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01.03 미혼모에 대한 생각

남자들의 사랑이란 언제고 쉽게 변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얕은 사랑에 코웃음치면서 아이나 하나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내 안에 생명을 품는 경험을, 낳는 고통을, 살과 성격을 닮는 피를 나눈 사랑을 갖고 싶었다. 남자의 사랑이야 식고,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바이바이~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나와 내 자식은 떼고 싶다해도 뗄 수 없는 그런 관계 아니던가.그때 '남편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침튀기게 설전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애기아빠인 남친은 떠나고 홀로 임신하며 살아가는 러시아 아가씨도 이웃에 살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어떠한 일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내가 교회를 다니던 때, 1년에 한번쯤 외로운 이웃을 초대해서 같이 밥 먹자는 취지의 행사가 있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이방인인 나를 한 프랑스 가족이 식사에 초대했다. 나와 친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분들은 당신의 딸의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할아버지, 두 부부, 내 또래의 딸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그 테이블에서 오고 간 대화가나의 바위같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께 뜬금없이 물었다. "어머니 찾으시던 건 어떻게.. 진전이 있으세요?"

얘기를 듣자하니, 할아버지는 어릴 때 입양이 되셨는데 엄마를 아직까지도 찾고 계신다는거다. 한국같았으면 이런 얘기는 남 앞에서 꺼내는 소재가 절대 아닌데.. 내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입양은 왜 해외로만 된다는 선입견을 가졌을까? 프랑스인도 엄마를 잃고, 다른 프랑스 가족에게 입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 했을까?일흔이 되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그분 얘기를 들으니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려던 내 고집이 결국 아이의 가슴에 평생 채워지지 못할 빈 공간을 만드는 짓일 것 같았다. '할 짓이 아니다. 내가 애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지.'

 

몇 년이 흐른 후, 다행히 '저 사람하고는 같이 살아도 되겠다' 싶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 배가 슬슬 불러오는 지금,미혼모에 대해 가졌던 과거 내 모습을 다시 돌이켜 본다. 막상 임신을 해보니 우선,임신 중에 남편과 기타 가족의 비중이 참으로 크다는 걸 깨닫는다. 남편이 집안일 돕고, 무거운 거 들어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임신 초기에는 기쁘기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는데, 그때 남편과 가족들이 나의 임신사실에 눈물 글썽거리며 감동하고 기뻐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나 혼자 아이를 가졌다면 나 혼자 짊어질 그 심리적 무게를 어찌 감당했을까? 충분하게 벌어놓은 돈도 없이 한 시라도 양육비를 벌어야한다는 강박감으로 임신한 몸으로 또는 산후에도 사회와 투쟁하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자면, 나에게도 무리지만 아이에게 참 할 짓이 아니지 않나 싶다.아이는 내가 힘써 낳는게 분명하지만지금 내 주변을 보면 내 아이는 나만의 사랑을 받는게 아니지 않나? 아이 아빠도 그를 사랑하고, 내 부모, 남편의 부모, 남편의 조부모와 시누이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나에게 조언도 주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질적인 도움도 준다. 비록 내 뱃속에 있지만 아이는 벌써 가족이라는 '사회'를 느끼며 자라고 있다. 내가 남자, no! only 아기만을 원했을 때, 나는 아이에게 나 외의 다른 가족관계도 필요할꺼라고 미쳐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필요'라는 것은 '관계'고 '사랑'이다. 애증으로 얽혀진 가족이라지만 장기간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얼마나 뼈저리게 느껴왔던가. 친구들이 있다해도 집에 들어오면 서늘한 그 고독을, 밑바닥에서부터 둥둥둥~ 울려오는 고독의 외침을 감지하지못했다면 아마 아직까지도 '결혼'에 대해서 진저리를 내며 독신으로 살기를 고집했을 것이다.아이에게 맺어지는 관계들은 다시 말해서 나와도 연관되는 관계들. 따라서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든든한 심적 후원자들이 되어준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지금 미혼모였다면 난 뾰족한 대책없이 고스란히 심리적, 경제적, 신체적인 부담을 뒤집어 쓴 채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보장된 미래가 탄탄대로 깔린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든든한 심리적 후원자들이 있다. 나와 아이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가족. 그중에서도 남편은 나의 가장 큰 힘이자 둥지가 되어주고 있다. 내가 임신으로인해 힘들어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뛰고 있는 사람. 양식 먹고 살다가도 '한국음식이 그립지 않냐'며 아시아 가게에 장 보러가자고 먼저 제안하는 사람. 시장에서 감이나 배를 보면 가격이 비싼걸 알면서도 '저거 사자'고 먼저 나서는 사람. 내 손으로 내 입을 챙겨가면서, 아침이면 조금씩 더 커져있는 배를 홀로 쓸어내리며 시작하는 매일과 투쟁하며 산다는 것은... 슬프거나 또는 암울한 나날들일 것이다. 이제는 인정한다.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다고.남편과 함께 하는 임신이 백 배, 천 배 행복하다.

신고
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