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 갤러리를 둔 그녀는 자기네 갤러리 소속작가들의 사진을 내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일반 갤러리스트답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공적인 자리라서 어쩔 수 없이 차려입은 정장 위로 보이는 그녀의 외모가 수더분해서가 아니라 내가 던진 질문 이상으로 성심성의로 답을, 아니 그 이상의 설명을 하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콜렉셔너로 보였던가?)

그녀는 나를 이리로 따라와라, 저리로 따라와라하며 내가 질문하지 않았던 것까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구석에 초록색의 대형 전쟁포로 사진이 걸려있었다. 눈이 가리고, 두 손이 묶인 이들이 포로복을 입고 시멘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폐부가 아파오는데 그녀는 기어이 내 가슴 깊은 곳을 푹 찌르고 말았다.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보이며) "이 핸드폰을 사기 위해 사람이 죽어가기도 한다는걸 사람들은 알지 못해요."
(계속해서) "핸드폰에 들어가는 흔치않은 광물을 얻기 위해 콩고에서 전투가 일어나거든요."

핸드폰 때문에 왜 콩고에서 전투를 하는지 모르시는 분?



나: "맞아요! 생산과 소비의 거리가 멀어지면 어떻게 생산을 하든 소비자들은 도덕적인 면죄부를 얻지요. '난 떳떳하게 돈을 주고 샀을 뿐이고!'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돈 뒤에 누군가의 피가 묻어있는 건 게의치 않아요."

어느덧 우리의 대화는 삼천포로 빠져 그녀는 어느덧 사진 얘기를 제껴두고 기후변화, 경제위기, 에너지위기 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전시 보러다니다가 이런 인간을 만날 줄이야!

나: "근데 그 많은 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이 때, 우린 무엇을 해야할까요?"

그녀가 말문이 막혔다. 난 질문을 일반화시키는 동시에 좀더 구체적으로 던지기로 했다.

나 : "당신에게 하는 질문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해요. 각종 위기가 닥친 지금,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고 있거든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녀 : "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런 문제점을 던져주는 사진들을 전시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어요."
(이어서) "Paris Photo가 오픈하기 전에 이 곳엔 관람객이 하나도 없었고 작품을 나르는 인부들과 사진작품만 있었어요. 인부들이 사진을 감상하고 있었죠. 전 그게 참 좋았어요. 갤러리스트는 부자 고객만 기다리는건 아니거든요."

나 : "정말요? 전 갤러리스트들은 다 돈있는 고객만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요. ㅎㅎㅎ"
(참고로 이 전시장에 입장하기 위해 난 25€, 한화로 3만7천5백원을 지불했다. 작년까진 15€였는데.. 흑흑~ 내년엔 사진을 나르는 인부가 될까부다.)

'뭥미?'하는 표정으로 잠시 띵~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마치 친구같았다. 

그녀 : "그들 덕에 내가 계속 문제점을 던져주는 작가들을 후원하고, 전시를 계속 할 수 있게 하니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긴하죠."

그녀는 말을 마치더니 PET 물 한 병과 플라스틱 컵을 두 개 들고나와 내게 한 잔 건냈다. 낄낄거리며 개인적인 대화를 조금 더 주고받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전시를 봐야하기에 자리를 떴다. 지구상 어딘가에 그녀와 같은 이들이 있어 세상이 아름다운 거겠지.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내가 그 별 중의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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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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