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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꼴로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자로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그곳에서 내 여행 역사 중 단연코 최고로 꼽는 아침식사를 했다.






영어로 어떤 재료가 든 요리인지 일일이 설명하시는 주방 언니. 



이게 아침상이다! 끼약~~~~ 


사진 찍는동안 손대지 말랬는데도 먹는걸 보고 정신을 잃은 우리 막내. 앞으로도 계속 음식 사진을 보면 저 노무자슥 손이 안 들어간 사진이 없다. '그리스인들은 아침식사를 다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주방언니 왈, "그리스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은 맞지만 이걸 다 먹진 않고, 이들 중 몇 가지를 먹는다. 근데 당신들은 하루만 자고 가니 맛보라고 다 내놓는거다." 무한감동!




짜꾸가 날 정도로 먹고 남겼는데 주방언니가 오더니 사과 3개랑 사진 속의 종이 봉투를 한 장 준다. 남은거 싸갖고 가서 점심에 먹으란다! 무/한/감/동! 사진 오른편에 빈 접시 쌓은거 보이는가? 싸갖고 간 음식은 우리가 길에서 점심식사로 때우기 충분할 정도였다.


이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카테리나의 무릎에 아이 둘을 앉히고 넷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카테리나는 연신 그리스어로 아이들에게 솰라솰라~ (동영상으로 찍어둠) 프랑스식 뽀뽀와 포옹을 하고 이별의 정을 나누는데, 카테리나가 뭐라고 하면서 손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골뱅이 모양의 제스춰를 했다. '날아간다(voler)'는 불어와 비슷한 단어였다. 하늘로 날아오를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자로스 주택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카테리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고르티나. 기원 전 3000년 말경~기원 전 2000년 초의 도시 유적인 고르티나(또는 고르틴 ; Gortyna, Gortyne, Gortys)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목이라든지 가이드북에 상세한 위치 안내가 없고, 네이게이터의 주변 목록 검색에서도 이곳은 나오지 않았다. Tomtom 네비양의 최근 크레타 데이타를 다운받은건데, 이 데이타가 기본적으로 허술하다. 예컨대, 가라고 표시가 나오는데 길이 없거나 막힌 경우가 있었고, 오른쪽으로 돌아야하는데 '좌회전'이라고 안내가 나오기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그리스어 지명 표기 자체에 알파벳이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도에 적힌 지명, 가이드북에 적힌 지명, 네비양에 적힌 지명의 철자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예를 들면, 지난 번 포스팅에서 소개한 이라크리오는 Heraklion, Iraklio의 두 개 표기가 있고, 고르티나 지명은 Gortyna, Gortyne, Gortys 세 가지가 있다.



고르티나 찾다가 얼떨결에 들른 아지데카(Aghii Deka)의 한 교회.


4세기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의 지하무덤이 있었다.




'여기가 아닌게벼~'하고 나와 한참을 찾다가 포기할 무렵,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해서 겨우 찾은 고르티나! 가이드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행 정보는 안 올리는데, 헤매고 헤매다 결국 포기하려다가 겨우 찾은 이 곳을 찾아가는 방법을 적어두는게 다음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배낭여행객이라면 페스토스(Festos)행 버스를 타고 고르틴에서 내려 언덕쪽으로 10분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어린애 둘 데리고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우리같은 경우는 Aghii Deka에서 Mitropoli로 가는 길에 Mitropoli 방면 안내표시판 나오면 오른편 공터에 차를 세우면 된다. 다시 말해서 도로가 T자형으로 꺽어지는 곳에 T자의 바로 머리 부분에 있다.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이 없고, 돌이 널부러진 유적지가 보이면 바로 그곳!

왼쪽 페이지 가운데 v표 한 곳이 고르티나.

아지데카는 동쪽에, 미트로폴리는 남쪽에 있다. 도로가 꺽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 고르티나 유적지가 있다. 





* 고르티나 (B.C. 3000 말경이나 B.C. 2000 초기)

입구가 이래갖고 눈에 띄겠냐고요... ㅠㅠ 파란 글씨마저 그림자와 어울렁 더울렁.
이 근처를 차 타고 지나다가 오른편에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공터가 보인다하면 바로 그곳임!






원형 극장 뒤편에 돌에 새긴 고르틴 법문서가 있다.

(클릭하면 제가 놓친 고르틴 법문서를 찍은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 올리브나무

크레타 전국에 올리브 나무 재배지가 널렸다. 전적으로 올리브유로 요리하고, 올리브 열매를 꼭 샐러드에 넣어먹는 그리스인들에겐 올리브 나무는 삶 자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 수많은 올리브 재배지에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은 한결같이 키가 작다. 열매를 잘 맺는 기간동안 심었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뽑아버리는걸까? 아니면 나이든 나무는 물을 많이 먹기 때문일까? 크레타 도심이든 올리브 재배지 산에까지 물주는 호스가 뻗어있는걸 보며 낮아지는 지하수위가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런 반면, 백 년 이상된 올리브 나무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처럼 나이 많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 물을 굳이 따로 줄 필요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영험한 기를 뿜는 오래된 올리브나무는 프랑스 남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무 안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번도 잎을 떨구지 않는다는 신비한 플라타너스.

이 나무 밑에서 제우스(Zeus)가 에우로페(Europe)와 사랑을 속삭였다고.. 



자, 그럼 이제 히피의 해변 마탈라(Matala)에서 해수욕이나 해볼까? 10월 하순에?!











* 고속도로가 없는 섬

그러고보니 크레타엔 고속도로가 없다. '적어도 해변가를 따라 고속도로를 뚫으면 도시간 이동이 수월할텐데 왜 안 하지?' 싶었다. 하지만 하늘과 경계가 없는 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 그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그 자체가 크레타 여행이라는걸 깨닫는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산과 바다를 끼고 운전하다가 길가에 염소떼가 나오면 속도 늦추며 늦게 가면 되지,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는가? 인생도 과정인 것. 목적지에 누가 빨리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만남과 깨달음이 곧 인생 그 자체인걸.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만끽하고 음미하며 몰락하는 그리스에서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크레타를 느끼는 것이 내겐 소중했다.



여자의 젖가슴같은 섬



불새와 함께 지는 노을




글과 사진이 맘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추천 좀.. 긴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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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그리스가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던 바로 그날, 비행기가 과연 뜰까 안 뜰까? 왜 하필 그날 파업을 하냐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24시간 전까지도 취소되지 않았다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갔다. 하지만 이륙선 전광판에 크레타행 노선이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선 당일 아침 6시에 파업 결의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공항에서 샌드위치으로 피크닉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48시간동안 하는 이 파업은 다음 날 저녁 8시에 끝나기 때문에 비행기는 밤 10시에 뜰꺼란다. 밤 10시발, 새벽 3시 도착이면 아이들 수면리듬이 모조리 깨질텐데.. 호텔과 비행기를 다 취소하나 고민을 하던 끝에 딸에게 물었다. "가고싶냐?"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표정을 지으며 '가고싶다'한다. 그래, 가자! 까짓거! (그랬던 이 년이 크레타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집에 가자'고 성화를!!!)

에라클리옹(Heraklion, Iraklio; 한국에선 '이라클리오'이라고 하던데,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지명은 제 편의상 불어발음으로 표기합니다. ^^;;;) 공항에서 렌트한 차에 파리에서 크레트 지도를 다운로드한 네비양을 설치했으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는 인도하는 네비양 덕분에 꼭두새벽에 한참을 헤매다 호텔에 당도하니 새벽 4시. 테라스가 딸린 호텔방이 널찍하기도 하지, 바닥은 또 마룻바닥이네! 아무리 좋으면 뭐하남? 전날 밤 호텔비는 날아갔고, 고작 3시간 자고 나오려니 돈이 아까워~ 꺼이꺼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아니 바다 위로 태양은 떠오르고!




설친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얼르고 깨우고 먹이곤 호텔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시장과 아지오스 미나스 사원을 들렀다. 강한 햇빛을 받아 새빨갈꺼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토마토는 오히려 옅은 색을 띄고, 호박은 꽃이 붙은 채로 시장에 나오더군! (사진 업뎃만으로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각 지명마다 상세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 아지오스 미나스 사원







에라클리옹의 고고학 박물관은 명성에 비해 아주 자그마한데 그림, 장신구, 조각 등 그 콜렉션의 놀라움은 도끼를 든 골리앗이었다!









고고학 박물관 앞에서 나른한 한 때 (잠결에 이렇게 몰카에 걸릴 수도 있으니 주의요망)



36시간의 여행일정을 놓친 상황에서 우리는 첫날 예정 경로였던 에라클리옹 시내 구경을 과감히 포기하고, 스케줄대로 크놋소스(Knossos)로 향했다. 이리하여 베네젤루 광장의 모리시니 분수는 구경도 못하고 크놋소스로 고고씽~

* 크놋소스 궁터 (기원 전 1700~1450년)










* 자로스 (Zaros)

크놋소스를 나와 크레타 남부로 내려가기 위해 남북을 횡단하다 자로스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예약한 숙소에 들어갔을 때, 한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호두를 까면서 긴 테이블 반대편에 있는 노인과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그리고 난 이 곳에서 평생 잊지못할 매우 특이한 순간과 맞닥뜨렸다.


벽난로 옆에서 호두를 까는 주인 할머니.


그러고보면 크레타는 전혀 춥지 않았는데 왜 한겨울처럼 벽난로에 불을 붙이셨을까? 거실을 훈훈하게 덮히시려고 했던걸까? 애들과 가방을 한짐 지고 들어가 'Hello~'하자 그녀는 마치 먼 길 갔다가 돌아온 딸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간단한 그리스 인삿말 몇 개 밖에 모르는 내가 느낌과 추리를 동원한 자의적 해석에 의한 우리의 대화.


할머니 : "오~~~~~! 너 왔구나! 이라클리온에서부터 운전하고 온게야?"

나 : " 네 "

할머니 : "피곤하겠구나. 앉아서 뭐 좀 먹으렴. 차를 마실래? 커피를 마실래?"

나 : (양손에 든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당황하며) "먹으려고 온게 아니라 방을 예약했는데......"

할머니 : "힘들텐데 앉아서 뭐부터 먹으렴. 급할꺼 없잖니. 커피 줄까? 차 줄까?"

나 : "그럼 차 주세요." (속으로 : 이거 charge(부가요금)으로 붙는거 아닐까? 상술이래도 할 수 없지모. 일단 앉아서 마시자.)



수저가 놓여있는 접시엔 꿀에 절인 건포도가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여기다가 까고 계시던 호두를 한 줌 주셨으니, 호두와 건포도와 꿀, 환상의 콤비!!!


난 이 할머니에게 묘한 친밀감을 받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한 쥬스를 갖고 나왔을 때, 나를 가리키면서 내 이름을 알려줬다. '당신은?'했더니 '카테리나'란다. 그녀는 아이들의 이름도 물어봤다. 막내의 이름에 "아~~!!" 하시더니 자기 가족사를 꺼내신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식구가 있나보다. 자기 가족 중에 카테리나가 셋이나 있다는 얘기도 하시면서, 물론 이걸 눈치로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여러 번 반복하셨으니까. 



카레리나의 파푸스(그리스어로 '아빠'를 뜻하는 것 같다)



그리스어밖에 못하는 카테리나와 그리스어를 못하는 나의 무력한 소통이 벽난로처럼 훈훈하게 오가고나서 카테리나는 호두를 까던 쟁반에서 남은 호두조각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뻔히 보이는 호두 조각을 카테리나가 호두껍질과 함께 걷어내고 있었다. '카테리나가 눈이 잘 안 보이는구나' 난 쟁반 가까이 다가가 호두 껍질과 섞인 호두 조각을 빠른 손놀림으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뒤통수에서 남편이 "애들을 돌봐줘야지" 했으나 대꾸도 안했다. 애아범이 있는데 왜 굳이 엄마가 애를 돌봐야되는거냐 말이다. 조그만 호두 조각들이 점점 모여들자 카테리나가 깔깔대며 웃었다. 호두 발리기가 다 끝나고 카테리나가 그리스어로 '고맙다'고 말했다. '뭘요'라는 그리스어를 몰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스어로 '고맙다'(에프샤리스토)와 '뭘요'(에프카리스토)는 한끝차이라는걸 나중에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식구들은 나만 놔두고 사라졌다.


"얘들아~ 어딨니?" 큰애 이름도 부르고, 작은애 이름도 부르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큰애의 대답이 저 편 복도에서 들린다. 방을 찾아 들어오니 가지런한 방에 호텔방같지 않은 알록달록한 이불이 깔린 것도 정겹고, 테라스로 보이는 산골마을 정경도 아늑하다.







한국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산골 정경을 내려다 보고 있으려니 마치 고향같다. 짐을 풀고 있는데 카테리나가 먹을꺼리를 '또' 올려보냈다!



몽글몽글 진 이 것은 불어로 lait caillé(레 까이예)라고 하는데, 우유를 발효한 음식이다. 난 락토즈 때문에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해 우유를 마시면 하루 종일 방귀가 나오는데, 크레타섬에서 먹은 우유나 발효우유는 어찌된 영문인지 속이 편했다. 이 섬에서 소를 본 적이 없는 걸 봐서 소젖이 아니라 염소젖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니 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드라. 로컬푸드유기농, 거기다가 vegera라고 써있는걸 봐서 채식식당이라는 얘기 같은데! 이건 완전히 나를 위한 식당이잖아! 띵호와~ 야호! 야호!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를 테이블에 앉히더니 메뉴판도 주지않고 음식을 하나 하나 내오시더라. 채식요리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메뉴판이 없으니 그저 주는대로 이름도 모른 채 먹는 수 밖에. (이름을 봤다해도 기억이 다 안 나지..) 그리스 음식들 하나같이 정말 맛있더라! 상에 내온걸 다 먹지 못하겠어서 저 위 사진 중 토마토 접시는 식당에 돌려줄 생각으로 아예 손도 안 대고 있었다. 그 안에 프랑스 요리 tomate farci처럼 고기가 들어있을꺼라고 여겨서, 그 요리를 느끼해서 싫어하는 나는 먹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식당에서 먹어보니 고기가 아닌 밥이 들어있더군! 어쨌거나 부픈 배를 튕기고 있을 무렵, 디저트라고 또 내오신다! 맛을 보니 맛있어서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 댄 것은 남김없이 싹싹! 냠냠..



어른 2명, 아이 2명이 상이 휘어지도록 먹고도 남은 식사값으로 30유로 냈다. 프랑스같으면 어림없지! 50유로는 내야했을 터. 이렇게 산골마을 자로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크레타 섬에서 기원 전으로의 여행은 둘째날 여행기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글과 사진이 맘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추천 좀.. ^^;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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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영화제만 아니면 깐느는 연중 내내 조용~~~~한 도시다.
생활비가 파리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으며, 커피값은 파리보다도 때로 더 비싼 곳.
바닷가 휴양지, 깐느 영화제로 알려진 이 도시는 은퇴한 노년의 삶을 보내는 이들이 많이 정착하기 때문에
개를 산책시키는 멋쟁이 노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다와 면한 대로는 유명 (일명 명품) 부띠크와 사성호텔로 삐까번쩍한 반면,
다른 한 켠엔 상설벼룩시장과 마치 남대문처럼 싼 값에 쇼핑하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공존하는 재미난 도시기도 하다.
깐느에서 배를 타고 깐느 앞에 있는 섬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를 음미할 수도 있다.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로 꽉 채워진 이 섬에 다가가면 유칼립투스향과 솔향, 그리고 바닷내음이 진동한다.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언덕에 올라서 내려다 본 풍경












깐느영화제가 열리는 컨퍼런스 건물의 평상시 모습.

세미나 간판 내리고, 계단에 붉은색 양탄자 깔고, 양 갈래로 정장한 기자들을 깔아놓으면, 스타들 등장~! 



먹자골목이 있는 쪽에 위치한 벼룩시장. 1주일에 2번 벼룩시장이 섬.



깐느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지가 맞은편에 보이지요.






요트마다 주인이 있대요. 난 한번도 못 타봤는뎅...



느 부산 갈매기가???



저 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나 한 판 뒀으면.... 싶었던 곳.



소나무가 무성한 것이 꼭 한국의 동해 풍경을 닮은 것 같아서 고향생각 나게 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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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깐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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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느므느므 좋았던 지난 주말, 파리에서 12km 떨어진 근교 말메종(Malmaison)에 있는 황후 조세핀의 전원주택에 갔다왔습니다. 나폴레옹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어요. 당시엔 그 근처 일대가 모두 그 집에 딸린 정원이었는데, 지금은 집(샤또)과 작은 정원만 박물관으로 남아있고, 정원에 속했던 땅의 일부는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된 공중공원으로 쓰이고 있어요. '일부'라고는 하지만 '일부'라는 그 공공 공원의 넓이가 18헥타르니까 당시 조세핀의 전원주택에 속했던 정원은 얼마나 넓었을까요? 그 집 일대 전체가 다 개인정원이었죠모. 왕비도 아니고, 황후라잖아, 황후!!!

사진 출처: http://www.musees-nationaux-napoleoniens.org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돌아와 조세핀과 함께 이곳에 처음 들렀을 때, 조세핀은 이 장소에 반하게 되어 이 집을 당장 사기로 합니다. 그녀에게 지름신은 대단하여서 집을 다 부숴버리고 다시 지으려고 했답니다. 이 무지막지한 계획에 나폴레옹은 반대를 하고 옥신각신 끝에 합의를 본 게, 개조를 하자! 양쪽에 보내는 두 개의 날개 건물은 조세핀이 살던 당시에는 없었던 부분이고, 사후에 또 다시 개조되면서 증축된 부분입니다.

입구에 중앙홀이 있고, 당시에는 회전하는 거울이 있었다고 해요. 지상층에서 왼편으로가면 음악홀과 무척 큰 당구대가 있는 당구장이 있어요. 당시에는 여성들이 당구를 즐겨 쳤다고 하더군요. 오른편으로는 식사하는 곳, 군무회의를 자주 열었던 회의실과 나폴레옹의 서재 등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폴레옹이 이 집에서 회의를 자주 열었기 때문에 당시 말메종은 파리에 버금가는 정치의 산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학구열이 얼마나 대단한 지 밤에 자다가도 서재에 슬그머니 내려와 책을 읽으며 공부를 많이 했다고하죠. 때문에 밤에 사람들을 깨우지 않게끔 주택의 중앙복도를 통하지 않고 침실에서 서재로 바로 내려가는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서재에서 꺼낸 문서와 책들을 한눈에 다 펼쳐놓고 볼 수 있게끔 하려고 나폴레옹의 책상은 특수하게 주문제작되어 길이가 일반 책상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큰 책상 주문하는 분들! 책상만 크다고 공부 잘 하는 것은 아니겠죠? 자다가 몰래 일어나 공부하라지 않습니까? ㅋㅋ

여튼 나폴레옹은 군사, 행정, 교육, 수로, 의료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국가시스템을 만들어 정립했는데, 그 시스템이 워낙 탄탄하게 잘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프랑스에 살아내려오고 있을 정도지요. 그 이유로 저희 남편은 '나폴레옹만한 지도자는 없다, 그는 매우 드문 천재다'라며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합니다. 천재는 타고 나기도 하겠지만 밤에 일어나 혼자 서재에 내려와 연구를 할 정도의 학구열에 있으니 나폴레옹이란 인물이 나올 수 있지 않았겠는가하는 싶었어요. 그냥 타고나는 건 없구나, 갈고 닦아야 되는 거구나,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새삼스레 다시 느꼈네요.


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한 조세핀, 그녀의 드레스와 장신구, 찻잔, 식기들도 2층과 3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치가 대단하여서 엄청난 빚을 끌어다 쓰면서도 옷과 장신구를 끊임없이 샀다고 하지요. 오죽하면 이태리로 전장에 나간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에 '돈 좀 고만 펑펑 써!'라고 했을까요. 조세핀이 소장했던 손수건이 900장, 블라우스가 500장이랍니다. 2층(1er etage)에 올라가면 개인공간인 침실이 있는데, 나폴레옹의 침실은 황제의 침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다못해 소박할 정도였어요. 그곳엔 긴 더벅머리의 시골 총각 나폴레옹의 오래된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애 둘의 유부녀 조세핀을 만났을 당시 그런 모습이었다고 하지요.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썼던 칼을 전시해놓은 방이 있고, 그 옆방에는 다비드의 유명한 나폴레옹의 초상화 원판이 걸려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간다는 천재적인 전략의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입니다.

나폴레옹이 단신이라고들 아는데, 그건 사실 나폴레옹을 얕잡아보려는 영국사가들이 '말에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고 비하하는데 기원했을 뿐이고 실제로 작은 키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169cm로, 당시 성인 남성으로서는 매우 평균적인 크기였다고 해요. 한국을 폄하하려는 일본이나 프랑스를 폄하하려는 영국이나 섬에 사는 옆나라는 대륙에 사는 옆나라를 깍아내리려 하는 아주 못된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다비드는 이 외에도 나폴레오의 초상을 50점이나 그렸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주문한 것은 아니었구요. 나폴레옹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위 그림 역시 나폴레옹의 주문으로 제작된 게 아닙니다. 스페인 왕이 미술관을 지으면서 '당시 가장 위대한 군인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하지요. 그림 속에 말이 밟고 있는 바위 새겨진 이름은 알프스를 넘어갔던 위대한 유럽의 세 지도자의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한니발, 그리고 샤를마뉴 대제. 세 지도자에 대한 오마쥬가 담긴 그림인거지요. 보통 이런 밑바닥에 작가의 사인이 새겨있는데 이 그림 속에는 작가 다비드가 어디에 사진을 해넣었을까요? 퀴즈! ^^

같은 2층에는 조세핀이 썼던 찻잔과 식기류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방의 중앙에는 유리벽으로 둘러쳐져 (당연히 그 유리를 깨면 알람이 울리겠죠) 화려하게 금식기들을 깔아놓고 있습니다. 접시 중앙에는 도자기 위에 풍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접시 가장자리는 두께 3cm 정도로 금색으로 둘려쳐져 있습니다. 이 접시의 시가가 4만3천유로랍니다! 접시 세트의 총가가 아니라 접시 하나의 가격이이에요. 이 비싼 식기를 오로지 디저트를 먹는데만 썼답니다. 칼질을 하면 식기가 상할까봐서요. 입만 쩍! 벌어집디다.

계속 더 가면 붉은 천과 금실로 화려하게 장신된 조세핀의 침실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조세핀이 운명했다고 하죠. 근데 이 붉은 침실은 말만 침실이지 당시 그런 공간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해요. 실제로 잠을 자려고 쓴 일은 없고, 그 옆에 있는 평범하고 창이 많은 밝은 방에서 자는걸 선호했다고 해요.
(방이 남아돌아.. 헐헐) 황후나 저나 침실은 평범하고 햇빛 잘 들고 맘 편한게 좋은가 봅니다.

이 외에도 나폴레옹과 관련된 박물관, 하다못해 나폴레옹이 하루 묵었던 호텔 등 나폴레옹의 흔적은 프랑스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말메종 저택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요.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좋은 시절을 보냈던 말메종의 전원주택을 방문해보고 싶은 분을 위해 찾아가는 길 알려드립니다.

* 찾아가는 방법 *
RER A선이나 메트로 1호선을 타고 La Defense(라데팡스)에서 내려서 258번 버스를 타세요.
Le Chateau(르 샤또)역에서 내려 버스 반대방향으로 30m 걸어내려와 사거리에서 길을 건넌 후, Chateau de Malmaison(샤또 드 말메종)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가로수가 쭉 뻗은 길을 따라 300m 걸어가시면 길 끝 오른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박물관 앞 주차장은 무료입니다마는 환경을 위해서 사지멀쩡한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세요!!! 그리고 4월부터 9월말까지 미니기차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정문 앞에서 서는 이 기차는 조세핀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18헥타르라는 공공 공원(Parc Bois-Preau)으로 데려다 주고, 이어 그 근처의 녹지로 안내합니다. 이 미니기차의 이용료는 무료에요.

입장료는 6유로, 점심시간 12시부터 오후 1시반까지 문 닫힙니다. 박물관 내에 먹을만한데가 없고 주변에 식당이 없으니 아침이나 점심 식사 후에 가셔야해요. 저는 김밥 여섯 줄 싸갖고 가서 '이만하면 먹고 남겠지' 싶었는데 다 까먹고 싸갖 과일까지 다 먹어치우고 왔네요. 쩝.. 역시 화창한 날에 하는 피크닉은 너무 재밌어요. 에너지가 퐁퐁퐁 솟는 것 같애..^^
개방시간은 철에 따라, 주말/주중에 따라 다르니 아래 링크된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ww.musees-nationaux-napoleoniens.org//homes/home_id25138_u1l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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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사진 출처:http://www.journaldunet.com/economie/enquete/illuminations-noel-villes/

 

처음부터 순서대로 스트라스부르, 파리, 몽플리에, 툴루즈, 랑스, 리옹, 마르세이유, 니스, 릴, 낭트, 콜마, 그르노블, 보르도, 비아리츠, 생트로페, 렌느, 르아브르, 생티엔느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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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조명이 세계적으로 아름답다고 손꼽는 반면,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유럽 제일까지는 아니더래도- 파리를 제끼고 프랑스 제일이라고 꼽겠습니다. 스트라스부르가 대체 어디냐? 소개를 잠깐 할께요. Strasbourg라는 철자 때문에 혹자는 '스트라스부르그'라고 읽는다거나 독일의 한 도시로 알고 있는 이들도 적지않습니다. Y언론에서 근무하던 한 한국인이 '거기 독일이냐?'고 물을 때는 황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스트라스부르에는 세계 인권 연합, 유럽의회, 유럽이사회 등이 소재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간 분쟁에 대한 회의를 이곳에서 연다는 국제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거든요. 스트라스부르주와(=스트라스부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고, 유럽의 수도는 스트라스부르다!'

 

독일식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곳은 프랑스의 동쪽 끝, 독일과의 접경지대에 있는 도시로,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 분쟁으로 한때는 프랑스령이었다가, 한때는 독일령이었다가 했던 기나긴 역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곳이고, 프랑스 문화와 독일 문화과 섞인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아시죠?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 이야기를 전 참 가슴아프게 읽었는데, 그 장소적 배경이 되었던 '알자스'라는 지방이 바로 스트라스부르가 있는 지방이에요. 프랑스에서 이만큼 지방색이 짙게 살아있는 도시도 없지요. 또한 도심에는 차가 다니지 않도록 계획된 환경도시로도 유명합니다. 도심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전기로 가는 트람(tram)과 자전거, 도보만이 가능하거든요.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하기에는 사시사철 좋지만 겨울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습니다.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파리보다는 스트라스부르라고 꼽겠습니다. 11월 24일이 되면 도심의 광장 한복판에 십 여 미터가 넘는 진짜 전나무로 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섭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요. 그 주위에는, 그리고 광장이라는 광장과 큰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섭니다. 15세기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풍습이지요.헨젤과 크레텔 풍의 300~400년 된 집들이 늘어선 도시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파스텔 조명이 떨어진다고 상상해보세요. 게다가 파리와는 달리 눈까지 내리면? 파리의 크리스마스에는 결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아늑하다'는 느낌을 이곳 스트라스부르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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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fr.boutis-quilt-creation.fr/i_love_fabric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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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doctissimo.fr/php/blog/voilavoilavoila/index.php/notes/p40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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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sace-terro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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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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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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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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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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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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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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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fileane.com/laurie/laurie01/strasbourg_noe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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