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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8 아리랑 없는 아리랑, 류승완의 '베를린'

Forum des Images에서 9월 5일부터 시작하는 l'Etrange Festival 개막작으로 나왔던 류승완의 '베를린'을 어제 재상영으로 보았다. 영문 제목은 'The Agent'로 나왔는데, 'Berlin File'로 했던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난 사실 첩보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가기 힘든 뇌구조를 가졌기에 겸손하게 내가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을 조심스럽게 말해볼까 한다.

007를 능가하는 액션 첩보 영화. 오~! 하정우 오빠, 너무 멋져~~!  @.@!! 아, 단순한 뇌세포! 그러나 어찌하랴. 좋은 배우를 스크린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어찌 숨기랴! 내가 하정우를 처음 본 영화는 '러브 픽션'. 마스크가 상큼한 것이,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안정적인 저음의 목소리. 안경이 어울리지 않는 남자. 악역을 맡아도 사랑스러울 배우.. 애숭이같은 냄새가 살짝 나기는 하지만 체격과 연기를 조금만 갈고 닦으면 이 사람 배우로 크게 성공하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까 이미 한창 잘 나가는 배우였던 것이야!) 그 다음으로 본 영화가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김기덕의 '시간'과 '숨'. 그러니까 나는 하정우의 필로그래피를 거꾸로 봤던 것이다.

한석규야 두 말하면 무엇하리!

재미난 건,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쫓기는 자로 나왔던 하정우는 이 영화에서도 쫓기고, 그 영화에서 검찰을 맡았던 배우가 이 영화에서 국정원 책임자로 나와 하정우를 쫓는다는 거. ㅎㅎㅎ



베를린에 소재하는 북한 대사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류승완 감독이 이곳 파리에 있는 북한 대사관을 먼저 보셨다면 배경이 파리가 되었을 수도. 흑~ 하지만 파리보다는 베를린이 이 영화에 적합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남과 북으로 갈린 한국의 첩보영화를 풀어가는데있어 동과 서로 갈렸다가 통일된 독일의 현재 수도만큼 더 적절한 곳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자칫하면 한국 관객만 잡게 될 위험이 있을 남북간 첩보전에 더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바뀐 정권 교체, 이스라엘, 아랍, 러시아 등 현 세계 정세가 반영되어 현실감을 높였던 점이 좋았다. 예를 들면, 우리 동네 3일장에 DVD 장사꾼이 오는데, 여기서 우연찮게 구한 '천군'! 남북한 군인들이 접전 중에 과거로 돌아가 이순신을 만나게 되어 대첩을 함께 치룬다는 상당히 깨는 영화였는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한국 관객만 잡게 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국민을 위해, 또는 자국민만이 십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어느 나라가 있게 마련이고, 또 그런 영화들이 꼭 나와주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천국'은 모티브가 상당히 신선하고 창의적이었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살짝 감동받았던 영화였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제목과 영화 배경답게 이 영화에서는 남북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세계 정치적 구조가 등장하여 현실성을 살린게 좋았다.

이 영화가 다른 '한국 영화'에 비해 특이하게 맘에 들었던 점은 러브씬이 안 나온다는 거!!!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양념처럼 등장해주는 -굳이 꼭 필요하지 않은- 베드씬이 한 장면도 안 나온다는 건 정말이지 한국 영화의 틀을 깨는 놀라운 발상이었다! 오~!! ! 베드씬이 다 뭐야, 키스씬도 안 나오는 저 깔끔함!!!
액션첩보영화에서 쉽게 놓칠 수도 있을 법한 인물의 심리 표현을 영상을 통해서 전달하는 감독의 세심함! 꼭 집어 장면을 말하자니 스포일러가 되서 패스~

아리랑 악보가 나온 이상 아리랑 음악도 한번 나올 법도 한데, 그럴만한 장면도 있었고, 아리랑을 한번도 틀지 않은 센스에 감사드린다. 아리랑을 편곡해서 내보냈어도 좋을 법 한데..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아리랑 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다시 한번 그 센스에 감사드린다. 

잘 만든 한국 영화가 Forum des images 의 페스티발 개막작으로 나와서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무척 자랑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파리에 사는 북한 사람들도 와서 보고 있겠지'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정명훈이 북한 오케스트라 '은하수'와 함께 연주하는 콘서트에서 받았던 그 느낌처럼.. (관련 포스팅 바로가기: http://francereport.net/963 )

류승완 감독님, 속편 '평양'을 기대해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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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