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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20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
Parents 교육/육아2015.08.20 13:02

밤 11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글을 쓰는 여성 소설가에게 아이 아침밥은 어떻게 해주냐고 물었더니 소설가는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라고 답했고 인터뷰를 했던 김지영씨는 '초월적이고 독자적인 답변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했다. 그 글은 한국 방송통신대학보에 실렸고, 김지영씨의 페북 사이트에도 올라있다. 지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공유되었던 글이라 나는 김지영씨 포스팅에 덧글을 남기고 싶어도 페친이 아니기 때문에 덧글을 달 수가 없어서 내 의견을 블로그에 적는다. 


김지영씨의 글 보기


"에유... 니들만 없으면 밥상 안 차려도 될텐데." 


사실 우리 엄마도 곧잘 이 말을 하셨다. 나랑 오빠만 없으면 밥상 차릴 수고를 덜 수 있을텐데 우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밥상을 차리느라 당신 몸을 일으키는게 피곤하셨던게다.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의 밥을 '얻어먹는다'는 짐을 지며 살았다. 내가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오빠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밥을 차리기는 싫었다. 남들 다 아침먹고 밥상까지 물린 뒤에 일어났던 오빠는 나보고 밥상 좀 차려달라고 했다.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다 냉장고에 있으니 찾아서 꺼내먹으라고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 밥상 차려주는게 그렇게 싫으니?'하는 구사리와 함께 엄마의 싸늘한 눈매가 날아왔고, 엄마는 불평할꺼면 하지말라며 당신이 몸을 일으켜 아침 10시에 오빠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셨다. 오빠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 엄마는 그 밥상을 치워주셨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없으면 내가 밥을 후지게 먹는다는 걸 발견했다. 애들이 있으면 손톱만큼이라도 정성을 들여서 밥상을 차리고 나도 잘 먹게 되는데, 애들이 없으면 내가 폐인처럼 먹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제멋대로고 아예 끼니를 건너뛰기도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엄마가 "니들 덕에 나도 제대로 챙겨먹게 되는구나.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고. 자식을 낳아서 왜 자식이 평생 당신의 짐인 듯한 말씀을 그렇게 자주 하셨을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어서 행복하다고, 너희들 덕에 엄마가 이런 저런 요리도 해서 나도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노라고 자주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자식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애들이 없으면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겨 배가 고파야나 치우지도 않은 상에서 대충 대충 챙겨서 그야말로 "끼니"를 때운다. 이날은 그나마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여러 개 사왔던 터라 밥하고 숟갈만 놓으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사온다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이라 기념사진을 찍어뒀었다. ㅎㅎ



여성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지영씨나 그분의 글에 공감하면서 댓글을 단 여성분들이 갖는 고충은 아이들의 밥상을 차려주는데 있는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 배를 곯아서 학교를 보내선 안된다. 그건 분명 여성 소설가가 잘못하고 있는거다.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운다고 그 자유로움과 당당함에 만세를 불러서 안된다. 그 집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고, 애아빠랑 같이 사는지 엄마 혼자 키우는지 등은 모르겠는데, 만 10살이면 혼자서 아침 차려서 먹고 나갈 수 있는 나이다. 밥통에 있는 밥 푸거나 아니면 렌지에 띵~ 데우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개 꺼내서 먹고,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개수대에 치우고, 반찬은 다시 냉장고에 넣고 가라고 교육시키면 된다. 아침밥 안 챙겨주면 아침밥 안 먹고 나가는 피동적인 아이로 키울게 아니라, 밥은 엄마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칠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찾아먹고 치우고 나가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만 15세가 되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장도 볼 줄 알고, 요리해서 다른 사람 먹일 수 있을만큼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밥상을 차리는 상대가 아니라 밥상을 '누가' 차리느냐하는 주체에 있다. 한국 사회는 유독 남자에게 밥상에 관련된 자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 큰 남자가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어머니에게 헌사를 보내는건 인텔리젼트한 책을 몇 권을 써냈건간에 그 평론가는 한 어른으로서 바보병신이다. 헌사를 보내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헌사를 보냄으로해서 여성은 부엌일, 남성은 글쟁이라는 이분적인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헌사는 여성을 부엌이란 비가시적인 감옥에 붙들어두는 가시에 지나지 않는다. 

김지영씨는 그 비가시적인 감옥에서 탈출한 여성 소설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맞아!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되는구나! 그걸 몰랐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엌없이 사냥과 채집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아무도 없다! 문제는 여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부엌에는 남성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하며, 어느 정도 큰 아이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한다는 걸 김지영씨는 깨달아야 했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일을 하지 않는 당당함에 기립박수를 보내기 전에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문제의 핵심을 집고 방법을 찾든 공격을 하든 해야하는거다. 여성 소설가는 여성이란 이름으로 얽매어진 굴레를 벗어던짐과 동시에 부모로서 해야할 본분을 져버렸다. 



"너희들은 돼지야."


'돼지책'이란 동화가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남편은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밥 달라고 하고,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로 간다. 그들이 떠나고나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간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면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돌아와 밥 달라고 하고, 그것도 '빨리', 셋은 TV를 본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먹을 것을 조금 더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동화를 쓴 사람은 여성의 가사노동에 쪄들고 피곤한 한국 여성이 아니고 영국 남성, 앤소니 브라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를 작년에 여기 아동도서전에서 만나서 얼마나 반가왔던지! 딸과 아내와 함께 도서전에 사인회에 나오셨길래 "저희 아이들보다 제가 선생님 팬이에요!"하고 사인을 받아왔더랬다. '돼지책'이란 명저를 반드시 식구들과 돌려 읽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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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