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밤이 테러와 함께 폭풍처럼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전국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토요일 오전 9시 군사고문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및 대학 등 모든 학교와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학교에서 떠나는 모든 여행도 취소됐다. 엘리제궁에는 1500명의 군인이 추가 배치됐으며 프랑스 국경은 폐쇄됐다. 우리 동네 파리 서쪽 방리유 시립도서관과 음악원도 문을 닫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네 주말 시장도 평소같으면 북적거렸을 텐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안심

나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 메시지에 '나는 무사하다, 고맙다'고 답한 뒤 파리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3구에 사는 한 친구는 테러가 일어나던 밤, 집에 가려는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마구 뛰어가더랜다.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13구의 친구의 집에서 자고 나와 토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지만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단다. 

테러가 일어난 11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테러 속보를 접하자마자 문을 걸어닫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밤새 길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통에 한숨도 못 자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지켜봤다고 한다. 12구에서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바타클렁 극장에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록 콘서트를 보러간 그의 동료와 남자친구가 아침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아직까지도...

시장은 한산했지만 유기농 매장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지난 밤 일어난 충격적인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 '안녕하시냐?'는 문안 인사에 말문을 텄다. 

"어제 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파리에서 난 테러 소식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죠. 밤새 업데이트 기사를 검색해봤어요."  

그제서야 옆에 있던 사람도 "그러게요. 이게 웬일이래요? 충격적이고 너무 슬퍼요"한다. 그랬구나.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슬픔과 충격을 공감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며 불안감을 굳이 가중시키지 않고 있는 거였구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뒤 첫저녁

솔직히 내게는 가까이서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보다 바다와 대륙 건너 일어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가까운 파리 테러 현장이라도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친 뒤 비극이 일어난 지 24시간 만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약간 두려웠다. 길 위에 핏자국이 낭자하게 나있지 않을까? 또 난사를 당하지는 않을까?

지하철을 타니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폐쇄되었던 역들도 운행을 개시했다. 128명의 사망자 중 절대 다수인 89명의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렁 극장으로 향했다. 오베르캄프역에서 내리니 안테나를 단 방송 차량들이 찻길 한 켠에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독일, 미국, 영국, 이태리, 벨기에, 인도, 아랍 언론 등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다 나와 있었다. 생방송으로 내보낼 뉴스의 큐만 기다리는 스탠 바이 상태였다. 이태리 취재진은 그전날 이태리 취재를 끝내고 새벽 1~2시에 현장에 급히 파견됐다고 했다. 

폭탄이 터졌던 볼테르가50번지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앞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자국의 저녁 생방송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한 켠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촛불, 종이에 적은 메시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그 유명한 독일계 프랑스 정치인 다니엘 콘벤딕트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콘벤딕트는 반-나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선택해 독일 녹색당에서 활동한, 매우 유명한 유럽 정치인이다. 프랑스 68혁명 때 혁명의 선두에 선 인물 중 하나였고, 프랑스 녹색당을 창당해 2009년 유럽의회 선거 때는 녹색당 지지율을 20.86 %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올 3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작년에 정치계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방송에만 출연하고 있다. 그는 독일 언론ZDF의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다니엘 콘밴디트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인도 기자들에게 말을 붙였다. 인도에서는 파리 테러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인도에서도 파리 테러를 1면뉴스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길래 "같은 해에 샤를리 엡도 이후에 또다시 파리에서 터진 테러 사건이어서 프랑스 사회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던 어제, 같은 날 한국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건 하나도 다루지를 않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뭐냐고 묻길래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인도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론느 길로 발길을 돌렸다. 여성 기숙사 '빨레드 팜므' 건너편에  있는 일본 식당과 바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빈 가게 앞에 사람들은 초를 켜고 헌화하고,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사람들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침묵 속에 가지런히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놓인 바타클렁 극장 앞에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이곳에는 시민들이 많았다. <르 몽드>가 다녀갔고 프랑스3(France 3)가 나와 있었지만 숙연한 분위기를 조용히, 그것도 길 건너편에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가던 사람들은 수백 개의 촛불과 인파를 보고 멈추어 섰다. 사고 현장 앞 모퉁이를 지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지만, 인파에 서행을 해야 했음에도 누구 하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비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조용하고 숙연함,그 두 가지 단어만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어째서 왜 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십니까? 이민 문제일까요, 종교 문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문제일까요 ?"

조문하는 서로 다른 연령층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료와 담배를 피워물던 중년의 에마뉴엘(45)씨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린 건 자유라고 답했다.

"그들이 목표물로 노린 건 권력도 돈도 아니에요. 자유에요. 카페와 바에서 유유히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자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여성들의 자유, 그 자유말이에요."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은 문제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무슬림인 걸요. 지하디스트는 자기들의 욕구를 신의 이름으로 분출하고 있는 거예요."

11구의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니콜라(45)씨는 자기도 자주 가고, 특히 딸애가 자주 찾는 카페에서 사고가 난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그날 밤 같은 길의 다른 카페에 있었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20대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디아(28)씨는 "어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알제리 식민통치, 이라크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등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을거"라고 봤다. 그는 "어쨌거나 심리적으로 무척 문제가 많은 이들이 저지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치오(28)씨는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높은 사회 계층도 아닌 우리와 같은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졌다"면서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헌화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치아스 알리(31)씨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주에 평화 시위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저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합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고,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날, 서울 광화문에서 물대포, 최루탄, 캡사이신을 삼위일체로 맞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불통의 정부에게 날리고 싶은 메시지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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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프랑스 지역선거  2차투표 결과를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1주일 전에 치러진 1차선거의 선거율은  43.01%로 13개 지역 가운데 절반에서 극우정당이 득세했었다. 

이번 2차선거는 50.54%라는 비교적 높은 선거율 속에 치러졌고 사르코지를 대표로 하는 공화당과 올랑드를 대표로 하는 사회당이 각각 8개와 5개의 지역에서 승리했다. 우파, 좌파, 극우파의 프랑스 전국 집계는  40.24%, 28.86%, 27.10%. 극우파가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좌파-녹색당 연합을 바짝 따라잡으면서 삼당 구도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안심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극우정당이 차지하는 의석

극우정당이 단 한 개의 지역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극우정당이 의석을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2차투표에서 승리한 당이 먼저 좌석의 25%를 차지하고, 지지율 5% 이상의 당에 한해서 남은 75%의 좌석을 득표율만큼 나눠 가진다. 

예컨대, 총 100석의 의석이 있다고 하자. 2차 투표에서 당1, 당2, 당 3이 각각  5만1000표, 4만4100표, 4900표를 받았다면, 당1이 먼저 25%인 25석을 차지하고, 당3는 5% 미만이므로 탈락한다. 75%의 좌석을 당 1과  당2가 나눠 갖게 되니 각각 40석과 35석. 따라서 당 1은 총 65석을 차지하고, 당 2는 35석을 차지하게 된다. 

2차투표 결과를 갖고 실례를 들어보자. 파리와 인근 지역인 일드프랑스의 경우, 투표율이 54.46%였고, 공화당이 승리했으므로 공화당에서 25석을 가져간다. 남은 75석을 공화당, 사회당, 극우정당이 각각 투표율 43.80%, 42.18%, 14.02%로 나눠 가진다. 즉, 33석, 32석, 10석. 따라서 공화당은 과반인 58석, 사회당은 32석, 극우정당은 10석을 차지한다. 

추락하는 사회당


과거의 지역선거를 보면, 2004년 이후로 사회당의 지지도가 계속 줄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지역선거에서 알자스를 제외한 전국에서 사회당이 승리했던  전례와 비교해보았을 때, 사회당이 5개 지역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사회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이라기보다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투표에서 사회당을 찍은 사람들은 사회당을 찍고 싶어서 찍었다기 보다 극우정당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년 한 해는 프랑스는 선거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올초 도의원 선거에서 프랑수와 올랑드와 마뉴엘 발스의 고향에서마저 사회당이 참패했고, 올겨울 지역선거에도 극우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받은 표로인해 겨우 체면 유지이상을 면치 못했다. 이대로라면 18개월 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이 이길 승산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 틈을 타서 극우파 지지세력이 얼마나 성장할 지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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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슬로건 

"We are unstoppable! Another world is impossible!"

"1 et 2 et 3 degrés. C'est un crime contre l'humanité!" 

= "1 and 2 and 3 degees. It's a crime against humanity!" 

"What do you want?"  - "Climate!" 

"What do you want?"  - "Justice!"

"When?"  - "Now!"

"People!"   - "Power!"

"Climate!"  -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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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보니까 도심에서 열린 집회 때문에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는게 요지고, 집회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집회의 이유, 그 '왜?'에 대해서는 입 딱 다물고 있군요. 이런건 기사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부르는 겁니다. 조선일보와 일베의 밥줄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군요. 프랑스는 바로 전날 파리에서 테러가 나는 바람에 한국 소식을 다룰 경황이 없었던 것 같고, 외신들이 본 광화문 집회 소식입니다. 


로이터 > Massive crowd protest in South Korea against Park's labor reform plans


알자지라Dozens injured at South Korea anti-government protest - An estimated 80,000 people brave rain in capital Seoul to protest against the policies of President Park Geun-hye.





뉴욕 타임즈

Tens of Thousands March in Seoul, Calling for Ouster of President


BBC  S Korea protesters clash with polic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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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는 친일파이고, 사위는 마약사범이고, 본인은 불법대선에서 "버스"를 가동시킨 장본인 김무성을 욕하지 마세요. 

사법처리하세요. 

4월 총선 이후로는 정치판이고 미디어고 다시는 얼굴도 못 내밀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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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무성

파리 테러도 충격적이고 비극이지만 서울에 광화문 집회 현장을 보는게 전 가슴이 더 쓰리고 눈물이 마구 납니다. 

왜냐하면 IS는 비문화적인 야만인이자 극단주의자들이 증오와 극단적인 사고에 집착해서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에 비해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그 나라 국민에게 의도적으로, 매우 의도적으로 행한 비정상적야만행위거든요.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닌 경찰이 어떻게 정부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감시하고 폭력적으로 진압을 합니까? 그 물대포, 물, 최루탄, 다 국민이 난 세금으로 사는거 아닙니까? 경찰, 국회의원, 대통령, 그들의 월급, 다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하니까 국민이 돈을 주는거지요. 근데 국민을 호도하고, 민생을 휘어잡고,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마저 억압하는데 국민의 돈을 쓰면 말이 됩니까 안됩니까? 지들이 필요하면 지들 돈으로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뱃지 떼라고 하세요. 


물대포 맞고 쓰러진 사람에게 또 쏘고, 구해주러 간 사람에게도 쏘고, 앰블런스에도 쏘고, 기자들한테도 물대표와 최루탄을 쏘고, 그게 민주국가 맞습니까? 그건 자국민에게 할 짓이 아니에요. 그건 전쟁터에서 적을 잡을 때나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떻게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터에서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일삼을 수 있습니까? 총 대신에 물대포를 들었을 뿐이지 똑같아요. 비무장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도구는 결코 아니거든요. 기자들 불러놓고 물대포 시연에 표적을 안 세우고 아까운 물만 쏴댈꺼면 화장실에서 누구 소변이 더 멀리 나가나하는 장난밖에 더 됩니까? 바쁘게 일해야 될 시간에 물값 탕진하면서 장난해요? 그것도 국민의 돈으로?! 누가 물 몇 미터 나가는지 알고 싶데요? 준비한 표적이 없고, 그렇게 안전하면, 경찰 하나 세워놓고 하시면 될꺼 아닙니까? 못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정부를 싸고 도는 언론들도 다 나쁩니다. 아니, 더 나빠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유모리스트 콜루슈가 이런 말을 했죠. 

"Les journalistes ne croient pas les mensonges des hommes politiques mais ils les répètent! C’est pire!"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믿지 않지. 그런데 그 거짓말을 따라해! 그게 더 나빠!"

한국에서 기사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언론이 대체 몇이나 있나요? 연합뉴스는 파리 테러에 대해 어떻게 프랑스보다 더 많은 기사를 쏟아낼 수 있는지, 조선일보는 자극적인 문체로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고 있던데요. 오늘 아침 경향 신문 보니까 김무성이 불법시위라고 아예 규정을 해버리고, '전세계가 IS척결에 나선 것처럼 불법시위를 척결하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청산이나 하라고 하세요.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을 다 잡아들였습니다. 80세, 90세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있어도 하나도 봐주지않고 다 처벌했어요. 한국의 친일파, 뿌리를 뽑아야 한국이 되살아납니다.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니까 지난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거에요.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파리 테러 걱정해주지 마세요. 솔직히 여기 걱정해주시는 세계인들이 송구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많아요. 프랑스의 국가 '라 막세이예즈'까지 불러주는 모습에 프랑스인이 덧글을 달았는데, '닭살 돋는다'는 덧글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어요. 이 세상에는 파리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참 많습니다. 머리 위에 폭탄이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 전기도 식수도 없이 사는 사람들, 학교도 못가고 노동에 동원되는 아이들, 이런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아요. 하루밤에 몇 백 명이 죽어나가도 다음 날 기사 한 줄로 사라지는 사건들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손길을 뻗어주세요. 

무엇보다, 걱정은 감사하지만, 프랑스는 지들이 알아서 다 잘합니다. 시민의식이나 경제력이나 군사력면에서 충분히 능력이 되고,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나설 빵빵한 주변국가들도 있어요. 적어도 국가가 자국민만큼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파리 테러 사태보다 작금의 한국의 사태가 훨씬 더 심각하게 위태롭고 걱정스러워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디 몸과 마음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집에서 기도만 하지 마시고 행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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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온 시민들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13일의 금요일 밤이 테러와 함께 폭풍처럼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올랑드 대통령은 전국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토요일 아침  9 군사 고문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대학 모든 학교와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학교에서 떠나는 모든 여행도 취소됐고, 엘리제궁에는  1500명의 군인이 추가 배치됐으며 프랑스 국경을 폐쇄했다. 우리 동네 파리 서쪽 방리유 시립도서관과 음악원도 문을 닫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네 주말 시장도 평소같으면 북적거렸을텐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안심

 

나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 메시지에 나는 무사하다, 고맙다 답을 파리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3구에 사는 친구는 테러가 일어나던 , 집에 가려는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마구 뛰어가더랜다.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13구의 친구의 집에서 자고 나와 토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지만 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단다.

테러가 일어났던 11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테러 속보를 접하자마자 문을 걸어닫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밤새 길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통에 한숨도 자고 인터넷으로 경과를 지켜봤다고 한다.  12구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보았다. 그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바타클렁 극장에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 콘서트를 보러갔던 그의 동료와 남자친구가 아침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시장은 한산했지만 유기농 매장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지난 일어난 충격적인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는 했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 안녕하시냐 ?’ 문안인사에 말문을 텄다.

« 어제 잠을 한숨도 잤어요. 파리에서 테러 소식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있어야죠. 밤새 업데이트 기사를  검색해봤어요. » 

그제서야  옆에 있던 사람도 « 그러게요. 이게 왠일이래요 ? 충격적이고 너무 슬퍼요 » 한다.

그랬구나.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슬픔과 충격을 공감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며 불안감을 굳이 가중시키지 않고 있는 거였구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첫저녁

 


솔직히 내게는 가까이서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보다 바다와 대륙 건너 일어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수가 없었다. 가까운 파리 테러 현장이라도 찾아가야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친 비극이 일어난 24시간만에 사고 장소를 찾았다. 약간 두려웠다. 위에 핏자국이 낭자하게 나있지 않을까 ? 난사를 당하지는 않을까 ?

지하철을 타니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폐쇄되었던 역들도 운행을 개시했다. 129명의 사망자 절대 다수인 89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바타클렁 극장으로 향했다. 오베르캄프역에서 내리니 안테나를 방송 차량들이  찻길 켠에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독일, 미국, 영국, 이태리, 벨기에, 인도, 아랍 언론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나와있었다. 생방송으로 내보낼 뉴스의 큐만 기다리는 스탠 바이 상태였다.  이태리 취재진은 전날 이태리 취재를 끝내고 새벽1~2시에 현장에 급히 파견됐다고 했다.

폭탄이 터졌던 볼테르가 50번지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있고, 앞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자국의 저녁 생방송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트 켠에는 시민들이 가져다놓은 꽃다발, 촛불, 종이에 적은 메시지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유명한 독일계 프랑스 정치인 다니엘 콘벤딕트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  콘벤딕트는 -나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선택해 독일 녹색당에서 활동한 유명한 유럽 정치인이다프랑스 68혁명  혁명의 선두에  인물  하나였고프랑스 녹색당을 창당해 2009 유럽의회 선거 때는 녹색당 지지율을 20.86 %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3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작년에 정치계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방송에만 출연하고 있다독일 언론 ZDF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인도 기자들에게 말을 붙였다인도에서는 파리 테러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이라면서 인도에서도 파리 테러를 1면뉴스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길래 « 같은 해에 샤를리 앱도 이후에 또다시 파리에서 터진 테러 사건이어서 프랑스 사회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 말했다그리고 «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던 어제같은  한국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건 하나도 다루지를 않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 » 덧붙였다문제가 뭐냐고 묻길래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인도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Daniel Cohn Bandit독일계 독일 및 프랑스 녹색당 정치인 다니엘 콘밴딕트( Daniel Cohn Bandit )


볼테르가 주변에 쳐진 바리케이드 앞에 기자들이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이어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론느 길로 발길을 돌렸다. 여성 기숙사  빨레드 팜므건너편에  있는 일본 식당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 앞에 사람들은 초를 켜고 헌화하고,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사람들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침묵 속에 가지런히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놓인 바타클렁 극장 앞에 기자들이 많았다면 이곳에는 시민들이 많았다. < 몽드 다녀갔고  프랑스 3(France 3) 나와있었지만 숙연한 분위기를 조용히, 그것도 건너편에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가던 사람들은 수백 개의 촛불과 인파를 보고 멈추어 섰다. 사고 현장 모퉁이를 지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지만, 인터에 서행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비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조용하고 숙연함, 가지 단어만이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있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는 시민들


아이들과 함께 사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나온 가족


«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 우리 모두 일동 »


« 어째서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십니까 ? 이민문제일까요, 종교문제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문제일까요 ?»  

조문하는 서로 다른 연령층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 동료와 담배를 피워물던 중년의 에마뉴엘(45)씨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린건  자유라고 답했다.

« 그들이 목표물로 노린건 권력도 돈도 아니에요. 자유에요. 카페와 바에서 유유히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자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여성들의 자유, 자유말이에요. »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은 문제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무슬림인걸요. 지하디스트는 자기들의 욕구를 신의 이름으로 분출하고 있는 거에요. »

11구의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데 살고 있는 니콜라(45) 자기도 자주 가고, 특히 딸애가 자주 찾는 카페에서 사고가 알고는 깜짝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그날 같은 길의 다른 카페에 있었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었던 사고였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20대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디아(28)씨는 « 어떤 가지 이유가 아니라 알제리 식민통치, 이라크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을거 »라고 봤다. 그는 « 어쨌거나 심리적으로 무척 문제가 많은 이들이 저지른 행동 »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치오(28)씨는  «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높은 사회 계층도 아닌 우리와 같은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졌다 »면서 « 그래서 이번 사건이 충격적 »이라고 했다.

헌화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치아스 알리(31)씨에게 말을 걸었다.

«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있어서는 안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

어떻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 다음 주에 평화 시위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저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합니다. »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누릴 있고,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 서울 광화문에서 물대포, 최루탄, 캡사이신을 삼위일체로 맞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불통의 정부에게 날리고 싶은 메시지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놓여진 촛불들


« 여기 그리고 저기에서 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 «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


« 세계평화, 평화와 사랑 »





한 여성이 샤론느 길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에 불을 붙여 세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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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말이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

(Those who fail to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

 

내가 학교 다닐 , 역사를 잊기는커녕 배운 근대 역사가 있었다. 2012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아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답을 해야하는 상황도 아니었건만, 해머로 뒤통수를 마구 두들겨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다카키 마사오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이름-오마이뉴스 편집자 ) 일본 정부에 혈서를 쓰고 독립군 토벌군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바로 그때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으니까. 내가 대체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운걸까 ? 하는 회의감이 한순간에 몰아쳐왔다. 당시 아빠는 대선 후보 중에 빨갱이가 있다고까지 하셨다.

검정교과서로 바뀐 해가 2007년이니까, 나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국정교과서가 좋은지 나쁜지 그때는 판단도 없을만큼 어렸고, 무조건 달달 외우는게 최고였다.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건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가 결코 아닌 했다. ‘그때 사람 총살당한 다음 , 국기를 조기 게양하며 시뻘건 눈을 훔치던 엄마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새벽 종이 울렸네,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나라를 만드네, 살기 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어릴 하도 많이 들어서 아직까지도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징하다. 국정교과서였던 탓에 우리는 배워야 역사를 배우지 않았고, 지나간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때 사람 딸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의미심장한 지지율 51.6 % 얻어 권력에 앉았고, 8년만에 국정 역사 교과서로 회귀하는 더러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아닐까 ?

한국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내가 발을 디디고 서있는 땅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좋은 사례라면 같이 나누고, 아니라면 반면교사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선진국또는 혁명의 나라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 역사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며, 교과서를 어떻게 정할까 ? 1789 프랑스 대혁명과 1968 68혁명이 시민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역사를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나열하는 정도로만 치부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라의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역사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아닐까 ? 거창한 철학은 집어치우고, 프랑스의 역사 교과 과정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16년째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로렁스 드콕씨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로렁스 드콕



프랑스에서 국어, 수학, 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은 역사

 

-  프랑스의 역사 교육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3세부터 유아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의무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6세부터 시작된다.)

« 역사는 프랑스 의무 교육과정 중에서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에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1년동안 역사를 배우는데, 초등학교 때는 주당 1시간, 고등학교에서는 주당 3~5시간씩 역사 수업이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역사와 지리를 함께 가르치고, 공민교육도 병행합니다. »

 

-  역사가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라고 하셨는데,  매우 중요한 과목들 뭔가요 ?

« 국어, 수학, 그리고 역사 순입니다. »

(한국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순인데, 프랑스에는 국어, 수학, 다음이 역사 !!!)

 

- 역사 교육이 중요한가요 ?

« 19세기 때부터 역사 교육을 통해서 프랑스인이라는 느낌, 공화국민이라는 시민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에요. 프랑스에서 역사 교육은 크게 시기로 나눠볼 있습니다. 첫번째는 19세기 말부터 2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고, 두번째는 2 세계대전 이후에요.

첫번째 시기에는 프랑스의 역사만 가르쳤어요. ‘민족주의 소설(roman national)’이라고 부르는데,  소설처럼 아름다운 줄거리에 주인공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면만 이야기했죠. 자기 나라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려는 의도였어요. 지나간 역사에는 영광스러운 사건들만 있는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어요.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통치했었는데, 그걸 알제리를 위한 것이다라고 미화하면 거짓말이죠.

두번째 시기는 2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인데, 유대인 대학살이 신호탄이 되었어요. 그것은 역사 발전이 아니라 야만이었어요. 야만을 이해해야만 했어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지역에 걸쳐서 유네스코가 다음과 같이 발표했어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첫째, 인종차별주의와 싸울 , 둘째, 관용을 가르칠 .  그래서 오늘날에는 프랑스 역사만 가르치지 않고 프랑스, 유럽, 세계, 셋을 균등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역사 교육이 교육부 소관이었어요. 2차세계대전 끝날 때까지는 공개토론은 전혀 없었고, 역사 교육은 언론에서만 다뤘어요. 그러다가 1979 < 피가로> 1면에 실린 알랑 드코의 사설이 대대적인 공개토론의 도화선이 됩니다.  우리는 당신네 아이들한테 더이상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제목의  글이에요.  

(프랑스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알랑 드코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로, 저술가이자 방송인이다. 1951년에  역사 토론회라디오 방송을 개설하여  1997까지 운영했으며, 프랑스의 역사 교육에 반향을 일으켰던 공으로 2014년에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현재 프랑스 북부 릴르에 살고 있다. - 필자 주)

1970년대에 국어, 수학, 그리고 감각 일깨우기(éveil)’ 가르쳤는데, 감각 일깨우기 시간에 생물, 역사, 지리 등을 한꺼번에 가르쳤어요. 예를 들면 이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분석하다보면 역사, 지리 등이 나오는거죠. 근데 이렇게 가르치니까 막상 프랑스 왕들에 대해서 하나도 배우는거에요. 그래서 1985년에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프랑스 왕들에 대해 배우도록 역사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프랑스와 세계, 모두를 역사 시간에 가르치고요. 그리고 그때부터 공개토론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지난 2008년에 아프리카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어요.

 

프랑스 역사 교과서, 국가는 절대 관여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A4크기.


-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정되나요 ?

« 100%,  사립 출판사들이 만들어요. 교육부가 절대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배워야할 역사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6~7개의 출판사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요. 완전히 자유경쟁시장이라서 정부로부터 푼도 받지 않고, 어떻게하면 역사 선생님의 눈에 띌까 고심하며 최선을 다해 만들어요. 고등학교 1학년인 15세가 배우는 역사책을 갖고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챕터별로 프랑스 역사와 지리, 세계 역사와 지리가 분배되어 있고, 설명뿐 아니라 사진이 많이 들어있죠 ?

 

- 최근에 있었던 공개토론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요.

« 읽기 교육에 관한 거에요. 음절파는, 예컨대, ‘’ ‘’ ‘ ’ ‘ 배운 후에  합쳐져서 카키라고 읽는다는 그룹이고, 전체법을 쓰는 그룹은 음절이 아닌 각각의 단어를 외우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번째 그룹은 이래야한다 강경하게 나오고, 두번째 그룹은 이런 좋다 둥글둥글해요. 영어권에서는 이런게 없는데 프랑스만 읽기 문제로 대립하는 같아요. 진짜 이건 정치적인 싸움이에요. 가르치다보면 필요하거든요.

 

- 학교의 교육 방침에 반대해서 부모들이 시위를 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  

« 3 전에 성별(gender)’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을 있었어요. 여권부에서 평등에 대한 기본사항으로 내놓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에 동성애자 결혼에 관한 이슈가 사회에 등장했던 때랑 맞물려서 동성애자 결혼 반대자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비판했어요.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려고 한다’ ‘정부가 아이들의 동성애 성향을 조장한다면서요. 대개 카톨릭 단체에서 그랬어요. »

 

- 만일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하면 ?

«  선생님과 역사가들이 먼저 행동할꺼에요. » 


- 공무원인데도요 ? 

«  , 공무원이지만 이들은 자유와 함께 하고, 정치적 선동을 경계하거든요. » 

 

-역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걸까요 ?  

« 비판의식과 관용, 시민정신, 그리고 다른 동료 시민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에게 필요한 용병이나 군인을 만들려는게 아니에요. 역사 교육의 가장 목적은  비판의식을 키우는 겁니다. »

 

-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4지선다식 시험을 쳤어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험은 어떤가요 ?

«  사지선다식 시험은 거의 없고,  문제가 주어지고 그에 대해 답을 술술 써내려가는 형식이에요. 교과서에 나와있는 질문들처럼요. »


유럽과 미대륙으로 이동한 이탈리아 이민을 다룬 챕터의 질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이탈리아인이 이동하기 시작한 대시기는 언제인가?
2.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주로 어느 지역에 정착했나
3. 이민의 급격한 증가와 이탈리아 인구 성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
4. 어느 부류의 인구가 부득이하게 떠났어야 했나
5. 다른 어떤 요소가 이민을 부추겼나
6. 이들 이민은 결정적인가? " 

 

유럽과 미대륙으로 이동한 이탈리아 이민을 다룬 챕터



« 역사 교육은 세계의 시민키우려는  »

 

-교과서는 얼마마다 개정되나요 ?

«  4년에서 5년에 번씩이요. »

 

- 한국의 경우, 대입제도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에게 자주 혼동이 오는데, 프랑스의 고졸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어떤가요 ?

«  ! 바칼로레아는 19세기에 초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시스템이라 누구도 손을 거의 대는 신성한 영역이에요. 1808년에 나폴레옹 1 만들어졌어요. »

 

-인터뷰 초기에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인임을 느끼게 하는거라고 하셨는데, 국적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서 프랑스인임을 느낄 있는걸까요 ?

«  그건 나라에서 역사를 교육하는데 필요한 이유로 꼽는 사항이고, 저한테는 프랑스인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건 우리가 세상의 시민이 되는거고, 세상의 시민과 소통하는거에요. »

 

- 마지막으로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일반적인 교육말이에요. 교육이 필요한 걸까요 ?

« 어른의 도구를 갖추기 위해서에요. » 

 

- 어른의 도구요 ?

« , 세상에서 행동하고자하는 욕구를 갖는 ,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아는 ,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취하는 , 세상을 이해하는 ,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 »

 

한국에 있을 , 학교에서 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되거라, 공부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였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는 무척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글을 읽는 독자들의 대다수가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리라. 

10 전부터는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제일가는 덕담이라고 한다. 사는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16년간 과거사를 가르쳐 선생님에게서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고나니 깊숙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고,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며, 어른인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   

 

* 인터뷰에 응해준 로렁스 드콕은 현재 고등학교와 파리7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275명의 역사 지리 선생님,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아죠르나멘토 (Aggiornamento) 협회의 창간멤버이다. 2009년에 동료 에마뉴엘 피카르와 함께 <학교에서 제조해내는 역사>(La fabrique scolaire de l'histoire) 썼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11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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