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프랑스 도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후보 등록 마감을 불과 일주일 앞둔 때였다. 평생 선거 캠페인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집안 어른이나 지인 중에도 정치는커녕 이장 한 번 지내본 사람이 없었다. 

정치인이 되려고 마음먹고 저지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2015년부터 선거법이 바뀌어 남녀 1조로 후보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마저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 선거구에서 녹색당이 후보 명단에서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로 후보 수락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아니까.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내가 사흘 동안 고민 끝에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원인은 나를 추천했던 동료의 추천사에 있었다. 

"정치는 '정치가'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2015년 이블린 도의원선거 후보 기자회견 사진 이블린(Yvelines)에서 가진 녹색당 도의원선거 출범식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체 기념촬영. 이블린은 파리 서쪽에 위치한 데빡뜨멍(departement; 도)으로, 이곳의 수도는 베르사이유다. 위 사진의 링크> http://yvelines.eelv.fr/les-ecologistes-battent-la-campagne-yvelinoise/


"정치는 '정치가'라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시민이 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봐. 그 때문에 나도 지난해에 시의원으로 출마했고, 시의원이 됐어. 나는 네가 녹색당 여성 후보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너의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몹시 필요해. 넌 아주 좋은 여성 후보야."

내 선거 파트너는 운도 대단히 좋지. 마침 그때 내가 백수여서 두 달간 밤낮으로 선거 운동에 오체투지를 할 시간이 있었다. 내 선거 파트너가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단칼에 무시해버리는 선거 운동을 다 해내는 고집과 '포스'가 있었다. 

집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경시청(Prefecture of Police,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 조직)에 후보등록부터 시작해서 포스터에 들어갈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뿌리고, 보도 자료를 만들고, 시민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준비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열어 운영하는 등 선거 캠페인의 모든 과정을, 선거 8개월 후 국가로부터 선거 자금을 환불받을 때까지 혼자서 다 해냈다. 



015년 우이(Houilles) 선거구 도의원선거 포스터 내가 2015년 도의원선거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선거 포스터. 우이 선거구에는 우이, 까리에르 쉭센느, 몽테쏭의 세 도시가 포함된다. 이 사진 촬영과 색보정을 내가 직접 했다.



녹색당 동료들로부터 "적당히 해, 이건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고"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확실히 미쳐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개정된 프랑스 도의원 선거법 조항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선거 자금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통달했다. 

내 선거구뿐만 아니라 옆 동네 삭투루빌 선거구에 출마한 녹색당 동료의 선거 캠페인도 물심양면 도왔다. 그 결과 삭투루빌 선거구의 1차 선거에서 녹색당은 7.44%를, 우리 선거구에서는 7.30%의 지지를 얻어냈다. 내겐 나름의 승리였다. 3%도 넘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선거 파트너의 배신을 맛봐야 했던 건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내 선거 파트너는 전년도 시의원 선거 때보다 갑절 이상 뛰어버린 녹색당 지지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 사무소별로 집계한 결과표를 신줏단지처럼 고이 품 안에 넣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14년 시의원 선거에 그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고, 1차 선거에서 389표를 받아 지지율 3.27%를 기록했다. 일곱 명의 후보 중 꼴찌였다. 

그런데 2015년, 인구와 면적이 3배 이상 커진 도의원 선거에서 일곱 후보 중 4위를 기록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참고로, 도의원 선거 우리 선거구의 면적은 약 17km²에, 인구는 약 6만3000명이다.  

이후 1차 선거를 통과한 사회당이 우리에게 2차 선거에서 본인들을 지지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우파와 대결할 좌파인 사회당을 지지하는 일은 나로선 재고할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선거 캠페인 동안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며 도와주었던 이가 40년 동안 사회당원이었고, 나의 시어머니는 18년간 사회당 당원이자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프랑스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색당이 도의원으로 선출된 곳도 다름 아닌 시어머니가 계신 도였다. 어머님은 그 사실을 내 일처럼 기뻐하셨다. 사회당이신 어머님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녹색당인 나를 물심양면 도와주셨다. 때문에 녹색당인 나와 가까운 사회당의 2차 선거를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당연히 사회당을 지지해야지! 우파가 이기게 놔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내 말에 나의 선거 파트너는 주저 없이 "글쎄, 난 아니야, 사회당에 실망해서"라고 말했다. 3월 22일, 밤바람이 아직 쌀쌀한 자정에 우리는 각자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종종걸음을 치며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선거 파트너의 배신에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집을 나서니 사회당 선거 게시판마다 '녹색당 아무개 남자 후보, 사회당 지지'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더군다나 일은 다 내가 했는데 생색은 그가 내다니. 

며칠을 앓고 드러누웠다가 일어나 같은 길에 위치한 사회당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돕고 싶다고 했다. 전단에 내 지지 의사를 인쇄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내 사진과 지지 의사를 그들의 페이스북에 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흘간 그들의 선거 캠페인에 동행했다. 바로 그때 나는 진짜 선거 캠페인이라는 게 뭔지를 보았다. 

나에게 '대선 준비하느냐'던 녹색당 동료들의 비아냥을 잊게 만든 진짜 선거 운동을 체험해보았단 말이다. 프랑스 전국에 있는 녹색당원들이 우리 선거구 동료들 같지는 않다. 내 선거 운동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나를 응원해주던 타 선거구의 녹색당 동료들이 있었기에 힘든 과정을 모두 감수할 수 있었다. 


2차 선거에서 사회당을 지지하기위해 사회당원과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는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동행하던 때. 왼쪽에서 두 번째가 도의원선거 사회당 여성 후보 마리셩딸 듀플라이고, 맨 오른쪽이 사회당 남자 후보 실방 티아롱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거나 내 인생에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덕분에 2015년 초에 개정된 도의원 선거 관련법규를 통독했고, 프랑스 선거 절차에 대해서 그 어느 프랑스인보다도 훨씬 잘 알게 되었다. 

4월에 있을 한국의 총선을 맞아 프랑스의 선거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전반적으로 소개할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언제 어떤 선거를 치르며, 선거 운동은 어떻게 하며, 기탁금을 얼마나 내며, 선거 자금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차로 나누어 소개해볼까 한다. 

1. 프랑스에서는 어떤 선거가 언제 있나?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의원을 한 날에 뽑기 때문에 투표용지 여러 개를 들고 투표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한 선거에서 한 종류의 의원을 뽑는다. 프랑스에서 시의원 선거, 도의원 선거, 지방 선거는 6년마다 치러지고, 유럽의원 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진다. 

총선을 앞둔 한국은 정치인들의 '줄서기'가 한창이던데, 프랑스는 선거가 없어 조용하다. 내년 4월 23일과 5월 7일 대선을 시작으로, 6월 총선, 2020년 초 시의원선거, 5월 유럽의원 선거, 2021년 3월 도의원 선거, 12월 지방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유럽의원 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1차와 2차 투표를 거친다. 유럽의원 선거는 프랑스만의 선거가 아니므로 앞으로는 이 글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2. 결선투표제는 어떻게 진행되나? 

1·2차, 두 차례에 걸쳐 선거를 치르는 결선제를 도입한 나라마다 상세 규정에 차이가 있다. 프랑스라 하더라도 총선과 시의원 선거는 규정이 다르다. 총선과 도의원 선거의 예를 들어보면,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등록된 선거인 중 25%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다시 말해서 50% 이상의 지지율이 나왔다 하더라도 선거율이 저조해서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했다면 2차 선거를 치러야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도의원 1차 선거에서 삭투루빌(Sartrouville) 선거구의 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UMP)후보가 55.74%라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지지율이 아닌 득표수를 집계해보면, 등록된 선거인 (혹은 전체 등록유권자) 5만1177명 중 23.74%인 1만2016표를 얻었다. 

즉 선거율이 낮은 탓에, 과반의 지지율에도 선거인의 반의 반 표도 얻지 못해서 2차 선거를 준비해야했다. 후보 다섯 팀 중 12.5% 이상 득표한 팀이 UMP밖에 없었으므로 최다득표한 두 팀의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렀다. 참고로, 이 선거구의 선거참여율은 1차 선거 43.18%, 2차 선거 38.90%이었다. 

3. 프랑스에도 비례대표제가 있나? 

대통령, 국회의원, 도의원은 2차 선거를 통과한 후보만이 실무를 수행하고, 시의원과 지방의원은 2차 선거에 오른 후보들 사이에 비례대표제가 적용되어 의원직을 차지한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후보자 단독출마가 아니라 '리스트'라고 불리는 팀을 구성해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다. 

후보자는 선거구의 인구수에 비례해서 정해진 홀수의 팀을 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시의원선거에서 해당 시의 인구에 비례해서 39명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시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1번이 되고, 그와 함께 시의원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람 38명 찾아서 명단을 채워야 한다. 1번이 남자면 이어지는 순서는 반드시 여자-남자-여자-남자순이 되고, 1번이 여자면 2번 이후는 남자-여자-남자-여자순이어야 한다. 

지방선거의 경우, 하나의 지방 안에 여러 개의 도(département)가 있어서 명단등록과 의원점유율 계산이 아주 복잡해진다. 지난번 프랑스 지방선거에 대한 글에서 상세한 설명을 했는데,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다시 설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일드프랑스(파리와 인근)의 경우 녹색당 후보로 에마뉘엘 코스가 나섰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도가 있고, 각 도마다 인구수에 비례해 명단을 작성해야만 에마뉘엘 코스가 지방의원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파리는 에마뉘엘 코스를 필두로 한 리스트에 총 42명, 센에마흔느에 77명, 이블린에 27명, 에쏜에 24명, 오드센느에 30명, 센생드니에 29명, 발드마흔느에 25명, 발드와즈에 23명해서 일드프랑스에서 총 225명(반드시 홀수!)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녹색당과 시민연합(CAP21)이 연합했다. 다른 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각 도마다 같은 수의 지지자를 찾아 총합 225명의 명단을 작성해서 경시청에 제출해야만 후보등록이 된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앞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리스트의 예) 2015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의 일드프랑스 후보 리스트 (뒷면) 선거 일주일 전, 각 가정에 모든 정당의 후보 소개, 지지자 및 예비후보 리스트, 투표용지가 한 봉투에 담겨 배달된다. 모든 후보의 유인물 규격은 동일하다. 일드프랑스에는 여덟 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인구수 대비 리스트의 수가 정해진다.






1차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없거나, 과반을 넘었다 해도 등록된 선거인의 반의 반의 표도 얻지 못했을 때는 12.5%를 넘긴 후보1, 후보2, 후보3이 2차 선거를 치른다. 만일 지지율 12.5%를 넘긴 후보가 하나밖에 없거나 아무도 없다면 최다득표를 한 두 후보가 2차 선거를 치른다. 지난 지방선거 1차 선거 결과의 실례를 볼까? 

파리에서 1차 선거 결과, 우파연합과 좌파연합이 각각 32.93%와 31.42%로 박빙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녹색당이 10.92%, 극우전선이 9.66%의 지지를 받았다. 이하 후보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파리 주변 지역을 통합한 '일드프랑스'에서의 득표수를 집계한 뒤, 등록된 선거인 수를 분모로 득표 비율을 산출해보면 각각 30.51%, 25.19%, 8.03%, 18.41%로 순위가 뒤집힌다. 파리에서는 녹색당 지지율이 3위, 극우전선 지지율이  4위였지만 일드프랑스에서는 극우전선이 녹색당을 월등히 앞질러 12.5%를 넘기면서 2차 선거 후보로 오른 것이다.  

1차 선거 결과, 프랑스 전국에서 극우전선의 파도가 넘실댔다. 전국의 52%가 넘는 시에서 극우전선이 선두를 달리는 경악할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에마뉘엘 코스는 녹색당의 이름으로 좌파연합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2002년 극우전선이 대통령 2차 선거 후보로 오르던 그 악몽이 반복될 것인가? 프랑스는 긴장상태에 놓이고, 선거참여율을 높이자는 시민캠페인이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선거참여율 속에 치러진 2차 선거 결과, 극우전선은 프랑스 전국 그 어디에서도 최다득표를 이뤄내지 못했다. 파리의 경우, 좌파연합이 녹색당의 지지를 흡수하면서 1차 선거의 순위를 뒤집고 49.64%로 1위를 달렸고, 우파연합은 44.26%, 그리고 극우전선은 높아진 선거참여율에 밀려나 6.10%를 기록했다. 하지만  파리가 포함된 선거구획 일드프랑스 집계에서는 우파 43.8%, 좌파 42.18%, 극우전선 14.02%를 기록해 전체 판도가 달라졌다. 

이 경우, 지방의원 좌석점유율을 어떻게 계산할까?

일드프랑스 지방의원의 총 좌석 수가 209석이다. 최다득표를 한 우파연합이 먼저 '보너스'로 25%를 차지한다. 따라서 52석 선 점유. 이어서 남은 157석을 세 후보가 득표율로 나눠 각각 68석, 66석, 22석을 차지한다. 다 더하면 총 208석, 한 자리가 남는데, 이건 최다수 득표를 한 당에게 돌아가 우파연합은 총 121석을 차지하게 된다. 각 당의 도별 의원수 배정은 일드프랑스의 각 도별 득표비율에 따른다. 

4. 연합 출마와 2차 선거 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파리회의로 이곳에 오신 한국의 녹색당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니, 어떻게 '연합' 출마가 가능할 수가 있나? 합당을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면 만들었지 서로 다른 당이 어떻게 연합을 해서 출마를 할 수 있나? 한국에서는 절대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며 깜짝 놀라하셨다.  

선거구역이 작은 시의원 선거에서는 연합하는 일이 없지만 선거구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연합해 출마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의원 선거와 지방 선거가 그렇다. 

도의원 선거는 리스트가 없고, 2015년부터 여성의 정치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남녀 후보가 한 조가 되어 출마해야 한다. 남녀 후보에, 부후보 두명까지 총 4명이 한 조가 된다. 선거가 끝나고 의원이 된 후에는 남녀 후보는 각각 독립적으로 의원생활을 한다. 

도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는 보통 세 개의 도시에서 많게는 약 40개의 마을을 포괄하게 되는데, 그중 한 도시에 사는 후보들끼리 출마하는 경우는 드물고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에 사는 서로 다른 당 후보가 연합해 4인1조를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되면 서로 다른 도시나 마을의 지역적인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어 하나의 도시·마을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여러 도시·마을을 포괄한 도 단위의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당과 연합하는 경우,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극우전선과 연합하려는 당은 더욱이 하나도 없다. 보통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연합하고, 녹색당은 좌파와 연합해왔는데, 사회당과 연합했다가 지난해에는 극좌파와 연합했다. 

공약 프로그램 작성 과정부터 함께 참여하고, 리스트를 같이 짜게 되므로 다수 정당은 소수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수 정당 지지자의 표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당선이 될 경우, 소수정당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노선을 공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1차 선거에서 패배한 당이 2차 선거에서 아무개당 지지를 공식으로 표명하는 경우, 리스트를 다시 짜는 경우는 드물다.  

5. 후보의 기호는 늘 고정되는가? 

한국에서는 여당이 기호 1번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선거 때마다 바뀐다. 경시청에서 선거 후보들을 어느 한 날 일제히 소환해 그 자리에서 제비뽑기로 정하기 때문이다.  

6. 창당이 쉬운가? 

프랑스 녹색당의 현재 당원이 1400명이라는 말에 한국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한국 녹색당 당원 수보다 훨씬 적다"며 놀라워 했다. 한국에서는 창당하는 데 최소한 5000명의 당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당원이 1400명밖에 안 되는 당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장뱅상 플라세가 지난해 여름 녹색당을 탈퇴하고 가을에 새 당을 만들었다는 말에 역시 놀라워하며 창당이 그렇게 쉽냐고 나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는 당원수가 창당의 조건이 아니다. 창당은 협회(association)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하다. 최소한 회장과 총무만 있으면 되고, 간단한 서류절차를 경시청에 제출하면 가능하다. 문제는 당을 얼마나 쉽게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당이 동시대 시민의 소리를 얼마나 많이 대변하고, 얼마나 많은 당원을 확보해서 재정적으로,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다음번에는 많은 분들이 굉장히 궁금해 할 프랑스의 선거자금, 그리고 한국에서 보면 생소할 투표용지와 투표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016년 1월 31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교실에서 자리를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학교, 급식을 성적순으로 먹인다는 학교, 그렇게 잔인하게 공부시켜서 대체 뭐에다 쓰려는걸까? 그렇게 경쟁하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자격증에 졸업증에 식스팩을 준비해서 '좋은'직장에 가고, 학벌과 집안이 '좋은' 배우자를 구해서 결혼하고, 태교에 '좋다는' 성문영어와 정석수학을 임신 중에 공부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학원을 한 달에 서너 개씩 보내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사례들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보여주고자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프랑스인들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스케이트보드를 원없이 타기 위해 찾은 직업, 요리사 

트리스텅을 만난 것은 유기농 빵집에 견학갔을 때였다. 새벽 4시부터 빵 반죽을 하는 빵집에 6명의 불렁줴(빵 굽는 사람)가 있었는데, 트리스텅은 그중에 가장 친절했다. 일하는 동안 방해되지 않게 피해다니며 틈 나는대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이것저것 먼저 설명해주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잘 구워진 빵을 먹어보라고 건네준 것도 그였고, 막 구워 나온 빵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때문에 한 김 식혔다가 먹으라고 조언을 준 것도 그였고, 견학을 마치고 자리를 뜰 때 아쉽다는 기색으로 페이스북 연락처를 물어온 것도 그였다. 




'나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푸는 흔치 않은 프랑스인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빵을 구운 지는 몇 달 안 됐다는 그의 지난 10년간 직업은 실은 요리사였다. 내가 견학갔던 빵집에는 휴가 간 직원들을 대신해 2주간 일손을 도우러 왔던거였다. 요리사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시간이 날 때면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   

한국같으면 대학 들어가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학교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에 각종 자격증 따느라 바쁘고, 졸업할 때면 직장 구하느라 피가 마르고, 나이 서른이 되면 여자 친구 하나쯤 있어서 주말에는 데이트하고 결혼자금과 집 장만을 이유로 적금과 은행대출에 허리가 휘어질 텐데, 서른의 나이에 어쩌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신나게 살 수 있지? 12월부터 3월까지 알프스 스키장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스키를 즐기러 간다기에 현재 실업자가 된 그를 서둘러 만났다. 

문학 전공했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트리스텅이 스케이트 보드에 빠져있는 한때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넝테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학사를 마치고 1년간 요리를 공부했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고학력 실업자가 늘고 있는 추세 아니던가?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실업교육에 있다고 믿었고, 프랑스를 떠나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행자금을 모으는 방법으로 워킹 홀리데이도 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과일 따는 일이고, 게다가 계절을 잘 맞춰야 한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방식은 요리사가 되는 것! 세상 어디를 가도 칼만 있으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사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대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 2년동안 준비했다.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1년, 그리고 1년짜리 요리 전문과정을 다니면서 돈을 모았다. 교육과정상 학교에서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 식당에서 연수생으로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1살에 첫월급을 받았다. 대학 동창 중에 가장 먼저 돈을 벌었다. 대학 동창들은 지금 유명 출판사나 '라 리베라시용'같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친구 중 한 명이 트리스텅이 쓰는 책의 교정을 봐주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엄마에게서 배운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일을 구했다. 그 다음은 호주로, 멕시코로, 캘리포니아로, 태국으로. 

태국에서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했고 요리는 돈을 주고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보드 타는 친구와 어울리다가 한명이 채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쉐프를 소개해줬다.

쉐프네 집에서 1주일을 먹고 자면서 채식요리를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시장에 나가서 재료 고르는 법을 배웠다. 또다른 잊지 못할 경험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석 달동안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여행을 했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공부 마치면 구직하고 연애하고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등의 일련의 사회적 기대감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런 기대감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란다. 다만 자기는 그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뿐이라고. 이제 서른인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 4년간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각자 서로 다른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중요한 건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난 지금이 행복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난 행복해"

강가를 거닐며 얘기하다가 운동 중인 내 지인을 만났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트리스텅은 그에게 바로 악수를 청하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고는 지인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아직도 존댓말로 대화하는 지인에게 바로 반말을 건넨다. 

지인에게 "당신도 아는 그 유기농 빵집에서 일했던 블렁줴다"라고 그를 소개했더니 지인은 "아, 당신네 빵 정말 맛있다. 빵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리스텅이 바로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레시피를 적어준다. 여행에 의해 단련된 열린 마음 때문에 초면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걸까.  

앞날에 대해 걱정이 없느냐 물었더니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는 답이 날아왔다. 

"중요한건 현재야. 내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았어. 보험, 대학교육, 쉔겐조약 등 그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해.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싶은 건 다 했어. 난 지금이 행복해."

맞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행복이 올꺼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현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깨닫는건데. 나니 모레티의 영화 '아들의 방'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뒤 아버지는 그제야 '아들이 같이 야구하며 놀자고 했을 때,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  

"내가 만일 프랑스에서 살면서 집 장만을 해야 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거야. 프랑스에 돌아오면 엄마 집에 머물기 때문에 내 집이 따로 필요없었거든. 앞으로는 내가 프랑스에 돌아오면 묵을 아파트가 하나 필요할 것 같아."

자유롭게 산다고 계획없이 사는 건 아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생활비는 프랑스보다 해외가 더 적게 먹혀. 한 달에 1000유로로 예산을 잡아. 프랑스에서는 월세가 비싸서 1000유로로 한 달을 살 수 없잖아. 잠은 캠핑에서 자고, 먹는건 직장에서 해결이 되고, 남는 시간은 스케이트보더들과 보드를 타러 다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6개월 정도 준비를 해."

오랜 시간의 여행과 타지생활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냐고 물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고급 아파트를 보면서 트리스텅이 말한다.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예전엔 싫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건 그들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걸 인정해. 요리사가 돼서 세계를 여행하면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며 사는 건 내 방식이고. 내 인터뷰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모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다른 방식이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겨울에 알프스에서 일하려고 해. 스키장에서 일하면 스킨장 시설을 무료로 쓸 수 있거든. 내년 3월까지 거기서 지내고, 그 다음은 인도로 가려고해. 알프스에 아직 구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일 찾는건 어렵지 않아.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 아마도 10년 후쯤에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 유기농이나 채식처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는 먹거리 관련사업 말이야." 

행복과 감사함과 자신감에 꽉 찬 그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웃는다. 


블로그 이미지

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새벽 4시 불렁줴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우리는 지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소비가 미덕인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이게 아니다!'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계화에 퇴색된 인간성에 가치를 두고, 개인주의로 희박해진 나눔을 주장하며,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방식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우위에 두며, 느린 속도로 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들,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그런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도록 실천하는 장소를 하나 하나 찾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대안적인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지도 모르므로. 연재 그 두 번째로 파리 근교에서 불가마로 굽는 유기농 천연효모 수제 빵집을 방문했다.

프랑스에서 빵집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인구 7천 명의 도시 Épône(에뽄)에 매우 보기드문 특별한 빵집이 있다. '라 쿠론 데 프레', 우리말로 '초원의 왕관'이란 이름의 이 유기농 빵집은 유기농 밀가루와 천연효모를 쓸 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빚어서 전기가마가 아닌 장작으로 지핀 불가마에 빵을 굽는다. 게다가 반경 50km 내에서 생산되는 지역산 밀가루를 고집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프랑스의) 우리밀 수제빵을 만드는 이곳을 오래 전부터 꼭 방문해 보고 싶었다. 참고로, 프랑스 절대 다수의 빵집들이 기계로 반죽을 하며, 전기로 된 가마에 빵을 굽는다. 


근처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뛰었다. 새벽 4시부터 빵 만들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몽사몽으로 도착하니 피에르가 가마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세게 지피고 있었다. 전기 가마가 아니기 때문에 몇 시간 전부터 불을 때고, 가마실을 덥히기 위해 문을 꼭 닫아 놓아야 한다. 사실 며칠 불을 때지 않아도 이 불가마는 사시사철  식지 않는다. 빵을 굽지 않는 오후 내내 혹은 일요일 내내 가마 안에 공기의 유통이 없도록 구멍을 닫아놓으면 며칠이 지나도 훈훈함이 유지된다.




새벽 4시, 불가마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빵집의 하루가 시작된다.


피에르는 어제 한 켠에 만들어 둔 르방(levain, 밀가루에 물을 섞어 오래 두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천연효모)을 물에 개고, 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짜깁기된 직사각형의 큰 통에 밀가루, 25~30도의 물, 천일염을 넣고는 맨손으로 섞기 시작한다. 집에서 500g짜리 빵을 반죽하고 쳐대는데도 팔이 아프던데 20kg짜리 반죽을 하면 팔이 얼마나 아플까? 반죽을 한숨 쉬게 하는 동안 다른 편에서 바게트 빵 만들 준비를 한다. 천연효모에 물을 섞더니 나보고 개어보겠느냐고 한다. 손을 깨끗이 씻고와서 뜨뜻미지근한 천연효모를 주물락거리며 훠이훠이 섞는 동안 그는 바게트빵 만들 준비를 한다. 기계 반죽통에 밀가루, 물, 천연효모, 회색의 천일염, 이 네 가지 재료를 섞고 기계가 반죽을 시작한다.


르방


삐에르가 맨손으로 20kg짤리 빵 반죽을 하고 있다.


기계로 바게트 빵 반죽을 한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빵 바구니들.


수시로 가마실 온도를 체크하면서 피에르가 이번엔 '글루텐 프리(글루텐이 없는)' 빵 만들 준비를 한다. 프랑스는 요즘 소화불량, 알레르기 등의 문제로 글루텐 프리 빵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늘고있다. 글루텐은 밀 속에 있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밀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을 하면 점성을 만들어내는데, 글루텐 때문에 바로 이 점성이 생긴다. 발효로 인해 부푸는 반죽을 글루텐이 잡아주기 때문에 빵 안에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이왕이면 같은 값에 큰 빵'을 선호하다보니 빵을 크게 부풀게 하려고 밀 종자를 개량해 글루텐을 인위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원래 염색체가 14개였던 밀이 오늘날은 염색체가 (3배가 많은) 42개나 된다. 사람의 경우, 염색체가 단 한 개만 더 많아도 다운증후군이 되거나 사망한다.

하여튼 글루텐 프리 빵은 밀가루 대신 쌀가루, 모밀가루, 콩가루로 만들고, 점성이 없기 때문에 쳐대지 않아도 되고, 쳐댈 수도 없기 때문에 재료의 무게를 재서 고루 섞은 뒤에 빵틀에 붓고 구우면 끝. 아주 간단하다. 글루텐 프리 빵은 재료를 기계로 섞어서 전기가마에 굽는다.


글루텐 프리 빵 반죽을 틀에 담아 전기가마에 넣고 있다.



새벽 5시 빠른 손동작으로 빵 반죽이 태어난다 

새벽 5시 다른 직원과 견습공들이 도착한다. 두 명의 직원과 세 명의 견습생, 총 여섯 명의 불렁줴(빵을 굽거나 파는 사람)가 빠른 동작으로 작업실과 가마를 오가며 질서정연하고 리드믹하게 빵을 척척 만들어댄다. 가수 비욕이 출연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댄서 인 더 다크(Dancer In the Dark)'의 공장 댄스 장면을 연상 시켰다.

빵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통밀빵, 호밀빵, 흰빵, 바게트 빵, 양귀비씨를 바른 바게트 빵, 올리브를 넣은 빵, 크랜베리와 호두를 넣은 빵, 표면에 설탕을 바른 빵, 해바라기씨와 아마씨를 섞은 빵, 밤을 넣은 가을빵, 브리오슈 등. 일일이 다 맨손으로 반죽하고 (기계로 빵을 자르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으로 반죽을 뜯어 저울에 달아 무게를 맞추고, 동글동글하게 성형을 하고, 불가마로 옮긴다. 가마의 온도가 220도에 도달했는지 확인한 뒤, 가마 양쪽에 물을 한 컵씩 붓고 뚜껑을 닫는다. 기화된 물방울이 빵을 노릇노릇하게 만든다고 한다. 증기가 없으면 빵이 익어도 노릇노릇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새 면도칼을 꺼내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Kill Bill)'처럼 날렵하게 칼집을 낸 뒤 길이가 3m에 이르는 나무로 된 긴 도구 위에 빵 반죽을 올려놓은 뒤 가마 안으로 밀어넣고 쪽문을 닫는다. 그러고 손잡이를 돌리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가마 속에 동그란 밑판이 돌아가고 빵의 위치가 바뀐다. 다시 쪽문을 열고 빵 반죽을 밀어넣고 문을 닫고 손잡이를 돌린다.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돌리고나면 처음에 들어갔던 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나올 때가 되기 때문에 재빨리 익은 빵들을 꺼내야 한다. 빵 바닥을 두들겨 봐서 속이 빈 소리가 나면 다 익은걸 안다. 덜 익었으면 다시 화로에 집어넣고, 정신을 집중해서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전기가마 같지 않아서 타이머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어느새 빵이 타버리기 때문이다.















갓 구워진 바게트 빵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유기농 빵집 주인으로

내가 방문한 '라 쿠론 데 프레'는 유기농 빵을 만들어 도매로만 팔기 때문에 카운터를 두고 소비자를 마주하는 일은 없다. 생산량이 많아서 도매로만 거래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다. 인근 지역의 유기농 매장, 직거래시장, 학교, 농장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주문량만큼만 생산한다.

아침 10시반에 첫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라 쿠론 데 프레'대표 다니엘 부아타르(만 49세)와 이야기를 나눴다. "파이프 한 대 피고 하지요"라고 말하더니 그는 정말 담배가 아닌 파이프를 한 대 물고 나왔다.



- 이 빵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2011년에 문을 열었고, 그전에는 유아학교 선생님이었어요."

- 어떻게 유아학교 선생님에서 불렁줴가 될 생각을 하셨어요? 
"45살이 되었을 때였는데 학생에서 선생님이 되어 쉬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게 싫증났어요. 내 삶을 바꾸고 싶어서 일을 쳤죠. 그 전에도 집에서 제가 빵을 자주 만들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불렁줴인 친구 루이즈 네 집에서  멍트라빌 비오콥(Biocoop ;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유기농 매장) 지배인으로 있는 브느와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에뽄 비오콥 옆에 빵집을 열어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해왔어요."

- 유기농에 대해서 인식하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0년 전부터요. 관행농에 대해 피에르 라비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맛있게 드세요 !'가 아니라 '행운을 빈다!'라고. 

(필자 주: 피에르 라비는 1938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유기농 농부,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철학가이자 농업생태학 전문가이자 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발적인 시민생태운동 '콜리브리'의 창시자이며 한국에는 '환경 운동가이자 농부 철학자'로 알려져있다. 

피에르 라비는 먹거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On mange tellement de choses toxiques, que ce n'est pas bon appétit que j'ai envie de dire aux gens, mais bonne chance." '오늘날 우리가 정말 유독한 음식을 많이 먹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하렵니다.)

- 이 빵집에서만 만들어 파는 '빌락소 빵'은 밀가루가 독특하다고 들었는데요.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도멘 드 빌락소(Domaine de Villarceaux)에서 생산된 밀로 만든 빵이에요. 밀 종자가 다양한데, 몇 년 전부터 밀 생산자와 함께 여러 종자의 밀로 빵 만드는 실험을 했어요. 소량의 밀을 심어서 그걸로 매번 빵을 만들어 본 다음에 어떤 밀이 그 지역의 땅과 잘 맞는지, 빵으로 만들었을 때 결과는 어떤 지 보기 위해서요. 그중에 '에르메스 리터'라는 밀 종자가 빌락소 땅과 가장 잘 맞는다는 걸 발견했어요. 지역명을 따서 '빌락소 빵'이라고 이름붙이고, 이후에 수 헥타르에 심어 경작하고 있습니다."

- 전통 종자인가요?
"전통 종자는 아닌걸로 알아요." (필자 주- 필자가 빌락소 빵의 밀가루를 만드는 유기농 밀 생산업자를 찾아 직접 물어 본 바에 의하면, 에르메스 리터는 전통 종자는 아니며, 1960년대에 독일인 베르톨트 하이든이 고른 종자라고 한다. 밀 생산지인 도멘 드 빌락소는 에폰에서 30km 떨어져 있다.)

빌락소 빵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직접 손으로 다루어 대접한다

- 저 많은 빵을 기계를 안 쓰고 손 반죽을 하는 게 참 특이하던데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기계를 쓰면 반죽하는 힘이 세서 소화가 안되는 글루텐이 늘어납니다. 반면에 손으로 반죽을 하면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 생겨요. 그리고 기계에 반해서 사람과 사람의 손에 더 가치를 두려는 윤리적인 의미도 있어요. 기계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는 거죠.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지고 만들어서 대접한다는 고결한 측면도 있구요."

(필자 주 – 다니엘이 복잡한 화학적인 설명을 피하려고 단순하게 '소화가 잘되는 글루텐'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글루텐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게 아니고 소화가 잘 되는 글루텐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밀에는 글루아딘(밀 속에 들어있는 프롤라민)과 글루테닌이라고 하는 단백질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물과 섞이고 치대는 행동이 가해지면 –SH (황화수소) 결합에서 결합력이 강한 –SS (이황화) 결합으로 바뀌면서 글루텐이 생성된다. 손 반죽과 비교했을 때, 기계 반죽을 하게 되면 반죽 과정에서 열이 생기고, 치대는 힘이 세기 때문에 글루텐 조직이 더 많이 생성된다. 몸에서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면 배에 가스가 차거나 심하면 복통, 설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글루텐이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의 체내 흡수를 방해되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는 증상을 셀리악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경우, 글루텐에 민감한 이들의 프랑스 협회(Association française des intolérants au gluten)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인구 6600만 명 중 0.23%인 15만 명이 글루텐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 불가마의 불꽃과 익어가는 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자연의 다섯 원소 오행이 결합하기 때문에 불가마 빵이 기계 빵보다 훨씬 더 맛있는거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어떻게 다섯 원소가 되죠?"

- 나무(木)를 때면 불(火)이 가마의 벽돌을 달구잖아요. 벽돌은 흙(土)으로 만들어졌지요. 그 가마를 싸고있는건 금속(金)입니다. 손잡이도 금속이구요. 빵을 굽기 전에 반드시 가마 안에 물(水)을 넣지요. 그 물이 기화해서 가마 속을 돌면서 노릇노릇하게 맛있는 빵을 탄생시키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 주문받은 양만큼만 만드시는데 어디 어디에 납품하세요?
"우리 빵집 옆에 있는 비오콥을 포함해서 비오콥 아홉 군데하고 아맙 여덟 군데, 학교 급식으로 열 세 군데, 그리고 농장에 한 군데, 이렇게 됩니다." (필자 주: 아맙은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장터로 일주일에 한 번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정된 장소에 모여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받아간다. 대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주종을 이루지만 어떤 생산자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빵, 생선, 닭, 고기 등 종류가 다양해진다.)

새 직원을 뽑기 위한 면접이 예정되어 있는 다니엘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적 삶을 찾는 일본 불렁줴다. 그는 노동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이윤을 남기지 않고,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빵 만드는 아틀리에에서 천연균과 빵만들기 연구로 시간을 보낸다.

그가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이사까지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연균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못해 감동적이었다. 다니엘에게 며칠 일하냐고 물어보니 일주일에서 하루를 제외하고 엿새 일한다고 했다. 아직 자기는 와타나베 이타루의 수준에 비할 바가 못된다면서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했다. 원어는 일어고 번역서는 한국어라고 했더니 아쉬워한다. 돌아오는 길에 땅과 나무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눈 부시게 아름다웠다.



블로그 이미지

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