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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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에 동명으로 나왔던 영화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5년 리메이크로 내놓았다.

<The War of the Worlds>

(<세계전쟁>이라고 번역하고 글을 다 써놓고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우주전쟁>이란 제목으로 상영됐구나.. ㅜㅜ)

 

외계인이 지구를 잡고 떡주무르듯이 돌리고 있는 위의 포스터는 프랑스판 포스터고,

아래 것은 바이런 해스킨이 감독한 원작 1953년도판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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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봐도 빔 나가는 소리가 들릴 듯 하지 않는가?

빙~빙~ 징~징~징~

 

 

그리나 사실 고리적 원작은 1898년 H.G.Wells의 SF소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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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작도 54년도판 영화도 보지 못했다. --ㅋ

검색을 해보니까 이 소설은 당대에 엄청난 히트를 쳤던 것 같다.

아래 주소를 클릭해보라. 출판 이래로 줄곧 끊이지 않고 엄청난 판들이 나와있다.

http://drzeus.best.vwh.net/wotw/wotw.html

 

이 영화를 보고 스필버그를 욕을 욕을 하며.. 많이들 실망했다는 소리가 줄줄이 들려온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스필버그!,하면 14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못생기고 사랑스러운 <ET>의 아버지가 아니던가?

 

14년 전 ET에 등장했던 외계인은 못난이의 대명사였고, 지구인들에게서 외려 공격을 당해서 달밤에 자전거 타고 줄행랑이나 치지를 않나... 빔이 나가는 총은 커녕 권총도 하나 쏘지 못하는 완전무방어, 그야말로 아기의 이미지 아니었던가? 게다가 <세계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박테리아에 감염이 되서 헬레레~ 얼굴이 허옇게 질려져가는 모습을 하며 앰블런스에 실려가는 ET의 모습이란... ㅠㅠ 반면에 자전거를 공중에 훌렁 띄워버리는 출중한 초능력의 소유자였다.

 

스필버그는 ET 안에서 그가 어린 시절에 가졌던 우주에 대한 꿈과 소망을 투영했던게 아니었을까? 소년과 ET가 처음 만나던 그 장면, 기억하시는가? 부끄러워인지 두려워서인지 숨어다니며 도망다니던 ET가 소년과 손가락 찌리리~ 맞대던 그 아찔하고 그 감동적이었던 순간말이다. 바티칸 박물관 천정벽화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본딴 듯한 그 장면은 호기심 가득한 두 개의 순수한 세계가 만나는 절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2005년.

 

<세계전쟁>에서의 외계인을 보라.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난데없이 때려부수고, 재 하나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그야말로 이유도 없이!!! 순식간에 도시는 공포의 도가니에 되고, 사람들은 죽거나 아니면 살아서 피를 빨리는.. 다 대체 이 외계인들은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깡깽이드냐?!!

 

<세계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얘기밖에 없다. <황혼부터 새벽까지>, <킬빌> 등은 저리가라로 지긋지긋하게 죽이고나서 막판에는 어이없이 꼬꾸라쳐서 다들 죽어버린다. 그래서인지 스필버그의 <ET>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스필버그가 죽었다한다. 하지만 나는 14년만에 재개봉 된 <ET>를 다시 보러 갔던 그 향수와 애정으로  21세기에 다시 쓰는 스필버그의 <세계전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를 옹호하고 싶다. 아니, 100년 전에 쓴 공상과학소설 원작에 뭘 더 바래? 실망은 스필버그에게 돌릴 것이 아니다. <ET>를 보며 훌쩍거리던 나이는 저만치 갔구나. 이제 나는 <ET>도 <세계전쟁>도 머리로 생각하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말에까지 가서 실망스러울 일은 난 아예 애초부터 없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쳐들어오는 상황설정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에! 도대체 코흘리개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뚱딴지같은 설정을 진지하게 믿는단 말인가? 반면에, 너무나도 평범하다못해 지루한 생활 안에 전쟁이 침범해서 그 지루한 안정감이 깨어지는 상황 묘사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본다. 쯔나미 얘기를 잠깐 해보자. 쯔나미가 마을을 휩쓸어가기 바로 전, 바닷물이 평소같지않게 바다 쪽으로 수 킬로 멀리 빠졌었다고 한다. 그 현상을 이상하게 여기고 피신을 한 이들은 살았고, 바닷가에서 그 현상을 지켜보며 카메라로 찍은 이들은 바닷물에 휩쓸려 갔다고 한다. 외계인들이 침입해오는 순간, 맨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고 번개가 칠 때, 집 밖으로 나간 톰 크루즈 앞에 펼쳐졌던 시민들의 반응을 보라. 디카에 비디오 촬영까지. 매우 평범하고도 전형적인 '호기심 가득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안 된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 꼭 그런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

 

<세계전쟁>에서 보이는 침략적인 우주인의 태도는 사실 근대 서구인들의 시선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그들에게는 타협이 없다, 아니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교류라는 건 없다. 내가 너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렇게 제국주의가 지구를 한번 휩쓸고 갔고, 그렇게 미국이 섰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하늘과 산과 강을 사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던 인디언들을 유럽에서 쫓겨온 사람들은 칼과 총을 들이대고 '너희의 땅을 우리에게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리라'했다. 당시에 한 인디언 족장이 편지로 보낸 답장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하늘도 땅도 애초부터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거들 어찌 우리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겠소'하며 써내려간 장문의 편지가 아직도 미국 어딘가 박물관에 있다는데.. 그건그렇고.

 

총으로 선 나라는 지금도 총을 합법화하고 있다.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가족은 죽여도 된다고 배운 띨띨한 애들이 고등학교에까지 총을 갖고 간다. 장난감 총 하나를 갖고 놀려고 서로 싸우던 10살도 안 된 형제 중 하나가 엄마가 숨겨놓았던 진짜 총을 갖고 와서 동생 머리에 대고 쏜다. 현실은 비디오게임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의 한 나라에서 총으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하고 있다. 군인들끼리만 싸운다고 했는데, 신문을 보면 죽어나가고 아파하는 사람들은 민간인들이었다. 역사상 미국을 한번도 건들인 적 없던 평화로운 그 나라 하늘에 성조기가 달린 비행기가 어느날 날아오더니 폭탄과 미사일을 뿌리고 가고, 아이들이 불구가 되거나 죽어버렸다. 하늘과 땅을 검게 물들이며 한 나라가 불의의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NBC도 BBC도 제대로 된 보도 하나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런던에 테러가 났다. 버스와 전철에 타고 있던 시민들 37명이 죽었다며 모두들 아랍 테러리스트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이 동맹해서 일으킨 전쟁에서 죽은 시민들의 숫자를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초토화되고 있는 그 나라에서 미폭파된 지뢰를 갖고 놀다가 팔 하나, 다리 하나, 눈 하나 잃은 아이들을 찍어서 서방세계에 목에 피대를 세우면 보도할 흔한 디지칼 카메라를 가진 디지탈 카메라를 가진 이들도 없고, 비디오 촬영기능이 장치된 핸드폰을 갖고 있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앞으로 그 나라에서 태어날 아이들이 어떤 선천성 불구로 태어날 지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세계전쟁>에서 비행기가 한 대 추락한 자리에 봉고차를 탄 기자가 탐 크루즈에게 묻는다.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까? 그 생존자인가요?" 아니라고하며, 기자는 "아쉽군요"라며 문을 닫고 떠난다. 런던도 뉴욕도 그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도가 되고 있는거다. 비행기 밖에서는 어떤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 보도되지 않는거다. "God bless us"라는 경건하고 영웅적인 말 아래 전세계적으로 숨져간 시민이 -한국전에서 숨진 한국민간인을 포함해서- <세계전쟁>의 지구인에 해당한다면, 뉴욕과 런던에서 숨져간 시민은 톰 크루즈가 수류탄으로 폭파시킨 외계인에 해당하려나?

 

세계 전쟁 한 번 일어나지 않았던 시대에 <세계전쟁>이란 책이 나왔고, 세계 1-2차 전쟁이 일어난 뒤 '이게 진짜 세계전쟁이로구나'라는 현실화된 두려움 아래서 영화 <세계전쟁>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전쟁'을 얘기할 때 '세계'라는 말이 그 앞에 붙을까 두려워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이상 세계전쟁이 SF가 아닌 현실인 지금, 리메이크 <세계전쟁>은 그렇기 때문에 SF이상의 의미가 있다.

 

제풀에 일어선 자, 제풀에 죽으리라, 공격자가 차라리 외계인이라면 그러려만, 현실에서는 아쉽게도 공격자가 외계인이 아니다. 제풀에 죽지말고, 제발 아예 일어서지 말아다오. 세계전쟁은 더이상 상상도 공상도 아닌 현실이기에.

 

 

이집트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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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한 친구('한국인'이라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면 이 글에 출연하는 인물은 모두 프랑스인이다)가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쥐며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너는 내 인생의 남자'라며 결혼을 꿈꾸게 하던 여자가 불현듯 떠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전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1살짜리 아기를 친자식처럼 젖병 물리고 기저귀 갈아주며 키운 지 1년, '우리 사이엔 열정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그녀는 짐을 싸서 아기를 안고 나가버렸다는데, 그것도 전애인의 아파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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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독실한 크리스챤이 아닌 이상 동거가 보편화되어 있다. 6개월 연애하다가 동거에 들어가면 5년 정도 살다가 결혼에 골인하기도 하고, 15년을 같이 살았어도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을 했다가도 이혼하고, 이혼하면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아이 딸린 남녀가 만나 새 아이를 갖거나, 친부와 친모가 각각 따로 재혼해서 자식을 가지면 복잡한 가계를 그리게된다. 배우자를 동성애인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간혹 봤는데, 화가 나기앞서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 R(59살)은 정신치료사인 S(61살)와 동거를 20년째 하다가 결혼한 케이스. 둘 다 이혼의 아픔이 있어서 결혼이란 걸 굳이 하고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서류 이후로 전보다 세금혜택을 더 받게 되었을 뿐 삶 자체에서 결혼 전이나 후나 변한 건 하나도 없다고.

프랑스인의 평균 결혼연령은 남자 만30.6살, 여자 만28.6살이며, 연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번 하지만 동거를 하는 사이는 심각한 사이다. 하지만 '동거=결혼'은 아니다. 주변에 보면 결혼 전 보통 1-2회 정도의 동거를 경험하는 것 같다. 동거를 그렇게 하고 결혼을 해도 이혼율이 50%(2001년 통계)에 이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성과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 결혼생활이 원만할 것 같은데,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사귄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인생의 반려자를 고르지 못해 이 사람 저 사람, 정처없이 시간허비 마음고생하는 프랑스인들을 여러 명 보면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이혼이 굳이 아니더라도 연인과 헤어지는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큰데, 이혼 후 법정에서 서류가 통과되는 2-3년을 기다리며 아픈 기억을 되새김한다는 건 고문이다. 그 시간동안 재고를 하라는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서 본 바로는 이혼수속 기간동안 재고는 커녕 새로운 연인을 만나러 다닌다. 결혼한 커플의 반이 이혼하는데, 헤어지는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4쌍 중 3쌍이 여자측에서 이혼신청을 하고, 이혼하는 커플의 98%는 남자가 여자에게 생활비를 주도록 판결이 내려진다. 결혼에 대한 불안감과 이혼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랑스인들은 결혼을 점점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고, 결혼연령도 점점 늦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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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99년말, PACS(빡스)라는 동거계약법안이 통과된 후로 PACS커플은 해가 갈수록 느는 반면, 결혼율은 줄어들고 있다. PACS란 Pacte de civil solidarité의 준말로 해석을 하자면 '시민연대조약'이란 뜻이다. 커플 상호간에 부여되는 권리와 의무가 결혼보다 훨씬 적고, 맺고 끊는 절차가 훨씬 간편해서, 헤어질 경우에도 해당 관청에 '이제 조약 끝!'이라는 신고로 충분하며 수속은 몇 달 내로 처리된다. 위자료가 없고, 만일 태어난 아이가 있을 경우, 친자방문권을 주장할 수 없다. 아이는 애초에 PACS에서 쌍방이 결정한대로한다. 아이는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결혼해서 낳은 자식의 상속권에 비하면 절반밖에 안된다. 입양을 할 경우, 친권 및 상속권에서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발생하므로 PACS에서 입양은 허용되지 않는다.

PACS의 필요조건은 적어도 한 사람은 프랑스 국적을 가질 것, 한 사람이라도 결혼이나 다른 PACS를 한 상태가 아닐 것, 두 사람이 다 성인이며, 4촌이내 관계가 아닐 것 등이다. 결혼보다 얽어매는 관계가 덜하다고 헤어지지 않는 건 결코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PACS를 하는 10쌍 중 1쌍이 헤어진다고 한다. 실례를 보자.

31살의 미혼남 T는 한국인 N과 사귀다가 처음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N과는 달리 T는 결혼도 아이도 원치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자고 원치않는 학생신분으로 타지에서 계속 체류할 수가 없자 N의 체류증과 노동허가증 문제때문에 동거 2년만에야 기어이 PACS를 했다. 하지만 이미 N은 기다리다 지친 상태. PACS 후 노동비자가 나온 지 얼마 안되서 둘은 별거를 했고, 1년 뒤 헤어졌다. 프랑스인 T는 수 년 간 동거생활이 원만하면 그때가서 PACS를 고려하고자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보면 PACS하는 커플은 없다. 동거 중이거나 동거하다 헤어졌거나 동거하면서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만 있다. 반면에 한국인 N은 타지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는데있어서 적어도 어떠한 법적 장치 안에서 안도감을 얻고자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사랑하는 방식과 동거에 대한 개념이 문화적으로 상이하게 달랐던데서 온 아픔이었다고 본다.

PACS의 필요조건을 다시보면 대상에 성별의 구분이 없다. 즉 동성애자들도 PACS가 가능하다. 커플의 법적인 결합장치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한 동성커플이 결혼을 시도했다. 다음 날로 주례를 섰던 시장은 해임되었고, 1년 후인 지난 4월, 법원은 '이 결혼무효!' 판결을 내렸다. (참고로 프랑스에는 예식장이 없으며, 시청이나 관할관청에서 청장의 주례로 결혼식이 치뤄진다. 주례사는 없으며, 가까운 친지와 결혼증인 앞에서 부부의 권리와 의무조항을 청장이 읽어준 후, 서식에 사인을 하면 식은 끝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5분! 종교적인 혼례은 이후에 할 수도 있으며, 안 해도 상관없다. 다시 말해서, 법의 이름으로 하나되는 혼례는 의무요, 신의 이름으로 하나되는 혼례는 선택이다.)

세계적인 프랑스 철학가 쟈끄 데리다가 르몽드지와 가진 인터뷰에 의하면(자세한 기사는 르몽드 2004년 8월 19일자, 한겨레 8월 20일자 참고), '결혼이란 단어와 개념을 아예 민법에서 없애고 자유로운 시민결합(union civil)이란 단어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프랑스의 가족개념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하고 폭넓게 변할 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난 사실 걱정된다. 머리큰 어른들이야 사랑찾아 자유로운 시민결합 한다지만 부모의 이혼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충격일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엄마애인/아빠애인, 새엄마/새아빠, 편모/편부, 두 엄마/두 아빠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단 말인가?


필자가 <샘터> 2005년 6월호 '해외통신'(pp.96-97)에 기고한 글의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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