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s 쉼2013.08.04 01:01

임상수의 '하녀'(2010)를 어제서야 봤다. 원작과 비교하면서 얘기하자면 한이 없고, 원작과 비교하지 않고도 충분히 비판할 수 있을만큼 실망스러운 구석이 많다. 한 남자(훈)의 씨를 받은 두 여자 사이에서 일방적인 시기, 질투, 모략으로 점철되는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 TV 일일연속극 수준 다름아니다. 주인남자의 씨를 받은 하녀를 모질게 구는 인물은 집주인 여자만도 모자라서 그녀의 친정 엄마가 등장하고, 나이많은 하녀까지 등장한다. 생사의 순간까지 치닫자 나이많은 하녀는 주인공 편에 서기는 하지만. 영화 속의 유일한 청일점이 여성 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제공하고, 그는 내내 쿨~하며, 그를 둘러싼 다 큰 여자들끼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 구조를 스크린 위에서 본다는건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하다. 


임상수 감독이 깐느에 왔을 때, 깐느 인터뷰 사회자에게 했던 대답이 있다. (당시 관련포스팅 > http://francereport.net/781)

사회자 : "50년 전에 나왔던 '하녀'라는 작품을 왜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느냐?"

임상수: "한국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회를 반영하는거다."

사회자: "그렇다면 국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찍은거냐?"

임상수: (1초간 머뭇하더니) "그렇게 안 보셨습니까?"


라디오 코리아에 실린 바에 의하면, "50년 전 작품을 똑같이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는 1960년대 한국의 사회 경제적 배경을 깔고 있고, 저의 '하녀'는 2010년의 한국 혹은 지구 전체의 사회적 맥락을 깔고 있는 작품입니다."라고 답했다. (관련 링크>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57431)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원작과 자기가 만든 영화의 차이를 180도 잘못 해석하고 있는걸로 보인다. 임상수의 '하녀'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회', '지구 전체의 사회적 맥락'이란 눈꼽만치도 없다. 남편이 하녀방을 찾아가 여자를 임신시켰는데, 잘못한 당사자를 꾸짖기 전에 어떻게 피해자인 여성에게만 손가락질을 하는가? 인터네셔널이란 단어를 제발 함부로 붙이지 말아달라. 적어도 내가 사는 유럽에선 임상수의 등장인물처럼 반응하는 여성들은 없을 터인즉. 오만방자한 대답대신 그저 겸손하게 덜도 더도 없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 성적 불평등, 계급구조를 리메이크를 통해 단적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차라리 솔직하고 좋았을 것을. 어디다 인터네셔널이란 단어를 붙이고 그러나? 


1) 임상수의 '하녀'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인물은 어느 누구 하나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없다. 

훈의 아내 : 첫애를 낳고, 쌍둥이를 출산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늙은 하녀와 젊은 하녀가 집안일은 물론 머리까지 씻겨준다. 넷째, 다섯째도 낳고 싶다고 말하는 팔자 늘어진 여자.

훈의 장모 : 다 큰 딸에게마저 '해야될 일'을 일러주며, 하녀의 태아를 낙태시키는 매우 교활한 여자.

늙은 하녀: '아드메치(; 아니꼽고 드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상황에서 평생을 보냄. 늙은 하녀의 아들이 검사가 된 소식에 훈의 장모는 '인간승리'라며 축하한다. 늙은 하녀의 계급을 상승시키는 건 검사가 된 '아들'인 것이다, 아들! 딸이 아니고.

하녀: 젊고 예쁜데다 착하고 잘 웃는 이혼녀. 게다가 성적 매력도 있고, 대학물도 먹고, 여기다가 약간 둔하기까지해서 한번 놀고 버리기에 정말 완벽한 여자. 비좁은 전세집에서 살다 대궐같은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오니 집도 넓고, 값비싼 먹을 것도 많고.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성은 할 일 없거나, 일이 있어봤자 하녀인 인물들일 뿐이다.

돈, 권력, 섹스는? 다 청일점인 남자 훈에게서 나온다. 부인과의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아 하녀방에 가서 유혹을 하는 것도 남자고, 수표 한 장으로 차버리는 것도 남자고, "어찌 감/히/ 내 아이에게 손을 대느냐"라고 분노없이 쿨하게 내뱉는 것도 남자고, 오럴섹스를 받기만 하는 것도 남자고, 그러면서 두 팔을 올려세우는 것도 남자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며, 영화 속의 모든 심리적 갈등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롭다. 이건 불평등해! 이 계급구조가 현재 한국 사회를 닮았다고 생각하노라니 더더욱 불편하다.

김기영의 '하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비교를 하면 그 차이가 더 확연하지만, 이 영화는 그럴만한 가치조차 없으므로 패스~


2) 모든 걸 돈으로 !

집에서 부리던 하녀가 입원을 해도 찾아가보지 않고 으리으리한 꽃다발에 수표를 껴서 보내는 걸로 대신하는 집. 부적절한 성관계를 돈으로 마무리하는 집. 낙태를 하고 사라지면 1억을 주겠다는 집. 돈으로 모든걸 해결하려고 하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집. '이게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야? 집이야?' 싶은 집의 파사드는 돈으로 잉태된 권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런 집이니 눈 앞에서 분신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되려 "천한 것들은 안돼"하지.


난 하녀가 푸른 아이셰도우 그리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 집에 다시 들어올 때 뭔가 일을 좀 칠 줄 알았다. 임상수는 그런 나의 기대를 깡그리 짓밟아 버렸다. 그러고나서 보여주려했던게 계산된 반전이었다면 그는 상당한 실수를 했다. 복수같지도 않은 시시껄렁한 복수를 보여주는 결말은 썩어빠지고 유치하기 짝이없는 현 한국 정치권력에 저항하기를 포기하는 한국의 현실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국정원 촛불집회는 불과 아주 최근의 일이다.) 물론 임상수가 그걸 의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단순한 원색들의 배치로 시선을 잡아끄는 데코레이션과 카메라 앵글만이 감독의 감각을 보여줬다. 시각적 감각만으로 영상물을 만든다면 영화말고도 다른게 있을꺼다. 필연성없이 날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대사를 듣는 것도 참으로 불편했다. 임상수는 provocateur에 지나지 않는가 싶다.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세 배우로 지탱된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도, 재해석의 여지도 없었다. 원작을 따를꺼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고, 김기영의 '하녀'에 대한 반세기 후의 현대적 재해석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망, 실망, 대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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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의 남부 깐느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에 임상수 감독의 '하녀'팀이 5월 14일에 입장했다. 당일 깐느영화제 사이트에서 보기는 했는데 귀차니즘으로 이제야 포스팅을 함다. 겔겔~ 동영상 보고 싶은 분? 아래 클릭하세요. 끈기있게 보시다보면 전도연과 이정재를 시작으로 '하녀'팀이 3분42초에 등장해서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http://www.festival-cannes.com/fr/mediaPlayerForDay/2010-05-14.html.

주연 여배우를 포토콜 중앙에 놔주는게 예의인데, '하녀'팀은 감독과 연로배우가 중앙에 있군요. 헤어스타일, 썬글라스, 까만 와이셔츠에 무채색 넥타이의 감독님, 패션 센스는 매우 감각적입니다만 여배우에 대한 배려 제로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포토콜은 위 사이트에서 오른쪽 하단에 있는 '하녀'팀 사진을 클릭하시면 볼 수 있구요.
화살표를 클릭해가면 '하녀'팀 인터뷰를 비롯해서 기타 다른 동영상들도 볼 수 있습니다.
15분짜리 인터뷰를 봤는데, 임상수 감독의 태도가 무척 거만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듭니다.


사회자가 첫번째 질문으로 '50년 전에 나왔던 '하녀'라는 작품을 왜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이 진지하지도 않을 뿐 더러 대답 자체가 깊이가 없어서 영화를 찍기 앞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질 않아요.

50년 전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만큼 50년 전 사회와 현재의 (달라진) 사회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겠는가하는 질문에서도

임감독은 고개를 건들거리면서 매우 성의없는 답변으로 얼버무립니다.

'한국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회를 반영하는거다'라고 답하자,

사회자가 '그렇다면 국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찍은거냐'고 묻자

임감독은 1초간 머뭇하더니 '그렇게 안 보셨습니까?'로 받아치더군요.

그렇게 말장난으로 받아쳐서는 안되는 자리였는데...

프랑스 사회자가 혼잣말로 'Vous osez, vous osez'라고 하네요. 한국어 통역은 안 나갔습니다.

oser란 '자만하다' '뻔뻔하다'는 뜻입니다.
이 따위 대답으로는 영화 '하녀'가 깐느에서 상을 탄다고 해도 감독상은 택도 없을 겁니다. 


사회자가 윤여정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40년 전에도 같은 배역을 맡았는데, 40년 전과 지금, 그 역을 다르게 소화시켰느냐'는 질문에

윤여정씨는 '감독님께서 시키는대로 했다'고 답합니다.

매우 한국적인 답변이라는 것이라는걸 한국사람이라면 다 알지만

깐느측에서 보기엔 배우가 자신의 배역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했는지 고민이 전혀 없는 것으로밖에는 보여지지 않아요.

임감독는 이 말에 목에 힘이 불끈 들어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배우에게 역할 해석의 빌미를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는 건 감독의 능력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다음은 어제 입장한 '시'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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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