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2월5일이 휴일이 아니라서 지난 일요일에 미리 설을 쇠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만두피를 직접 빚어서 만두를 만들어 떡만두국을 해먹었어요. 1인당 만두 8개면 배부를 줄 알았는데 왠걸? 나무는 12개를, 바다는 자그마치 19개를 먹었어요! 제가 먹은 7개를 합치면 총 38개의 만두를 한 끼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우리 아이들 먹성 좋지요? ㅎㅎ 참고로, 만두피 반죽부터 시작해서 애 둘하고 만두 38개 만드는데 총 1시간 걸렸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황금 돼지 해를 맞아 풍요, 행복, 사랑, 성공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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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나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애가 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성별의 자녀를 둔 것을 '왕의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왕? ㅎㅎ 딸애의 한국 이름은 '바다'고, 아들은 '나무'다. 바다는 아무거나 잘 먹는 반면에 나무는 가리는 것이 많은 편이다. 밥상머리에서 밥숟갈도 뜨지않고 안 먹겠다고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내미는 건 늘 나무다. 나무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은 파, 양파, 당근, 가지, 호박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식성도 그지같이 까다로와서 제육볶음을 해주면고기와 밥을 섞으면 안되고, 옥수수 오믈렛을 해주면 송송 썰은 파를 오믈렛과 섞으면 안된다. 

한번은 바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 보양식으로 양파스프를 해줬는데, 나무는 배는 고프다면서 양파 스프를 안 먹겠다고 버텼다. 우리는 한 그릇을 거의 비워갈 쯤, '더도말고 딱 한 입만 먹어보라'고 국물을 떠줬더니 인상을 쓰면서 받아먹더니만 금세 자기 스프를 다 먹어치웠다. 마지막 양파스프 한 그릇이 남아서 '이건 누가 먹을래?'하니까 바다가 손을 번쩍, 나무는 슬그머니 머리 뒤로 손을 올렸다.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남은 한 그릇을 두 먹새가 다 먹어치웠다. 

어제는 프랑스 전체 파업이라서 초등학교에서 급식이 안 나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하루 휴가를 받아 나무를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 수업에 데려다줬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줘서 잘 먹었고, 문제는 디저트에서 제동이 걸렸다. 내가 제안하는 모든 디저트를 거절하면서 점점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디저트가 없다니 할 수 없구나'하며 밥상을 치우자 애가 인상을 쓰고, 걷는 게 시끄러웠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밥상을 차려줬는데 애가 심통을 부르니 나도 화가 났다. 

"엄마가 너 점심 준비해주느라고 회사 안 간 거 알지?" -네. 

"너는 엄마가 해주는 모든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여기니? 엄마는 너에게 모든 걸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게 뭐라고 생각하니?" -?????

"엄마가 너한테 하는 서비스나 희생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라거나 댓가를 바라든?"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 건 너의 행복이야. 네가 행복하고 즐겁길 원해. 다른 사람에게 네 점심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점심 먹기를 싫어해서 엄마가 휴가를 냈고, 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했어. 그런데 고작 디저트 때문에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실망스러워." 

"네가 먹는 모든 음식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마. 너는 먹고 싶은 것만 가려먹으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먹을 게 정말 없어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그것도 매 6초마다! 네가 먹는 음식에 늘 감사해야해.  그 음식이 너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했는 지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해.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미안해. 근데 나는 요리와 화장에 시간 보내는 걸 싫어해서 요리에 30분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네가 이것저것 가려먹을꺼면 너 이제 곧 만 9살이 되니까 앞으로 엄마가 장 볼 때, 너 먹고 싶은 거 네가 사와서 네가 직접 요리를 해. 요리가 네 입에 안 맞으면 네가 네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걸 배우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네 장바구니 예산은 내가 줄께. 누나는 만 12살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는 가리는 게 많으니까 조금 일찍 시작하자. 부엌살림은 나눠서 쓰고, 대신 불판과 요리기구를 어떻게 다루는 지는 내가 가르쳐줄께." -...........................................

"밥 먹을 때마다 투덜대는 거 엄마는 지겨운데, 너는 어떠니?" -...... 

"이유가 뭔거 같아?" - 모르겠어. 

"엄마는 네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네 앞에 온 음식에 감사하고, 너를 위해서 휴가를 낸 엄마에게 감사하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오믈렛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감사하면 네가 고작 마음에 드는 디저트가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통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

"먼저 엄마한테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가기 전에 '나는 긍정적이다'라고 열 번만 쓰고 가자." -10번은 너무 많아!

"난 이걸로 협상하지 않아. 10번을 쓰고 학교에 가든 지, 아니면 지각을 하든 결석을 하든 지, 네가 결정해." 

해서 아이는 '나는 긍정적이다'는 문장을 10번 쓰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가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이렇게 해보라. 

첫째, 일부러 따라다니며 먹이지 마라. 
한 두 끼 굶었다고 죽지 않고,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밥 먹고 크는 걸 부모가 원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밥을 먹지 않으면 부모가 걱정한다는 걸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으로 협상을 하려고 드는데, 그 협상이 먹힌다는 걸 알면 아이들은 종종 같은 방법으로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심통을 부리며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하고 밥상을 치워라. 아이가 밥을 먹고 안 먹고는 협상의 대상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식사 시간을 정하라. 
아이가 밥상에서 투정을 부리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고 밥도 국도 다 식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면 밥상을 정성껏 준비한 엄마는 더 신경질을 받게 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식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만 식사하고, 식사시간 외에는 일체 군것질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모든 식구들이 엄수해야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기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가 투정을 부르면서 밥을 안 먹으면,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밥상을 치워라. 몇 시간 뒤, 배 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밥도 군것질도 주지 말라. 그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식구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설명하라. 배 고픈 아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주면 다음 번 식사시간에 밥을 먹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간식시간이 정해져있다면 그 시간에 간식을 주는 것은 예외다. 

셋째, 밥 대신 군것질을 주지 말라. 
밥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과자, 비스켓, 케익,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상기한 먹거리들은 버터와 설탕이 많기 때문에 영양가 있는 한 끼 식단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식사 시간에 절대로 버터와 설탕으로 범벅된 먹거리를 주지 말라. 게다가 훗날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기름지고 단 음식으로 위로받으려는 어른으로 성장할 확률이 커진다.  

넷째, 아이는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제1의 교육자다. 청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의 언행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는 언행으로 받아쳐서는 안된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보면서 아이는 배운다.  '아, 화가 날 때는 저렇게 대처하면 되는구나! 소리지르고 나이로, 힘으로 누르면 이기는 거구나!'하고. 어미 게가 아무리 '앞으로 똑바로 걸어'해도 어미 게가 옆으로 걷는 모습을 보고 걷는 걸 배우듯이 아이는 부모의 '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에게 교육이니 사랑이니 이런 그럴듯한 이름으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이같은 행동에 다름아니다. 내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관찰해보라. 화가 나면 나와 먼저 대화를 하고, 나의 화를 가라앉히고나서 아이와 대화하라. 


다섯째, 아이에게 경청하라. 
아이가 밥을 전제로 시위를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어주라. 아이의 문제나 불만을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공감'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 


그 어떤 순간에서든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면 아이와 생기는 마찰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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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순

분류없음 2019.01.25 10:00

안녕하세요! 한 일 년 지났나요?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납니다. 그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새로운 글로 곧 다시 돌아올께요. 인터뷰 두 개 땄거든요. 하나는 프랑스 중남부에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CEO와의 번개 인터뷰구요, 다른 하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평범한 한 가족과의 따뜻한 인터뷰입니다. 재미있을 것 같죠? 올해 여러모로 개편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제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분들 (있기는 한가??? -,.-ㅋ) 조만간 뵈요! 빠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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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씀

분류없음 2018.03.07 07:15

블로그 쥔이 출타 중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요즘은 글이 뜸하지요? 사실 지난 1년 반동안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일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프랑스 매체에 친환경/유기농에 대해 글을 기고해왔는데 그 원고료가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좋네요. 흐미~ 언젠가 좋은 기회가 닿으면 흥미있는 주제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의 팬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쪽지나 덧글 남겨주세요. 여러분도 자기개발에 많은 시간 보내시고 건강하시고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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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내가 알기로 나를 포함 한국인 3명이 사는데, 어제 하루만에 내가 아는 그들이 아닌 다른 두 명의 우리말 사용자를 만났다. 한 명은 우리 아파트에 공사하러 온 인부인데, 서울에서 12년 살았다고 한다. 한국어를 한국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도 신기한데, 한국 밖에서 만나서 더 신기하다. 헤어지면서 « 수고하세요~ »하니 « 네에~ »하는 자연스러움에 그저 감탄 !

다른 사람은 지나면서 눈팅 몇 번 했던 이웃인데, 한국인 일 수도, 다른 동양인일 수도, 한국에서 어릴 때 입양된 프랑스인일 수도 있어서 서로 지나쳤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뭐하게 ? 나도 그런 쓰잘데 없는 호기심성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지겹다.) 그러던 어제, 두발자전거를 안 타려고 버티는 아들래미에게 작심을 하고 자전거를 가르쳐주리라하고 아파트 단지 마당에 내려와있었다. 자전거가 싫다고 버티던 녀석이 두발자전거로 달리는데 성공을 하고 나니 주차장을 한 50바퀴는 돌았을까 여튼 40분째 주차장을 돌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내가 애들한테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기랑 내려와있던 동양인 얼굴의 이웃이 말을 붙여왔다. « 한국인이세요 ? »

나만큼이나 프랑스 생활을 오래 했던 한국인이었는데, 18개월 된 아기에게 계속 불어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데로 아기가 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아기가 하늘을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길래 내가 ‘비행기 ?’하는데 아이 엄마는 동시에 ‘아비용 ?’이라고 말했다. 불어로 '아비용'은 비행기를 뜻한다. 아이에게 ‘쎄쎄쎄~’를 해주면서 ‘얘 이거 할 줄 알아요 ?’하니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저기 딴전팔고 있는 새 아기가 내 손가락을 잡아 올리더니 ‘쎄쎄쎄~’를 하는게 아닌가 ?!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는 아기 엄마를 뒤로하고 들어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첫번째, 그 엄마는 다른 아이도 아닌 바로 자신의 아기에게, 아직 말도 안 뗀 아기에게 왜 한국인 억양이 섞인 외국어로 말을 가르쳐주면서 동시에 한국을 그리워하는 걸까 ?

나도 가끔 울컥 한국이 그립고, 한국 음식이 땡기고, 한국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찰진 우리말로 얘기하고 싶을 때가 불현듯 쯔나미처럼 밀려들 때가 있지만 내년 1월이면 프랑스 생활 18년차가 되가는 판에 내가 나를 달래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향수병이 돋으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페북에 쏟아놓기. ㅎㅎ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닌,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용이다.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떻게 표현하는 지가 내 관심을 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생각과 행동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지를 본다.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국어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정서가 있기는 하다. 그건 동의하는데, 그 공유하는 정서가 반드시 커다란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마치 나도 사랑을 하고 싶고, 너도 사랑을 하고 싶지만 내가 너와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 사는 한국인, 여기에서 살다가 떠난 한국인, 여기 놀러왔던 혹은 일하러 왔던 한국인들과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이제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공집합이 내게서 유대관계를 이끌어내는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모두와 친구관계를 맺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말로 대화한다고 해서 서로 '말'이 다 통하는 건 아니지 않나? 동일한 모국어로 얘기하고 있어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우리말 할 때 한국이든 외국이든, 외국에서 수 십 년을 살았든간에 우리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왠지 거부감이 든다. 왜 그럴까? 내가 영어를, 불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태도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하는 중에 모르는 단어를 모국어로 쓸 수는 있다. 모국어로 대체하기 힘든 외국어를 번역하기 힘들어서 외국어 단어를 그대로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국어를 하는 중에 모국어에도 뻔히 있는 쉬운 단어를 외국어로 대체하는 건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태도를 은연 중에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번에 한국에 가서 우리말 반, 영어 반 섞인 웃기지도 않은 광고판을 어렵지 않게 봤는데 이건 언제 다시 한번 블로그에서 다뤄볼 만큼 할 얘기가 많다. 

한번은 프랑스에 온 지 고작 2년 되었는데 ‘우리 애기 공원에 프로므나드하러 가요’하는 엄마를 만났다. 외국인이 드물었던 그 동네에서 내가 우리애들한테 한국어를 하고 있었으니 너무나 반가와서 내게 말을 걸어왔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한국어를 하는 어떤 누구라도 반가왔을꺼다. XXX라는 이름의 나라는 인간은 그저 그에게는 허상에 불과한 거였다. 속을 다 터놓을 듯이 쉽게 친해졌던 그 엄마와의 관계는 결국 3개월도 가지 못했다. 쉽게 친해졌던만큼 헤어질 때도 전화 한 통으로 불발로 끝나더라. 어제 만난 엄마도 아직 말도 떼지 않은 아기에게 불어를 쓰고, 내가 일하는 프랑스 회사를 모른다. 프랑스에 살고 있고, 환경과 유기농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회사인데. 이 엄마와의 공감대를 어디쯤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엄마는 한국인 엄마를 같은 단지에서 만나서 너무나 반가와하는데,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감당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의 기대감에 못미칠 것 같아 만남의 첫단추가 불안하다. 

반대로, 가끔 내 불어를 완전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프랑스인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언어 그 자체 밖에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다. 말하다가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아니면 상대가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을 때, 그게 프랑스인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거고, 똑같은 경우가 외국인에게 닥치면 '프랑스를 제대로 모르는구나’라고 치부한다. 이건 편견이다. 또한 상대로부터 자기보다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서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스스로를 높이 추켜 세우려는 그릇된 자존심이다. 우리 모두 언어 저편에 있는 진실과 마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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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범한 환경주의자 친구를 소개할까 한다. 

필립 쿨롱, 그는 2016년 3월에 있었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삭투루빌 지역구의 녹색당 남성 부후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우이 지역구의 녹색당 여성후보였던 나를 도와서 캬리에르쉭센느과 몽테쏭을 자전거로 돌며 같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몽테쏭 시청 앞 공식 게시판에 첫 포스터를 붙이고 셀카를 찍으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필립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보라, 물풀이 발라진 붓과 포스터 뭉치를 들고 순진하게 좋아하며 뿌듯해하는 우리를 ! (참고로, 우이 지역구와 삭투루빌 지역구는 각각 3개의 도시를 포괄한다. 우리 시청에서 몽테쏭 시청까지는 4.5km, 꺄리에르쉭센느 시청까지는 3km 걸린다.)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면 늘 그가 풀을 쑤어 놓았고, 난 포스터를 들고 풀과 붓을 빌리러 그의 집에 갔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폭에 길이 20미터 정도인 막다른 길 끝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형식적인 울타리도 정문도 없다. 나무 가지를 팔로 걷어내고 들어가면 그의 집 마당이 나온다. 왼편엔 작은 텃밭이 있고, 오른편엔 오래돼서 막혀버린 우물이 있고, 그 옆 나무 밑에 물풀이 놓여 있었다. 

혹여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 내가 들를라치면 그는 한 번도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텃밭에서 캔 뚱딴지 감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물들, 한 양동이 가득한 퇴비 등 항상 땅이 그에게 내어준 것을 선뜻 내게 나눠주었다. 어느 날은 어둑어둑 해 질 무렵이었는데, 경주하듯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수십 마리의 달팽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 많은 달팽이 중 한 마리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높이 사는 필립의 장점은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종교인으로서나 환경주의자로서나 자신이 믿는 바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매우 드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필립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우이에 녹색당 모임을 처음 만든 일원이었다. 약간 수다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불평불만하고 타인을 비판하는, 말로만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환경주의자이다.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아주 적게 먹고,  일회용 컵이나 포장,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며,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동물의 권리나 환경문제에 예민했다.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그가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서 아주 적절하게, 하지만 매우 큰 도움을 주곤 했다.

대형상가 건설 유혹에 시달리는 지역의 농토를 지키려고 그 밭에 감자를 심으며 연대투쟁 하기를 수년 째. 지난 10월에는 자연 생태계가 풍부한 프랑스 남서부에 정부가 공항건설을 강행하려고 해서 녹색당원들과 노트르담데렁드에 내려가 전국에서 모인 4만 명의 시민과 함께 대규모 반대집회에 참여했다. 노트르담데렁드는 우이에서 420km 떨어져있는데, 이 거리를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만에 왕복했다.  

그가 사회운동을 시작한 것은 1968년,  21살 때라고 한다. 그 당시 나이지리아의 하우사족과 이보족 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무관심한 대중들에게 대학살을 알리려고 'A는 아우슈비츠의 A, B는 비아프라의 B' 등 일명 '공포의 알파벳' 전단을 뿌리고 다녔다. 

환경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진정한 교육자였고, 실천하는 종교인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개인 지도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원봉사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게다가 모든 이들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문맹률을 낮추려고 애쓰는 협회에서 활동했다. 

'학교에는 문제 있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 있는 교사가 있을 뿐'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합창 활동도 하고, 사회운동하는 가톨릭 단체인CCFD-테르 솔리데르 (Comité Catholique contre la Faim et pour le Développement-Terre Solidaire : 기아를 돕고, 연대의 땅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톨릭 위원회)에 가입해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다. 

무엇보다 그는 늘 미소 짓고 다녔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타났다. 필립 만큼 적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모임에 의견이 심하게 엇갈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한쪽 편을 들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우리 모두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목표하는 바를 상기시키고 평화를 구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갈등이 생긴 상황 자체를 무척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워할 수가 없었고,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쉽게 갈등을 불식시키지는 않았지만.  

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탓일까. 성탄이 오기 정확히 2주 전 금요일, 고요한 밤에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늙어서 병들고 약해지면 주변에서 걱정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그걸 다 마다하고 주변 사람 고생시키지 않고, 걱정시키지 않고, 많지 않은 예순아홉의 생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용히 마감했다.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자는 모습 그대로 하늘로 갔으니 그 또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복이었으려니. 일요일 아침, 아마도 그는 구름 위에서 신과 낄낄거리고 캬리에르쉭센느에서 따온 싱싱한 양송이버섯을 나눠 먹으면서 신의 곁에 앉아 예배를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자전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순간 이동을 하든가, 날아다니면 될 테니까. 

필립 쿨롱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필립 쿨롱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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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핸드폰을 보니 지역신문 기자가 내게 전화한 흔적이 있었다. 다음 날, "필립 쿨롱 사망 - 환경주의자들은 상중"이라는 제목으로 필립의 부고가 지역신문에 실렸다. 지역선거 포스터용으로 내가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 실렸다. 기분이 묘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내 사진이 그의 부고 사진으로 쓰일 줄 전혀 몰랐는데.   

장례식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하고 숨을 거둔 건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 금요일, 다시 말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뿔뿔이 흩어지기 딱 일주일 전에 장례식이 열렸다. 아내도 자식도 없고, 금요일 이른 오후에 치르는 장례식이었음에도 난 프랑스에서 그렇게 많은 조문객이 모인 장례식은 처음 보았다. 

수백 명이 그 큰 성당을 빼곡하게 채웠다. 회교도 친구도, 교회/성당 다니지 않는 지인들도 모였으니 그 여느 일요일 미사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왔을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 같지 않아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많은 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부조금이 오가지도 않는다. 필립의 장례식을 치뤘던 그의 누나는 조문객들에게 미리 안내를 했다. '화환은 가져오지 마세요. 필립이 지원했던 협회 활동에 지원금을 주시는 건 좋습니다'라고. 

장례미사가 끝나고 가기 전에 관 위에 성수를 뿌리거나 필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길래 나는 관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주 평범한 환경주의자였고, 박애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던 친구의 삶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필립이 수백 명의 조문객들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그가 혼자 했던 일을 앞으로 수백 명이 수백 배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이 세상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아니 우리 중에 예수가 있다면, 아마 필립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걸 지금 알았으니 우리 중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본 들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내가 우리 중에 낮은 곳에 임하는 예수가 되고 필립처럼 평범하나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게 오히려 보람되지 않을까? 원고를 넘기는 오늘, 우연찮게도 크리스마스구나. 


2016년 12월 2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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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지난 한 해를 결산할 시간이 29분 남았다. 부족한 게 많은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고맙고, 미안하고, 더 잘 해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새해에도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길 기도한다. 우리 가운데 혹은 저 멀리 더 많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아멘 혹은 나무아미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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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투표와 개표는 그 꽃의 꽃,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프랑스 선거, 그것이 알고 싶다!' 마지막 편으로 프랑스의 투표방법, 투표용지, 투표함, 해외국민투표 등 투표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 한국인이 보기에는 이곳의 투표방법이 생소하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스템이 좋고 나쁘다를 가르기에 앞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투표용지의 예. 2015년 3월, 프랑스 지방 선거에서 내가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우리의 투표용지. 이렇듯 각 정당마다 자신의 후보들의 투표용지를 디자인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투표용지는 단색이어야 하고, 선거 전에 모든 후보의 공약과 함께 가정으로 배달된다. 투표하는 날, 여러 당의 투표용지 중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접어서 투표봉투에 넣은 뒤 투표함에 넣는다.



12. 투표용지 

한국은 투표용지 한 장에 여러 명의 후보가 적혀있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해 투표소에 비치된 도장을 찍지 않는가? 이러한 기표식 투표방법에 반해 프랑스에는 투표용지 선택 투입식 투표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용지가 후보의 수만큼 나오고,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선택해 준비된 종이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는다. 선택되지 않은 후보들의 투표용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 제1편에서 보았던 선거 포스터와 선거 후보 리스트 용지를 기억하는가?(관련기사: 프랑스에선 후보 기호를 '제비뽑기'로 정한다). 앞면에 선거 포스터, 뒷면에 후보의 공약이 적힌 종이 한 장, 후보 리스트가 필요한 선거의 경우 후보 리스트가 앞뒷면에 실린 종이 한 장, 그리고 그 정당의 투표용지 한 장, 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모든 후보의 해당 용지들을 종이봉투 하나에 담아 각 선거인에게 우편 발송한다.  

이 세 가지 용지는 선거법이 정하는 크기와 규정에 맞춰서 각 정당에서 알아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디자인한 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색 선택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투표용지는 어떤 색을 선택하든 간에 한 가지 색이어야 하고, 선거 포스터의 경우, 빨강, 파랑, 하양, 세 가지 색이 포스터에 동시에 있으면 안 된다고 선거법이 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3. 투표방법 

이렇듯 투표용지가 가정에 미리 배달되기 때문에 선거일 전에 내가 선택할 후보의 투표용지를 미리 눈에 익혀둘 수가 있다. 그걸 들고 투표소에 가는 것은 아니고, 투표소에는 신분증과 선거인 카드만 달랑 들고 가면 된다. 선거인 등록을 한 경우에 선거인 카드를 분실했다면 신분증만으로도 투표할 수 있다.  

투표소에는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없고, 대신 묘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투표소에 도착하면 입구에 긴 테이블이 있고, 각 정당의 투표용지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애들 손바닥만 한 우편봉투를 우선 하나 집고, 내가 누구를 찍을지 알 수 없게 모든 정당의 투표용지를 하나씩 집어 든 뒤 커튼막에 들어가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투표용지를 우편봉투에 넣고 나머지 투표용지는 내 주머니에 넣든, 내 가방에 넣든, 투표소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버리든 하면 된다. 

이래서2차 선거의 경우, 후보가 대개 둘이기 때문에 투표소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투표용지를 보면 어느 후보의 지지도가 높은지 얼추 알 수 있다. 

커튼막에서 나오면 긴 테이블에 다섯 명의 투표소 보좌인이 기다린다. 첫 두 사람 앞에는 선거법 책이 놓여있어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 바로 선거법을 열람할 수 있다. 가운데 사람은 투표소장으로 투표함 앞에 앉아있으며, 마지막 두 사람은 선거인 목록을 갖고 있다. 

선거인이 투표함에 다가가면 앉아있던 투표소장은 일어나서 선거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소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선거인의 이름을 부른다. 선거인 목록을 가진 사람에게 선거인 카드를 주면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선거인 목록에서 선거인의 이름을 찾는다. 목록에 적힌 선거인의 이름과 신분증, 선거인 카드에 적힌 이름이 같다고 확인되면 투표소장은 투표함 윗면에 있는 작은 레버를 당긴다. 투표함의 작은 틈이 열리고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봉투가 떨어진다. 투표소장이 레버에서 손을 떼면 틈이 닫히고, "홍길동 투표했습니다"라고 크게 말한다. 


이제 선거인 목록에 사인해야 하는데, 서명을 크게 할 수도, 길게 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 가로 약 30cm, 세로 약 5cm 되는 긴 투명한 플라스틱 자에 5cm x 1cm 정도의 직사각형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자를 선거인 목록에 올려놓고 그 칸 안에서 사인을 해야 한다. 타인의 서명란을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명하고, 선거인 카드에 투표 일자가 찍힌 스탬프를 받고 투표소에서 나온다. 


프랑스의 투표함은 투명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투표봉투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매우 작다. 그 또한 레버를 당겨야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틈이 닫히고 레버 옆에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당일 저녁에 개표가 끝날 때까지 이 투표함은 절대로 있던 자리를 뜰 수 없다.





14. 사전 투표? 대리 투표? 

선거인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출두할 수 없는 경우, 한국에서는 사전 투표를 하는 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를 한다. 한국의 위키페이아에 의하면 대리 투표 혹은 위임 투표는 '부정 선거의 위험 때문에 정치적인 선거에서는 금지'한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사전 투표를 허가하지 않고 위임 투표를 하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투표는 투표 당일에 한해서 투명한 투표함에 들어가야 유효하다는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 같다. 

대리 투표 조건은 선거인등록을 한 사람이어야 하고, 같은 선거구에 있어야 하며, 또 다른 대리 투표를 위임받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투표소는 달라도 같은 선거구에 등록된 선거인은 대리 투표를 할 수 있으며, 한 선거에서 단 한 사람의 투표만을 위임받을 수 있다. 

대리 투표를 신청할 경우, 투표 전까지 투표대리인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을 경찰서에 등록한다. 투표 당일, 투표대리인이 위임자의 투표소에 가면 경찰서에서 받은 대리 투표자 목록과 대조한 뒤, 선거인카드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위임투표를 한다.  



15. 투표함 

고대 그리스에서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불투명한 항아리를 투표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투명한 투표함을 사용하고, 윗면에 레버를 당기면 투표용지가 들어갈 만한 틈이 열린다. 레버를 놓으면 다시 틈이 닫히면서 숫자가 하나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레버가 한번 당겨질 때마다 몇 개의 투표가 그 안에 들어갔는지 센다는 얘기다. 투표를 시작하기 전에 투표함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지, 레버 옆에 숫자가 영(0)인 지 확인한 뒤, 투표함을 열쇠로 잠근다. 

우리 딸애가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반장선거를 하던 날, 시청에서 초등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줬다. 아이들은 '진짜 투표함'으로 반장선거를 치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체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참고로 프랑스의 모든 시청이 학교에 투표함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딸애 학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6. 투표일, 투표시간, 투표소

투표일은 늘 일요일, 투표시간은 아침 8시부터, 대도시의 경우, 저녁 8시까지 12시간 동안 투표소가 열려있고, 인구가 작은 소도시나 마을의 경우,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 기타 대중을 위한 시설과 마찬가지로 투표소 또한 지체장애인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문제없이 출입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용이해야 한다. 

참고로, 호텔, 사무실, 상가, 영화관, 식당, 화장실 등 대중에게 열려있는 시설은 지체장애인에게도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프랑스 법이 명시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 제한된 기간 내에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17. 개표 


선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은 개표가 아닐까 싶다. 저녁 6시 혹은 8시에 투표소가 문을 잠그면 그 순간부터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다.

투표소장과 투표소 비서를 제외하고 투표소 보좌인이 되고 싶으면 선거인 등록된 자에 한해 선거일 24시간 전까지 시청에 신청하면 된다. 신청자가 많으면 시간표를 짜서 교대근무를 설 수 있어서 좋다. 개표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청에 미리 신청할 수도 있고, 투표 당일 아침까지 신청할 수도 있다. 개표 참관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다. 모든 개표는 반드시 수개표를 하며, 시의원이나 정당의 후보나 대리인은 개표에 참관은 할 수 있되 절대 개표에 간여할 수 없고, 개표는 오로지 시민만이 할 수 있다. 

투표소 내에 테이블을 2~3개 설치하고, 테이블마다 4개의 의자를 준비하는 동안 투표소장은 열쇠로 투표함을 열어 투표봉투를 꺼낸 뒤 참관인들이 보는 앞에서 100개 단위로 묶어 각각 우편봉투에 담는다. 각 테이블에 투표 100개들이 우편봉투 하나씩을 나눠준다. 

첫번째 사람이 투표봉투에서 투표용지를 꺼내 기권이나 무효표인지를 확인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 건네면 두 번째 사람은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을 부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은 개표결과를 적는 용지를 받아들고 있다가 호명된 후보가 해당하는 칸에 작대기를 긋는다.

100개의 투표용지를 개표하고 나면 투표소 비서는 작대기를 그은 두 사람의 결과가 동일한 지 확인하고, 기권과 무효표를 포함해서 총합이 100개가 되는지, 투표용지도 100개가 되는지 확인한다. 결과를 투표소장에게 넘긴 뒤 새로 100개의 투표용지 묶음을 받아 개표한다. 

개표가 완전히 끝나면 테이블마다 두 개씩 배부된 개표결과 용지에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무효표 봉투에도 네 명의 개표자 이름을 적는다. 투표소장이 개표 결과를 전화로 시청에 알리고 나면 개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건물을 나갈 수 있다. 시청은 모든 투표소의 개표결과 집계를 당일 밤 지체없이 시청 앞에 게시한다. 


18. 해외국민투표 


한국도 2012년부터 해외국민투표를 시행해오고 있는데, 재불 한국대사관 공무원의 말에 의하면, 해외국민도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류를 만들어 청을 넣은 이들이 바로 재불 한인들이라고 한다. 

이번 총선의 경우, 유권자 등록 신청이 11월 15일(일)부터 2016년 2월 13일(토)까지 91일간이었고, 투표는 3월 30일(수)부터 4월 4일(월)까지 6일간 해외공관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해외국민투표 경험담을 말씀드릴까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해외국민투표에 참여했던 바에 의하면, 투표용지는 한쪽 모서리에 일련번호가 적혀있고, 선관위의 빨간 도장이 찍혀있었다. 그 모서리는 점선에 따라 뜯어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한 교포가 투표했을 때는 빨간 도장이 아닌 흑백의 복사본이었다고 내게 증언했다. 

투표함은 흰 종이로 엉성하게 싸여있고 투표봉투를 집어넣는 틈은 여자 손이 하나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열려있었다. 투표소 보좌인으로 있었던 지인의 말을 빌리면, 투표함은 매일 저녁 개봉되어 표를 다른 자루에 담고 빈 투표함은 다음 날 투표를 위해 다시 포장된다고 했다. 해외국민투표가 끝나면 자루에 담긴 표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표하기 위해서. 

자, 그럼 프랑스의 해외국민투표는 어떻게 진행될까? 

유권자등록은 선거 전년도 마지막 날까지이다. 내년에 프랑스 대선이 있으니 유권자 등록은 올해 12월 31일까지다. 프랑스의 선거일은 늘 빨간 날(일요일)이고, 전 세계 재외 프랑스 국민도 동일한 날, 즉 일요일 하루 동안 선거를 치른다. 시차가 있어서 시간은 각 도시의 현지 시각을 따른다. 

개표도 프랑스 선거법을 따른다. 투표가 끝나는 즉시 투표소의 문을 잠그고 프랑스 재외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서 바로 수개표하고 결과를 프랑스 선관위에게 전달한다. 투표함은 투명해야 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투표 시작부터 개표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투표가 끝나는 정시에 투표소 문을 잠그고, 투표함을 열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4인 1조로 수개표가 진행되며, 정부 및 정치 관련인은 절대 개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것이 프랑스 개표의 원칙이다. 

4월 13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만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한국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할 수가 없다. 2012년 해외국민투표를 마치고 나왔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지난 10년 넘게 모국에도, 체류국에도 투표를 할 수 없었던지라 그 감격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해외국민투표를 끝으로 나는 프랑스 국적으로 지방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으며, 7.30%라는 지지를 받았다. 투표소 보좌인도 해봤고, 개표에 직접 참여도 해보았다. 선거가 어떻게 준비되고, 선거자금이 어떻게 유통되고 운영되고 감독받는지, 투표와 개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험을 통해서 그 어떤 프랑스인보다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 독자들에게 총 3회에 걸쳐 프랑스 선거에 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내 나라 한국에서 민주주의 꽃을 시민의 손으로 부디 아름답게 피워내기를 멀리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소망한다. 



2016년 3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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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