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16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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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10.17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의 모든 것 (2) - 선거비용
  3. 2016.02.08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의 모든 것 ① (1)
  4. 2015.12.17 직업 없는 서른살 남자, 이렇게 행복해도 돼?
  5. 2015.12.17 전환을 향해서.2]프랑스, 천연효모 유기농 수제빵집을 가다
  6. 2015.12.17 현장 사진) 파리 테러, 그 다음 날
  7. 2015.12.17 프랑스 지방선거) 사회당의 패배, 극우파의 득세
  8. 2015.12.17 현장사진:COP21) 파리회의, 안녕~ 가두시위
  9. 2015.11.18 파리 테러 다음 날, 현지인들 반응
  10. 2015.11.18 "프랑스에서 '국정화'? 교사가 가만 안 있는다"
  11. 2015.11.17 전환을 향해서.1]음식물 쓰레기 갖다 버려도 되는 까페, 중고품 창조공간 - 라 르씨클르리
  12. 2015.11.01 유로는 가라! 지역화폐 '페쉬'
  13. 2015.09.02 보르도 최초의 친환경 주택단지 '징코'
  14. 2015.08.24 녹색당 후보로 프랑스 도의원선거에 출마하다 (녹색전환연구소)
  15. 2015.05.15 프랑스 도의원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하다
  16. 2013.07.25 에누리도 덤도 없는 프랑스에서 - 인정(人情)
  17. 2013.01.25 연극판을 떠나 농부가 된 프랑스 유기농부의 귀농이야기
  18. 2012.11.13 땅의 원리에 맞춰가는 사람들 – 아맙 (귀농통문)
  19. 2012.06.29 해가 지는 세느강 바지선에서 한국 입양인들과 (3)
  20. 2012.02.24 당신도 장례식?! 같은 날 장례식을 치루는 두 사람의 신용거래 (1)
  21. 2011.12.29 김상수 칼럼 이후 갑논을박의 끝에 서서 -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22. 2011.11.13 파리 '우리는 99%' 시위현장 (Occupy France)
  23. 2011.08.20 프랑스, 무상급식을 거부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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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11.08.09 [믿거나 말거나] 프랑스의 X같은 서비스, 설마 그런 일이? (2)
  28. 2011.07.01 숲은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 (4)
  29. 2011.06.23 시 예산이란건 이런데다 쓰는거다 - 빠리 쁠라쥬 (4)
  30. 2011.06.22 프랑스는 지금 광란의 도가니 (6)
France 프랑스2016.10.17 23:00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투표와 개표는 그 꽃의 꽃,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프랑스 선거, 그것이 알고 싶다!' 마지막 편으로 프랑스의 투표방법, 투표용지, 투표함, 해외국민투표 등 투표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 한국인이 보기에는 이곳의 투표방법이 생소하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스템이 좋고 나쁘다를 가르기에 앞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투표용지의 예. 2015년 3월, 프랑스 지방 선거에서 내가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우리의 투표용지. 이렇듯 각 정당마다 자신의 후보들의 투표용지를 디자인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투표용지는 단색이어야 하고, 선거 전에 모든 후보의 공약과 함께 가정으로 배달된다. 투표하는 날, 여러 당의 투표용지 중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접어서 투표봉투에 넣은 뒤 투표함에 넣는다.



12. 투표용지 

한국은 투표용지 한 장에 여러 명의 후보가 적혀있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해 투표소에 비치된 도장을 찍지 않는가? 이러한 기표식 투표방법에 반해 프랑스에는 투표용지 선택 투입식 투표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용지가 후보의 수만큼 나오고,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준비된 종이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는다. 선택되지 않은 후보들의 투표용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 제1편에서 보았던 선거 포스터와 선거 후보 리스트 용지를 기억하는가?(관련기사: 프랑스에선 후보 기호를 '제비뽑기'로 정한다). 앞면에 선거 포스터, 뒷면에 후보의 공약이 적힌 종이 한 장, 후보 리스트가 필요한 선거의 경우 후보 리스트가 앞뒷면에 실린 종이 한 장, 그리고 그 정당의 투표용지 한 장, 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모든 후보의 해당 용지들을 종이봉투 하나에 담아 각 선거인에게 우편 발송한다.  

이 세 가지 용지는 선거법이 정하는 크기와 규정에 맞춰서 각 정당에서 알아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디자인한 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색 선택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투표용지는 어떤 색을 선택하든 간에 한 가지 색이어야 하고, 선거 포스터의 경우, 빨강, 파랑, 하양, 세 가지 색이 포스터에 동시에 있으면 안 된다고 선거법이 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3. 투표방법 

이렇듯 투표용지가 가정에 미리 배달되기 때문에 선거일 전에 내가 선택할 후보의 투표용지를 미리 눈에 익혀둘 수가 있다. 그걸 들고 투표소에 가는 것은 아니고, 투표소에는 신분증과 선거인 카드만 달랑 들고 가면 된다. 선거인 등록을 한 경우에 선거인 카드를 분실했다면 신분증만으로도 투표할 수 있다.  

투표소에는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없고, 대신 묘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투표소에 도착하면 입구에 긴 테이블이 있고, 각 정당의 투표용지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애들 손바닥만 한 우편봉투를 우선 하나 집고, 내가 누구를 찍을지 알 수 없게 모든 정당의 투표용지를 하나씩 집어 든 뒤 커튼막에 들어가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우편봉투에 넣고 나머지 투표용지는 내 주머니에 넣든, 내 가방에 넣든, 투표소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버리든 하면 된다. 

이래서2차 선거의 경우, 후보가 대개 둘이기 때문에 투표소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투표용지를 보면 어느 후보의 지지도가 높은지 얼추 알 수 있다. 

커튼막에서 나오면 긴 테이블에 다섯 명의 투표소 보좌인이 기다린다. 첫 두 사람 앞에는 선거법 책이 놓여있어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 바로 선거법을 열람할 수 있다. 가운데 사람은 투표소장으로 투표함 앞에 앉아있으며, 마지막 두 사람은 선거인 목록을 갖고 있다. 

선거인이 투표함에 다가가면 앉아있던 투표소장은 일어나서 선거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소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선거인의 이름을 부른다. 선거인 목록을 가진 사람에게 선거인 카드를 주면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선거인 목록에서 선거인의 이름을 찾는다. 목록에 적힌 선거인의 이름과 신분증, 선거인 카드에 적힌 이름이 같다고 확인되면 투표소장은 투표함 윗면에 있는 작은 레버를 당긴다. 투표함의 작은 틈이 열리고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봉투가 떨어진다. 투표소장이 레버에서 손을 떼면 틈이 닫히고, "홍길동 투표했습니다"라고 크게 말한다. 


이제 선거인 목록에 사인해야 하는데, 서명을 크게 할 수도, 길게 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 가로 약 30cm, 세로 약 5cm 되는 긴 투명한 플라스틱 자에 5cm x 1cm 정도의 직사각형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자를 선거인 목록에 올려놓고 그 칸 안에서 사인을 해야 한다. 타인의 서명란을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명하고, 선거인 카드에 투표 일자가 찍힌 스탬프를 받고 투표소에서 나온다.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투표봉투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매우 작다. 그 또한 레버를 당겨야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틈이 닫히고 레버 옆에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당일 저녁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이 투표함은 절대로 있던 자리를 뜰 수 없다.





14. 사전 투표? 대리 투표? 

선거인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출두할 수 없는 경우, 한국에서는 사전 투표를 하는 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를 한다. 한국의 위키페이아에 의하면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는 '부정 선거의 위험 때문에 정치적인 선거에서는 금지'한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사전 투표를 허가하지 않고 위임 투표를 하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투표는 투표 당일에 한해서 투명한 투표함에 들어가야 유효하다는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 같다. 

대리 투표 조건은 선거인등록을 한 사람이어야 하고, 같은 선거구에 있어야 하며, 또 다른 대리 투표를 위임받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소는 달라도 같은 선거구에 등록된 선거인은 대리 투표를 할 수 있으며, 한 선거에서 단 한 사람의 투표만을 위임받을 수 있다. 

대리 투표를 신청할 경우, 투표 전까지 투표대리인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을 경찰서에 등록한다. 투표 당일, 투표대리인이 위임자의 투표소에 가면 경찰서에서 받은 대리 투표자 목록과 대조한 뒤, 선거인카드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위임투표를 한다.  



15. 투표함 

고대 그리스에서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불투명한 항아리를 투표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명한 투표함을 사용하고, 윗면에 레버를 당기면 투표용지가 들어갈 만한 틈이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다시 틈이 닫히면서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레버가 한번 당겨질 때마다 몇 개의 투표가 그 안에 들어갔는지 센다는 얘기다. 투표를 시작하기 전에 투표함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지, 레버 옆에 숫자가 영(0)인 지 확인한 뒤, 투표함을 열쇠로 잠근다. 

우리 딸애가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반장선거를 하던 날, 시청에서 초등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줬다. 아이들은 '진짜 투표함'으로 반장선거를 치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체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참고로 프랑스의 모든 시청이 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딸애 학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6. 투표일, 투표시간, 투표소

투표일은 늘 일요일, 투표시간은 아침 8시부터, 대도시의 경우, 저녁 8시까지 12시간 동안 투표소가 열려있고, 인구가 작은 소도시나 마을의 경우,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 기타 대중을 위한 시설과 마찬가지로 투표소 또한 지체장애인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문제없이 출입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용이해야 한다. 

참고로, 호텔, 사무실, 상가, 영화관, 식당, 화장실 등 대중에게 열려있는 시설은 지체장애인에게도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프랑스 법이 명시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 제한된 기간 내에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17. 개표 


선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은 개표가 아닐까 싶다. 저녁 6시 혹은 8시에 투표소가 문을 잠그면 그 순간부터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다.

투표소장과 투표소 비서를 제외하고 투표소 보좌인이 되고 싶으면 선거인 등록된 자에 한해 선거일 24시간 전까지 시청에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가 많으면 시간표를 짜서 교대근무를 설 수 있어서 좋다. 개표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청에 미리 신청할 수도 있고, 투표 당일 아침까지 신청할 수도 있다. 개표 참관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다. 모든 개표는 반드시 수개표를 하며, 시의원이나 정당의 후보나 대리인은 개표에 참관은 할 수 있되 절대 개표에 간여할 수 없고, 개표는 오로지 시민만이 할 수 있다. 

투표소 내에 테이블을 2~3개 설치하고, 테이블마다 4개의 의자를 준비하는 동안 투표소장은 열쇠로 투표함을 열어 투표봉투를 꺼낸 뒤 참관인들이 보는 앞에서 100개 단위로 묶어 각각 우편봉투에 담는다. 각 테이블에 투표 100개들이 우편봉투 하나씩을 나눠준다. 

첫번째 사람이 투표봉투에서 투표용지를 꺼내 기권이나 무효표인지를 확인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 건네면 두 번째 사람은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을 부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개표결과를 적는 용지를 받아들고 있다가 호명된 후보가 해당하는 칸에 작대기를 긋는다.

100개의 투표용지를 개표하고 나면 투표소 비서는 작대기를 그은 두 사람의 결과가 동일한 지 확인하고, 기권과 무효표를 포함해서 총합이 100개가 되는지, 투표용지도 100개가 되는지 확인한다. 결과를 투표소장에게 넘긴 뒤 새로 100개의 투표용지 묶음을 받아 개표한다. 

개표가 완전히 끝나면 테이블마다 두 개씩 배부된 개표결과 용지에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무효표 봉투에도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투표소장이 개표 결과를 전화로 시청에 알리고 나면 개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건물을 나갈 수 있다. 시청은 모든 투표소의 개표결과 집계를 당일 밤 지체없이 시청 앞에 게시한다. 


18. 해외국민투표 


한국도 2012년부터 해외국민투표를 시행해오고 있는데, 재불 한국대사관 공무원의 말에 의하면, 해외국민도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류를 만들어 청을 넣은 이들이 바로 재불 한인들이라고 한다. 

이번 총선의 경우, 유권자 등록 신청이 11월 15일(일)부터 2016년 2월 13일(토)까지 91일간이었고, 투표는 3월 30일(수)부터 4월 4일(월)까지 6일간 해외공관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해외국민투표 경험담을 말씀드릴까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해외국민투표에 참여했던 바에 의하면, 투표용지는 한쪽 모서리에 일련번호가 적혀있고, 선관위의 빨간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 모서리는 점선에 따라 뜯어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한 교포가 투표했을 때는 빨간 도장이 아닌 흑백의 복사본이었다고 내게 증언했다. 

투표함은 흰 종이로 엉성하게 싸여있고 투표봉투를 집어넣는 틈은 여자 손이 하나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열려있었다. 투표소 보좌인으로 있었던 지인의 말을 빌리면, 투표함은 매일 저녁 개봉되어 표를 다른 자루에 담고 빈 투표함은 다음 날 투표를 위해 다시 포장된다고 했다. 해외국민투표가 끝나면 자루에 담긴 표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표하기 위해서. 

자, 그럼 프랑스의 해외국민투표는 어떻게 진행될까? 

유권자등록은 선거 전년도 마지막 날까지이다. 내년에 프랑스 대선이 있으니 유권자 등록은 올해 12월 31일까지다. 프랑스의 선거일은 늘 빨간 날(일요일)이고, 전 세계 재외 프랑스 국민도 동일한 날, 즉 일요일 하루 동안 선거를 치른다. 시차가 있어서 시간은 각 도시의 현지 시각을 따른다. 

개표도 프랑스 선거법을 따른다. 투표가 끝나는 즉시 투표소의 문을 잠그고 프랑스 재외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개표하고 결과를 프랑스 선관위에게 전달한다. 투표함은 투명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투표 시작부터 개표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투표가 끝나는 정시에 투표소 문을 잠그고, 투표함을 열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4인 1조로 수개표가 진행되며, 정부 및 정치 관련인은 절대 개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것이 프랑스 개표의 원칙이다. 

4월 13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한국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할 수가 없다. 2012년 해외국민투표를 마치고 나왔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지난 10년 넘게 모국에도, 체류국에도 투표를 할 수 없었던지라 그 감격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해외국민투표를 끝으로 나는 프랑스 국적으로 지방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으며, 7.30%라는 지지를 받았다. 투표소 보좌인도 해봤고, 개표에 직접 참여도 해보았다. 선거가 어떻게 준비되고, 선거자금이 어떻게 유통되고 운영되고 감독받는지, 투표와 개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험을 통해서 그 어떤 프랑스인보다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 독자들에게 총 3회에 걸쳐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내 나라 한국에서 민주주의 꽃을 시민의 손으로 부디 아름답게 피워내기를 멀리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소망한다. 



2016년 3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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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6.10.17 22:52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의 선거에 관한 모든 것! 이번에는 제2편으로 선거비용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7. 선거비용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프랑스에서 선거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 : 캠페인 계좌 협회와 대리인. 두 가지 방식 중에 어느 것을 쓸지는 선택의 문제다.


1) 캠페인 계좌 협회

같은 정당의 여러 후보의 선거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하나의 협회를 만들고, 그 협회에서 다수 후보의 선거자금을 관리한다. 

2) 대리인 

후보가 선거자금 대리인을 지정한다. 선거운동 중 지출이 필요한 경우, 선거자금 대리인이 수표로 지급한다. 


두 경우 다 선거자금 운용의 법적 책임은 소속정당이 아니라 후보에게 있다. 

내가 후보로 출마했던 2015년 3월 도의원 선거의 실례를 들어보자. 이블린 도의 모든 녹색당 도의원 후보들의 선거자금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협회를 하나 설립했다. 그렇다고 하나의 은행계좌에서 여러 후보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블린 도의 선거구마다 각 선거자금 은행계좌를 만든다. 지출이 있는 경우 수표로 후급 정산하고, 계좌 폐쇄까지 총관리했다. 

선거자금 예산은 원칙적으로 각각의 후보가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내 경우, 윤리적인 은행에서 대출하려고 했는데 대출 최소금액이 우리가 필요한 예산의 10배를 웃돌았기 때문에 이블린 도의 모든 녹색당 후보들이 필요한 예산을 합해 정당의 이름으로 한 번에 대출을 받았다. 이어 녹색당은 이블린의 각 선거구 후보들에게 대출계약서를 쓰고 선거자금을 빌려주었다. 그래서 나도 내 개인 통장으로 2500유로(한화로 약 341만 원)를 받았고 다시 선거자금 계좌에 고스란히 2500유로를 입금했다. 이후 관리는 캠페인 계좌 협회에서 일체 관리했다. 

선거가 끝나고 약 한 달 뒤, 캠페인 계좌 협회는 각 선거구 후보가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모든 증빙서류를 준비하도록 상세 서류목록을 알려준다. 서류를 다 준비한 뒤 전문회계사와 약속을 잡아 만나러 가면, 전문회계사는 후보가 준비해온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여 제출서류가 완비되었는지 확인한다. 

후보는 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1차 선거일로부터 10번째 되는 금요일까지 CNCCFP (Commission nationale des comptes de campagne et des financements politiques), 즉 선거비용과 정치자금을 담당하는 국가위원회에 우편으로 보낸다. 이때 우표는 붙이지 않는다. 





CNCCFP는 선거자금 환불뿐 아니라 선거자금 감사를 맡는다. 선거자금과 관련해서 특정액에 관련된 의문사항을 후보에게 우편으로 질의하면 후보는 지체없이 답신을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5% 이상의 지지를 받고, 선거자금 지출이 선거법이 정하는 최대금액(A)을 넘지 않으면 국가는 최대 제한금액(A)의 47.5% 한도 내에서 환급해준다. 다시 말해서 선거법이 정하는 최대 제한 금액의 절반 이하의 선거자금을 쓴 경우, 전액 환급된다. 

필자가 출마했던 선거구는 인구 6만3564명으로,선거자금 최대지출 한도액이 3만8768유로 62쌍팀('쌍팀'은 센트에 해당되는 프랑스어로, 1유로는 100쌍팀). 환급 최대한도액은 1만8416유로였다. 필자의 선거자금 총액이 2280유로라서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선거 자체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항목은 각 후보의 선거비용에서 제외한다. 선거 공식게시판에 붙이는 포스터, 각 가정에 배달되는 공약 홍보물, 선거용지 등은 국가에서 결제하므로 후보의 부담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공식게시판 이외에 포스터를 더 붙이고 싶어서 포스터를 추가 주문하게 되면 추가분은 선거계좌의 지출목록에 올라간다. 공약 홍보물을 환불받기 위해서는 재활용 섬유질이 최소한 절반이 넘는 종이이거나 지속적인 관리 국제인증을 받은 숲에서 베어낸 나무로 만든 종이여야 한다. 



8. 선거자금의 한도액이 있나? 

있다. 선거인 수에 비례해서 선거법이 선거자금 한도액을 정하고 있다. 이 한도액은 2~3년마다 바뀐다. 만일 선거비용이 선거법에서 정한 한도액을 넘은 경우, 선거자금 일체를 환불받지 못할 뿐 아니라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당선이 취소된다. 

최근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가 대선 선거자금 위반으로 법정에 서게 됐는데, 2012년 당시 사용한 선거 비용이 선거법에서 정한 한도금액을 넘어섰다는 혐의 때문이다. 대선 캠페인 당시 사르코지는 비그말리옹에 UMP(대중운동연합) 정당 모임을 의뢰했는데, 정당 모임을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화려하게 가졌다.

맞수인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가 2012년 1월부터 4일까지 10번의 정당 모임을 가졌던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는 43회의 정당 모임을 가졌다. 게다가 특수조명, 대형 스크린, 정당 모임을 위해서 작곡한 음악, 비디오 촬영까지 동원했다. 단적인 예로, 안시와 빌팡트, 단 두 도시에서 열었던 UMP 정당 모임에만 자그마치 50만 유로(약 6억8천만 원)가 들었다. 




참고로 1차 선거 당선자의 선거자금 총액은 2250만 유로(약 307억 원)를 넘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대선 캠프 관계자가 지난 대선에서 선거비용 초과 사용을 은폐하려 비그말리옹에서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행사를 연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서 1850만 유로(약 253억 원)의 영수증을 위조했다는 것. 사르코지는 선거자금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이 사건으로 비그말리옹과 UMP 관계자 13명이 기소됐다. 

흥청망청 정당 모임의 기획을 맡았던 이벤트 회사 비그말리옹은 사르코지의 UMP동료이자 한때 UMP의 당대표이기도 했던 프랑수와 코페의 친구 둘이 경영을 맡았다. 현재 모(Meaux) 시의 시장으로 있는 코페는 2012년 11월, 당내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부정을 일으켜 18개월 만에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2017년 대선을 딱 일 년 앞두고 4년 전에 사르코지가 위조했던 영수증과 USB키를 발견돼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UMP는 현재 '공화당'이라는 이름으로 당명을 바꾼 상태다. 


9. 기탁금은 얼마인가? 

없다. 프랑스에서 '선거 기탁금'이란 제도는 없다. 대신 최소 5%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선거자금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은 후보가 갚는다. 단, 대선은 예외이다. 

대선은 선거구가 넓고, 참여하는 선거인이 많으며 선거자금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워낙 크다. 그러다 보니 1차 선거에서 5% 이상 지지를 못 받고 낙선했더라도 2012년 대선의 경우 지출 최고 한도액의 4.75%인 80만422유로50쌍팀까지 환불해주었다. 5%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경우, 지출 최고 한도액의 47.5%까지, 즉 800만4225유로까지 환불해주었다. 


10. 개인이나 기업에게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나? 

4600유로에 한해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의 한계액은 150유로, 그 이상인 경우 반드시 수표로 지불해야 하며, 개인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이 선거자금 지출총액의 20% 이하여야 한다. 

반면에 1988년부터 개정된 선거법에 의하면, 기업으로부터는 일체의 기부금을 받을 수도 없고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다.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거나 공간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경우,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서비스가가 시장가보다 훨씬 높거나 낮으면 CNCCFP에서는 그 사유에 대해서 물을 것이고, 사유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그 액수만큼은 환불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선거활동이 아닌 경우, 정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는 있다. 한 해 한 정당에게 기업은 최대 7500유로, 가족은 1만5000유로까지 기부할 수 있다. 


11. 후보 자신의 재산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나? 

은행 대출 안 받고 자기 돈이 충분히 많아서 자기 돈으로 선거하겠다면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돈을 선거계좌로 집어넣으면 되니까. 단, 후보는 선거기간동안 선거계좌에 들어간 돈을 단 한 푼도 만질 수 없고,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도 쓸 수 없다. 캠페인계좌 협회와 대리인만이 선거비용을 관리할 수 있다. 



다음 편에는 '프랑스 선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종결판으로 투표방법, 투표용지, 투표함, 해외국민투표 등 투표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한다.




2016년 2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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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6.02.08 23:02

지난해 이맘때쯤 프랑스 도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후보 등록 마감을 불과 일주일 앞둔 때였다. 평생 선거 캠페인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집안 어른이나 지인 중에도 정치는커녕 이장 한 번 지내본 사람이 없었다. 

정치인이 되려고 마음먹고 저지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2015년부터 선거법이 바뀌어 남녀 1조로 후보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마저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 선거구에서 녹색당이 후보 명단에서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후보 수락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아니까.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내가 사흘 동안 고민 끝에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원인은 나를 추천했던 동료의 추천사에 있었다. 

"정치는 '정치가'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2015년 이블린 도의원선거 후보 기자회견 사진 이블린(Yvelines)에서 가진 녹색당 도의원선거 출범식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체 기념촬영. 이블린은 파리 서쪽에 위치한 데빡뜨멍(departement; 도)으로, 이곳의 수도는 베르사이유다. 위 사진의 링크> http://yvelines.eelv.fr/les-ecologistes-battent-la-campagne-yvelinoise/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봐. 그 때문에 나도 지난해에 시의원으로 출마했고, 시의원이 됐어. 나는 네가 녹색당 여성 후보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너의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몹시 필요해. 넌 아주 좋은 여성 후보야."

내 선거 파트너는 운도 대단히 좋지. 마침 그때 내가 백수여서 두 달간 밤낮으로 선거 운동에 오체투지를 할 시간이 있었다. 내 선거 파트너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단칼에 무시해버리는 선거 운동을 다 해내는 고집과 '포스'가 있었다. 

집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경시청(Prefecture of Police,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 조직)에 후보등록부터 시작해서 포스터에 들어갈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뿌리고, 보도 자료를 만들고, 시민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준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열어 운영하는 등 선거 캠페인의 모든 과정을, 선거 8개월 후 국가로부터 선거 자금을 환불받을 때까지 혼자서 다 해냈다. 



015년 우이(Houilles) 선거구 도의원선거 포스터 내가 2015년 도의원선거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선거 포스터. 우이 선거구에는 우이, 까리에르 쉭센느, 몽테쏭의 세 도시가 포함된다. 이 사진 촬영과 색보정을 내가 직접 했다.



녹색당 동료들로부터 "적당히 해, 이건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고"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확실히 미쳐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개정된 프랑스 도의원 선거법 조항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선거 자금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통달했다. 

내 선거구뿐만 아니라 옆 동네 삭투루빌 선거구에 출마한 녹색당 동료의 선거 캠페인도 물심양면 도왔다. 그 결과 삭투루빌 선거구의 1차 선거에서 녹색당은 7.44%를, 우리 선거구에서는 7.30%의 지지를 얻어냈다. 내겐 나름의 승리였다. 3%도 넘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선거 파트너의 배신을 맛봐야 했던 건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내 선거 파트너는 전년도 시의원 선거 때보다 갑절 이상 뛰어버린 녹색당 지지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 사무소별로 집계한 결과표를 신줏단지처럼 고이 품 안에 넣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14년 시의원 선거에 그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고, 1차 선거에서 389표를 받아 지지율 3.27%를 기록했다. 일곱 명의 후보 중 꼴찌였다. 

그런데 2015년, 인구와 면적이 3배 이상 커진 도의원 선거에서 일곱 후보 중 4위를 기록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참고로, 도의원 선거 우리 선거구의 면적은 약 17km²에, 인구는 약 6만3000명이다.  

이후 1차 선거를 통과한 사회당이 우리에게 2차 선거에서 본인들을 지지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우파와 대결할 좌파인 사회당을 지지하는 일은 나로선 재고할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선거 캠페인 동안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며 도와주었던 이가 40년 동안 사회당원이었고, 나의 시어머니는 18년간 사회당 당원이자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프랑스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색당이 도의원으로 선출된 곳도 다름 아닌 시어머니가 계신 도였다. 어머님은 그 사실을 내 일처럼 기뻐하셨다. 사회당이신 어머님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녹색당인 나를 물심양면 도와주셨다. 때문에 녹색당인 나와 가까운 사회당의 2차 선거를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당연히 사회당을 지지해야지! 우파가 이기게 놔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내 말에 나의 선거 파트너는 주저 없이 "글쎄, 난 아니야, 사회당에 실망해서"라고 말했다. 3월 22일, 밤바람이 아직 쌀쌀한 자정에 우리는 각자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선거 파트너의 배신에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집을 나서니 사회당 선거 게시판마다 '녹색당 아무개 남자 후보, 사회당 지지'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더군다나 일은 다 내가 했는데 생색은 그가 내다니. 

며칠을 앓고 드러누웠다가 일어나 같은 길에 위치한 사회당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돕고 싶다고 했다. 전단에 내 지지 의사를 인쇄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내 사진과 지지 의사를 그들의 페이스북에 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흘간 그들의 선거 캠페인에 동행했다. 바로 그때 나는 진짜 선거 캠페인이라는 게 뭔지를 보았다. 

나에게 '대선 준비하느냐'던 녹색당 동료들의 비아냥을 잊게 만든 진짜 선거 운동을 체험해보았단 말이다. 프랑스 전국에 있는 녹색당원들이 우리 선거구 동료들 같지는 않다. 내 선거 운동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나를 응원해주던 타 선거구의 녹색당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든 과정을 모두 감수할 수 있었다.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지지하기위해 사회당원과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는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행하던 때. 왼쪽에서 두 번째가 도의원선거 사회당 여성 후보 마리셩딸 듀플라이고, 맨 오른쪽이 사회당 남자 후보 실방 티아롱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거나 내 인생에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덕분에 2015년 초에 개정된 도의원 선거 관련법규를 통독했고, 프랑스 선거 절차에 대해서 그 어느 프랑스인보다도 훨씬 잘 알게 되었다. 

4월에 있을 한국의 총선을 맞아 프랑스의 선거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전반적으로 소개할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언제 어떤 선거를 치르며, 선거 운동은 어떻게 하며, 기탁금을 얼마나 내며, 선거 자금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차로 나누어 소개해볼까 한다. 

1. 프랑스에서는 어떤 선거가 언제 있나?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의원을 한 날에 뽑기 때문에 투표용지 여러 개를 들고 투표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한 선거에서 한 종류의 의원을 뽑는다. 프랑스에서 시의원 선거, 도의원 선거, 지방 선거는 6년마다 치러지고, 유럽의원 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진다. 

총선을 앞둔 한국은 정치인들의 '줄서기'가 한창이던데, 프랑스는 선거가 없어 조용하다. 내년 4월 23일과 5월 7일 대선을 시작으로, 6월 총선, 2020년 초 시의원선거, 5월 유럽의원 선거, 2021년 3월 도의원 선거, 12월 지방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유럽의원 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1차와 2차 투표를 거친다. 유럽의원 선거는 프랑스만의 선거가 아니므로 앞으로는 이 글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2. 결선투표제는 어떻게 진행되나? 

1·2차, 두 차례에 걸쳐 선거를 치르는 결선제를 도입한 나라마다 상세 규정에 차이가 있다. 프랑스라 하더라도 총선과 시의원 선거는 규정이 다르다. 총선과 도의원 선거의 예를 들어보면,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등록된 선거인 중 25%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다시 말해서 50% 이상의 지지율이 나왔다 하더라도 선거율이 저조해서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했다면 2차 선거를 치러야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도의원 1차 선거에서 삭투루빌(Sartrouville) 선거구의 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UMP)후보가 55.74%라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지지율이 아닌 득표수를 집계해보면, 등록된 선거인 (혹은 전체 등록유권자) 5만1177명 중 23.74%인 1만2016표를 얻었다. 

즉 선거율이 낮은 탓에, 과반의 지지율에도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해서 2차 선거를 준비해야했다. 후보 다섯 팀 중 12.5% 이상 득표한 팀이 UMP밖에 없었으므로 최다득표한 두 팀의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렀다. 참고로, 이 선거구의 선거참여율은 1차 선거 43.18%, 2차 선거 38.90%이었다. 

3. 프랑스에도 비례대표제가 있나? 

대통령, 국회의원, 도의원은 2차 선거를 통과한 후보만이 실무를 수행하고, 시의원과 지방의원은 2차 선거에 오른 후보들 사이에 비례대표제가 적용되어 의원직을 차지한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후보자 단독출마가 아니라 '리스트'라고 불리는 팀을 구성해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다. 

후보자는 선거구의 인구수에 비례해서 정해진 홀수의 팀을 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시의원선거에서 해당 시의 인구에 비례해서 39명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시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1번이 되고, 그와 함께 시의원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 38명 찾아서 명단을 채워야 한다. 1번이 남자면 이어지는 순서는 반드시 여자-남자-여자-남자순이 되고, 1번이 여자면 2번 이후는 남자-여자-남자-여자순이어야 한다. 

지방선거의 경우, 하나의 지방 안에 여러 개의 도(département)가 있어서 명단등록과 의원점유율 계산이 아주 복잡해진다. 지난번 프랑스 지방선거에 대한 글에서 상세한 설명을 했는데,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다시 설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일드프랑스(파리와 인근)의 경우 녹색당 후보로 에마뉘엘 코스가 나섰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도가 있고, 각 도마다 인구수에 비례해 명단을 작성해야만 에마뉘엘 코스가 지방의원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파리는 에마뉘엘 코스를 필두로 한 리스트에 총 42명, 센에마흔느에 77명, 이블린에 27명, 에쏜에 24명, 오드센느에 30명, 센생드니에 29명, 발드마흔느에 25명, 발드와즈에 23명해서 일드프랑스에서 총 225명(반드시 홀수!)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녹색당과 시민연합(CAP21)이 연합했다. 다른 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각 도마다 같은 수의 지지자를 찾아 총합 225명의 명단을 작성해서 경시청에 제출해야만 후보등록이 된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앞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뒷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없거나, 과반을 넘었다 해도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의 표도 얻지 못했을 때는 12.5%를 넘긴 후보1, 후보2, 후보3이 2차 선거를 치른다. 만일 지지율 12.5%를 넘긴 후보가 하나밖에 없거나 아무도 없다면 최다득표를 한 두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른다. 지난 지방선거 1차 선거 결과의 실례를 볼까? 

파리에서 1차 선거 결과, 우파연합과 좌파연합이 각각 32.93%와 31.42%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녹색당이 10.92%, 극우전선이 9.66%의 지지를 받았다. 이하 후보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파리 주변 지역을 통합한 '일드프랑스'에서의 득표수를 집계한 뒤, 등록된 선거인 수를 분모로 득표 비율을 산출해보면 각각 30.51%, 25.19%, 8.03%, 18.41%로 순위가 뒤집힌다. 파리에서는 녹색당 지지율이 3위, 극우전선 지지율이  4위였지만 일드프랑스에서는 극우전선이 녹색당을 월등히 앞질러 12.5%를 넘기면서 2차 선거 후보로 오른 것이다.  

1차 선거 결과, 프랑스 전국에서 극우전선의 파도가 넘실댔다. 전국의 52%가 넘는 시에서 극우전선이 선두를 달리는 경악할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에마뉘엘 코스는 녹색당의 이름으로 좌파연합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2002년 극우전선이 대통령 2차 선거 후보로 오르던 그 악몽이 반복될 것인가? 프랑스는 긴장상태에 놓이고, 선거참여율을 높이자는 시민캠페인이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선거참여율 속에 치러진 2차 선거 결과, 극우전선은 프랑스 전국 그 어디에서도 최다득표를 이뤄내지 못했다. 파리의 경우, 좌파연합이 녹색당의 지지를 흡수하면서 1차 선거의 순위를 뒤집고 49.64%로 1위를 달렸고, 우파연합은 44.26%, 그리고 극우전선은 높아진 선거참여율에 밀려나 6.10%를 기록했다. 하지만  파리가 포함된 선거구획 일드프랑스 집계에서는 우파 43.8%, 좌파 42.18%, 극우전선 14.02%를 기록해 전체 판도가 달라졌다. 

이 경우, 지방의원 좌석점유율을 어떻게 계산할까?

일드프랑스 지방의원의 총 좌석 수가 209석이다. 최다득표를 한 우파연합이 먼저 '보너스'로 25%를 차지한다. 따라서 52석 선 점유. 이어서 남은 157석을 세 후보가 득표율로 나눠 각각 68석, 66석, 22석을 차지한다. 다 더하면 총 208석, 한 자리가 남는데, 이건 최다수 득표를 한 당에게 돌아가 우파연합은 총 121석을 차지하게 된다. 각 당의 도별 의원수 배정은 일드프랑스의 각 도별 득표비율에 따른다. 

4. 연합 출마와 2차 선거 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파리회의로 이곳에 오신 한국의 녹색당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니, 어떻게 '연합' 출마가 가능할 수가 있나? 합당을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면 만들었지 서로 다른 당이 어떻게 연합을 해서 출마를 할 수 있나? 한국에서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며 깜짝 놀라하셨다.  

선거구역이 작은 시의원 선거에서는 연합하는 일이 없지만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연합해 출마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의원 선거와 지방 선거가 그렇다. 

도의원 선거는 리스트가 없고, 2015년부터 여성의 정치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남녀 후보가 한 조가 되어 출마해야 한다. 남녀 후보에, 부후보 두명까지 총 4명이 한 조가 된다. 선거가 끝나고 의원이 된 후에는 남녀 후보는 각각 독립적으로 의원생활을 한다. 

도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는 보통 세 개의 도시에서 많게는 약 40개의 마을을 포괄하게 되는데, 그중 한 도시에 사는 후보들끼리 출마하는 경우는 드물고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에 사는 서로 다른 당 후보가 연합해 4인1조를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의 지역적인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어 하나의 도시·마을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여러 도시·마을을 포괄한 도 단위의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당과 연합하는 경우,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극우전선과 연합하려는 당은 더욱이 하나도 없다. 보통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연합하고, 녹색당은 좌파와 연합해왔는데, 사회당과 연합했다가 지난해에는 극좌파와 연합했다. 

공약 프로그램 작성 과정부터 함께 참여하고, 리스트를 같이 짜게 되므로 다수 정당은 소수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수 정당 지지자의 표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당선이 될 경우, 소수정당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노선을 공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1차 선거에서 패배한 당이 2차 선거에서 아무개당 지지를 공식으로 표명하는 경우, 리스트를 다시 짜는 경우는 드물다.  

5. 후보의 기호는 늘 고정되는가? 

한국에서는 여당이 기호 1번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선거 때마다 바뀐다. 경시청에서 선거 후보들을 어느 한 날 일제히 소환해 그 자리에서 제비뽑기로 정하기 때문이다.  

6. 창당이 쉬운가? 

프랑스 녹색당의 현재 당원이 1400명이라는 말에 한국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한국 녹색당 당원 수보다 훨씬 적다"며 놀라워 했다. 한국에서는 창당하는 데 최소한 5000명의 당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당원이 1400명밖에 안 되는 당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장뱅상 플라세가 지난해 여름 녹색당을 탈퇴하고 가을에 새 당을 만들었다는 말에 역시 놀라워하며 창당이 그렇게 쉽냐고 나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는 당원수가 창당의 조건이 아니다. 창당은 협회(association)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하다. 최소한 회장과 총무만 있으면 되고, 간단한 서류절차를 경시청에 제출하면 가능하다. 문제는 당을 얼마나 쉽게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당이 동시대 시민의 소리를 얼마나 많이 대변하고, 얼마나 많은 당원을 확보해서 재정적으로,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다음번에는 많은 분들이 굉장히 궁금해 할 프랑스의 선거자금, 그리고 한국에서 보면 생소할 투표용지와 투표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016년 1월 31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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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France 프랑스2015.12.17 10:05

교실에서 자리를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학교, 급식을 성적순으로 먹인다는 학교, 그렇게 잔인하게 공부시켜서 대체 뭐에다 쓰려는걸까? 그렇게 경쟁하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자격증에 졸업증에 식스팩을 준비해서 '좋은'직장에 가고, 학벌과 집안이 '좋은' 배우자를 구해서 결혼하고, 태교에 '좋다는' 성문영어와 정석수학을 임신 중에 공부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학원을 한 달에 서너 개씩 보내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사례들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보여주고자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프랑스인들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스케이트보드를 원없이 타기 위해 찾은 직업, 요리사 

트리스텅을 만난 것은 유기농 빵집에 견학갔을 때였다. 새벽 4시부터 빵 반죽을 하는 빵집에 6명의 불렁줴(빵 굽는 사람)가 있었는데, 트리스텅은 그중에 가장 친절했다. 일하는 동안 방해되지 않게 피해다니며 틈 나는대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이것저것 먼저 설명해주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잘 구워진 빵을 먹어보라고 건네준 것도 그였고, 막 구워 나온 빵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때문에 한 김 식혔다가 먹으라고 조언을 준 것도 그였고, 견학을 마치고 자리를 뜰 때 아쉽다는 기색으로 페이스북 연락처를 물어온 것도 그였다. 




'나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푸는 흔치 않은 프랑스인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빵을 구운 지는 몇 달 안 됐다는 그의 지난 10년간 직업은 실은 요리사였다. 내가 견학갔던 빵집에는 휴가 간 직원들을 대신해 2주간 일손을 도우러 왔던거였다. 요리사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시간이 날 때면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   

한국같으면 대학 들어가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학교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에 각종 자격증 따느라 바쁘고, 졸업할 때면 직장 구하느라 피가 마르고, 나이 서른이 되면 여자 친구 하나쯤 있어서 주말에는 데이트하고 결혼자금과 집 장만을 이유로 적금과 은행대출에 허리가 휘어질 텐데, 서른의 나이에 어쩌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신나게 살 수 있지? 12월부터 3월까지 알프스 스키장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스키를 즐기러 간다기에 현재 실업자가 된 그를 서둘러 만났다. 

문학 전공했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트리스텅이 스케이트 보드에 빠져있는 한때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넝테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학사를 마치고 1년간 요리를 공부했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고학력 실업자가 늘고 있는 추세 아니던가?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실업교육에 있다고 믿었고, 프랑스를 떠나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행자금을 모으는 방법으로 워킹 홀리데이도 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과일 따는 일이고, 게다가 계절을 잘 맞춰야 한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방식은 요리사가 되는 것! 세상 어디를 가도 칼만 있으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사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대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 2년동안 준비했다.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1년, 그리고 1년짜리 요리 전문과정을 다니면서 돈을 모았다. 교육과정상 학교에서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 식당에서 연수생으로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1살에 첫월급을 받았다. 대학 동창 중에 가장 먼저 돈을 벌었다. 대학 동창들은 지금 유명 출판사나 '라 리베라시용'같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친구 중 한 명이 트리스텅이 쓰는 책의 교정을 봐주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엄마에게서 배운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일을 구했다. 그 다음은 호주로, 멕시코로, 캘리포니아로, 태국으로. 

태국에서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했고 요리는 돈을 주고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보드 타는 친구와 어울리다가 한명이 채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쉐프를 소개해줬다.

쉐프네 집에서 1주일을 먹고 자면서 채식요리를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시장에 나가서 재료 고르는 법을 배웠다. 또다른 잊지 못할 경험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석 달동안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여행을 했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공부 마치면 구직하고 연애하고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등의 일련의 사회적 기대감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런 기대감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란다. 다만 자기는 그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뿐이라고. 이제 서른인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 4년간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각자 서로 다른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중요한 건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난 지금이 행복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난 행복해"

강가를 거닐며 얘기하다가 운동 중인 내 지인을 만났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트리스텅은 그에게 바로 악수를 청하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고는 지인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아직도 존댓말로 대화하는 지인에게 바로 반말을 건넨다. 

지인에게 "당신도 아는 그 유기농 빵집에서 일했던 블렁줴다"라고 그를 소개했더니 지인은 "아, 당신네 빵 정말 맛있다. 빵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리스텅이 바로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레시피를 적어준다. 여행에 의해 단련된 열린 마음 때문에 초면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걸까.  

앞날에 대해 걱정이 없느냐 물었더니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는 답이 날아왔다. 

"중요한건 현재야. 내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았어. 보험, 대학교육, 쉔겐조약 등 그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해.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싶은 건 다 했어. 난 지금이 행복해."

맞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행복이 올꺼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현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깨닫는건데. 나니 모레티의 영화 '아들의 방'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뒤 아버지는 그제야 '아들이 같이 야구하며 놀자고 했을 때,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  

"내가 만일 프랑스에서 살면서 집 장만을 해야 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거야. 프랑스에 돌아오면 엄마 집에 머물기 때문에 내 집이 따로 필요없었거든. 앞으로는 내가 프랑스에 돌아오면 묵을 아파트가 하나 필요할 것 같아."

자유롭게 산다고 계획없이 사는 건 아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생활비는 프랑스보다 해외가 더 적게 먹혀. 한 달에 1000유로로 예산을 잡아. 프랑스에서는 월세가 비싸서 1000유로로 한 달을 살 수 없잖아. 잠은 캠핑에서 자고, 먹는건 직장에서 해결이 되고, 남는 시간은 스케이트보더들과 보드를 타러 다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6개월 정도 준비를 해."

오랜 시간의 여행과 타지생활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냐고 물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고급 아파트를 보면서 트리스텅이 말한다.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예전엔 싫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건 그들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걸 인정해. 요리사가 돼서 세계를 여행하면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며 사는 건 내 방식이고. 내 인터뷰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모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다른 방식이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겨울에 알프스에서 일하려고 해. 스키장에서 일하면 스킨장 시설을 무료로 쓸 수 있거든. 내년 3월까지 거기서 지내고, 그 다음은 인도로 가려고해. 알프스에 아직 구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일 찾는건 어렵지 않아.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 아마도 10년 후쯤에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 유기농이나 채식처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는 먹거리 관련사업 말이야." 

행복과 감사함과 자신감에 꽉 찬 그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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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Ecologie 친환경2015.12.17 09:55

새벽 4시 불렁줴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우리는 지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소비가 미덕인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이게 아니다!'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계화에 퇴색된 인간성에 가치를 두고, 개인주의로 희박해진 나눔을 주장하며,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방식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우위에 두며, 느린 속도로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들,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그런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실천하는 장소를 하나 하나 찾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대안적인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지도 모르므로. 연재 그 두 번째로 파리 근교에서 불가마로 굽는 유기농 천연효모 수제 빵집을 방문했다.

프랑스에서 빵집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인구 7천 명의 도시 Épône(에뽄)에 매우 보기드문 특별한 빵집이 있다. '라 쿠론 데 프레', 우리말로 '초원의 왕관'이란 이름의 이 유기농 빵집은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효모를 쓸 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빚어서 전기가마가 아닌 장작으로 지핀 불가마에 빵을 굽는다. 게다가 반경 50km 내에서 생산되는 지역산 밀가루를 고집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프랑스의) 우리밀 수제빵을 만드는 이곳을 오래 전부터 꼭 방문해 보고 싶었다. 참고로, 프랑스 절대 다수의 빵집들이 기계로 반죽을 하며, 전기로 된 가마에 빵을 굽는다. 


근처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뛰었다. 새벽 4시부터 빵 만들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몽사몽으로 도착하니 피에르가 가마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세게 지피고 있었다. 전기 가마가 아니기 때문에 몇 시간 전부터 불을 때고, 가마실을 덥히기 위해 문을 꼭 닫아 놓아야 한다. 사실 며칠 불을 때지 않아도 이 불가마는 사시사철  식지 않는다. 빵을 굽지 않는 오후 내내 혹은 일요일 내내 가마 안에 공기의 유통이 없도록 구멍을 닫아놓으면 며칠이 지나도 훈훈함이 유지된다.




새벽 4시, 불가마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빵집의 하루가 시작된다.


피에르는 어제 한 켠에 만들어 둔 르방(levain, 밀가루에 물을 섞어 오래 두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천연효모)을 물에 개고, 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짜깁기된 직사각형의 큰 통에 밀가루, 25~30도의 물, 천일염을 넣고는 맨손으로 섞기 시작한다. 집에서 500g짜리 빵을 반죽하고 쳐대는데도 팔이 아프던데 20kg짜리 반죽을 하면 팔이 얼마나 아플까? 반죽을 한숨 쉬게 하는 동안 다른 편에서 바게트 빵 만들 준비를 한다. 천연효모에 물을 섞더니 나보고 개어보겠느냐고 한다. 손을 깨끗이 씻고와서 뜨뜻미지근한 천연효모를 주물락거리며 훠이훠이 섞는 동안 그는 바게트빵 만들 준비를 한다. 기계 반죽통에 밀가루, 물, 천연효모, 회색의 천일염, 이 네 가지 재료를 섞고 기계가 반죽을 시작한다.


르방


삐에르가 맨손으로 20kg짤리 빵 반죽을 하고 있다.


기계로 바게트 빵 반죽을 한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빵 바구니들.


수시로 가마실 온도를 체크하면서 피에르가 이번엔 '글루텐 프리(글루텐이 없는)' 빵 만들 준비를 한다. 프랑스는 요즘 소화불량, 알레르기 등의 문제로 글루텐 프리 빵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늘고있다. 글루텐은 밀 속에 있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을 하면 점성을 만들어내는데, 글루텐 때문에 바로 이 점성이 생긴다. 발효로 인해 부푸는 반죽을 글루텐이 잡아주기 때문에 빵 안에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이왕이면 같은 값에 큰 빵'을 선호하다보니 빵을 크게 부풀게 하려고 밀 종자를 개량해 글루텐을 인위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원래 염색체가 14개였던 밀이 오늘날은 염색체가 (3배가 많은) 42개나 된다. 사람의 경우, 염색체가 단 한 개만 더 많아도 다운증후군이 되거나 사망한다.

하여튼 글루텐 프리 빵은 밀가루 대신 쌀가루, 모밀가루, 콩가루로 만들고, 점성이 없기 때문에 쳐대지 않아도 되고, 쳐댈 수도 없기 때문에 재료의 무게를 재서 고루 섞은 뒤에 빵틀에 붓고 구우면 끝. 아주 간단하다. 글루텐 프리 빵은 재료를 기계로 섞어서 전기가마에 굽는다.


글루텐 프리 빵 반죽을 틀에 담아 전기가마에 넣고 있다.



새벽 5시 빠른 손동작으로 빵 반죽이 태어난다 

새벽 5시 다른 직원과 견습공들이 도착한다. 두 명의 직원과 세 명의 견습생, 총 여섯 명의 불렁줴(빵을 굽거나 파는 사람)가 빠른 동작으로 작업실과 가마를 오가며 질서정연하고 리드믹하게 빵을 척척 만들어댄다. 가수 비욕이 출연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댄서 인 더 다크(Dancer In the Dark)'의 공장 댄스 장면을 연상 시켰다.

빵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통밀빵, 호밀빵, 흰빵, 바게트 빵, 양귀비씨를 바른 바게트 빵, 올리브를 넣은 빵, 크랜베리와 호두를 넣은 빵, 표면에 설탕을 바른 빵, 해바라기씨와 아마씨를 섞은 빵, 밤을 넣은 가을빵, 브리오슈 등. 일일이 다 맨손으로 반죽하고 (기계로 빵을 자르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으로 반죽을 뜯어 저울에 달아 무게를 맞추고, 동글동글하게 성형을 하고, 불가마로 옮긴다. 가마의 온도가 220도에 도달했는지 확인한 뒤, 가마 양쪽에 물을 한 컵씩 붓고 뚜껑을 닫는다. 기화된 물방울이 빵을 노릇노릇하게 만든다고 한다. 증기가 없으면 빵이 익어도 노릇노릇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새 면도칼을 꺼내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Kill Bill)'처럼 날렵하게 칼집을 낸 뒤 길이가 3m에 이르는 나무로 된 긴 도구 위에 빵 반죽을 올려놓은 뒤 가마 안으로 밀어넣고 쪽문을 닫는다. 그러고 손잡이를 돌리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가마 속에 동그란 밑판이 돌아가고 빵의 위치가 바뀐다. 다시 쪽문을 열고 빵 반죽을 밀어넣고 문을 닫고 손잡이를 돌린다.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돌리고나면 처음에 들어갔던 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나올 때가 되기 때문에 재빨리 익은 빵들을 꺼내야 한다. 빵 바닥을 두들겨 봐서 속이 빈 소리가 나면 다 익은걸 안다. 덜 익었으면 다시 화로에 집어넣고, 정신을 집중해서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전기가마 같지 않아서 타이머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어느새 빵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갓 구워진 바게트 빵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유기농 빵집 주인으로

내가 방문한 '라 쿠론 데 프레'는 유기농 빵을 만들어 도매로만 팔기 때문에 카운터를 두고 소비자를 마주하는 일은 없다. 생산량이 많아서 도매로만 거래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다. 인근 지역의 유기농 매장, 직거래시장, 학교, 농장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주문량만큼만 생산한다.

아침 10시반에 첫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라 쿠론 데 프레'대표 다니엘 부아타르(만 49세)와 이야기를 나눴다. "파이프 한 대 피고 하지요"라고 말하더니 그는 정말 담배가 아닌 파이프를 한 대 물고 나왔다.



- 이 빵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2011년에 문을 열었고, 그전에는 유아학교 선생님이었어요."

- 어떻게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불렁줴가 될 생각을 하셨어요? 
"45살이 되었을 때였는데 학생에서 선생님이 되어 쉬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게 싫증났어요. 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일을 쳤죠. 그 전에도 집에서 제가 빵을 자주 만들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불렁줴인 친구 루이즈 네 집에서  멍트라빌 비오콥(Biocoop ;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유기농 매장) 지배인으로 있는 브느와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에뽄 비오콥 옆에 빵집을 열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해왔어요."

- 유기농에 대해서 인식하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0년 전부터요. 관행농에 대해 피에르 라비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맛있게 드세요 !'가 아니라 '행운을 빈다!'라고. 

(필자 주: 피에르 라비는 1938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유기농 농부,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철학가이자 농업생태학 전문가이자 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발적인 시민생태운동 '콜리브리'의 창시자이며 한국에는 '환경 운동가이자 농부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피에르 라비는 먹거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On mange tellement de choses toxiques, que ce n'est pas bon appétit que j'ai envie de dire aux gens, mais bonne chance." '오늘날 우리가 정말 유독한 음식을 많이 먹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하렵니다.)

- 이 빵집에서만 만들어 파는 '빌락소 빵'은 밀가루가 독특하다고 들었는데요.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도멘 드 빌락소(Domaine de Villarceaux)에서 생산된 밀로 만든 빵이에요. 밀 종자가 다양한데, 몇 년 전부터 밀 생산자와 함께 여러 종자의 밀로 빵 만드는 실험을 했어요. 소량의 밀을 심어서 그걸로 매번 빵을 만들어 본 다음에 어떤 밀이 그 지역의 땅과 잘 맞는지, 빵으로 만들었을 때 결과는 어떤 지 보기 위해서요. 그중에 '에르메스 리터'라는 밀 종자가 빌락소 땅과 가장 잘 맞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지역명을 따서 '빌락소 빵'이라고 이름붙이고, 이후에 수 헥타르에 심어 경작하고 있습니다."

- 전통 종자인가요?
"전통 종자는 아닌걸로 알아요." (필자 주- 필자가 빌락소 빵의 밀가루를 만드는 유기농 밀 생산업자를 찾아 직접 물어 본 바에 의하면, 에르메스 리터는 전통 종자는 아니며, 1960년대에 독일인 베르톨트 하이든이 고른 종자라고 한다. 밀 생산지인 도멘 드 빌락소는 에폰에서 30km 떨어져 있다.)

빌락소 빵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직접 손으로 다루어 대접한다

- 저 많은 빵을 기계를 안 쓰고 손 반죽을 하는 게 참 특이하던데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기계를 쓰면 반죽하는 힘이 세서 소화가 안되는 글루텐이 늘어납니다. 반면에 손으로 반죽을 하면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 생겨요. 그리고 기계에 반해서 사람과 사람의 손에 더 가치를 두려는 윤리적인 의미도 있어요.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는 거죠.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지고 만들어서 대접한다는 고결한 측면도 있구요."

(필자 주 – 다니엘이 복잡한 화학적인 설명을 피하려고 단순하게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글루텐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게 아니고 소화가 잘 되는 글루텐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밀에는 글루아딘(밀 속에 들어있는 프롤라민)과 글루테닌이라고 하는 단백질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물과 섞이고 치대는 행동이 가해지면 –SH (황화수소) 결합에서 결합력이 강한 –SS (이황화) 결합으로 바뀌면서 글루텐이 생성된다. 손 반죽과 비교했을 때, 기계 반죽을 하게 되면 반죽 과정에서 열이 생기고, 치대는 힘이 세기 때문에 글루텐 조직이 더 많이 생성된다. 몸에서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면 배에 가스가 차거나 심하면 복통, 설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글루텐이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의 체내 흡수를 방해되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는 증상을 셀리악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경우, 글루텐에 민감한 이들의 프랑스 협회(Association française des intolérants au gluten)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인구 6600만 명 중 0.23%인 15만 명이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 불가마의 불꽃과 익어가는 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자연의 다섯 원소 오행이 결합하기 때문에 불가마 빵이 기계 빵보다 훨씬 더 맛있는거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어떻게 다섯 원소가 되죠?"

- 나무(木)를 때면 불(火)이 가마의 벽돌을 달구잖아요. 벽돌은 흙(土)으로 만들어졌지요. 그 가마를 싸고있는건 금속(金)입니다. 손잡이도 금속이구요. 빵을 굽기 전에 반드시 가마 안에 물(水)을 넣지요. 그 물이 기화해서 가마 속을 돌면서 노릇노릇하게 맛있는 빵을 탄생시키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 주문받은 양만큼만 만드시는데 어디 어디에 납품하세요?
"우리 빵집 옆에 있는 비오콥을 포함해서 비오콥 아홉 군데하고 아맙 여덟 군데, 학교 급식으로 열 세 군데, 그리고 농장에 한 군데, 이렇게 됩니다." (필자 주: 아맙은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장터로 일주일에 한 번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정된 장소에 모여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받아간다. 대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주종을 이루지만 어떤 생산자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빵, 생선, 닭, 고기 등 종류가 다양해진다.)

새 직원을 뽑기 위한 면접이 예정되어 있는 다니엘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적 삶을 찾는 일본 불렁줴다. 그는 노동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이윤을 남기지 않고,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빵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천연균과 빵만들기 연구로 시간을 보낸다.

그가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이사까지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연균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못해 감동적이었다. 다니엘에게 며칠 일하냐고 물어보니 일주일에서 하루를 제외하고 엿새 일한다고 했다. 아직 자기는 와타나베 이타루의 수준에 비할 바가 못된다면서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했다. 원어는 일어고 번역서는 한국어라고 했더니 아쉬워한다. 돌아오는 길에 땅과 나무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눈 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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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Actualités 시사2015.12.17 07:08

13일의 금요일 밤이 테러와 함께 폭풍처럼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전국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토요일 오전 9시 군사고문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및 대학 등 모든 학교와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학교에서 떠나는 모든 여행도 취소됐다. 엘리제궁에는 1500명의 군인이 추가 배치됐으며 프랑스 국경은 폐쇄됐다. 우리 동네 파리 서쪽 방리유 시립도서관과 음악원도 문을 닫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네 주말 시장도 평소같으면 북적거렸을 텐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안심

나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 메시지에 '나는 무사하다, 고맙다'고 답한 뒤 파리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3구에 사는 한 친구는 테러가 일어나던 밤, 집에 가려는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마구 뛰어가더랜다.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13구의 친구의 집에서 자고 나와 토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지만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단다. 

테러가 일어난 11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테러 속보를 접하자마자 문을 걸어닫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밤새 길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통에 한숨도 못 자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지켜봤다고 한다. 12구에서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바타클렁 극장에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록 콘서트를 보러간 그의 동료와 남자친구가 아침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아직까지도...

시장은 한산했지만 유기농 매장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지난 밤 일어난 충격적인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 '안녕하시냐?'는 문안 인사에 말문을 텄다. 

"어제 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파리에서 난 테러 소식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죠. 밤새 업데이트 기사를 검색해봤어요."  

그제서야 옆에 있던 사람도 "그러게요. 이게 웬일이래요? 충격적이고 너무 슬퍼요"한다. 그랬구나.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슬픔과 충격을 공감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며 불안감을 굳이 가중시키지 않고 있는 거였구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뒤 첫저녁

솔직히 내게는 가까이서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보다 바다와 대륙 건너 일어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가까운 파리 테러 현장이라도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친 뒤 비극이 일어난 지 24시간 만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약간 두려웠다. 길 위에 핏자국이 낭자하게 나있지 않을까? 또 난사를 당하지는 않을까?

지하철을 타니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폐쇄되었던 역들도 운행을 개시했다. 128명의 사망자 중 절대 다수인 89명의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렁 극장으로 향했다. 오베르캄프역에서 내리니 안테나를 단 방송 차량들이 찻길 한 켠에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독일, 미국, 영국, 이태리, 벨기에, 인도, 아랍 언론 등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다 나와 있었다. 생방송으로 내보낼 뉴스의 큐만 기다리는 스탠 바이 상태였다. 이태리 취재진은 그전날 이태리 취재를 끝내고 새벽 1~2시에 현장에 급히 파견됐다고 했다. 

폭탄이 터졌던 볼테르가50번지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앞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자국의 저녁 생방송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한 켠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촛불, 종이에 적은 메시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그 유명한 독일계 프랑스 정치인 다니엘 콘벤딕트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콘벤딕트는 반-나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선택해 독일 녹색당에서 활동한, 매우 유명한 유럽 정치인이다. 프랑스 68혁명 때 혁명의 선두에 선 인물 중 하나였고, 프랑스 녹색당을 창당해 2009년 유럽의회 선거 때는 녹색당 지지율을 20.86 %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올 3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작년에 정치계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방송에만 출연하고 있다. 그는 독일 언론ZDF의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다니엘 콘밴디트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인도 기자들에게 말을 붙였다. 인도에서는 파리 테러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인도에서도 파리 테러를 1면뉴스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길래 "같은 해에 샤를리 엡도 이후에 또다시 파리에서 터진 테러 사건이어서 프랑스 사회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던 어제, 같은 날 한국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건 하나도 다루지를 않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뭐냐고 묻길래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인도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론느 길로 발길을 돌렸다. 여성 기숙사 '빨레드 팜므' 건너편에  있는 일본 식당과 바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빈 가게 앞에 사람들은 초를 켜고 헌화하고,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사람들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침묵 속에 가지런히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놓인 바타클렁 극장 앞에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이곳에는 시민들이 많았다. <르 몽드>가 다녀갔고 프랑스3(France 3)가 나와 있었지만 숙연한 분위기를 조용히, 그것도 길 건너편에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가던 사람들은 수백 개의 촛불과 인파를 보고 멈추어 섰다. 사고 현장 앞 모퉁이를 지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지만, 인파에 서행을 해야 했음에도 누구 하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비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조용하고 숙연함,그 두 가지 단어만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어째서 왜 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십니까? 이민 문제일까요, 종교 문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문제일까요 ?"

조문하는 서로 다른 연령층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료와 담배를 피워물던 중년의 에마뉴엘(45)씨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린 건 자유라고 답했다.

"그들이 목표물로 노린 건 권력도 돈도 아니에요. 자유에요. 카페와 바에서 유유히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자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여성들의 자유, 그 자유말이에요."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은 문제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무슬림인 걸요. 지하디스트는 자기들의 욕구를 신의 이름으로 분출하고 있는 거예요."

11구의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니콜라(45)씨는 자기도 자주 가고, 특히 딸애가 자주 찾는 카페에서 사고가 난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그날 밤 같은 길의 다른 카페에 있었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20대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디아(28)씨는 "어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알제리 식민통치, 이라크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등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을거"라고 봤다. 그는 "어쨌거나 심리적으로 무척 문제가 많은 이들이 저지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치오(28)씨는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높은 사회 계층도 아닌 우리와 같은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졌다"면서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헌화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치아스 알리(31)씨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주에 평화 시위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저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합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고,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날, 서울 광화문에서 물대포, 최루탄, 캡사이신을 삼위일체로 맞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불통의 정부에게 날리고 싶은 메시지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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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2015.12.17 06:52

프랑스 지역선거  2차투표 결과를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1주일 전에 치러진 1차선거의 선거율은  43.01%로 13개 지역 가운데 절반에서 극우정당이 득세했었다. 

이번 2차선거는 50.54%라는 비교적 높은 선거율 속에 치러졌고 사르코지를 대표로 하는 공화당과 올랑드를 대표로 하는 사회당이 각각 8개와 5개의 지역에서 승리했다. 우파, 좌파, 극우파의 프랑스 전국 집계는  40.24%, 28.86%, 27.10%. 극우파가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좌파-녹색당 연합을 바짝 따라잡으면서 삼당 구도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안심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극우정당이 차지하는 의석

극우정당이 단 한 개의 지역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극우정당이 의석을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2차투표에서 승리한 당이 먼저 좌석의 25%를 차지하고, 지지율 5% 이상의 당에 한해서 남은 75%의 좌석을 득표율만큼 나눠 가진다. 

예컨대, 총 100석의 의석이 있다고 하자. 2차 투표에서 당1, 당2, 당 3이 각각  5만1000표, 4만4100표, 4900표를 받았다면, 당1이 먼저 25%인 25석을 차지하고, 당3는 5% 미만이므로 탈락한다. 75%의 좌석을 당 1과  당2가 나눠 갖게 되니 각각 40석과 35석. 따라서 당 1은 총 65석을 차지하고, 당 2는 35석을 차지하게 된다. 

2차투표 결과를 갖고 실례를 들어보자. 파리와 인근 지역인 일드프랑스의 경우, 투표율이 54.46%였고, 공화당이 승리했으므로 공화당에서 25석을 가져간다. 남은 75석을 공화당, 사회당, 극우정당이 각각 투표율 43.80%, 42.18%, 14.02%로 나눠 가진다. 즉, 33석, 32석, 10석. 따라서 공화당은 과반인 58석, 사회당은 32석, 극우정당은 10석을 차지한다. 

추락하는 사회당


과거의 지역선거를 보면, 2004년 이후로 사회당의 지지도가 계속 줄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지역선거에서 알자스를 제외한 전국에서 사회당이 승리했던  전례와 비교해보았을 때, 사회당이 5개 지역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사회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이라기보다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투표에서 사회당을 찍은 사람들은 사회당을 찍고 싶어서 찍었다기 보다 극우정당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년 한 해는 프랑스는 선거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올초 도의원 선거에서 프랑수와 올랑드와 마뉴엘 발스의 고향에서마저 사회당이 참패했고, 올겨울 지역선거에도 극우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받은 표로인해 겨우 체면 유지이상을 면치 못했다. 이대로라면 18개월 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이 이길 승산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 틈을 타서 극우파 지지세력이 얼마나 성장할 지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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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2015.12.17 06:44

이날의 슬로건 

"We are unstoppable! Another world is impossible!"

"1 et 2 et 3 degrés. C'est un crime contre l'humanité!" 

= "1 and 2 and 3 degees. It's a crime against humanity!" 

"What do you want?"  - "Climate!" 

"What do you want?"  - "Justice!"

"When?"  - "Now!"

"People!"   - "Power!"

"Climate!"  -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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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2015.11.18 01:11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온 시민들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13일의 금요일 밤이 테러와 함께 폭풍처럼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올랑드 대통령은 전국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토요일 아침  9 군사 고문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대학 모든 학교와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학교에서 떠나는 모든 여행도 취소됐고, 엘리제궁에는  1500명의 군인이 추가 배치됐으며 프랑스 국경을 폐쇄했다. 우리 동네 파리 서쪽 방리유 시립도서관과 음악원도 문을 닫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네 주말 시장도 평소같으면 북적거렸을텐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안심

 

나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 메시지에 나는 무사하다, 고맙다 답을 파리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3구에 사는 친구는 테러가 일어나던 , 집에 가려는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마구 뛰어가더랜다.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13구의 친구의 집에서 자고 나와 토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지만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단다.

테러가 일어났던 11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테러 속보를 접하자마자 문을 걸어닫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밤새 길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통에 한숨도 자고 인터넷으로 경과를 지켜봤다고 한다.  12구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보았다. 그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바타클렁 극장에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 콘서트를 보러갔던 그의 동료와 남자친구가 아침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시장은 한산했지만 유기농 매장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지난 일어난 충격적인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는 했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 안녕하시냐 ?’ 문안인사에 말문을 텄다.

« 어제 잠을 한숨도 잤어요. 파리에서 테러 소식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있어야죠. 밤새 업데이트 기사를  검색해봤어요. » 

그제서야  옆에 있던 사람도 « 그러게요. 이게 왠일이래요 ? 충격적이고 너무 슬퍼요 » 한다.

그랬구나.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슬픔과 충격을 공감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며 불안감을 굳이 가중시키지 않고 있는 거였구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첫저녁

 


솔직히 내게는 가까이서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보다 바다와 대륙 건너 일어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수가 없었다. 가까운 파리 테러 현장이라도 찾아가야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친 비극이 일어난 24시간만에 사고 장소를 찾았다. 약간 두려웠다. 위에 핏자국이 낭자하게 나있지 않을까 ? 난사를 당하지는 않을까 ?

지하철을 타니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폐쇄되었던 역들도 운행을 개시했다. 129명의 사망자 절대 다수인 89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바타클렁 극장으로 향했다. 오베르캄프역에서 내리니 안테나를 방송 차량들이  찻길 켠에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독일, 미국, 영국, 이태리, 벨기에, 인도, 아랍 언론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나와있었다. 생방송으로 내보낼 뉴스의 큐만 기다리는 스탠 바이 상태였다.  이태리 취재진은 전날 이태리 취재를 끝내고 새벽1~2시에 현장에 급히 파견됐다고 했다.

폭탄이 터졌던 볼테르가 50번지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있고, 앞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자국의 저녁 생방송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트 켠에는 시민들이 가져다놓은 꽃다발, 촛불, 종이에 적은 메시지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유명한 독일계 프랑스 정치인 다니엘 콘벤딕트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  콘벤딕트는 -나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선택해 독일 녹색당에서 활동한 유명한 유럽 정치인이다프랑스 68혁명  혁명의 선두에  인물  하나였고프랑스 녹색당을 창당해 2009 유럽의회 선거 때는 녹색당 지지율을 20.86 %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3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작년에 정치계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방송에만 출연하고 있다독일 언론 ZDF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인도 기자들에게 말을 붙였다인도에서는 파리 테러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이라면서 인도에서도 파리 테러를 1면뉴스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길래 « 같은 해에 샤를리 앱도 이후에 또다시 파리에서 터진 테러 사건이어서 프랑스 사회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 말했다그리고 «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던 어제같은  한국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건 하나도 다루지를 않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 » 덧붙였다문제가 뭐냐고 묻길래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인도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Daniel Cohn Bandit독일계 독일 및 프랑스 녹색당 정치인 다니엘 콘밴딕트( Daniel Cohn Bandit )


볼테르가 주변에 쳐진 바리케이드 앞에 기자들이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이어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론느 길로 발길을 돌렸다. 여성 기숙사  빨레드 팜므건너편에  있는 일본 식당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 앞에 사람들은 초를 켜고 헌화하고,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사람들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침묵 속에 가지런히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놓인 바타클렁 극장 앞에 기자들이 많았다면 이곳에는 시민들이 많았다. < 몽드 다녀갔고  프랑스 3(France 3) 나와있었지만 숙연한 분위기를 조용히, 그것도 건너편에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가던 사람들은 수백 개의 촛불과 인파를 보고 멈추어 섰다. 사고 현장 모퉁이를 지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지만, 인터에 서행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비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조용하고 숙연함, 가지 단어만이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있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는 시민들


아이들과 함께 사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나온 가족


«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 우리 모두 일동 »


« 어째서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십니까 ? 이민문제일까요, 종교문제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문제일까요 ?»  

조문하는 서로 다른 연령층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 동료와 담배를 피워물던 중년의 에마뉴엘(45)씨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린건  자유라고 답했다.

« 그들이 목표물로 노린건 권력도 돈도 아니에요. 자유에요. 카페와 바에서 유유히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자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여성들의 자유, 자유말이에요. »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은 문제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무슬림인걸요. 지하디스트는 자기들의 욕구를 신의 이름으로 분출하고 있는 거에요. »

11구의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데 살고 있는 니콜라(45) 자기도 자주 가고, 특히 딸애가 자주 찾는 카페에서 사고가 알고는 깜짝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그날 같은 길의 다른 카페에 있었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었던 사고였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20대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디아(28)씨는 « 어떤 가지 이유가 아니라 알제리 식민통치, 이라크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을거 »라고 봤다. 그는 « 어쨌거나 심리적으로 무척 문제가 많은 이들이 저지른 행동 »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치오(28)씨는  «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높은 사회 계층도 아닌 우리와 같은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졌다 »면서 « 그래서 이번 사건이 충격적 »이라고 했다.

헌화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치아스 알리(31)씨에게 말을 걸었다.

«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있어서는 안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

어떻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 다음 주에 평화 시위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저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합니다. »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누릴 있고,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 서울 광화문에서 물대포, 최루탄, 캡사이신을 삼위일체로 맞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불통의 정부에게 날리고 싶은 메시지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놓여진 촛불들


« 여기 그리고 저기에서 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 «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


« 세계평화, 평화와 사랑 »





한 여성이 샤론느 길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에 불을 붙여 세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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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ités 시사2015.11.18 00:16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말이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

(Those who fail to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

 

내가 학교 다닐 , 역사를 잊기는커녕 배운 근대 역사가 있었다. 2012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아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답을 해야하는 상황도 아니었건만, 해머로 뒤통수를 마구 두들겨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다카키 마사오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이름-오마이뉴스 편집자 ) 일본 정부에 혈서를 쓰고 독립군 토벌군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바로 그때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으니까. 내가 대체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운걸까 ? 하는 회의감이 한순간에 몰아쳐왔다. 당시 아빠는 대선 후보 중에 빨갱이가 있다고까지 하셨다.

검정교과서로 바뀐 해가 2007년이니까, 나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국정교과서가 좋은지 나쁜지 그때는 판단도 없을만큼 어렸고, 무조건 달달 외우는게 최고였다.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건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가 결코 아닌 했다. ‘그때 사람 총살당한 다음 , 국기를 조기 게양하며 시뻘건 눈을 훔치던 엄마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새벽 종이 울렸네,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나라를 만드네, 살기 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어릴 하도 많이 들어서 아직까지도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징하다. 국정교과서였던 탓에 우리는 배워야 역사를 배우지 않았고, 지나간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때 사람 딸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의미심장한 지지율 51.6 % 얻어 권력에 앉았고, 8년만에 국정 역사 교과서로 회귀하는 더러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아닐까 ?

한국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내가 발을 디디고 서있는 땅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좋은 사례라면 같이 나누고, 아니라면 반면교사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선진국또는 혁명의 나라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 역사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며, 교과서를 어떻게 정할까 ? 1789 프랑스 대혁명과 1968 68혁명이 시민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역사를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나열하는 정도로만 치부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라의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역사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아닐까 ? 거창한 철학은 집어치우고, 프랑스의 역사 교과 과정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16년째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로렁스 드콕씨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로렁스 드콕



프랑스에서 국어, 수학, 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은 역사

 

-  프랑스의 역사 교육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3세부터 유아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의무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6세부터 시작된다.)

« 역사는 프랑스 의무 교육과정 중에서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에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1년동안 역사를 배우는데, 초등학교 때는 주당 1시간, 고등학교에서는 주당 3~5시간씩 역사 수업이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역사와 지리를 함께 가르치고, 공민교육도 병행합니다. »

 

-  역사가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라고 하셨는데,  매우 중요한 과목들 뭔가요 ?

« 국어, 수학, 그리고 역사 순입니다. »

(한국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순인데, 프랑스에는 국어, 수학, 다음이 역사 !!!)

 

- 역사 교육이 중요한가요 ?

« 19세기 때부터 역사 교육을 통해서 프랑스인이라는 느낌, 공화국민이라는 시민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에요. 프랑스에서 역사 교육은 크게 시기로 나눠볼 있습니다. 첫번째는 19세기 말부터 2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고, 두번째는 2 세계대전 이후에요.

첫번째 시기에는 프랑스의 역사만 가르쳤어요. ‘민족주의 소설(roman national)’이라고 부르는데,  소설처럼 아름다운 줄거리에 주인공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면만 이야기했죠. 자기 나라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려는 의도였어요. 지나간 역사에는 영광스러운 사건들만 있는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어요.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통치했었는데, 그걸 알제리를 위한 것이다라고 미화하면 거짓말이죠.

두번째 시기는 2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인데, 유대인 대학살이 신호탄이 되었어요. 그것은 역사 발전이 아니라 야만이었어요. 야만을 이해해야만 했어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지역에 걸쳐서 유네스코가 다음과 같이 발표했어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첫째, 인종차별주의와 싸울 , 둘째, 관용을 가르칠 .  그래서 오늘날에는 프랑스 역사만 가르치지 않고 프랑스, 유럽, 세계, 셋을 균등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역사 교육이 교육부 소관이었어요. 2차세계대전 끝날 때까지는 공개토론은 전혀 없었고, 역사 교육은 언론에서만 다뤘어요. 그러다가 1979 < 피가로> 1면에 실린 알랑 드코의 사설이 대대적인 공개토론의 도화선이 됩니다.  우리는 당신네 아이들한테 더이상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제목의  글이에요.  

(프랑스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알랑 드코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로, 저술가이자 방송인이다. 1951년에  역사 토론회라디오 방송을 개설하여  1997까지 운영했으며, 프랑스의 역사 교육에 반향을 일으켰던 공으로 2014년에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현재 프랑스 북부 릴르에 살고 있다. - 필자 주)

1970년대에 국어, 수학, 그리고 감각 일깨우기(éveil)’ 가르쳤는데, 감각 일깨우기 시간에 생물, 역사, 지리 등을 한꺼번에 가르쳤어요. 예를 들면 이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분석하다보면 역사, 지리 등이 나오는거죠. 근데 이렇게 가르치니까 막상 프랑스 왕들에 대해서 하나도 배우는거에요. 그래서 1985년에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프랑스 왕들에 대해 배우도록 역사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프랑스와 세계, 모두를 역사 시간에 가르치고요. 그리고 그때부터 공개토론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지난 2008년에 아프리카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어요.

 

프랑스 역사 교과서, 국가는 절대 관여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A4크기.


-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정되나요 ?

« 100%,  사립 출판사들이 만들어요. 교육부가 절대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배워야할 역사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6~7개의 출판사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요. 완전히 자유경쟁시장이라서 정부로부터 푼도 받지 않고, 어떻게하면 역사 선생님의 눈에 띌까 고심하며 최선을 다해 만들어요. 고등학교 1학년인 15세가 배우는 역사책을 갖고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챕터별로 프랑스 역사와 지리, 세계 역사와 지리가 분배되어 있고, 설명뿐 아니라 사진이 많이 들어있죠 ?

 

- 최근에 있었던 공개토론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요.

« 읽기 교육에 관한 거에요. 음절파는, 예컨대, ‘’ ‘’ ‘ ’ ‘ 배운 후에  합쳐져서 카키라고 읽는다는 그룹이고, 전체법을 쓰는 그룹은 음절이 아닌 각각의 단어를 외우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번째 그룹은 이래야한다 강경하게 나오고, 두번째 그룹은 이런 좋다 둥글둥글해요. 영어권에서는 이런게 없는데 프랑스만 읽기 문제로 대립하는 같아요. 진짜 이건 정치적인 싸움이에요. 가르치다보면 필요하거든요.

 

- 학교의 교육 방침에 반대해서 부모들이 시위를 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  

« 3 전에 성별(gender)’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을 있었어요. 여권부에서 평등에 대한 기본사항으로 내놓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에 동성애자 결혼에 관한 이슈가 사회에 등장했던 때랑 맞물려서 동성애자 결혼 반대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비판했어요.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려고 한다’ ‘정부가 아이들의 동성애 성향을 조장한다면서요. 대개 카톨릭 단체에서 그랬어요. »

 

- 만일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하면 ?

«  선생님과 역사가들이 먼저 행동할꺼에요. » 


- 공무원인데도요 ? 

«  , 공무원이지만 이들은 자유와 함께 하고, 정치적 선동을 경계하거든요. » 

 

-역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걸까요 ?  

« 비판의식과 관용, 시민정신, 그리고 다른 동료 시민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에게 필요한 용병이나 군인을 만들려는게 아니에요. 역사 교육의 가장 목적은  비판의식을 키우는 겁니다. »

 

-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4지선다식 시험을 쳤어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험은 어떤가요 ?

«  사지선다식 시험은 거의 없고,  문제가 주어지고 그에 대해 답을 술술 써내려가는 형식이에요. 교과서에 나와있는 질문들처럼요. »


유럽과 미대륙으로 이동한 이탈리아 이민을 다룬 챕터의 질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이탈리아인이 이동하기 시작한 대시기는 언제인가?
2.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주로 어느 지역에 정착했나
3. 이민의 급격한 증가와 이탈리아 인구 성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
4. 어느 부류의 인구가 부득이하게 떠났어야 했나
5. 다른 어떤 요소가 이민을 부추겼나
6. 이들 이민은 결정적인가? " 

 

유럽과 미대륙으로 이동한 이탈리아 이민을 다룬 챕터



« 역사 교육은 세계의 시민키우려는  »

 

-교과서는 얼마마다 개정되나요 ?

«  4년에서 5년에 번씩이요. »

 

- 한국의 경우, 대입제도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에게 자주 혼동이 오는데, 프랑스의 고졸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어떤가요 ?

«  ! 바칼로레아는 19세기에 초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시스템이라 누구도 손을 거의 대는 신성한 영역이에요. 1808년에 나폴레옹 1 만들어졌어요. »

 

-인터뷰 초기에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인임을 느끼게 하는거라고 하셨는데, 국적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서 프랑스인임을 느낄 있는걸까요 ?

«  그건 나라에서 역사를 교육하는데 필요한 이유로 꼽는 사항이고, 저한테는 프랑스인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건 우리가 세상의 시민이 되는거고, 세상의 시민과 소통하는거에요. »

 

- 마지막으로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일반적인 교육말이에요. 교육이 필요한 걸까요 ?

« 어른의 도구를 갖추기 위해서에요. » 

 

- 어른의 도구요 ?

« , 세상에서 행동하고자하는 욕구를 갖는 ,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아는 ,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취하는 , 세상을 이해하는 ,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 »

 

한국에 있을 , 학교에서 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되거라, 공부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였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는 무척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글을 읽는 독자들의 대다수가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리라. 

10 전부터는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제일가는 덕담이라고 한다. 사는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16년간 과거사를 가르쳐 선생님에게서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고나니 깊숙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고,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며, 어른인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   

 

* 인터뷰에 응해준 로렁스 드콕은 현재 고등학교와 파리7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275명의 역사 지리 선생님,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아죠르나멘토 (Aggiornamento) 협회의 창간멤버이다. 2009년에 동료 에마뉴엘 피카르와 함께 <학교에서 제조해내는 역사>(La fabrique scolaire de l'histoire) 썼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11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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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Ecologie 친환경2015.11.17 23:34

우리는 지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소비가 미덕인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가운데 이게 아니다 !’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계화에 퇴색된 인간성에 가치를 두고, 개인주의로 희박해진 나눔을 주장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을 통해 느린 속도로 살기를 선택한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들,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그런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실천하는 장소를 하나 하나 찾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대안적인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지도 모르므로.


 

르씨클르리


라 르씨클르리 까페 전경. 입구에 있는 칠판에 오늘의 메뉴, 오늘의 아틀리에 주제와 시간이 적혀있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내 문구가 놓여있다.


파리에서 메트로 4호선을 타고 북쪽 끝에서 내리면  종점인 뽁드드 클리넝꾸르 출구 바로 앞에 La REcyclerie( 르씨클르리)라는 식당겸 테이크아웃 카페가 있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참신한 분위기가 풍기는 식당 입구에서 메뉴를 먼저 시키고, 지불을 하고, 플라스틱 번호표를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아있으면, ‘ 음식 나왔어요~’ 안내가 나온다고 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건물 안을 기웃거려본다. 공구가 정리된  열린 작업실이 오른편에 있고, 전체가 창으로 뒤덮인 밝은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발밑으로 지나가는 기차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 소리도 안들리고, 기차도 없고, 기차 레일 사이사이에는 무성하게 풀들만 자라있는데 어쩌다 기차역이 버려졌을까? 기차길을 따라 내려가고 싶어졌다. 날씨 좋은 밖에 나와 식사를 있도록 마련된 테라스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계단 중간 왼쪽편에 마리와 닭장이 나오고, 옆으로 길게 뻗은 허브밭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기차 승강장을 따라 걸어가면 야외 어항이 있고, 텃밭이 있고, 부스들이 즐비해있으며, 다시 돌아와 계단 뒤에 있는 벤치에 앉으면 호박 넝쿨 뒤로 살짝살짝 지렁이 퇴비통이 보인다. 기차역이었던게 틀림 없었을 이곳이 어쩌다 버려지게 되고, 식당 뒤에 넓은 공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라 르씨클르리 창문 뒤로 보이는 기차길 전경.



나뭇가지로 만든 아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버려진 기차길에 닿게 된다.


식당 이름을 설명하면 바로 단순한 식당이나 카페가 아니라는 눈치챌 있을 것이다. La REcyclerie ( 르씨클르리), 우리말로 재활용 가게라고 있는데, 보통 씨클르리라고 하면 버려진 중고품을 고쳐서 다시 파는 곳을 말한다. 파리와 외곽 경계 지역에 개의 씨클르리가 있지만 18 클리넝꾸르의 르씨클르리 ( 재활용가게)’ 기존의 재활용 가게의 개념을 넘어선다.

 

3R -  «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한다 »


정갈하게 잘 정리된 르네의 아틀리에. 다양한 공구를 나눠쓸 수 있고, 고장난 물건을 직접 들고와서 같이 수선하며 배울 수도 있다.

마디로 말해서 3R (Réduire – Réutiliser – Recycler),  «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한다 »라는 목표 아래 나눔과 친환경을 실천하고 교육하는 열린 공간이다.  입구 오른편에 있던 작업실 이름은 르네의 아틀리에’. 르네는 그저 돈을 받고 고쳐주는 수선공이 아니다.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조언을 주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면 같이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고치면서 수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1년에 쓸까 말까해서 살까 말까 주저되는 공구를 선뜻 빌려주기도 하고, 바쁜 사람들은 수선을 맡겨놓고 나중에 찾아갈 수도 있다. , 한번에 가지씩만 의뢰할 있다. 뿐만 아니라 순환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기위해 다양한 테마 하에 여러 가지 아틀리에를 매일 매일 열어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고장이 나서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에게 이렇듯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 이곳이 바로 르네의 아틀리에다. 르네는 프랑스 이름인데, RE-né(르네)라는 단어를 - 분석해보면 불어로 새로 태어난이라는 뜻이다.

장면에서 르네상스라는 유럽의 문화사조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가 ? 그렇다, 르네상스는 불어로 재탄생이란 뜻이다. 어쨌거나 René라는 불어 이름이 있기도 하니 르네의 아틀리에 중첩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개의 신분증 복사본과 연회비 25유로를 내면  !



100%  순환경제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공간

 

까페와 식당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의 주요 재정을 대는 수단이다이곳의 모든 인테리어와 악세서리는 하나도  주고  것이 없다 버려진 물건을 주워서 만들고 붙이고인테리어화장실  타일도 모두 재사용품들이다.

 

버려지는  없이 순환적으로 돌아가는 사이클은 물건 뿐만이 아니다까페와 식당에서 쓰는 재료는 유기농은 아니지만 근거리에서 생산된 지역 농산물이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입구 오른편에 르네의 아틀리에가 보인다. 의자도, 소파도, 데코레이션도, 화장실의 타일도 멀쩡하게 버려진 물건들을 줏어다가 공간을 장식했다.



한때는 버려졌던 물건들이 뚝딱뚝딱 안락의자로 새로 태어나 제2의 생명을 살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는 직접 키우는 열댓 마리의 닭과 지렁이 퇴비통으로 향한다그러니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없다닭똥지렁이똥지렁이가 분해한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가  텃발에 뿌려지니 식물과 흙에 풍부한 영양분이 된다텃밭은 화학비료도농약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관리한다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이곳 지렁이 퇴비통에 음식쓰레기를 가져와 버릴 수가 있다그리고    퇴비를 받아갈  있다고 한다튀김과 요리에 사용된 식용유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에콜로직 오일이란 회사에서 수거한  바이오 연료로 다시 탄생한다.

계단 밑에 버려지는 자투리 공간에 퇴비통을 감쪽같이 숨겨놨다. 왼편에 보이는 호박 넝쿨로 덮힌 곳에서 지렁이들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음식물 쓰레기를 자연분해해 텃밭에 매우 유익한 퇴비를 만들고 있다.


계단 밑에 지렁이 퇴비통을 만들어놨는데, 냄새도 나지 않고 호박 넝쿨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주변의 주민들도 이곳에 음식물 쓰레기를 주고 퇴비로 받아갈 수 있다.


튀김이나 요리로 쓰였던 기름은 ‘에콜로직 오일’이란 회사에서 수거해가서 바이오 디젤과 같은 연료로 만들어진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요리하고 버려진 식용유 3만6천톤이 수거되는데, 이는 전체 요식업계의 30%에 해당한다. 참고로, 바이오 디젤은 경유와는 달리 미생물 분해되며, 독성이 없으며, 연료로서 연소될 때 독성이나 기타 배출물이 현저하게 적다.


 

야외에 있는 어항은 단순한 어항이 아니다. 식물과 물고기의 공생을 이용한 아쿠아포닉스다. 식물은 뿌리와 박테리아로 물을 정화해서 물고기에게 주고, 물고기가 싼 똥은 식물에게 보내져 영양분이 된다.



버려진 기차길을 따라 쪽 뻗은 텃밭은 유기농으로 관리되고 있다. 수확물을 이곳 식당에서 재료로 쓴다면 완전 순환되는 시스템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우리는 그러고 싶지만 프랑스 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당에서 쓰이는 음식 재료는 구매를 해야하고, 텃밭 수확물은 아쉽지만 우리 직원들끼리 나눠 갖는다’고 한다.


건물 자체도 버려진 기차역을 재활용한 것이다. 오르나노 () 위치한 오르가노 기차역은 파리 둘레를 도는  주요한 기차 노선이었던  라쁘띠뜨 쌍튀르노선의 역으로,  1869년에 문을 열었다. 1930 , 메트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라쁘띠뜨 쌍튀르 노선 이용자가 줄었고, 오르나노역은 다른 역들과 마찬가지로 1934년에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80년이 지난 2014 ,  르씨클르리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누리집 바로가기) 키스키스뱅뱅 누리집에 올라있는 프로젝트 소개문 일부를 번역해보면 아래와 같다.

 오르나노 역으로 쓰였을 당시의 사진이 라 르씨클르리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공사 중인 이곳은  르씨클르리 이름으로 매일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고, 올봄에 새로 문을 엽니다. 51일부터 준비에 동참할 당신이 필요합니다 !

 

라르씨클르리, 중고품 창조 공간

 

르씨클르리는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사고에 기반합니다.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관계가 재활성화되는 즐거운 터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 펼쳐질 공간은 해당 지역에 뿌리를 두고, 파리와 외곽지역에 열려있습니다. 이곳은 일상 속에서 중고품을 창조하는 곳이 것입니다. 만남의 장소가 것이고, 웰빙 음식을 먹을 있으며, 발견하고 배우는 장소가 것입니다.  공사 중인 장소와 프로그램, 식당 메뉴 등은 아래 가지 원칙에 기반합니다.

 

1.        3R :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줄이기 : 쓰레기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단계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재사용하기 : 물건에 2 생명을 부여한다.

재활용하기 : 쓰레기를 모으고 가공해서 제조공정에 재투입할 있도록  한다.

 

2.       협력적인 시도에 가치를 부여한다

과도소비의 실락원은  ! 대여, 교환, 중고품 구입, 공동 사용 등을 통해서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안에서 교류하고 즐거움을 나눌 있도록 한다. 르씨클르리는 지속성, 근거리성, 친환경성, 책임성 순환경제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단순한 소비자를 책임감있는 소비자로 만든다.   

 

3.       Do It Yourself : 다른 방식으로 자율적이 된다.

DIY  스스로 알아서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안적이고, 분명하고, 협력적인 공통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각자 공구를 만들 알고, 주어진 것에 맞춰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15000 유로를 목표로 했던 프로젝트는 목표액을 훌쩍 넘어서 펀딩 마지막 날인 56일에 16 252유로를 끝으로 성황리에 마감됐다.


« 조용하고 좋아서 그냥 산책하러 가끔 와요 »

 

지렁이 퇴비통 앞에 놓인 벤치에 중년의 여인이 앉아 손에 악보를 들고 허밍을 하고 있는데, 악보를 흠칫 엿보니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오래된 바로크 음악 같아 보였다. 나는 취미로 성악을 하는데, 최근에 굴룩, 헨델 바로크 곡을 연습했어서 특이한 악보가 어느 시대 음악인지 정말 궁금했다. 

필자 : « 실례합니다. 보고 있는 악보가 바로크 음악인가요 ? »

여인 : « 아니오. 르네상스 음악이에요. »

라 르씨클르리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시켜보았다. 접시에서 동물성 단백질만 빼고는 먹을꺼라고는 변변찮은 풀과 감자튀김 밖에 없는 무늬만 채식음식인지 채식인을 위한 진짜 채식음식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대만족 ! 재료가 다양하고, 식물성 단백질과 비타민 등 영양가를 고려했고, 먹고나니 배가 든든했다. 시각적으로 미각적으로 영양학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 르네 (RE-né)!’ 한참 바로크 음악과 르네상스 음악을 둘러싼 문화적인 대화가 오고간 , 카메라를 나를 보고 여인은 내게 이곳 취재를 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답을 나는 그에게 점심을 먹으러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채식 음식을 주문해놓고는 계단 지렁이 퇴비통을 찍으러 잠깐 내려왔던 터였다.

여인 : « 아뇨. 이곳이 조용하고 좋아서 그냥 산책하러 가끔 와요. 게다가 집에서 별로 멀지 않구요.  오늘은 여기서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요. »

초면인 사람과 이름도 모르고 음악 얘기, 지렁이 퇴비통에 대한 얘기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친구가 도착했고, 나는 식어버린 음식을 찾으러 올라갔다.




어떤 제품이 고장나거나 옷수선이 필요할 , 고치는 방법을 몰라서 혹은 공구를 사자니 비싸서, 혹은 수선을 맡기자니 것을 사는 것보다 비싸서 폐기처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음식물 쓰레기만 봐도 세계 식량 생산량의 3분의 1 해당하는 13 톤이 매년 버려지지 않는가.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전자 전기 제품 쓰레기는2013년에 3908 , 2014년에는 4108 톤으로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중에는 수은, 카드뮴, 크롬 독성물질 2200 톤이  들어있다. 인간이 버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무한정 먹고 자연분해시키는 블랙홀 같은 쓰레기통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 식당과 카페로, 지역농산물 지지자로, 재사용하고 재활용을 실천하고 배우는 장소로,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로, ‘소비의 목적없이 그냥 좋아서오는 산책의 장소로, 주민의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교환해주는 르네상스의  핵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한 르씨클르리가 지속가능한 순환의 모터가 지역 사회에 좀더 많아지길, 그리고 번성하길 희망한다

« 당신은 기후변화를 위해 무엇을 실천하나요 ? » « 저는 은행을 바꿉니다 » « 근거리에서 해결합니다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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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
Ecologie 친환경2015.11.01 12:35

몽트러히를 지나는 고속도로 A186를 앞뒤로 막아놓고 열리는 1일 축제 라부아에리브르 전경.

파리 동쪽에 인접한 몽트러히(Montreuil)에서 고속도로 A186 2km 앞뒤로 막아놓고 열리는 아주 재미난 에코-페스티발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이름하여 ‘La Voie est Libre’ ( 부아  리브르),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14명의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낸  주민 중심의 지역 페스티발이란 사실이 독특했고여기저기 흔치않게 보이는 태양광 발전기들을 보는 것도 무척 신선했지만 나의 이목을 가장 끌었던 것은 바로 페쉬라고 불리는 지역화폐였다 

페쉬(Pêche) 불어로 복숭아라는 뜻인데어째서 복숭아가  동네의 지역화폐 명칭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려면 몽트러히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몽트러히가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경파리의 다른 주변 도시와 마찬가지로 몽트러히도 파리에 식량을 제공하는 농업지역이었고이곳의 특산물은 복숭아였다원래 복숭아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파리같은 위도에서 복숭아를 생산하기는 불가능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 !  몽트러히 농부들은 밭에 2m 높이의 복숭아   설치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햇볕으로 따끈하게 달궈진 벽이 복숭아가 열리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게 되는 원리인데 방법은 퐁텐블로  다른 지역에도 퍼져나갔다해서남불에서 복숭아를 운반해오는 수고 없이 파리 바로 옆에서 복숭아를 공급할  있었다루이 14세기경복숭아는 궁에서만 먹을  있는 고급과일이었다프랑스 대혁명이 끝나고 왕족의 특권이 사라진 민중도 복숭아를 먹을  있게 되자 복숭아 밭은 크게 늘어나 19세기 말에는 복숭아  길이가  700km, 농경면적 600 헥타르에 이르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파리 인구가 늘어가고 운반수단이 발달하자 복숭아는 남부에서 생산해 운반해서 먹고몽트러히의 복숭아 밭에는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게 되었다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자취만 남은  지방의 특산물인 복숭아와 복숭아 벽을 기리기 위해서 몽트러히 지역화폐의 이름을 복숭아라고 칭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 복숭아는 간데없고 벽만 남은 몽트러히의 복숭아벽.


점심을 지역화폐로 사먹어보고 싶어서 지역화폐 협회가 있는 부스까지 걸으며 중간 중간 부스에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끝에서 저끝까지 걷느라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가 되서야 지역화폐 부스 도착했다. 협회의 일원과 문답을 나눴다.

 : 지역화폐가 필요한가 ? 

 : 우리가 유로화로 물건을 샀다고 치자. 상인이 돈을 은행에 넣으면, 은행가 수중에 돈이 들어가고, 유행가들은 모아진 돈으로 실제 현금보다 9 많은 -실존하지 않는- 돈으로 대출을 내주고, 은행 이자를 챙겨 돈을 불리고, 주식을 하고, 투기를 한다.  2008 세계 경제 위기가 왔던 이유가 때문이다. 은행가들은 은행 돈을 자기들 요트, 선박, 주택을 만드는데 탕진하고, 식량을 갖고 투기를 했다. 하지만 지역화폐를 쓰게 되면 돈의 흐름이 그런데로 흘러가지 않고, 지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