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

유투브 시청만 하다가 재미삼아 처음으로 유투브에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제 얼굴과 목소리를 이렇게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뜨아~~ 재밌게 봐주시고, 이 채널이 오래 가기를 원하시면 좋아요와 구독으로 적극 응원 바랍니다. 바라만 보지 마시고 제안사항, 궁금한 거 있으시면 덧글로 남겨주세요. 지금은 실내에서 찍기 시작하지만 날 좋으면 카메라, 아니지 아이폰 들고 나가서 찍기도 할꺼에요. 그럼 많은 시청 바랍니다~ (아... 닭살!) 



Comment +0

어제 오마이뉴스 대문에 제 글이 실렸었군요. 후힛~

"생활비 40% 줄였어요" 이 멋진 프랑스 부부처럼 사는 법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고 들어보셨나요 ? 2018년 중국발 쓰레기 대란 이후 들어보셨을 법도 한데, 웨이스트는 영어로 '쓰레기'를 뜻하니까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자원이 생산되면서 폐기되기까지 전체 라이프 스타일을 재디자인함으로써 모든 생산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생활 철학 혹은 생활 전략을 말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국제연합(http://zwia.org)에서 정한 바에 의하면, 제로 웨이스트란 모든 생산품, 포장 및 자재를 책임있게 생산, 소비, 재사용, 회수함으로써 환경과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쓰레기 소각 및 땅, 물, 공기에 쓰레기 버리는 것을 없애고 모든 천연자원을 보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 재활용도 아니고, 쓰레기 줄이기도 아니고, 쓰레기 자체를 만들 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생산 및 소비 사이클을 추구하는 거예요. 프랑스에서는 'zéro déchet (제로 데쉐)'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쓰레기 제로'라고 해도 되는데, 한국에서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네요. 저는 이 글에서 '쓰레기 제로'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중에 쓰레기 제로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프랑스 가정이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장을 볼 때, 미리 준비한  천 주머니나 용기에 물건을 담아오고, 플라스틱 봉투에 싸여진 물건은 거의 사지 않습니다.

미카엘-산드라 부부 그리고 산드라의 여동생 폴린과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쓰레기 제로' 실천하며 사는 방법
 

미카엘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강아지 바리, 미카엘, 아내 산드라, 아들 라파엘, 처제 폴린. 산드라가 들고 있는 책은 재미 프랑스 사람인 베아 존슨이 쓴 '쓰레기 제로'이고, 폴린이 들고 있는 책은 '쓰레기 제로 가족'이다.
▲ 미카엘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강아지 바리, 미카엘, 아내 산드라, 아들 라파엘, 처제 폴린. 산드라가 들고 있는 책은 재미 프랑스 사람인 베아 존슨이 쓴 "쓰레기 제로"이고, 폴린이 들고 있는 책은 "쓰레기 제로 가족"이다.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필자 : 쓰레기 제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였나요?
산드라 : 책에서 시작했어요. 2015년에 <쓰레기 제로 가족>이란 책을 봤고, 2017년에 베아 존슨의 <쓰레기 제로>를 읽었어요. 쓰레기 제로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책들이에요. (참고로 베아 존슨은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이다.)
필자 : 준비해간 용기에 물건을 담아달라고 하면 장 볼 때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미카엘 : 처음엔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점점 나아졌어요.
필자 : 반응이 어떻던가요?
산드라 : 저희도 처음에는 좀 걱정을 했는데, 예상 외로 저희의 요구를 거절하는 상인은 한 명도 없었어요.
필자 : 장은 시장에서 보시나요? 아니면 슈퍼마켓?
산드라 : 소규모 유기농 가게나 동네 정육점같은 데서 장을 봐요. 저희가 갖고간 용기에 물건을 담아달라고 감히 청할 수도 있고, 잘 들어줘요. 크리스마스 때 케이크도 그렇게 샀어요. 저희가 통을 들고 가서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만 담아왔어요.
미카엘 : 대형 마트 대신 소규모 상점에서 장을 보면 걸어가니까 차를 안 쓰고, 그리고 소규모 상점에서는 점원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요. 그러면서 준비해간 용기에 물건만 담아달라고 청하는 것도 자연스럽죠.
 

무포장 식료품 담을 때 쓰는 면 봉투 포장없는 식료품을 담을 때 빈 병에 담거나 이렇게 천으로 된 봉투에 담아온다. 산드라가 손수 만들었다.
▲ 무포장 식료품 담을 때 쓰는 면 봉투 포장없는 식료품을 담을 때 빈 병에 담거나 이렇게 천으로 된 봉투에 담아온다. 산드라가 손수 만들었다.
ⓒ 산드라

관련사진보기


산드라 : 예전 같으면 대형마트에 가려고 차를 몰고 나갔고, 빙빙 돌아 주차할 데를 찾은 뒤 대형 캐디를 끌고 3천 제곱미터나 되는 공간을 휘저어 다녀야 했어요. 왔다갔다 2시간은 기본으로 걸렸고, 스트레스가 쌓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포장지 가득한 쓰레기통을 비웠어요.
미카엘 :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면서 기본적으로 생활방식과 식습관이 변했어요. 사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먹거리들이 싸기는 하지만 몸에 꼭 좋지만은 않아요. 예전에는 먹어대는 로봇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보다 질적으로 나은 재료로 직접 요리하고 먹는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어요.
산드라 : 포장되지 않은 먹거리를 담아올 때, 손끝에 직접 느껴지는 촉감과 냄새를 느낄 수 있어요. 파를 집을 때는 파 냄새가, 무정제 설탕을 담을  때는 특유의 무정제 설탕의 냄새가 살아있잖아요. 살아있는 먹거리를 느낄 수 있어요.
 

식료품 담아오는 병들 장을 볼 때, 이런 빈 병을 들고 가서 담아온다. 병의 무게만큼 가격에서 제한다.
▲ 식료품 담아오는 병들 장을 볼 때, 이런 빈 병을 들고 가서 담아온다. 병의 무게만큼 가격에서 제한다.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폴린 : 토마토도 모양과 색깔이 획일적이지 않고 저마다 다 달라요.
미카엘 : 제철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소규모 상점에서 장을 보기 시작하면서 없었던 '시간'이 생겼어요! 소규모 상점에서는 점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장보러 가는 시간이 적게 걸렸고, 때문에 가족끼리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필자 :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생겨났다는 말인가요 ?  
미카엘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  
산드라 : 그리고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면서 생긴 재미난 변화가 있어요. 예전에는 뭐든지 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타르트, 빵, 스프, 세제 등 산업이 뭐든지 다 만들어냈고, 그 재료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제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죠. 그런데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면서 '아, 내가 이런 것도 충분히,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예전같으면 타르트를 하려면 타르트판을 사러 대형마트까지 나갔다 와야 했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다 직접 만드니까 실제로 시간이 더 많이 남아요. 예전엔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고 구입했는데, 이제는 저희가 직접 만드니까 내용물을 다 알 수 있어요. 한 마디로 인식이 깨어났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예전에는 뭐든지 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미카엘의 욕실 사진 왼쪽부터 수제 비누, 플라스틱이 아니라 대나무와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칫솔 (머리 부분은 갈아끼울 수 있음), 유기농 치약, 안 입는 옷을 잘라서 만든 수세미들.
▲ 미카엘의 욕실 사진 왼쪽부터 수제 비누, 플라스틱이 아니라 대나무와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칫솔 (머리 부분은 갈아끼울 수 있음), 유기농 치약, 안 입는 옷을 잘라서 만든 수세미들.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필자 : 모든 먹거리를 무포장으로 구할 수 있나요 ?
산드라 : Day by Day라는 체인이 있는데, 식초, 세제, 코코넛 기름, 밀가루 등 웬만한 것들을 다 무포장으로 팔아요. 야쿠르트와 우유는 무포장으로 구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야쿠르트는 그래서 집에서 만들어요.
필자 : 친환경으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떤 변화가 왔나요 ?
산드라 : 웰빙으로 먹고 비누, 화장품 등을 만들어 쓰고 하니까 환경에 좋고, 우리 몸에 좋고, 그리고 더 경제적이에요. 예전보다 더 잘 먹는데도 생활비가 30~40%가 줄었죠. 한 마디로 삶의 질은 높아지고, 소비는 줄었어요.
필자 : 그렇게 많이요?
미카엘 : 우선 필요한 것들을 우리가 직접 만드니까요. 그리고 뭔가를 사기 전에 '이게 정말 우리한테 필요한가?' 하고 자문하면서 의식 있는 소비를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산드라 : 그리고 포장비가 줄잖아요. 소규모 상인들은 포장이 줄어든 만큼 같은 가격에 물건을 더 줬어요. 예를 들면 초콜렛 가게에서 포장 무게가 6% 나갔는데, 저희는 포장을 안 받아오니까 그 무게만큼을 초콜렛으로 더 받아올 수 있었어요. 파는 분도 포장에 지출이 줄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수제 비누 미카엘과 산드라가 집에서 만든 친환경 비누
▲ 수제 비누 미카엘과 산드라가 집에서 만든 친환경 비누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미카엘 : 아이의 간식도 아내가 다 만들어요. 용기에 직접 담으니까 포장 제로! 육아에 면기저귀를 쓰니까 지출이 많이 줄어요.
산드라 : 아기 엉덩이 닦을 때도 저희는 물티슈를 절대로 쓰지 않아요. 거기에 화약약품도 들어갈 뿐더러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잖아요. 저희는 면수건을 물에 적셔서 닦으니까 환경에도 좋고, 돈도 안 들고, 아기에게도 좋아요.
필자 : 그렇군요. 얼마 전에 크리스마스가 있었는데, 선물 포장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철이잖아요.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미카엘 : 우리가 쓰레기 제로로 산다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식을 환기시킬 수는 있지만 우리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산드라 : 저희 아버지께서 라파엘(아들)한테 꼭 선물을 하고 싶어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아버지가 선물하고 싶어하시는 장난감을 우리가 중고로 구하면, 어떻겠느냐?' 여쭸더니 동의하셨어요. 해서, 중고시장에서 똑같은 걸 구했고, 새 장난감은 원래 90유로였는데 저희는 중고로 10유로에 구입했어요. 경제적으로 이득이었고, 아버지께서 '정말 좋은 생각이다'라고 칭찬하셨어요. 포장은 물론 없었고요.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 폴린이 조카 라파엘을 위해서 재활용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 1부터 24까지 12월1일부터 24일까지 하나씩 열 수 있게 만든 달력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한 개씩 열어볼 수 있게 만든 이런 달력을 프랑스에서는 '깔렁드리에 드 라벙'이라고 부른다. 보통 안에 사탕이나 초콜렛을 하나씩 넣어 놓는다.
▲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 폴린이 조카 라파엘을 위해서 재활용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 1부터 24까지 12월1일부터 24일까지 하나씩 열 수 있게 만든 달력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한 개씩 열어볼 수 있게 만든 이런 달력을 프랑스에서는 "깔렁드리에 드 라벙"이라고 부른다. 보통 안에 사탕이나 초콜렛을 하나씩 넣어 놓는다.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폴린 : 저는 조카 선물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장난감 정리하는 함인데, 상상력도 자극하고, 재활용도 하고, 내가 이런 것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들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도 직접 만들었어요.
필자 : 뭔가를 사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세요?
산드라 : 사기 전에 '이게 정말 우리한테 필요한가?' 자문해 보고, 살 필요가 있으면 중고 시장에서 알아 보고, 일단 사면 최대한 활용해요.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나 저희를 위해서나 시립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고, 정말 필요하면 중고 시장에서 사요. 결과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어요.
미카엘 : 이렇게 생활방식을 바꾸면서 또 다른 이점은 더 관대해졌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한테 필요없다고 판단되면 중고시장에 팔든지 이웃에게 갖다주거든요. 그러면서 이웃과 대화를 하게 되니까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져요. 하하. 그리고 TV가 소비를 충동하는 경향이 있어요. 계속 뭔가를 사라, 사라, 사라! 하구요.

"TV는 계속 뭔가를 사라, 사라! 소비를 충동하죠" 
 

크리스마스 트리 (1) 미카엘과 산드라가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크리스마스 트리 (1) 미카엘과 산드라가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필자 : 그러고보니 거실에 TV가 없네요 ?
미카엘 : 지난해에 갖다 팔았어요. 재미난 건 실은 제가 'TV죽돌이'였다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이 TV를 늘 틀어놓고 사셨기 때문에 저는 TV의 존재감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TV광고가 소비를 자극한다는 점이랑 TV보다는 아이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점 때문에 TV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졌어요.  
산드라 : 저는 TV를 안 보지만 남편이 TV를 보는 건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라파엘이 태어나고, 유아에게는 TV 시청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아이 앞에서는 TV를 끄기로 합의했어요. TV가 꺼진 날이 많아졌고, 어느날 '우리 1주일 동안 생각해 보고 TV를 처분할까?' 했어요. 1주일 후에 중고 사이트에 내놨고 바로 다음 날 팔렸어요. 사간 사람은 싸게 사서 좋았고, 저희는 TV를 돈 받고 처분할 수 있었으니 서로 좋았죠.
필자 : 뉴스는 어떻게 접하세요 ?
산드라 : TV뉴스는 앵커가 고른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잖아요. 저희는 저희가 알고자 하는 정보와 뉴스를 인터넷에서 능동적으로 찾아봐요.
미카엘 : 집에 TV가 없어진다고 세상과 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에요.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마트에서 완전조리 혹은 반조리된 식품을 사는 대신 집에서 느긋하게 요리하는 시간을 더 갖게 되는 거예요.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1) 폴린이 병 뚜껑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1) 폴린이 병 뚜껑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폴린

관련사진보기


필자 : 우리 이제 여성용품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산드라 : 예전에는 샴푸, 매니큐어, 화장품 등등 많았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어요. 회사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님께 가져가시겠냐고 여쭤보고 다 드렸어요. 지금은 색조화장은 거의 안 하고, 기본 화장품은 자연재료를 구해서 제가 직접 만들어요. 아주 저렴하고 제 피부에도 더 잘 맞아요. 그리고 종이 티슈도 안 써요. 면 손수건을 쓰거든요. 
미카엘 : 아내가 샴푸를 만들어 쓴 뒤로 머리 빠지는 것도 훨씬 줄었어요. 
필자 :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시면서 힘든 게 있으시다면 ?
산드라 : 베아 존슨이 5R규칙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refuse(거절하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하기), recycle(재활용하기), rot(퇴비 만들기). 그중에 거절하기가 참 힘들어요. 예컨대 뭔가 포장을 해서 저희에게 선물을 하거나 새 것을 사주거나, 저희가 필요하지 않거나 충분히 많이 있는 것을 주시려고 할 때요. 거절하고 싶은데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필자 : 그러면 받으시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건 어떨까요?
산드라 : 그렇게 할까 봐요. 안 그래도 집에 있는 거 모아다가 에마유스(자선단체)에 갖다주고, 포장지는 모아다가 다음 번에 선물할 때 재사용해요.  
폴린 : 예전에는 돈을 벌려고 했는데, 요즘은 남한테 갖다주려고 해요. 하하.
미카엘 : 우리는 필요한 게 별로 없어요. 사람들과 나누죠. 물질적으로 필요한 건 먹는 거 외에 별로 없어요. 따라서 근심도 없구요.
산드라 :  '적게 소유하면 근심도 적다'고 피에르 라비가 말했어요. 베아 존슨도 같은 말을 했구요.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2) 폴린이 나뭇가지에 전선을 연결해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폴린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2) 폴린이 나뭇가지에 전선을 연결해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 폴린

관련사진보기


필자 : 요즘 '소비자의 구매력'에 대해서 언론에서 많이 얘기하잖아요? 구매력이 줄었다, 구매력을 높여야 한다 등등.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산드라 : 저희가 생활방식을 바꾼 뒤로 이상하게도 오히려 저희의 구매력은 상승했어요. 같은 소비에 더 적은 금액을 지출하니까요. 구매력은 소비 충동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소비를 좀더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4인 가족이 각 식구마다 차를 사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 나는 구매력이 충분히 없어' 하겠지요.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차 유지비, 보험비 등을 모아서 저축할 수 있을 거고, 그 돈으로 뭔가를 할 수 있겠지요. 짐을 바리바리 싣고 차로 떠나기보다 짐은 가볍게 하고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거예요. 저희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하고, 그렇게 모든 돈으로 1년에 한 번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아직은 비행기를 타기는 하지만 현지에서는 기차, 자전거로 이동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미카엘 : 저희의 다음번 과제는 어떻게 책임 있는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예컨대 올여름 휴가는 현지에서 어떻게 환경발자국을 줄이고, 소규모 상점을 이용하고, 무포장 식료품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산드라 :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요. 일년내내 지킨 습관을 한 달 동안 도루묵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미카엘 : 이건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미래에 어떻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성찰이에요.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어떤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시나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며, 한뜻으로 같이 성장하는 젊은 부부의 집을 나오면서 머리 속에 들었던 이 질문들을 이제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20일자 링크


Comment +0

여기는 2월5일이 휴일이 아니라서 지난 일요일에 미리 설을 쇠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만두피를 직접 빚어서 만두를 만들어 떡만두국을 해먹었어요. 1인당 만두 8개면 배부를 줄 알았는데 왠걸? 나무는 12개를, 바다는 자그마치 19개를 먹었어요! 제가 먹은 7개를 합치면 총 38개의 만두를 한 끼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우리 아이들 먹성 좋지요? ㅎㅎ 참고로, 만두피 반죽부터 시작해서 애 둘하고 만두 38개 만드는데 총 1시간 걸렸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황금 돼지 해를 맞아 풍요, 행복, 사랑, 성공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유럽 프랑스 | 파리
도움말 Daum 지도

Comment +0

나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애가 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성별의 자녀를 둔 것을 '왕의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왕? ㅎㅎ 딸애의 한국 이름은 '바다'고, 아들은 '나무'다. 바다는 아무거나 잘 먹는 반면에 나무는 가리는 것이 많은 편이다. 밥상머리에서 밥숟갈도 뜨지않고 안 먹겠다고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내미는 건 늘 나무다. 나무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은 파, 양파, 당근, 가지, 호박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식성도 그지같이 까다로와서 제육볶음을 해주면고기와 밥을 섞으면 안되고, 옥수수 오믈렛을 해주면 송송 썰은 파를 오믈렛과 섞으면 안된다. 

한번은 바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 보양식으로 양파스프를 해줬는데, 나무는 배는 고프다면서 양파 스프를 안 먹겠다고 버텼다. 우리는 한 그릇을 거의 비워갈 쯤, '더도말고 딱 한 입만 먹어보라'고 국물을 떠줬더니 인상을 쓰면서 받아먹더니만 금세 자기 스프를 다 먹어치웠다. 마지막 양파스프 한 그릇이 남아서 '이건 누가 먹을래?'하니까 바다가 손을 번쩍, 나무는 슬그머니 머리 뒤로 손을 올렸다.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남은 한 그릇을 두 먹새가 다 먹어치웠다. 

어제는 프랑스 전체 파업이라서 초등학교에서 급식이 안 나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하루 휴가를 받아 나무를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 수업에 데려다줬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줘서 잘 먹었고, 문제는 디저트에서 제동이 걸렸다. 내가 제안하는 모든 디저트를 거절하면서 점점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디저트가 없다니 할 수 없구나'하며 밥상을 치우자 애가 인상을 쓰고, 걷는 게 시끄러웠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밥상을 차려줬는데 애가 심통을 부르니 나도 화가 났다. 

"엄마가 너 점심 준비해주느라고 회사 안 간 거 알지?" -네. 

"너는 엄마가 해주는 모든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여기니? 엄마는 너에게 모든 걸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게 뭐라고 생각하니?" -?????

"엄마가 너한테 하는 서비스나 희생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라거나 댓가를 바라든?"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 건 너의 행복이야. 네가 행복하고 즐겁길 원해. 다른 사람에게 네 점심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점심 먹기를 싫어해서 엄마가 휴가를 냈고, 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했어. 그런데 고작 디저트 때문에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실망스러워." 

"네가 먹는 모든 음식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마. 너는 먹고 싶은 것만 가려먹으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먹을 게 정말 없어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그것도 매 6초마다! 네가 먹는 음식에 늘 감사해야해.  그 음식이 너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했는 지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해.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미안해. 근데 나는 요리와 화장에 시간 보내는 걸 싫어해서 요리에 30분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네가 이것저것 가려먹을꺼면 너 이제 곧 만 9살이 되니까 앞으로 엄마가 장 볼 때, 너 먹고 싶은 거 네가 사와서 네가 직접 요리를 해. 요리가 네 입에 안 맞으면 네가 네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걸 배우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네 장바구니 예산은 내가 줄께. 누나는 만 12살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는 가리는 게 많으니까 조금 일찍 시작하자. 부엌살림은 나눠서 쓰고, 대신 불판과 요리기구를 어떻게 다루는 지는 내가 가르쳐줄께." -...........................................

"밥 먹을 때마다 투덜대는 거 엄마는 지겨운데, 너는 어떠니?" -...... 

"이유가 뭔거 같아?" - 모르겠어. 

"엄마는 네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네 앞에 온 음식에 감사하고, 너를 위해서 휴가를 낸 엄마에게 감사하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오믈렛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감사하면 네가 고작 마음에 드는 디저트가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통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

"먼저 엄마한테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가기 전에 '나는 긍정적이다'라고 열 번만 쓰고 가자." -10번은 너무 많아!

"난 이걸로 협상하지 않아. 10번을 쓰고 학교에 가든 지, 아니면 지각을 하든 결석을 하든 지, 네가 결정해." 

해서 아이는 '나는 긍정적이다'는 문장을 10번 쓰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가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이렇게 해보라. 

첫째, 일부러 따라다니며 먹이지 마라. 
한 두 끼 굶었다고 죽지 않고,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밥 먹고 크는 걸 부모가 원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밥을 먹지 않으면 부모가 걱정한다는 걸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으로 협상을 하려고 드는데, 그 협상이 먹힌다는 걸 알면 아이들은 종종 같은 방법으로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심통을 부리며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하고 밥상을 치워라. 아이가 밥을 먹고 안 먹고는 협상의 대상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식사 시간을 정하라. 
아이가 밥상에서 투정을 부리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고 밥도 국도 다 식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면 밥상을 정성껏 준비한 엄마는 더 신경질을 받게 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식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만 식사하고, 식사시간 외에는 일체 군것질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모든 식구들이 엄수해야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기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가 투정을 부르면서 밥을 안 먹으면,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밥상을 치워라. 몇 시간 뒤, 배 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밥도 군것질도 주지 말라. 그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식구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설명하라. 배 고픈 아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주면 다음 번 식사시간에 밥을 먹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간식시간이 정해져있다면 그 시간에 간식을 주는 것은 예외다. 

셋째, 밥 대신 군것질을 주지 말라. 
밥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과자, 비스켓, 케익,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상기한 먹거리들은 버터와 설탕이 많기 때문에 영양가 있는 한 끼 식단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식사 시간에 절대로 버터와 설탕으로 범벅된 먹거리를 주지 말라. 게다가 훗날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기름지고 단 음식으로 위로받으려는 어른으로 성장할 확률이 커진다.  

넷째, 아이는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제1의 교육자다. 청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의 언행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는 언행으로 받아쳐서는 안된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보면서 아이는 배운다.  '아, 화가 날 때는 저렇게 대처하면 되는구나! 소리지르고 나이로, 힘으로 누르면 이기는 거구나!'하고. 어미 게가 아무리 '앞으로 똑바로 걸어'해도 어미 게가 옆으로 걷는 모습을 보고 걷는 걸 배우듯이 아이는 부모의 '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에게 교육이니 사랑이니 이런 그럴듯한 이름으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이같은 행동에 다름아니다. 내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관찰해보라. 화가 나면 나와 먼저 대화를 하고, 나의 화를 가라앉히고나서 아이와 대화하라. 


다섯째, 아이에게 경청하라. 
아이가 밥을 전제로 시위를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어주라. 아이의 문제나 불만을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공감'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 


그 어떤 순간에서든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면 아이와 생기는 마찰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유럽 프랑스 | 파리
도움말 Daum 지도

Comment +0

컴백 순

분류없음2019.01.25 10:00

안녕하세요! 한 일 년 지났나요?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납니다. 그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새로운 글로 곧 다시 돌아올께요. 인터뷰 두 개 땄거든요. 하나는 프랑스 중남부에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CEO와의 번개 인터뷰구요, 다른 하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평범한 한 가족과의 따뜻한 인터뷰입니다. 재미있을 것 같죠? 올해 여러모로 개편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제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분들 (있기는 한가??? -,.-ㅋ) 조만간 뵈요! 빠잉~ ^^

Comment +0

감사의 말씀

분류없음2018.03.07 07:15

블로그 쥔이 출타 중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요즘은 글이 뜸하지요? 사실 지난 1년 반동안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일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프랑스 매체에 친환경/유기농에 대해 글을 기고해왔는데 그 원고료가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좋네요. 흐미~ 언젠가 좋은 기회가 닿으면 흥미있는 주제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의 팬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쪽지나 덧글 남겨주세요. 여러분도 자기개발에 많은 시간 보내시고 건강하시고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Comment +0

우리 동네에 내가 알기로 나를 포함 한국인 3명이 사는데, 어제 하루만에 내가 아는 그들이 아닌 다른 두 명의 우리말 사용자를 만났다. 한 명은 우리 아파트에 공사하러 온 인부인데, 서울에서 12년 살았다고 한다. 한국어를 한국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도 신기한데, 한국 밖에서 만나서 더 신기하다. 헤어지면서 « 수고하세요~ »하니 « 네에~ »하는 자연스러움에 그저 감탄 !

다른 사람은 지나면서 눈팅 몇 번 했던 이웃인데, 한국인 일 수도, 다른 동양인일 수도, 한국에서 어릴 때 입양된 프랑스인일 수도 있어서 서로 지나쳤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뭐하게 ? 나도 그런 쓰잘데 없는 호기심성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지겹다.) 그러던 어제, 두발자전거를 안 타려고 버티는 아들래미에게 작심을 하고 자전거를 가르쳐주리라하고 아파트 단지 마당에 내려와있었다. 자전거가 싫다고 버티던 녀석이 두발자전거로 달리는데 성공을 하고 나니 주차장을 한 50바퀴는 돌았을까 여튼 40분째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내가 애들한테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기랑 내려와있던 동양인 얼굴의 이웃이 말을 붙여왔다. « 한국인이세요 ? »

나만큼이나 프랑스 생활을 오래 했던 한국인이었는데, 18개월 된 아기에게 계속 불어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데로 아기가 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아기가 하늘을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길래 내가 ‘비행기 ?’하는데 아이 엄마는 동시에 ‘아비용 ?’이라고 말했다. 불어로 '아비용'은 비행기를 뜻한다. 아이에게 ‘쎄쎄쎄~’를 해주면서 ‘얘 이거 할 줄 알아요 ?’하니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저기 딴전팔고 있는 새 아기가 내 손가락을 잡아 올리더니 ‘쎄쎄쎄~’를 하는게 아닌가 ?!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는 아기 엄마를 뒤로하고 들어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첫번째, 그 엄마는 다른 아이도 아닌 바로 자신의 아기에게, 아직 말도 안 뗀 아기에게 왜 한국인 억양이 섞인 외국어로 말을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한국을 그리워하는 걸까 ?

나도 가끔 울컥 한국이 그립고, 한국 음식이 땡기고, 한국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찰진 우리말로 얘기하고 싶을 때가 불현듯 쯔나미처럼 밀려들 때가 있지만 내년 1월이면 프랑스 생활 18년차가 되가는 판에 내가 나를 달래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향수병이 돋으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페북에 쏟아놓기. ㅎㅎ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닌,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용이다.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떻게 표현하는 지가 내 관심을 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생각과 행동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지를 본다.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국어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정서가 있기는 하다. 그건 동의하는데, 그 공유하는 정서가 반드시 커다란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마치 나도 사랑을 하고 싶고, 너도 사랑을 하고 싶지만 내가 너와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 사는 한국인, 여기에서 살다가 떠난 한국인, 여기 놀러왔던 혹은 일하러 왔던 한국인들과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이제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공집합이 내게서 유대관계를 이끌어내는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모두와 친구관계를 맺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말로 대화한다고 해서 서로 '말'이 다 통하는 건 아니지 않나? 동일한 모국어로 얘기하고 있어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우리말 할 때 한국이든 외국이든, 외국에서 수 십 년을 살았든간에 우리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왠지 거부감이 든다. 왜 그럴까? 내가 영어를, 불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태도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하는 중에 모르는 단어를 모국어로 쓸 수는 있다. 모국어로 대체하기 힘든 외국어를 번역하기 힘들어서 외국어 단어를 그대로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국어를 하는 중에 모국어에도 뻔히 있는 쉬운 단어를 외국어로 대체하는 건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태도를 은연 중에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번에 한국에 가서 우리말 반, 영어 반 섞인 웃기지도 않은 광고판을 어렵지 않게 봤는데 이건 언제 다시 한번 블로그에서 다뤄볼 만큼 할 얘기가 많다. 

한번은 프랑스에 온 지 고작 2년 되었는데 ‘우리 애기 공원에 프로므나드하러 가요’하는 엄마를 만났다. 외국인이 드물었던 그 동네에서 내가 우리애들한테 한국어를 하고 있었으니 너무나 반가와서 내게 말을 걸어왔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한국어를 하는 어떤 누구라도 반가왔을꺼다. XXX라는 이름의 나라는 인간은 그저 그에게는 허상에 불과한 거였다. 속을 다 터놓을 듯이 쉽게 친해졌던 그 엄마와의 관계는 결국 3개월도 가지 못했다. 쉽게 친해졌던만큼 헤어질 때도 전화 한 통으로 불발로 끝나더라. 어제 만난 엄마도 아직 말도 떼지 않은 아기에게 불어를 쓰고, 내가 일하는 프랑스 회사를 모른다. 프랑스에 살고 있고, 환경과 유기농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회사인데. 이 엄마와의 공감대를 어디쯤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엄마는 한국인 엄마를 같은 단지에서 만나서 너무나 반가와하는데,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감당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의 기대감에 못미칠 것 같아 만남의 첫단추가 불안하다. 

반대로, 가끔 내 불어를 완전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프랑스인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언어 그 자체 밖에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다. 말하다가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아니면 상대가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을 때, 그게 프랑스인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거고, 똑같은 경우가 외국인에게 닥치면 '프랑스를 제대로 모르는구나’라고 치부한다. 이건 편견이다. 또한 상대로부터 자기보다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서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스스로를 높이 추켜 세우려는 그릇된 자존심이다. 우리 모두 언어 저편에 있는 진실과 마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좋겠다. 

Comment +0

오늘은 평범한 환경주의자 친구를 소개할까 한다. 

필립 쿨롱, 그는 2016년 3월에 있었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삭투루빌 지역구의 녹색당 남성 부후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우이 지역구의 녹색당 여성후보였던 나를 도와서 캬리에르쉭센느과 몽테쏭을 자전거로 돌며 같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몽테쏭 시청 앞 공식 게시판에 첫 포스터를 붙이고 셀카를 찍으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필립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보라, 물풀이 발라진 붓과 포스터 뭉치를 들고 순진하게 좋아하며 뿌듯해하는 우리를 ! (참고로, 우이 지역구와 삭투루빌 지역구는 각각 3개의 도시를 포괄한다. 우리 시청에서 몽테쏭 시청까지는 4.5km, 꺄리에르쉭센느 시청까지는 3km 걸린다.)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면 늘 그가 풀을 쑤어 놓았고, 난 포스터를 들고 풀과 붓을 빌리러 그의 집에 갔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폭에 길이 20미터 정도인 막다른 길 끝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형식적인 울타리도 정문도 없다. 나무 가지를 팔로 걷어내고 들어가면 그의 집 마당이 나온다. 왼편엔 작은 텃밭이 있고, 오른편엔 오래돼서 막혀버린 우물이 있고, 그 옆 나무 밑에 물풀이 놓여 있었다. 

혹여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 내가 들를라치면 그는 한 번도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텃밭에서 캔 뚱딴지 감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물들, 한 양동이 가득한 퇴비 등 항상 땅이 그에게 내어준 것을 선뜻 내게 나눠주었다. 어느 날은 어둑어둑 해 질 무렵이었는데, 경주하듯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수십 마리의 달팽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 많은 달팽이 중 한 마리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높이 사는 필립의 장점은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종교인으로서나 환경주의자로서나 자신이 믿는 바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매우 드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필립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우이에 녹색당 모임을 처음 만든 일원이었다. 약간 수다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불평불만하고 타인을 비판하는, 말로만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환경주의자이다.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아주 적게 먹고,  일회용 컵이나 포장,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며,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동물의 권리나 환경문제에 예민했다.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그가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서 아주 적절하게, 하지만 매우 큰 도움을 주곤 했다.

대형상가 건설 유혹에 시달리는 지역의 농토를 지키려고 그 밭에 감자를 심으며 연대투쟁 하기를 수년 째. 지난 10월에는 자연 생태계가 풍부한 프랑스 남서부에 정부가 공항건설을 강행하려고 해서 녹색당원들과 노트르담데렁드에 내려가 전국에서 모인 4만 명의 시민과 함께 대규모 반대집회에 참여했다. 노트르담데렁드는 우이에서 420km 떨어져있는데, 이 거리를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만에 왕복했다.  

그가 사회운동을 시작한 것은 1968년,  21살 때라고 한다. 그 당시 나이지리아의 하우사족과 이보족 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무관심한 대중들에게 대학살을 알리려고 'A는 아우슈비츠의 A, B는 비아프라의 B' 등 일명 '공포의 알파벳' 전단을 뿌리고 다녔다. 

환경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진정한 교육자였고, 실천하는 종교인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개인 지도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원봉사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게다가 모든 이들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문맹률을 낮추려고 애쓰는 협회에서 활동했다. 

'학교에는 문제 있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 있는 교사가 있을 뿐'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합창 활동도 하고, 사회운동하는 가톨릭 단체인CCFD-테르 솔리데르 (Comité Catholique contre la Faim et pour le Développement-Terre Solidaire : 기아를 돕고, 연대의 땅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톨릭 위원회)에 가입해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다. 

무엇보다 그는 늘 미소 짓고 다녔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타났다. 필립 만큼 적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모임에 의견이 심하게 엇갈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한쪽 편을 들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우리 모두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목표하는 바를 상기시키고 평화를 구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갈등이 생긴 상황 자체를 무척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워할 수가 없었고,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쉽게 갈등을 불식시키지는 않았지만.  

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탓일까. 성탄이 오기 정확히 2주 전 금요일, 고요한 밤에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늙어서 병들고 약해지면 주변에서 걱정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그걸 다 마다하고 주변 사람 고생시키지 않고, 걱정시키지 않고, 많지 않은 예순아홉의 생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용히 마감했다.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자는 모습 그대로 하늘로 갔으니 그 또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복이었으려니. 일요일 아침, 아마도 그는 구름 위에서 신과 낄낄거리고 캬리에르쉭센느에서 따온 싱싱한 양송이버섯을 나눠 먹으면서 신의 곁에 앉아 예배를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자전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순간 이동을 하든가, 날아다니면 될 테니까. 

필립 쿨롱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필립 쿨롱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정운례

관련사진보기


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핸드폰을 보니 지역신문 기자가 내게 전화한 흔적이 있었다. 다음 날, "필립 쿨롱 사망 - 환경주의자들은 상중"이라는 제목으로 필립의 부고가 지역신문에 실렸다. 지역선거 포스터용으로 내가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 실렸다. 기분이 묘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내 사진이 그의 부고 사진으로 쓰일 줄 전혀 몰랐는데.   

장례식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하고 숨을 거둔 건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 금요일, 다시 말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뿔뿔이 흩어지기 딱 일주일 전에 장례식이 열렸다. 아내도 자식도 없고, 금요일 이른 오후에 치르는 장례식이었음에도 난 프랑스에서 그렇게 많은 조문객이 모인 장례식은 처음 보았다. 

수백 명이 그 큰 성당을 빼곡하게 채웠다. 회교도 친구도, 교회/성당 다니지 않는 지인들도 모였으니 그 여느 일요일 미사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왔을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 같지 않아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많은 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부조금이 오가지도 않는다. 필립의 장례식을 치뤘던 그의 누나는 조문객들에게 미리 안내를 했다. '화환은 가져오지 마세요. 필립이 지원했던 협회 활동에 지원금을 주시는 건 좋습니다'라고. 

장례미사가 끝나고 가기 전에 관 위에 성수를 뿌리거나 필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길래 나는 관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주 평범한 환경주의자였고, 박애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던 친구의 삶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필립이 수백 명의 조문객들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그가 혼자 했던 일을 앞으로 수백 명이 수백 배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이 세상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아니 우리 중에 예수가 있다면, 아마 필립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걸 지금 알았으니 우리 중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본 들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내가 우리 중에 낮은 곳에 임하는 예수가 되고 필립처럼 평범하나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게 오히려 보람되지 않을까? 원고를 넘기는 오늘, 우연찮게도 크리스마스구나. 


2016년 12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