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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4 산후우울증 (=베이비 블루스) (3)

분만 후 약 2개월이 되었을 때, 우울증이 왔다. 그때 당시엔 신경질이 자주 나고, 기분의 고저가 심했다. 예를 들면, 애기를 가만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가도 동시에 기분이 다운되는. 특히 밤이면 밤마다 우울은 널을 뛰었다. 내 과거와 현재를 통털어 모든 우울한 기억들이 밤마다 찾아와 눈물로 얼굴을 적시지 않고 잠들지 않는 밤이 없었다. 이게 남들이 말하는 그 산후우울증인가? 우리 시누이도 겪었다하는 바로 그? 하긴 분만 두 달 전부터 출산 두 달 후까지, 넉 달간 집 현관 밖을 나가보질 못했으니 정상적인 사람을 넉 달동안 집안에다 가둬두면 우울증이 생길만도 했을꺼다. 더구나 인간관계에서 깊은 실망을 받은 후로 '친구'라고 만나고 다녔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사람을 안 만나고 다녔다. 아니,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관계를 맺지 않았다. 내가 맺으려 한다고 인연이 맺어지는게 아니라는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잊으려고 애썼고, 잊어버렸던 내 지난 과거가 송두리째 뒤집어 엎어져 의식의 수면으로 떠올라와버리는 시련과 마주해야했다. 마음에 상처받았던 일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쳐왔다. '친구'라고 칭했었던 숱한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데서 나를 힘들게 했던 내 가족들까지, 기억 저 편에 있던 기억들이 정말 말 그대로 송두리째 나를 짛눌렀다.

 

정기적으로 psy를 만났다. 고작 한 달에 한 번, 1시간이었다. 불평할 수는 없었다. 무료치료였으니까. 복용약을 처방해주려고 했지만 나는 '수유 중'이라고 거부했다. psy(=psychologue)가 내게 심리치료사(psychotherapeute)를 소개시켜주었고, 그는 1주일에 한번씩 만나주었다. psy라고 불러도 종류가 그렇게 여러 가지로 나뉘는건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한 번에 30분. 그가 내게 답을 주는 건 없다. 그는 내게 질문만 던진다. 그것도 한 두 개. 나머진 나 혼자 떠든다. 떠들다 보면 시간이 다 지나가서 말하던 중에 일어나서 악수하고 나와야했다. 그러고보면 파리에 올라와서 그렇게 속을 다 터놓고 말한 사람이 없었다. 남편을 제외하면.

 

psy에게만 의존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다. 분석하고, 사유하고, 탐구하고, 연구하고... 난 이제 산후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지난 번 psychotherapeute를 봤을 때, 난 이제 당신을 그만 만나거나 덜 자주 봐도 될 것 같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그를 2주일에 30분씩 보기로 했다.

 

좋은 남자 만나 애 낳고 키우면서 남편과 자식을 성공적으로 내조하는게 최고의 미덕이자 인생의 목표였던 전세대 어머니들에게는 산후우울증이란 없다. 자아실현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여성들이 결혼으로 집안에 틀어박혀있게 되면서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내 존재가 남편과 아이의 그늘 속에서 완전히 용해되면서 생기는 존재감의 위기, 그것이 산후우울증이다. 또한 임신과 출산이란 과정을 통해서 여성은 다시 한번 탄생한다.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된다.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백만개의 단어로는 형용이 불가능하다. 내가 미스였을 때, 애아줌마가 내게 똑같은 소리를 했는데,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했으니까. 출산은 아기의 탄생만이 있는게 아니라 임신한 여성도 다시 한번 탄생한다. 자신의 과거가 현재와 미래 위에 오버랩이 되면서 존재가 뿌리털 하나하나 끝까지 흔들린다. 모든 임산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쨌꺼나 나는 그랬다. 괴로왔고, 많이 울었다. 이젠 그 터널을 지나 '나 실은 아팠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나의 고백이 산후우울증으로 말 못할 고민을 겪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말한다. 몇 마디 말로 당신의 산후우울증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해야합니다. 당신을 '이렇다 저렇다' 쉽게 판단해버리지 않고 인내심있게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당신에게 필요합니다. 당신이 믿는 사람, 한 사람과 많은 얘기를 하세요. 절친한 친구나 남편은 좋은 대화 상대입니다만 가능하다면 psy를 찾아가세요. 그들은 당신을 모르지만 당신이 믿고 말할 수 있으며, 당신을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거든요. psy는 당신에게 '신경쓰지마. 잊어버려. 따끈하게 우유 한잔 마시고 자. 내일이면 잊혀질꺼야'라고 간단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늘 우울해하던 당신이 어느날 기분이 좋다고 난리를 칠 때, 친구라면 '얘가 이젠 괜찮아졌군'하고 마음을 놓을테지만 psy는 곧 얼마 후 우울이 바닥을 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껍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답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답은 사실 당신 안에서 나옵니다. 그는 당신이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을 수 있도록 후레쉬를 이리저리 비춰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산후우울증을 겪었고, 겪고 있습니다. 주원인은 임신에 동반된 호르몬 영향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끝나고 아이가 쑥쑥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들이 간혹 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임신호르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혼자 갇혀지내지 마시고, 밖으로 나오세요. 사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세요. 반드시 친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분야의 책도 읽고, activity를 찾으세요. 실례로, 제게 우리말로 된 블로그를 운영하는 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만의 무엇이였지요. 답답하면 노래도 하고, 빈 종이에 낙서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우울증에서 벗어났는지 전문잡지나 전문서적에 실린 -여성잡지는 금물!- 사례들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우울에서 벗어나도록 스스로 많이 노력하세요. 우울에 자신을 맡기지 마시고, 우울에서 벗어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세요. 무엇보다 가끔 아기와 떨어져있는 시간을 가지세요. 친정엄마, 시어머니, 친구, 이웃집 아줌마, 남편 등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동사무소든 장을 보든 혼자 외출해보세요. 예전에는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날아갈 듯이 즐거울 겁니다. 사고 하나에 집착하지 마세요. 긍정적으로 사고하도록 노력하세요. 누군가 건져 읽기를 기다리며 바다에다 병 하나 던져 보내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젊은 엄마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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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