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

저녁을 먹는데 딸애가 '내가 학교에서 제일 얌전하고 착해(sage)'라길래 '누가 그래?'했더니 같은 반 애가 그랬댄다. 그리고 선생님도 말썽 잘 피우는 아이한테 우리 딸을 가리키면서 '쟤처럼 착해봐'라고 했댄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놀아'라고 흔히들 하는 말, 난 애들한테 안한다. 아이를 피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도 애한테 '착한게 좋은게 아니야'라고 말했다가 엄청나게 울렸다.

딸아, 착하다는 칭찬에 좋아하지말고, 착한 이미지를 갖기 위해 참지도 마.
난 그저 네가 너 다웠으면 좋겠어.
누가 널 못살게 굴면 너도 가서 한 대 때리고, 누가 널 밀면 울지만 말고 너도 확 밀어버려.
'착하지 않다'고해서 '못됐다'는 말이 아니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건 착해지는게 아니라, 네가 뭘 해야되는지, 네가 뭘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거야.
난 네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길 바래.

라고 말했더니 그러면 학교에서 벌 받는다면서 엉엉 운다.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조장해서 아이들을 길들이는 선생님들이 순간 미워졌다. 아이가 유아학교에 들어간 첫해, 반에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가 하나 있다고 아이가 말해줬다. 거긴 말썽피우는 아이들이 올라서는, 벌받는 의자라고한다. 문제는, 그 의자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말하자면 착한아이가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꾹꾹 참았다가 집에 들어와서 하루종일 쌓였던 스트레스를 푼다. 때로는 내가 야단칠 때, 학교에서 말썽피우는 못된 아이들의 행동을 집에서 흉내내기까지 한다. "이딴 버르장머리를 어디서 배웠어?!!"

애가 말 안 들을 땐 머리에 꼭지가 열리며 이성을 잃고 화를 내던 때가 있었다. 화가 가라앉은 뒤엔 무척 우울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화내던 내 모습이 나 어릴 때, 내  부모의 모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랭이같이, 불같이 화내는 부모의 모습이 증오에 가깝도록 싫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코. 야단을 치더라도 내가 싫어했던 모습으로는 야단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옳은 교육이 아니라는걸 체험으로 알기에. 내 대에서 끊어야 후대에 반복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건 내가 나를 다시 보는 과정이다. 육아하느라 프로페셔널한 경력에 공식적인 공백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잠옷으로 갈아입히는 동안 아이가 반에서 말썽을 많이 피우는 급우 얘기를 한다. 애들을 밀고, 때린다고. 걔는 착한 애가 아니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제 엄마가 너 이해해" 아이가 마음이 풀렸는지 가슴에 안긴다. 착한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건 만 다섯 살의 아이에게는 교육된 관념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개념인 것 같다. 청소년이 되기까지 기다려야할까? 스스로 터득하도록 놔둬야할까? 보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다시 얘기를 하는게 좋을까?




Comment +8

  • 연두빛 2011.09.14 06:49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 착하아이를 보면 바보처럼 보일 때가 있죠...
    자기주장도 못세우고 양보만 하고, 네 맞아요. 가슴에 담아두고...
    그저 성품이 고운 아이뿐인데 선생님이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착한척 하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리네요...

    • 맞아요. 선생님이 애들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착한 척 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근데 사실 통제를 하려고 해도 대다수의 어린애들이 통제가 안돼죠.

      "학교에서 누가 널 밀면 어떻게 대응하니?" 했더니 '하지말라'고 말로 한데요. "학교에서 누가 너한테 '못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하니?"했더니 팔짱 끼고 째려본데요. 애가 성숙한건지 얌전한건지... 한번은 남편하고 자기방어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복싱 포지션을 일러준 적도 있을 정도에요. ㅎㅎ 웃기죠?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친척들이 다 모여서 식당에 갔는데 큰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어쩜 애가 이렇게 얌전하냐, 애가 있는 줄을 모르겠다'구요. 친척 중에 또래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궁댕이를 붙이고 가만 앉아있지를 못했었거든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아이, 억세지 않은 아이, 성품이 고운 아이를 둬서 내가 복받은거려니... 생각하고 잘 키워야지 어쩌겠어요. 이러다가도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풀 때는 뚜껑이 열렸다 말았다... ㅎㅎ

  • 연두빛 2011.09.14 12:18

    내가 뭘 해야하는지 아는 것(사고와 도덕성의 발달)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것(감정의 발달)
    그리고 교우관계(사회성의 발달)와 가족관계(안정감)까지.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에 참 어렵습니다.

    엄마의 자리에는 있어보지 않았으나
    아이의 자리와 교사의 자리에 있어본 저는요.

    아이가 즐겁고 재미있게 학교를 다닌다면 계속 보내시고.
    아이가 왠지 모르게 불편해하고 힘들어한다면 옮겨 보심이 어떨지요?
    물론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 아이도 참여하게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마음은 스타이너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거리상의 문제와 금전상의 문제로 보내질 못하고 있네요. 그 학교가 아니면 다른 국립학교로 옮긴다고해도 달라질 것 같진 같아요.

  • 착한아이컴플렉스 2012.05.29 22:13

    "둘도 없이 착한아이"로 자라온 저 자신을 돌아보며, 언젠가 제 아이를 갖게 되면 절대로 착한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착한아이"로 지내기 위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것을 참았고, 착하지 않은 동생을 언제나 부러워했고, 심지어 천애 고아였다면 착하지 않아도 될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고, 착하지 않은 길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스스로를 보며, 만약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는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10대초반부터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한테 맞고 뺏겨도 때릴 줄 모르고 집에 오는 저를 보고 엄마가 "착해빠져"선 안된다고 하며 혼내던 날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7살에 입학했고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이니 한국나이로 6살이었습니다. "착해빠져서" 엄마한테 말한적은 없지만, 그 어린나이에도 솔직히 착해빠진 저 때문에 엄마가 다른 엄마에 비해서 훨씬 편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내 "착함"의 수혜자(?)였던 엄마가, 착하다는 이유로 화를 낼 때 어찌나 서러웠던지요..

    30대 중반이 된 지금, 여전히 아이는 없지만, 그리고 여전히 습관처럼 남은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저를 힘들게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른 생각입니다. 모든 작은 것들을 희생하며 자랐지만, 남들같으면 안할 희생을 위해 멀리 돌아가더라도 정작 인생에 중요한 것들은 제 의지대로 관철해 왔고, 그 바탕에는 열가지 백가지를 두고 생각해보고 갖고 싶어도 포기할 수 있는 거라면 양보해 온 마음이 열가지 백가지 중에 딱 하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그동안 포기해온 마음을 다 합해 지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착해빠져서, 남한테 - 심지어는 부모님께도 -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독립적인 결정을 하기에도 수월했구요. 반면에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착하지 않아서 모든 것을 언니한테 빼앗았던 동생은 결과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큰 결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피동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착한아이로 사는 것은, 본인에게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 간접 경험을 통해, 그렇게 착할 필요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의지라는 것도 깨우치게 마련입니다. 여러 기억이 떠올라 쓸데 없이 길게 주절주절 썼지만, 그로 인해 고민 하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제 현재의 결론은 본인이 깨우치게 마련이고,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건, 그냥, 내가 착하건 착하지 않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믿어줄 거라는 확신.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무엇이 아이를 착한 울타리에 넣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제 주변의 착한아이로 커온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론 강한 자아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고 그것이 착한아이 울타리에 들어가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착한아이의 울타리가 견딜만 하다면, 그 울타리를 키워가면서 강한 사람이 되는것도 살아가는 좋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을지 몰라도 울타리가 충분히 크고 강해지면,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냥 아이의 강함을 믿고 아이가 착하건 착하지 않건, 예쁘건 예쁘지 않건 변함없이 사랑해 줄 사람이라는 것만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성의있는 긴 댓글을 받기는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님의 성장기를 바탕으로한 착한아이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보니 제 마음에 조용하게 잔잔한 파동으로 다가오는게 있네요.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을 턱~! 치는게 '그래, 그게 정답이야!' 싶었어요. 어쩜 이렇게 차근차근 글을 잘 쓰시는지요. 감사합니다. 아이에게 제가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아낌없이 줄께요. 가끔 놀러오셔서 말씀 남겨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