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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2012.03.15 12:46
어제는 무척 특별한 공연을 보았다 : 정치적이지 않은 음악가의 무척 정치적인 콘서트. 어제 포스팅에서 알린 바대로 어제 저녁 파리 8구 Faubourg Saint-Honoré가에 위치한 Salle Pleyel(쌀 플레옐)에서 북한 오케스트라 '은하수'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있었다. 극장 앞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티켓박스에 줄이 나래비~ (역시 티켓을 집에서 출력해가길 잘했어!) 중앙홀에 들어서도 사람들이 우글우글~ '대박이군!'이러고 있는데 프랑스 전 문화부장관 쟈끄랑이 내 옆을 지나간다. 앗! @@!


아레나 형식의 쌀 플레엘 내부

2층 발코니(balcon, 1er étage) 짝수열 좌석에 앉으면 이렇게 보인다.


티케팅을 하면서부터 '북한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았으나 상상으로 끝났다. 정장을 한 폼이 북한사람으로 보이는 마르고 젊은 남자들이 공연이 시작되기 1분 전에 발코니석에서 자리를 찾아 앉는걸 보기는 했다. 남북한 사람들이 프랑스인들 사이에 끼어 같은 장소에 앉아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했다. 이 날 관객의 상당수가 프랑스인들이었다.


북한 오케스트라로 시작한 1부



라디오 프랑스 회장 쟝뤽 헤스와 프랑스 문화부장관 프레데릭 미테랑의 오프닝 연설로 문을 연 1부는 은하수 오케스트라의 번역하자면 '그네 타는 아가씨'라고 생각되는 전통음악으로 시작했다. 한국 전통음악을 오케스트라로 다시 들으니 참 신선했다. 장구과 꽹과리를 오케스트라 뒤편 왼쪽에서 치고 있길래 '이게 퓨전?' 했는데, 알고보니 장구, 꽹과리, 가야금, 해금 등이 북한 오케스트라단에 아예 편성이 되어 있더라고! 역시 주체사상이 투철한!!! 가야금과 해금은 두 여성 연주자가 아랫단이 넓게 펴치는 한복을 입고 무대 앞쪽에서 등없는 의자에 앉아 연주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사온 카탈로그를 보니 '은하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를 포함해서 거의가 20대에서 30대 초반으로 매우 젊었다. '나이 먹어 머리 굵어지면 모조리 아오지 탄광입네?' 싶었는데, 알고보니 2009년에 창설된 젊은 관현악단이라서? 설립이 최근이라고 단원들까지 젊어야할 이유는 딱히 없어보이는데 뭐 여튼. 


뒤편 좌측에 연주자없이 드럼이 놓인게 보이지요? 2부에서 라디오 프랑스 소속 연주자가 들어올 자리입니다.


공연 중에 꺽꺽 거리며 울다


한국 전통음악을 한참 연주하고나서 '은하수'는 문경진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생상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곡 들어보기: 이작 펄만 연주 - 뉴욕 필 주빈 메타 지휘) '를 연주했다. 박수갈채를 받은 문경진은 무대로 다시 나와 앵콜곡을 연주하기 전에 마이크를 찾는 눈치였다. 곡을 설명하려고 했겠지. 그러나 곧 포기하고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닐리리야' 변주를 연주하는게 아닌가? 난 가슴이 탁~! 미어졌다. 1천9백석을 꽉 메운 파리의 콘서트홀에서 그가 곡 소개를 안해도 그 곡이 '닐리리야'라는걸 아는건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밖에 없잖은가! '닐리리야'를 연주하는 저 북한사람과 그걸 듣는 남북한 사람,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대화할 수도 없는 이 상황! 음악이란 만국공통어를 통해 타지에서 남북이 재회하고 소통하고 있는 상황이 어찌나 안타깝고 애절했던지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꺽꺽 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었다. 이산가족도 없는 젊은 내가 그 애절함을 느끼는데, 북에 가족을 둔 이들의 애절함과 한은 그 얼마나 더할까? (* 인터넷 실황중계로는 그가 '코리안 피스 닐리리야'라고 세 단어로 말하는게 나왔다고 한다. 그 멘트가 마이크를 통해서 연주되기 전에 들렸다면 내가 느꼈던 그 애절함은 없었으리라.)


정명훈은 언제 나오나.. 했는데, 은하수의 연주만으로 1부가 끝났다. 정명훈도 라디오 프랑스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1부 전체를 은하수 오케스트라에게 전격적으로 할애하는걸 보면서 이 공연을 기획한 정명훈과 프랑스 관계자들의 겸손함과 따뜻한 배려를 느꼈다.


인터미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전에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가며 관람한 1부가 끝나고, 중앙홀에 내려가보니 한국 방송사 3군데(KBS, SBS, YTN)에서 나와 열띤 취재 경쟁을 보였다. 여기저기서 프랑스 관객을 붙잡고 인터뷰를 청하는 한국 방송사들.





기대했던대로 북한 억양을 쓰는 사람들 말도 들리고, 보이고... '반갑습네다~'하며 얘기하는 말은 들리는데 가서 말을 붙여보지 못하니 가슴만 먹먹. 만일 내가 가서 인사할 수 있었다면 손을 포개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음악을 통해서 타지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언젠가는 꼭 우리 땅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목이 메여서 '안녕하세요'만 하고 곧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인터미션이 끝날 무렵, 20년 전에 하이텔 고음동(고전음악 동호회)에서 알던 사람을 쌀 플레옐 중앙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20년 전에 서울에서 만났던 사람을 파리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게다가 파리에서 11년 있었다는데 어떻게 한번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신기해하면서 급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피아노가 좋아서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던 사람, 파리에 와서 기어이 음악을 공부했구나. 반갑기 그지없으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너무 오랜만의 재회라 나누고 싶은 말이 강물처럼 밀려드는데 머리 속에서 2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가슴이 먹먹.. 이날 밤은 이래저래 emotions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밤이로구나.


은하수, 라디오 프랑스 그리고 정명훈



다시 자리를 찾아 앉자 오른편에 앉은 젊은 프랑스 꽃미남이 북한 관현악단의 이름 'Unhasu(은하수)'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머리 속에서 lacté만 떠오르고 불어로 생각이 나지 않는거라. 영어로 Milky way라고 가르쳐줬는데, 설마 젊은 녀석이 영어는 하겠지? 참고로, 은하수를 불어로 la voie lactée라고 한다. 이게 만 24시간에 생각났다. ㅠㅠ


꽃미남이 '북한 음악은 남한에서 들을 수 있느냐?'고 질문도 한다. 들을 수 없다고, 우리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지만 법적으로 서로 말도 할 수 없다고, 북한 트윗 리트윗했다가 영창가있는 박정근 얘기를 해줬다. 우리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북한 음악이 발행된걸 들은 적이 없을꺼라고 말했더니 그가 '북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참 잘 하는데.. 그렇구나~ 아깝네'라고 말했다.


꽃미남과의 짧은 대화는 2부의 시작으로 끝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드디어 조심스럽게 무대 위로 등장해 북한 단원들 사이사이에 앉았다. 두 개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무대를 꽈~악 채웠다. 오~! 정명훈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은 남북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섞여앉는 것이었을텐데.


이들은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 교향곡이 연주될 때는 악장과 악장 사이 몇 초간 쉬는 시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게 원칙이다. 보통 요때 헛기침을 크게 하거나 코푸는 소리가 들리곤하지. -,.-ㅋ 근데 이날 밤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와... -,.-ㅋ (그냥 악장 사이사이 박수를 치게 합시다 우리. OTZ) 분단된 남북한이 파리에서 재회하는 이 상황 하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겠거니. 아니, 베를린 장벽처럼 남과 북 사이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였으면.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 아다지오(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 후반부 들어보기)는 이날따라 음악 안에서 남북통일을 오랫동안 꿈꿔온 정명훈의 오랜 꿈처럼 행보처럼 들렸다.


좌측에 북한 첼리스트, 우측에 프랑스 첼리스트. 이들을 지휘하는 정명훈의 뒷모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의 이야기가 담긴 교과서를 읽으면서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빨간 뿔이 나고 악마처럼 꼬리도 달렸다고 생각했던 초등생이 나뿐만은 아니었을껄? 그 '공산당이 싫어요'는 조선일보의 작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위 첼리스트와 아래 북한 단원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같은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이들이다.


브라보, 앵콜, 그리고 또 앵콜



관중석에서 'Bravo!(브라보)'가 터져나오고 정명훈은 다섯 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Merci beaucoup. 감사합니다." 불어와 한국어로 답례인사를 시작하면서 남북한 통일에 대한 그의 오랜 바램과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야기했다. 프랑스 언론에 의하면 그는 1953년생으로 남북분단의 해에 태어나 음악 안에서 남북이 하나되기를 오래 전부터 꿈꾸었다고 한다. 이북이 고향인 그의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이 날의 공연을 보며 매우 자랑스럽고 기뻐하실게 틀림없으리라.


정명훈은 첫앵콜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어느 누가 남북한이 만나는 이 날 이 앵콜곡의 선정에 이의를 달랴? '은하수'와 라디오 프랑스 단원들이 사이사이 껴앉은 두 개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그가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들릴듯 말듯 가사를 읊조리며 눈물을 떨구며 금지된 녹화를 했을 때, 내 평생 처음으로 아리랑의 가사가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노래가 아니라 분단된 민족, 분단된 가족이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면.. 이 단순한 곡조를 정명훈은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약 8분간 연주했다.




'아리랑'이 끝나고 그가 무대를 내려간 뒤, 갈채가 점차 일동 함께 치는 박수로 바뀌어갔다. 커튼 콜을 3번 이상 받았을 무렵, 무대에 다시 나와 무선 마이크를 잡았는데 소리가 안 나온다. 악보대에 마이크를 퉁 치자 마이크가 '이젠 된다'면서 우리를 살짝 웃기게 만들더니 "En fait on a préparé la 2eme pièce."(사실은 우리가 두 번째 앵콜곡을 준비했지요)라며 관중을 웃겼다.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프랑스와, 라디오 프랑스, 쟈끄랑, 쟝뤽 헤스에게 감사한다'며 그 답례로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서곡을 연주했다. ('카르멘' 서곡 들어보기 - 레바인 지휘)


공연이 끝난 뒤 정명훈은 북한 지휘자 윤범주, 리명일과 함께 손을 벌쩍 들어 관중에게 답례 인사를 했고, 정명훈은 무대로 올라온 꽃다발을 북한 (여성) 첼리스트에게 드렸다.



앵콜곡이 끝나고 갈채를 보내는 북한 단원들에 둘러쌓여 관중에게 답하는 정명훈

감격에 가득한 그 표정. 기립박수를 치는 우리도 얼마나 느꺼웠는지.. 



그는 그가 있는 자리에서 그의 방식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냈다. 대한민국 현정부의 어느 정치인도 하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일을 해낸 음악인 정명훈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아, 이게 상하이 임시정부도 아니고, 남북한 사람들이 타국인 파리에 모여서 눈물을 훔치며 같은 공연을 보다니. 서로 알아는 보면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 대화도 자유롭게 못 하다니. 훌륭한 하모니였고, 참으로 감동적이고 동시에 참으로 슬펐던 공연. 위 사진에서 프랑스 첼리스트가 앉은 자리에 언젠가는 한국 첼리스트가 앉기를 소원해본다.


* 이 날의 감동을 다시! 보기, Arte (2시간 24분 20초)
* Inside a rare musical event in France, CNN
* Un orchestre nord-coréen joue pour la première fois en France, BFMTV

* ps : 이날 트위터 팔뤄분과 공연 전후에 만나 같이 차 한 잔 나누었어요. 뿔테가 아주 잘 어울리는 멋쟁이 아가씨와 강정 얘기로 울분을 토하며 자정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래저래 가슴이 꽉 차오는 아름다운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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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