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varde 잡담2012.02.24 19:08
시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산소마스크 끼고 오늘 낼 하신다는 소식을 출국하면서 들었고, 귀국날 새벽에 부고 메일을 받았다. 한평생 칠십을 채우기도 힘든데, 1살 연상과 결혼해서 70년을 해로하셨다. 남편은 오늘 장례식에 참석하기위해 아침 8시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귀국하고 시어머님께 '장례식에 내려갈까요?' 물으니 "애들이 어려서 증조 할아버지 모습을 보면 무서워할꺼다. 뼈에 가죽만 씌운 듯이 앙상하시거든. 오지말라고 하면 듣기 서운하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너는 파리에 있거라. 대신 시할머님께 위로의 카드를 우리애(=그니까 나한테는 남편)를 통해서 보내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구나."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차분하게 말씀하시는게 퍽 인상적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지금의 시댁 식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보내러 내려갔을 때, 시할아버님을 처음 뵈었다. 그때만해도 건강하셨고, 유머감각이 넘치셨다. 옷매무새 단정하고, 사교성 좋은 시할머님의 모습과 개구장이같은 시할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야지'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인천공항에서 나오면서 사서, 다 적고 부치지도 못했던 관광엽서 한 장을 골라 위로의 말을 적었다. 그리고 증손주들을 찍은 디카 이미지를 출력해서 같이 보내드리려고 사진출력소를 찾았다. 부랴부랴 동네 출력소에 도착한게 12시, 점심시간 문닫는 시간이 12시30분이라고 문에 적혔다. 휴우~ 안도의 한숨도 잠시. 급하게 나오느라 USB는 들고 나왔는데 지갑을 안 들고 나왔네! 집에 다시 갔다와도 되느냐 물으니 어두운 얼굴로 '죄송하지만 오늘 오후에 장례식이 있어서 12시에 문을 닫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후 5시에 다시 문을 엽니다.'

아, 당신도 장례식?!!

"저도 시할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님께 사진을 내일까지 부쳐드리려고 하는데, 문을 그렇게 늦게 열면 우체국에서 편지를 걷어가는 시간이 지나 내일까지 도착할 수 없을텐데 어쩌나..." 하고 있는데 그는 습관처럼 바로 디카 이미지 출력을 돌리면서 "오후 3시15분에서 30분 사이에 문을 열테니 그 15분 사이에 오세요." "아, 그럼 우체국에서 편지를 걷어가기 전에 부칠 수 있겠네요. 그럼 그때 돈을 갖고 와서 사진을 찾아갈께요."하니 그새 벌써 다 출력된 사진을 건내면서 '이따 오시겠지요? 믿겠습니다.' 단골이 아니구서 프랑스에서 이렇게 장사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아니, 없다.

사진을 받아 집에 들러 동전지갑과 지갑을 들고 12시30분에 문닫는 우체국으로 유모차와 함께 들고 뛰었다. (그 사이에 집에서 큰애 코피 한 번 터져주시고~) 카드를 부치려고 지갑을 여니 아뿔싸! 지갑에 돈이 없다. 귀국하고 유로화를 채워넣지 않았던 것. 다행히 동전지갑에 들어있는 동전으로 빠른우편값을 치루고 돌아와 오후 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아이 둘을 대동하여 '얘들아, 엄마 외상 갚아야돼. 어서 가자, 어서 어서~' 부랴부랴 사진가게에 도착하니 3시 25분.

당연히 내야할 돈을 내는데 그가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참고로, 프랑스에선 뭐든지 받으면 'Merci'라고 한다. 외상 떼먹지 않아서 아마도 특별히 더 감사?) "제가 되려 감사하지요." 3유로 8쌍팀을 내면서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니 '감사합니다'한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언제고 다시 출력하러 오세요." 그가 내게 고마왔나보다. 나는 그가 고마왔는데.

어두운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주 친한 사람이 돌아간 것 같다.
같은 날 장례식을 치루는 두 사람의 신용거래, 참으로 우연하고 신기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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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