이다. 

 

딱 한 번 마주쳤던 한 한국 엄마가 있는데, 아이와 불어와 영어로 말하느라 애기 엄마와 나는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해도 그집 아이는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육아법이 다르게 그렇게 자라는 아이도 있다는 걸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올바르게 크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와 육아법이 다를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조금 아쉬울 뿐이다. 자식과 외국어로 대화하고 있는 그 분의 상황에 있다면 나라면 마음이 좀 허한게, 뭔가 아쉬울 것 같다는거다.

 

그분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부모와 친척들이 다 돌아가셔서 안 계신다 하더라도 내가 모국어로 얘기하는 한, 나는 내 자식과 모국어로 얘기하고 싶다. 그건 '넌 한국말을 배워야 해'라기보다 앞서 ''엄마는 있잖아... 너랑 내 모국어로 얘기하고 싶어'다. 한국말이 필요없어서... 그래, 한국말 쓰는 나라, 북한과 남한, 두 한국 빼고는 없다. 외국나가도 알아주지 않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언어를 배워야 한다면 이 세상에 없어져야 할 언어가 대부분이다. 모두가 영어, 불어, 서반아어, 중국어, 러시아를 배우면 된다. 하지만 모국어는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필요해서 낳은 자식이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 한 결혼이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친구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필요와 상관없이 관계맺어지는 것들이 아닐까?

 

그 한국 여성만큼 프랑스에서 오래 사신 (20년) 대만여성분을 전철에서 만났는데 그분은 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한테 한국말 하게 시키세요. 불어로 대꾸하려고 해도 한국말 하게 시키셔야 해요. 내 중국친구도 아이가 어릴 때는 '불어로 하면 왜 안돼? 왜 중국말로 해야돼?'라고 반발했는데 이제 19살이 되서는 엄마한테 '고맙다'고 그래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엄마 앞에서 자식이 불어로 대꾸를 하더라. '왜 영어로 말해야돼? 남들은 다 불어로 하는데!' 그 아이에게 내가 영어로 말했다.

'왜냐하면 네 엄마의 모국어가 영어기 때문이지.

모국어란 너에게 국적을 쥐어준 나라의 말이 아니라, 너의 엄마(mother)의 언어(language)야.

그게 모국어(mother language)란 말의 뜻이야. 

네가 엄마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모국어도 선택할 수 없는거야.

그게 쓸모가 있건 없건간에.

왜냐면 그건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였거든.

네 엄마의 모국어가 영어라면, 너의 모국어도 영어야.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야.

국적? 그건 전혀 의미가 없어.

내 딸은 국적은 프랑스인이야. 하지만 그앤 한국인 엄마를 두었어.

그렇기 때문에 내 딸의 모국어는 한국어야.

나? 나도 국적 바꿀 수 있어. 국적을 바꾼다고내가 프랑스인이 되나?

여권상으로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난 한국에서 근 30년을 살았다구.

내 뿌리는 한국에 있고, 국적을 바꾼다한들 난 죽을 때까지 한국인일꺼야.

그건 내가 선택한다고 바뀌는게 아니라 그냥 그런거야.

이 세상은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선택하고 싶은 것만 있는 건 아니야.'

 

한 젊은 한국엄마 말이, '한 한국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돌아왔대요. '넌 중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니야'라구요' 학교에서 동양인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일이 있나보다. 덧붙여 '때로는 동양언어를 쓰기 꺼려지는 상황이 있다나봐요.' 못 들어본 얘기는 아니고, 생각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다.이 세상 사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인생에 대한 같은 안경을 쓰고, 같은 교육을 받으며, 같은 철학을 갖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게 아니니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이 다 다르겠지.

 

앞서 말한 한국여성분의 아이들은 정체성에 고민할 나이도 다 지나 이미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다 컸는데, 아니 커버렸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주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면 나는 그럴 때 상대를 다치지 않게, 또한 나를 꿇고 들어가지 않으면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될 지 잘 모르겠다. '오늘 되바라진 어린 것을 만났다'고 치부해도 상관없으니 마음에 상처 받으시지 않으셨기를.

 

(육아를 포함해) 교육은 30년을 바라보는 나무심기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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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2009.03.04 09:40

보통 다른 아이들이 말을 하던 시기와 같은 시기에 우리 아이도 말을 시작했다. 그때는 한국말만 했다. 그러던 것이 친할머니가 와서 놀아줄 때마다 불어가 몰라보게 부쩍부쩍 늘더니 (아이의 친할머니는 전직이 유아부 교사였슴) 만 2살반인가부터는 혼자 놀 때 불어로 쫑알거린다. 언어라는건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라 역시 처해진 상황에서 필요한 언어가 늘게 되는거다. (참고로,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유아를 상대로 영어 가르치는거 반대다. 괜히 쓸데없는데 돈낭비하지 말고, 애 잡지말자. 적당한 나이가 되어 배워도 충분한 것을 한국에서는 왜 그래 난리를 피고 돈은 돈대로 퍼붓고 애들 잡나 모르겠다.)

 

더군다나 아이의 불어를 교정해주는 것도 엄마고, '아빠한테가서 오늘 혼자서 단추 잠궜다고 가서 얘기해'하고 뒤에서 시켜놓고는 그 불어 문장을 불러주는 것도 엄마다. 뛰어가서 아빠 앞에서 방금 줏어들은 문장을 말한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엄마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언젠가부터 아이가 불어로 대답하더라. 나도 사실 가끔은 불어로 대답을 했는데 '이러다간 한국어 한 마디도 안 하겠다' 싶어 마음을 다잡아먹고어느날은단호하게 "한국말로 해!" 했다. 그리고불어로면 아이의 요구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Maman, viens!' 하면 들은 척도 안 하고 '엄마, 이리와'하면 다정하게'응?'하면서 다가갔다.

 

아빠 나라 말, 엄마 나라 말, 2개국어를 한꺼번에 배우려니 아이의 언어 발달 속도가 늦다.단어도 막히고, 문장도 막히고 하니 아이는 때로 주어만 말할 때가 있다. '엄마가~' 그러면 그때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나 상황을 아이가 말하고 싶은가 보다, 싶어 문장으로 얘기하면 또 '엄마가~'. 이 문장이 아직 낯선가보다, 싶어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해주거나 또는 다른 형태의 문장으로 변형시켜준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설(!) 이라고 내가 10번을 말하느니 "(엄마가 하는 말) 따라해봐"하고 시키는게 가장 효과가 좋다.

 

근데 때로는 그게 아닐 때가 있다. 아이가 '아니고~' 그러면 다른 문장으로 변형시키고 변형시키고.. 정답 나올 때까지.ㅜㅜ 아이들 세계에서는 아주 흔하지만 목적어만 말할 때도 빈번하다. '엄마, 밥~!' 그러면 '그래'하고 하고 알아듣지 않고, '엄마, 밥 더 주세요'하고 문장으로 재구성시켜준다. 아이가 문장으로 말하고 나서야 요구에 대해 반응을 한다. 유아 교육이나 돌고래 훈련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아이 뿐만 아니라 "한국말로 해!"라고 주문 넣는 엄마도 어디를 가든 아이와 얘기할 때는 한국어로 말해야한다. 그러나간혹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필요가 있을 때, 그때는 불어로 하기도한다. 예컨대, "쉿~! 조용히 하자. 여긴 도서관이잖아."

 

내가 저보고 "한국말로 해!"하니까 이제는 애가 아빠한테 '한국말로 하라'고 한다 : "Parle le coreen! (한국말로 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근데 신기한 건, 난 그 문장, 불어로 안 가르쳐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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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s 교육/육아2008.09.02 20:22

국제결혼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다 혼혈아라 부르는건 아니다. 서로 다른 인종의 부모를 둔 아이를 혼혈아라고 부른다. 따라서 부모의 국적이 같아도 그 아이를 혼혈아라 부를 수 있고, 부모의 국적이 달라도 혼혈아라 부르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한국입양인과 프랑스 백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가 둘 다 프랑스인이지만 아이는 혼혈아이고, 미국인과 룩셈부르크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의 국적과 대륙이 다르지만 혼혈아라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혼혈아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 조상세대에서 몇 번 섞인 피, 혼혈이라 할 것이 없지 않은가? 반대로 같은 인종이어도 한국인과 동남아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혼혈아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혼혈아'에 대한 개념이 조금 혼동이 온다. 아따, 이렇게 서론을 늘어놓고 보니 제목을 '혼혈아의 언어교육'이 아니라 '국제커플 자녀의 언어교육'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제목을 바꾸자.

 

혼혈아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국제결혼으로 아이를 낳은 부모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큰 고민 중 하나를 토로해보자.아이가 한 살 지나 처음 했던 단어들은 '엄마/아빠/아~ 예뻐'를 비롯해서 다 한국어였다. 내가 스물네시간 끼고 살면서 한국어를 하니 당연히 아이가 하는 말은 한국어겠지?아빠가 하는 불어도 이해는 하지만 하는 말은 한국어였다. 예를 들어, 어휘가 늘기 한참 전이었는데, 불어책이든 한국어책이든 같은 imagier(단어공부하는 그림책)를 갖고 엄마는 한국어로, 아빠는 불어로 읽어줬다. '불가사리 어딨어?'를 해도, 'Ou est l'etoile de mer?'를 해도 아이는 단어를 발음하지는 못해도 불가사리 그림을 정확히 집어냈다.

 

아이가 한 살을 넘기고 내가 북경에 일주일, 뉴욕에 열흘을 혼자 다녀와야할 일이 생겼을 때,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맡아주셨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의 불어가 눈에 띄게 늘어있었다. 신기한건, 시어머니 말에 의하면서 내가 없을 때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안 하다가 내가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한국어 단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는거다. 시어머니가 놀라서 "나하고 있을 때는 한국말 하나도 안 하더니???"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관찰에 의해 얻은 결론은, 아이는 상대방이 한국어를 알아듣는지, 불어를 알아듣는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현재 아이는 나한테는 한국어도 불어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도- 지 내키는대로 말하는 반면에, 아빠한테는 불어만 한다. 아빠가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가 한국말 못 알아듣는 아빠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 하루는 한국어 동요테입를 듣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빠에게 'poussin poussin' 이라고 하더란다. 그때 흘러나왔던 동요가 뭐였는지 다시 틀어보니까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쫑쫑쫑 놀고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였다. poussin은 불어로 '병아리'다.

 

국제커플 자녀들은 2개국어를 하려니 또래보다 말이 늦다. 결혼식장에서 만났던 한 국제커플은 첫아이가 만 4살이 되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내게 '아이가 말을 늦게 하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애는 다행히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시기에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또래 아이들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하는데 반해 우리 아이는 아직은 그 수준이 아니다.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집밖에 나가면 말을 한 마디도 안 한다. 나, 애 아빠, 시어머니, 그리고 자기가 마음이 편한 사람, 편한 장소에서만 말을 한다.

 

울애가 또래나 6살 된 어린이를 만나 놀 때보면, 한참동안은 말 한 마디 안 하고 논다. 그러다가 상대 아이가 자기가 잘 놀아주면 어느 순간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신기한 건, 상대 아이가 불어를 하는 아이면 불어로 하고, 상대 아이가 한국어를 하면 울애도 한국어로 한다. 'moi aussi!'라고 하거나 '나두~'라고 하거나 상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거다.

 

아이가 상대방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달라진다는건 아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먹혀듣는 말을 인식하고 그에따라 말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아이가 탁아소나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프랑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는 한국엄마가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직장을 안 다녀도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낮시간의 절대다수를 불어로 소통하는 애를 데리고 한국어로 얘기하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의 불어 어휘 수와 어휘 수준은 점점 높아져가는 반면에 엄마와 집에서 하는 한국어의 어휘 수와 어휘 수준은 그다지 발전되지 않는다는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국엄마에게 아이가 불어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왜? 아이는 엄마가 불어를 잘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때로는 엄마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불어로 다시 말해달라고 하기도 한댄다.

 

매주 수요일 오후, 프랑스 학교는 문을 닫는다. 여가활동 등을 하는데, 많은 한국엄마들이 자녀들을 한글학교에 보낸다. 백인 하나 없이 한국인 피가 섞인 -또는 한국인 피가 100%인- 아이들과 100%로 만나서 노는 시간이다.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느냐?고 물어보니 한글학교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아이들이 지들끼리 놀고 얘기할 때는 불어로 하니 '별로' 안 는댄다. ㅠㅠ

 

그럼 엄마인 나는? 집밖에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불어로 하나 한국어로 하나 갈등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칭찬을 하고, 야단을 칠 때, 불어로 하나 한국어로 하나 갈등할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불어로 말하는게 더 명확해서 불어로 할 때가 있고,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나 표현을 말해야 할 때 나도 아이에게 불어로 얘기할 때가 있다. 내가 바라는거... 아이가 더 컸을 때, 내가 한국친구들과 수다떨듯이 아이하고 한국어로 수다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일기와 블로그에 적은 글을 아이가 커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내 일기장을 뒤적거리기를 원한다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내 사후에라든가- 내가 쓴 수많은 글들을 내 아이가 읽어낼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한국에가서 친척들을 만났을 때, 아이가 언어장벽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마음이 좀 쓰릴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수고를 안 했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아직은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아서 장애가 덜하지만 한-불 언어교육에 관한 고민은 출산 전부터 쭈욱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로선 책, 한국어 동요 테입/CD, DVD 등으로 아이가 한국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어 책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불어 책을 한국어로 읽어준다. 뿡뿡이 DVD를 허구헌날 아이에게 보여줬더니 '저러다 불어가 밀릴까' 괜한 걱정하시는 시어머니, 불어로 된 유아용 DVD를 사서 보내셨다. 한국에 전화해서 한국어 책과 시디를 구한다고 했더니 '여긴 영어교육시키느라 난린데 넌 우리말 교재를 찾느냐'이라며 웃는 이도 있다. 당신에게 영어는 외국어지만 우리 아이에게 한국어는 엄마의 모국어란 사실을 잠시 잊었군요.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이나 한국엄마를 둔 프랑스인들이 성인이 됐을 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거나 한국에 가보고 싶어하거나 하다못해 한국인 친구를 두고 싶어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엄마가 한국인인데, (엄마와 늘 불어로 하느라) 한국어를 할 줄 몰라서 18살이 된 나이에 파리 한국문화원을 찾아와 한국어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짠 했다.학교에 들어가 몇 년은 아이가 불어로 말하길 원해도15~18년 뒤 상황을 상상하면 한국어로 대화하도록 꾸준히 유도해야 할 것 같다. 대화 수준에 따라 어휘도 달라지는건데.. 아이 수준에 맞는 한국어 책도 계속 잊혀줘야 할 것 같다. 말은 참 쉽지만 그 노력은 한국에서 사는 엄마가 자식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야 마음만 먹으면 TV를 틀어도 라디오를 틀어도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학원이든 교재든 쉽게 구할 수가 있지만 프랑스에서 한국어 교재는 다양하지도 않을 뿐더러 핵심은 한국어는 소수민족의 언어라는거다. 사실 그때문에 한국엄마가 프랑스 사회에서 아이와 밖에서 한국어로 얘기하는 것이영어권 엄마가 아이와 영어로만 대화하는 것만큼 당당하게 느끼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캐나다-프랑스 커플은 남자가 캐나다인인데 처가댁에 놀러가서 프랑스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아이들과는 반드시, 예외없이 영어로만 얘기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아빠와는 반드시 영어로 말할 것'을 강요한단다. 근데 그는 나에게도아이에게 '꿋/꿋/하/게' 한국어로'만(!!!)' 말해야 한다면서 그건 영어여서, 한국어여서, 어떤 특정언어여서가 아니라 '엄마의/아빠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라는거다.

 

뉴욕 체류 중에 숙소에서 만난 미국인 여성이 내게 '아이에게 어느 나라 말로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이와 한국어로 말한다고하자 그녀는 매우 흡족해했다.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태생이었는데, 그녀 설명에 의하면 러시아 옆의 작은 나라라고 한다. '그럼 슬라브계 언어냐?'라고 묻자 절대 아니라면서 자기 모국에 대한 자신감에 꽉 차있었다.미국에는 어린 나이에 이민을 와서 미국인이기도 한 그녀는그런 소수민족 태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도 자기의 모국어를 할 줄 알며, 자기 손녀도 그녀의 모국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도 역시 내가 꿋꿋하게 아이와는 한국어를 고집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 갈 길이 멀다. 손녀까지 한국말을 시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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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