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7개월에 들어서면 아기를 곧 눈으로 보게된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슬슬 분만에 대한 불안이 코앞에 닥친다. 진통이 오면 어떻게 하지? 병원으로 곧장 가나? 분만시 어떻게 하면 진통을 줄이고 분만을 수월하게 또는 가능한 빨리 분만할 수 있을까? 출산 후 수유는 어떻게 하지? 애 기저귀는 어떻게 갈지? 등등 실질적인 질문들이 쏟아져나온다. 엄마한테 물어? 주변에 애를 낳아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해? 출산 후, 산모나 신생아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진맥진한 몸을 일으켜서 택시라도 타고 병원을 가나?

 

이러한 불안들을 잠재우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프랑스에는 sage-femme(싸쥬팜)이라는게 있다. 산부인과 의사와 함께 '건강한 출산'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출산 전, 보통 1회의 1대1 상담과 7회의 출산준비 수업으로 구성된다. 의료보험으로 모두 환불된다. 출산 후, 필요한 경우에는 산모의 집에 직접 찾아와 의료검진을 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산부인과 의사가 일일이 시간내서 들어주지 못하는 산모의 실질적인 고민과 질문을 들어주고, 산모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건강한 출산으로 친절히 안내해주는 사람이다. 나처럼 엄마가 멀리 있고, 출산경험자가 가까이서 실습을 보여줄 수 없는 이에게는 매우 매우 필요한 존재다. 엄마가 사실 가까이 있다해도 세대를 지나면서 산모와 아이 다루는 법이 발달되기 때문에 쌰쥬팜은 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분만실 병원에 소속 된 쌰쥬팜도 있고, 개인허가를 내서 운영하는 쌰쥬팜도 있다. 모두 정식으로 쌰쥬팜 교육을 받고 허가를 받은 이들이다.전통적인 분만법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서 분만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분만법을 원하는 산모라면, 자기가 원하는 분만법을 실습시켜줄 수 있는 쌰쥬팜을 찾아야 한다. 물론 산모가 분만하려는 병원에 희망하는 분만법을 위한 의료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임신 말기인만큼 굳이 멀리까지 가야하는 싸쥬팜을 찾아서도 안되겠다. 예를 들어, 수중분만을 하는 산모가 있다고 하자. 모든 쌰쥬팜이 수중분만법을 가르치지 않으며, 모든 분만실이 수중분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해당 쌰쥬팜과 분만실까지 가는데 1시간 반~2시간이 걸린다면, 수중분만을 굳이 고집하는건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출산예정일까지 내가 받는 수업 스케줄을 보면 호흡법, 진통이 올 때, 분만시 힘 주는 요령, 수유하는 법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두 수업인 아이 다루는 법과 아빠의 역할 시간에는 남편이 동행해야 한다. 수업인원은 3명을 넘지 않으며, 남편이 동행하는 수업은 토요일로 잡혀진다. 한국에서 '육아교실'이라고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해당할 것 같다. 유료인지 무료인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 쌰쥬팜 리스트 중에서 집에서 가까운 싸쥬팜 둘을 찜! 그중 친절한 쌰쥬팜 하나를 선택. 남편과 함께 첫상담을 통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지난 월요일, 첫수업. 산모 둘을 앉혀놓고 싸쥬팜의 강의가 시작됐다. 양수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양수가 터져흐를 때, 기타 분비물이 나올 때 처치요령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질문도 받는다. 곧이어 호흡법 실습으로 들어갔다. 나야 호흡과 명상에 익숙해있던 터라 복식호흡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나와 함께 수업을 받았던 산모는 일을 하기 때문에 수업을 7개 다 들을 수가 없어서 출산예정일 전까지 겨우 2개 밖에 못 듣는다고 했다. 5월 1일이 출산예정일이라 배가 남산만한 그는 호흡법과 수유법만을 듣기로 한단다. 나처럼 배가 부른 산모와 마주 앉아 서로 배 쓸어내리며 얘기하는거, 색다른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재밌었다.

 

시어머니께서 '임신/출산 가이드'에 이어 '육아가이드'를 보내오셨다. 임신해서도 배워야 할 것이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은 신랑과 함께 읽기로 했다.

신고
Posted by 에꼴로

병원 분만실 예약을 하던 날, 병원 소속 조산부(싸쥬팜)와의 인터뷰 날짜를 받았다. 근데 사실 이 날 싸쥬팜을 만나서 뭐하자는건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약속시간에 칼같이 맞춰서 갔다. 버스타고 옆동네로 가기를 45분.

 

약속시간이 10시 30분인데, 벨 누르고 11시 15분이 되도록 대기실에 조산부가 안 나온다. 12시에 남편 친구들하고 동반 점심약속이 있는데, 약속장소로 이동하려면 11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참다못해상담실 문을 두드렸다."두 분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랑 10시반에 약속있지 않으신가요? 이미 45분이 기다렸는데요.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수다스런 임산부와 조산부가 잠시 후 나왔고, 내 시간을 어처구니없이 타인 때문에 빼앗겨버린 열받은 나는 조산부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아댔다. 그녀 말이, "제가 일을 하려면 45분이 필요합니다. 저랑 인터뷰를 하시던가, 시간이 없으시다면 다음에 오도록 약속을 다시 잡죠. 선택하세요."

 

눈 똑바로 뜨고 당돌하게 대꾸했다. "제 불찰때문이라면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겠는데, 제 앞에 있던 손님이 그의 할애시간을 넘어서서 제 시간까지 잡아먹은 이 상황에서는 그걸 '선택'이라고 부른다는게 어처구니 없군요. 45분이나 들여서 온 거리를 45분이나 기다린 나에게 이번 방문을 헛걸음으로 하고 추가적으로 왕복 1시간반을 쏟아붓든가, 점심약속을 취소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리는군요.당신이 말하는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네요."

 

하지만 나도 선택을 하기는 해야했다. 남은 토막시간을 인터뷰로 보낼 것인가, 실랑이로 보낼 것인가. 인터뷰라는게 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헛걸음치고 저 조산부 상판 보러 다시 오기는 싫었다. 결국 12시간까지 인터뷰를 했고, 남편은 늦어지는 나를 기다리기 위해 친구들과의 점심약속을 취소했다. 

 

인터뷰의 내용은 내가 궁금해했던 것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임산부 진료노트를 점검하고,임신에 대한 전반적인 현상과 행정절차, 의료테스트에 대해 설명해주고,임산부가 갖는 불안과 질문에 대해서 답해주는 시간이었다. 45분동안. 내 약속 앞에 있던 여자는 1시간 15분을 상담했다가 나의 개입으로 자리를 떴다하니 내 시간 30분을 잡아먹고도 뭐가 더 궁금했다는 걸까 대체? 요즘같은 세상에 인터넷을 뒤지면 달별 임산부의 변화와 진료테스트에 대해서 다 설명이 나오고, 책에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판에! 주변에 임신한 여자가 없을리도 없고, 중간중간 궁금한게 있으면 다달이 보는 산부인과에게 물어도 되고, 스무개가 넘는 조산부의 전화번호 리스트를 그녀도 분명 받았을텐데 말이다!

 

여튼 첫임신 3개월에는 쉽게 피곤했어서 버스에 타면 앉을 자리 찾을 때마다 내가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유산이 되기 쉬운 시기라고해서 나는 특별히 몸을 사리는데 '나, 임산부!'가  밖으로 드러나야 말이야. 산부인과는 날 무슨 고깃덩이처럼 다루고 말야. 섭섭했는데, 임신 3개월이 넘어서부터는 친절한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행정절차나 의료진이 나, 임산부와 함께 뛰어주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니까 임신했다는 사실이 점점 뿌듯해진다. 진찰도 남편과 함께 오라고하고, 시어머님, 시할머님이 아기 옷을 뜨개질해주시느라 바쁘고, 나라에서 출산보조금도 준다고 하고, 산부인과 의사뿐만이 아니라 분만병원, 조산부들이 내 뒤에 든든히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놓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이 뿌듯해진다.

 

신고
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