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10 배변훈련 2탄; 자율성의 원칙
  2. 2009.02.27 교육이 뭐길래?
Parents 교육/육아2009.07.10 01:39

남녀간의 사랑에 비해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다른 점은 '상대를 나로부터 떠나 살 수 있게 하는데 목적성을 둔다'라고 어느 심리학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아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유아든 청소년이든 자녀교육의 제1의 원칙은 자율성을 키우는데 있다. 부모가 뭐든지 챙겨주고, 먹여주고, 물질적으로 대주는 것을 '사랑'으로 여기는 부모들이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성인이 되어도 결국은 부모든 그 어느 누구든 누군가 옆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의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방치해버리는 꼴이 되버리고 만다.

 

지난 번 '배변훈련의 적절한 시기'에 이어 오늘은 배변훈련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한다. 우리 아이는 34개월에 배변훈련을 시작했는데, 만 1살 때부터 배변훈련을 했다는 한국엄마들의 사례는 '아니, 여태 왜 안 시켰어?'하며 나로 하여금 마치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있는 엄마인 양 무력감과 조바심을 갖게 만들었고, 만 2살에 대소변을 가렸다는 프랑스 엄마들은 나를 조바심이나 무력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애 덩지가 또래에 비해 컸던 터라 같은 나이에 덩지 작은 아이들이 기저귀 떼고 뛰어가는 걸 보면 '얘도 기저귀 떼야되는데...'하는 부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때(!)가 되면 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이런 저런 체험담을 들었더랬다. 

 

배변훈련에 관한 육아전문가 지나 포드에 의하면,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더라도 스스로 바지를 벗고 입지 못하거나, 낮잠 자는 동안 오줌을 싼다면 배변훈련이 된 아이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실제로 만 1살에, 만 2살에 똥오줌을 가리지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엄마들은 내게 말하길 아이들이 만 3살이 되던 그때까지도 엄마에게 밥을 먹여달라고 한다거나 (수저를 들고 혼자 밥 먹는 훈련은 만 12개월경부터, 즉 배변훈련이 되기 전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팔과 손을 뇌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시하는 신경근육의 발달은 괄약근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전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배변훈련을 한 지 1년이 훨씬 지나도록 화장실에서 엄마에게 바지를 벗기고 입혀달라고 한다거나 낮잠 잘 때 꼭 오줌을 싸서 기저귀를 채운다거나, 배변훈련이 된 이후로 (역시 그후로도 18개월이 지나도록) 큰 변기에 앉지 않고 유아변기에 앉아서 일을 본다고 했다. 지나 포드에 의하면 이들 케이스 모두 다 '배변훈련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배변훈련이 완전히 된 아이는 대소변이 마려울 때, 말로 표현하고, 화장실에 가서 큰 변기에 (처음 6개월간은 유아변기에) 올라가 일을 보고, 내려와서 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오는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아이다. 대소변에 관해서는 -엄마 아빠처럼-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자긍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배변훈련을 언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배변훈련시기를 얼마나 잘 마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변훈련을 일찍하면 엄마가 손이 덜가서 좋고, 다른 엄마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좋겠지만 아이가 배변훈련 시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아이는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 채 '엄마가 벗겨 주고 입혀주는대로' 오줌을 쌀 뿐이다. 아이가 대소변의 필요를 느낄 때,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 갈 시기를 결정하고, 아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입으며,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을 '이제 나 혼자 할 수 있어'라고 자긍심을 갖는 것이 배변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때문에배변훈련시기를 제대로 잘 넘어가지 못한 경우, 몇 개월이든 몇 년 후든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지나 포드는 경고한다.

 

우리 아이 배변훈련은 사실 만 2살이 되었을 때 시작했는데, 3주만에 접었다. 그애도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나 역시도 준비가 안 됐다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아이의 경우, 신체적으로는 준비가 되었지만 아이의 언어발달이 진행되고 있던 중이어서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거다. 일반적으로 국제커플의 경우,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늦어서 만 4살에서야 처음으로 말을 했다는 사례도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비하면 참 이르게도 1개국어를 하는 아이들과 같은 시기에 말을 시작했었다. 그것도 2개국어로. 만 2살이 되었을 때, 아이의 언어발달이 현저하게 발달했다. 특히 불어가 하루가 다르게 느는데, 아이는한국어와 불어를 동시에 발달시키느라 항문근육에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거다! 유아들은 단순하고 또 집중성이 강해서 한 가지를 익힐 때는 다른 것을 함께 하지 못한다. 눈물을 머금고 배변훈련을 접었다. 사실 그 눈물은 엄마의 자존심이 '실패'라고 여긴 탓이지 아이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였다.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던 어느날, '팬티 입어볼래?' 했더니 순순히 응하더라. 기저귀를 벗겨내고 팬티를 입힐 찰라, 아이가 오줌을 몇 방울 바닥에 똑똑 흘리는데 계속 흐르는게 아니라 그걸 참더니 화장실로 디립다 뛰어가더라는 말이다! 그걸보고 '아, 이제 얘가 배변훈련할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며칠 동안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쉬야는 그렇게 첫날부터 수월하게 되었고, 응가는 계속 팬티에 싸더라. 그건 순전히 심리적인 원인에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건 다음에 언제 얘기하고.. 팬티와 바지, 똥빨래를 해대고, 때로는 (길)바닥에 떨어지는 똥덩이를 훔치며 살던 두 달간의 스트레스란... 으으윽! 나를 죽여줘~~~ 

 

36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는 드뎌 그럴싸하게 똥을 변기에 싸주셨다. 야호다, 야호!!!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해서 애를 보는 애 아빠는 그 환희를 모른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결승까지가는 그런 기분이다. 두 달 간 내 애간장을 녹이더니 아이는 배변훈련을 완전히 마쳤다.어느날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났더니 "엄마, 잘 잤어? 나 쉬야했어." 깜짝 놀라 보니 바지가 안 젖어있었다. "어디다?" "화장실에서."응가도 마찬가지. 내가 일손이 너무 바쁘거나 잠들어 있으면 날 깨우지 않고 지가 스스로 휴지로 똥꼬를 닦고 내려와 팬티 입고, 바지 입고, 물 내리고, 손 씻고, 수건에 물 묻은 손을 닦고 나온다. 아직은 닦은 폼이 서툴기는 하지만 그쯤이야 저녁에 목욕하면서 다 날아가니 큰 문제 아니다. 껴있는 똥이 약~간 덩어리가 큰 경우엔  '엄마가 해줄께'라고 하지 않고 '엄마가 조금만 도와줄께'하고 닦는 법을 일러준다. 대신 해주는 것과 도와주는 건 엄연히 다르다. 내가 계속 대신 해주면 빠르고 정확하긴 하지만 아이는 자긍심과 독립심을 잃는다. 부모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자'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배변훈련을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 아이보다 1년에서 1년 반이나 먼저 배변훈련 시작한 아이들에 비해 대소변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걸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다. 배변훈련을 시작하려는 어머님들께 건투를 빈다. 그날은 온다. 인내와 지혜로 버티시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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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Actualités 시사2009.02.27 17:13

그동안 목이 근질근질하게 쌓여왔던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교육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이게 아닌데..' 싶어 한국의 미래가 암담해보인다. 그렇다고 현재가 밝은 것은 아니다만 미래마저 암담하게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근데 어느 누구도 '이것은 잘못됐어!'라고 저항하기는 커녕 그 제도 속에서 고통받기를 자처하며 다들 하나같이 '경쟁 속에서 이겨야 해!'하는 목적 하나로 살아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이웃인쌀로쥐님의 신념있고 개똥철학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바로 이거야! 그렇지!' 응원한다.

 

내가 한국 밖에 있어 좋은 점는 우리 아이를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산술학원, 영어학원, 웅변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주위에서 어느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없고 신념대로 교육을 시켜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환경이 아니어서 좋다는거다. 매달 장난감과 책을 사주는데도 알뜰히 계획하고 예산 안에서 사는 판에 학원비 매달 50만원, 100만원이 왠말?

 

하지만 경쟁에 익숙하게 살아왔고, 그 경쟁에서 '이겨야만 산다'고 철떡같이 믿는 한국엄마들은 프랑스에 와서도 치맛바람 일으키며 그 버릇 못 버리는 이들이 있다. 유명하다는 학교 보내려고 기를 쓰고, 학교에서 부르지 않는데도 선생님 찾아가고, 남들 하는거 나도 하고, 남의 자식이 시키는거 나도 시킨다.아이들끼리 성적으로 비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과 내가 사는 수준도 비교하고 산다. 왜들 그렇게 피곤하게 사나? '학원비 달라고,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다른 애들과 어떻게 경쟁하냐'는 자식놈에게 '경쟁하지 마~~~아!'라고 답했다는이외수님의 철학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부모의 사랑이 연인의 사랑과 다른 점은 그 대상이 자기를 떠나가서 잘 살게 하는데 있다,고 어느 아동심리전문의가 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연인의 사랑은 그가 내 곁에 영원히 남아있기를 갈망하는 반면에 부모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자식이 부모를 떠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는거다. 정말 그렇다.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부모로서 자녀교육은 아이가 보고 느끼고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모든 것이다. '앞으로 똑바로 걸어'하면서 옆으로 걷는 게같은 부모 밑에서 자식은 옆으로 걷는 법을 배운다. 근데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좋은 교육은 학원과 과외, 등급좋은 학교에서만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사교육비에 매달 100만원씩 들어가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니면, '그게 아니야'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되나.

 

아직 자녀가 중고등학교를 가지 않아서 이상적인 말만 하고 있다고 나를 비난하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녀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제1목표는 '자율성과 자립성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특출난 성적, 높은 월급을 받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하든 -빵가게 주인이 되든 택시운전기사가 되든- 사람들과 더불어 살 줄 알고, 행복하게, 자율적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자신의 자녀는 하나같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가? 왜 자기 자식은 특별날 것으로 여기나? 돈 많이 벌고 유명해도 행복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 못 봤나?학원 수강을 하든 뭘 하든 만일 무엇을 해야만 한다면 '왜?'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며, 그 목적은 '상대편보다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어야 한다는거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2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도 수두룩한 남학생들 제쳐두고 공대에서 내가 수석을 도맡아하곤 했다. 나에겐 경쟁의식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1등을 할 수 있었다.1등을 하고 싶어서 3당4락으로 공부한게 아니라 6~7시간씩 자면서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1등이 되더라는거다. 굉장히 역설적이지만 그건 내 철학이기도 하다.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가진 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할래도 할 수가 없다.대학가려고 과외 한번 한 적 없고 -과외수업을 준 적은 있다-, 학원이라곤 보충이 필요해서 두 달 다녔나.경쟁의식을 갖고 발전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1등까지 오르기까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시험보고 나면 '넌 뭐라고 답썼니?' '몇 점 나왔니?' 나하고 비교하며 나보다 높은 점수와 높은 등수를 받으려고 벼르고 벼르다못해 얼굴이 노랗게 뜬 학우들이 떠오른다. 집에서 밤새 공부하느라 잠 못 자고, 학교에 와서는 밤 잠 못 자 피곤해서 졸고..스트레스 없이 1등하는 법은 무엇일까? 내가 싫어하는 굉장히 한국적인 질문이지만 한국인에게 먹히기 위해선 한국적인 질문의 형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답은자기와 싸우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스케줄을 관리하고, 자기한계를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며, 무엇이 부족한 지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자기와 싸우는 것. 그래야 자기 인생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 남과 비교하려면 끝이 없고,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심신이 피곤하다. 그건 자기 삶이 아니다. 남의 삶을 흉내내하려는 몸짓에 지나지 않을 뿐. 경쟁자가 평생 따라다닐까? 절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경쟁자를 만들며 산다. 이 사람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고.부모가 시켜서 하는 것, 그것도 자기 삶이 아니다. 부모는 대체 언제까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꺼며, 대체 언제까지 뼈가 빠지게 일해서 자식 사교육비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식은 언제까지 부모가 원하는대로, 부모가 등 떠미는대로 살아줄건가?

 

공부하는 기계, 경쟁하는 기계를 양산하는 한국의 교육 문화는 -교육제도라고 하지 않았다- 한국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유아 때부터 학원에 보내고, 영재교육을 시키는 한국은 30년 후, 미국을 능가하는 초초강대국이 되든가 반대로 김민기의 노래처럼 같이 사는 물고기를 물어죽인 후 '물고기가 썩어가며 물도 따라 썩어 아무도 살지 않는 연못'이 되든가 할 것 같다. 남과 경쟁하고, 남하는 만큼 하려고 기를 쓰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르게 특차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나는아이가 가능한 한 많은 걸 느끼고, 풍부한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산과 숲, 강과 바다를 체험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무와 돌, 종이와 금속, 옷감과 털실의 차이를 느끼며,음악만이 소리가 아니며 각종 소음과 소리를 감지하고, 잔디를 밟을 때와 모래밭을 밟을 때의 차이를 느끼고, 새와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눈과 비를 만지고 느끼고, 그 안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즐기며, 나뭇가지와 돌맹이를 갖고도 어디서든지 놀 수 있는 그런 아이말이다. 꽃과 나무가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열매가 맺히고 맺힌 열매는 언젠가 떨어지며 피는 잎사귀는 언젠가 지고, 매마른 나뭇가지에 시간이 가면 다시 잎이 돋는 돌고 도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고, 그 안에 담긴 철학을 깨닫길 바란다.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 그리는 법'을 따라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창조하길 바란다. 웅변학원에서 배운데로 '이 연사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 기분 상하지 하으며 말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자기 소리 내기를 바란다.피아노학원에 가지 않아도엄마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두들기면서 음악과 소리를 마음으로 듣기를 바란다. 자기가 놀고 어지러워진 자리를 치울 줄 알기를 바란다. 교육은 시키다고 되는게 아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의 동력으로 굴러가야 하는거다. 혼슈의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스스로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창문을 열어 길을 보여주고, 긍정의 힘으로 옆에서 북돋아주고 칭찬하며 도와줘야 한다. 도와준다는 건 대신 해주는게 아니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거다. 근데 그걸 한국 부모들은 돈 주고 학원에다 맡겨놓으면 아주 쉽게 해결이 될꺼라고 철떡같이 믿으며, 학원을 갈 수 있도록 돈을 벌어대는게 부모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여기는 것 같아 참 안스럽다. 아이들을 물질에 의존하게 키우지 말자. 부모의 역할이란 뭘까, 내가 왜 아이에게 이런 이런 것을 시키는걸까, 좀 곰곰~~~히 심리적으로 분석하고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아이와 함께 넓은 세상을, 먼 미래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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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