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

나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애가 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성별의 자녀를 둔 것을 '왕의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왕? ㅎㅎ 딸애의 한국 이름은 '바다'고, 아들은 '나무'다. 바다는 아무거나 잘 먹는 반면에 나무는 가리는 것이 많은 편이다. 밥상머리에서 밥숟갈도 뜨지않고 안 먹겠다고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내미는 건 늘 나무다. 나무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은 파, 양파, 당근, 가지, 호박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식성도 그지같이 까다로와서 제육볶음을 해주면고기와 밥을 섞으면 안되고, 옥수수 오믈렛을 해주면 송송 썰은 파를 오믈렛과 섞으면 안된다. 

한번은 바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 보양식으로 양파스프를 해줬는데, 나무는 배는 고프다면서 양파 스프를 안 먹겠다고 버텼다. 우리는 한 그릇을 거의 비워갈 쯤, '더도말고 딱 한 입만 먹어보라'고 국물을 떠줬더니 인상을 쓰면서 받아먹더니만 금세 자기 스프를 다 먹어치웠다. 마지막 양파스프 한 그릇이 남아서 '이건 누가 먹을래?'하니까 바다가 손을 번쩍, 나무는 슬그머니 머리 뒤로 손을 올렸다.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남은 한 그릇을 두 먹새가 다 먹어치웠다. 

어제는 프랑스 전체 파업이라서 초등학교에서 급식이 안 나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하루 휴가를 받아 나무를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 수업에 데려다줬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줘서 잘 먹었고, 문제는 디저트에서 제동이 걸렸다. 내가 제안하는 모든 디저트를 거절하면서 점점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디저트가 없다니 할 수 없구나'하며 밥상을 치우자 애가 인상을 쓰고, 걷는 게 시끄러웠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밥상을 차려줬는데 애가 심통을 부르니 나도 화가 났다. 

"엄마가 너 점심 준비해주느라고 회사 안 간 거 알지?" -네. 

"너는 엄마가 해주는 모든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여기니? 엄마는 너에게 모든 걸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게 뭐라고 생각하니?" -?????

"엄마가 너한테 하는 서비스나 희생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라거나 댓가를 바라든?"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 건 너의 행복이야. 네가 행복하고 즐겁길 원해. 다른 사람에게 네 점심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점심 먹기를 싫어해서 엄마가 휴가를 냈고, 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했어. 그런데 고작 디저트 때문에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실망스러워." 

"네가 먹는 모든 음식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마. 너는 먹고 싶은 것만 가려먹으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먹을 게 정말 없어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그것도 매 6초마다! 네가 먹는 음식에 늘 감사해야해.  그 음식이 너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했는 지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해.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미안해. 근데 나는 요리와 화장에 시간 보내는 걸 싫어해서 요리에 30분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네가 이것저것 가려먹을꺼면 너 이제 곧 만 9살이 되니까 앞으로 엄마가 장 볼 때, 너 먹고 싶은 거 네가 사와서 네가 직접 요리를 해. 요리가 네 입에 안 맞으면 네가 네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걸 배우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네 장바구니 예산은 내가 줄께. 누나는 만 12살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는 가리는 게 많으니까 조금 일찍 시작하자. 부엌살림은 나눠서 쓰고, 대신 불판과 요리기구를 어떻게 다루는 지는 내가 가르쳐줄께." -...........................................

"밥 먹을 때마다 투덜대는 거 엄마는 지겨운데, 너는 어떠니?" -...... 

"이유가 뭔거 같아?" - 모르겠어. 

"엄마는 네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네 앞에 온 음식에 감사하고, 너를 위해서 휴가를 낸 엄마에게 감사하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오믈렛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감사하면 네가 고작 마음에 드는 디저트가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통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

"먼저 엄마한테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가기 전에 '나는 긍정적이다'라고 열 번만 쓰고 가자." -10번은 너무 많아!

"난 이걸로 협상하지 않아. 10번을 쓰고 학교에 가든 지, 아니면 지각을 하든 결석을 하든 지, 네가 결정해." 

해서 아이는 '나는 긍정적이다'는 문장을 10번 쓰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가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이렇게 해보라. 

첫째, 일부러 따라다니며 먹이지 마라. 
한 두 끼 굶었다고 죽지 않고,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밥 먹고 크는 걸 부모가 원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밥을 먹지 않으면 부모가 걱정한다는 걸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으로 협상을 하려고 드는데, 그 협상이 먹힌다는 걸 알면 아이들은 종종 같은 방법으로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심통을 부리며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하고 밥상을 치워라. 아이가 밥을 먹고 안 먹고는 협상의 대상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식사 시간을 정하라. 
아이가 밥상에서 투정을 부리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고 밥도 국도 다 식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면 밥상을 정성껏 준비한 엄마는 더 신경질을 받게 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식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만 식사하고, 식사시간 외에는 일체 군것질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모든 식구들이 엄수해야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기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가 투정을 부르면서 밥을 안 먹으면,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밥상을 치워라. 몇 시간 뒤, 배 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밥도 군것질도 주지 말라. 그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식구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설명하라. 배 고픈 아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주면 다음 번 식사시간에 밥을 먹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간식시간이 정해져있다면 그 시간에 간식을 주는 것은 예외다. 

셋째, 밥 대신 군것질을 주지 말라. 
밥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과자, 비스켓, 케익,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상기한 먹거리들은 버터와 설탕이 많기 때문에 영양가 있는 한 끼 식단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식사 시간에 절대로 버터와 설탕으로 범벅된 먹거리를 주지 말라. 게다가 훗날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기름지고 단 음식으로 위로받으려는 어른으로 성장할 확률이 커진다.  

넷째, 아이는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제1의 교육자다. 청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의 언행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는 언행으로 받아쳐서는 안된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보면서 아이는 배운다.  '아, 화가 날 때는 저렇게 대처하면 되는구나! 소리지르고 나이로, 힘으로 누르면 이기는 거구나!'하고. 어미 게가 아무리 '앞으로 똑바로 걸어'해도 어미 게가 옆으로 걷는 모습을 보고 걷는 걸 배우듯이 아이는 부모의 '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에게 교육이니 사랑이니 이런 그럴듯한 이름으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이같은 행동에 다름아니다. 내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관찰해보라. 화가 나면 나와 먼저 대화를 하고, 나의 화를 가라앉히고나서 아이와 대화하라. 


다섯째, 아이에게 경청하라. 
아이가 밥을 전제로 시위를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어주라. 아이의 문제나 불만을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공감'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 


그 어떤 순간에서든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면 아이와 생기는 마찰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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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글을 쓰는 여성 소설가에게 아이 아침밥은 어떻게 해주냐고 물었더니 소설가는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라고 답했고 인터뷰를 했던 김지영씨는 '초월적이고 독자적인 답변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했다. 그 글은 한국 방송통신대학보에 실렸고, 김지영씨의 페북 사이트에도 올라있다. 지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공유되었던 글이라 나는 김지영씨 포스팅에 덧글을 남기고 싶어도 페친이 아니기 때문에 덧글을 달 수가 없어서 내 의견을 블로그에 적는다. 


김지영씨의 글 보기


"에유... 니들만 없으면 밥상 안 차려도 될텐데." 


사실 우리 엄마도 곧잘 이 말을 하셨다. 나랑 오빠만 없으면 밥상 차릴 수고를 덜 수 있을텐데 우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밥상을 차리느라 당신 몸을 일으키는게 피곤하셨던게다.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의 밥을 '얻어먹는다'는 짐을 지며 살았다. 내가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오빠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밥을 차리기는 싫었다. 남들 다 아침먹고 밥상까지 물린 뒤에 일어났던 오빠는 나보고 밥상 좀 차려달라고 했다.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다 냉장고에 있으니 찾아서 꺼내먹으라고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 밥상 차려주는게 그렇게 싫으니?'하는 구사리와 함께 엄마의 싸늘한 눈매가 날아왔고, 엄마는 불평할꺼면 하지말라며 당신이 몸을 일으켜 아침 10시에 오빠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셨다. 오빠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 엄마는 그 밥상을 치워주셨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없으면 내가 밥을 후지게 먹는다는 걸 발견했다. 애들이 있으면 손톱만큼이라도 정성을 들여서 밥상을 차리고 나도 잘 먹게 되는데, 애들이 없으면 내가 폐인처럼 먹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제멋대로고 아예 끼니를 건너뛰기도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엄마가 "니들 덕에 나도 제대로 챙겨먹게 되는구나.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고. 자식을 낳아서 왜 자식이 평생 당신의 짐인 듯한 말씀을 그렇게 자주 하셨을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어서 행복하다고, 너희들 덕에 엄마가 이런 저런 요리도 해서 나도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노라고 자주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자식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애들이 없으면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겨 배가 고파야나 치우지도 않은 상에서 대충 대충 챙겨서 그야말로 "끼니"를 때운다. 이날은 그나마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여러 개 사왔던 터라 밥하고 숟갈만 놓으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사온다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이라 기념사진을 찍어뒀었다. ㅎㅎ



여성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지영씨나 그분의 글에 공감하면서 댓글을 단 여성분들이 갖는 고충은 아이들의 밥상을 차려주는데 있는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 배를 곯아서 학교를 보내선 안된다. 그건 분명 여성 소설가가 잘못하고 있는거다.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운다고 그 자유로움과 당당함에 만세를 불러서 안된다. 그 집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고, 애아빠랑 같이 사는지 엄마 혼자 키우는지 등은 모르겠는데, 만 10살이면 혼자서 아침 차려서 먹고 나갈 수 있는 나이다. 밥통에 있는 밥 푸거나 아니면 렌지에 띵~ 데우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개 꺼내서 먹고,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개수대에 치우고, 반찬은 다시 냉장고에 넣고 가라고 교육시키면 된다. 아침밥 안 챙겨주면 아침밥 안 먹고 나가는 피동적인 아이로 키울게 아니라, 밥은 엄마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칠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찾아먹고 치우고 나가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만 15세가 되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장도 볼 줄 알고, 요리해서 다른 사람 먹일 수 있을만큼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밥상을 차리는 상대가 아니라 밥상을 '누가' 차리느냐하는 주체에 있다. 한국 사회는 유독 남자에게 밥상에 관련된 자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 큰 남자가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어머니에게 헌사를 보내는건 인텔리젼트한 책을 몇 권을 써냈건간에 그 평론가는 한 어른으로서 바보병신이다. 헌사를 보내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헌사를 보냄으로해서 여성은 부엌일, 남성은 글쟁이라는 이분적인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헌사는 여성을 부엌이란 비가시적인 감옥에 붙들어두는 가시에 지나지 않는다. 

김지영씨는 그 비가시적인 감옥에서 탈출한 여성 소설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맞아!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되는구나! 그걸 몰랐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엌없이 사냥과 채집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아무도 없다! 문제는 여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부엌에는 남성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하며, 어느 정도 큰 아이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한다는 걸 김지영씨는 깨달아야 했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일을 하지 않는 당당함에 기립박수를 보내기 전에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문제의 핵심을 집고 방법을 찾든 공격을 하든 해야하는거다. 여성 소설가는 여성이란 이름으로 얽매어진 굴레를 벗어던짐과 동시에 부모로서 해야할 본분을 져버렸다. 



"너희들은 돼지야."


'돼지책'이란 동화가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남편은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밥 달라고 하고,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로 간다. 그들이 떠나고나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간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면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돌아와 밥 달라고 하고, 그것도 '빨리', 셋은 TV를 본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먹을 것을 조금 더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동화를 쓴 사람은 여성의 가사노동에 쪄들고 피곤한 한국 여성이 아니고 영국 남성, 앤소니 브라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를 작년에 여기 아동도서전에서 만나서 얼마나 반가왔던지! 딸과 아내와 함께 도서전에 사인회에 나오셨길래 "저희 아이들보다 제가 선생님 팬이에요!"하고 사인을 받아왔더랬다. '돼지책'이란 명저를 반드시 식구들과 돌려 읽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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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대인이 특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신성화된 픽션일 뿐이다. 유대인이란게 뭔가? 유대교를 믿는 사람과 유대교인 여성의 자식을 말한다. 유대교인은 국적을 불문한다. 왜? 나라가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데 국적이 다양해질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잖은가.

피를 통해 전수되는 불가항적인 문화적이고 생물학적인 요소(ethnic)와 선택가능한 종교적인 요소(religion)가 일체되어 명명받는 것이 바로 유대인이다. 이렇게 두 가지 요소가 절충되면 다른 어떤 명명보다도 긴 시간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예컨대 유럽인은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지역적 요소(localisation)가 결정하며, 아랍인은 아랍어라는 언어적 요소(language)가 결정하고, 쿠바에서 태어난 쿠바인은 쿠바라는 나라(nation)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종교(religion)로인해 명명되며, 성씨는 아빠의 성씨로 결정되며 (father), 흑인은 피부색, 다시 말해서 외양적인 신체적 특성(biology)으로 그 명명이 결정된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인해 한 세대, 두 세대 지나가면서 종교가 바뀌고, 사는 지역과 나라가 바뀌고, 국적이 바뀌고,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혼혈이 되어 피부색이 바뀌고, 딸이 열이라도 아들이 없으면 성씨가 끊긴다. 뒤죽박죽이 되어 선조의 종교, 국적, 언어, 지역성이 희미해지는데, 유대인은 이걸 어떻게든 엮기 위해서 양쪽 부모도 아닌 단 한 쪽 부모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교묘하게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다.

여성이 아홉 달을 임신하고 죽을 고생해서 낳은 아이에게 여성의 성이 아닌 남성의 성(family name)를 주는 이유는 아이의 아빠를 명시하기 위해서였다. 아홉 달간의 임신과 출산과 젖먹이는 긴 시간동안 아이의 엄마가 누군지는 동네 사람들이 다 알지만 하룻밤 정을 맺고 사라진들, 혹은 한동안 같이 좋아지내다 어느날 떠난들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 길이 없을 때,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라는걸 동네방네 다 알게 하기 위해서 아빠의 성을 주었다. 여자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고, 남자의 재산은 오직 남자에게로 상속됐다. 상속은 같은 성씨를 가진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전해졌다. 참고로, 유럽은 중세까지 성씨가 없었다. 성씨는 귀족들만의 것이었다. 성씨가 있음으로해서 귀족들의 재산 상속이 가능했었다.

유대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도 아이에게 애아빠의 성을 물려주지만 유대인이란 명칭은 엄마로부터 온다. 왜? 애키우는건 엄마기 때문에. 유대 남성들이 얼마나 육아교육에 무신경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유대사회가 여성을 떠받드는 모계사회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란 명칭이 모계로 전수되는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혼란의 시대에서 유대교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성경을 보면, 유대인이 보는 구약만으로도 얼마나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그렸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애아빠가 누군지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 올지라도 출산을 한 엄마만큼은 확실하게 자식에게 '나는 유대인이니 너 또한 유대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테니. 

아빠가 무슬림이건 불교신자건 기독교건간에, 아빠가 흑인이든 황색인종이든 백인이든간에, 유대인 엄마의 피를 받으면 모두 유대인이라 불리게 된다. 전쟁 중에 강간을 당해서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은 정복자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게 되더라도 어쨌거나 유대인으로 남는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 지금은 나라가 없지만 나라를 세워야한다는 한을 가슴 속에 가로새기면서 종교와 핏줄이 엄마가 주는 교육을 통해 전수된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각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혈통이 섞인다. 태생(origine)이 다 섞여버린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이 된다.
아들이 없으면 성씨가 끊기고 가문이 망하는 것과 다르게 유대인은 아들이 열이라도 딸을 낳지 못하면 유대가 멸한다.

유대의 교육은 유대라는 종교와 떼놓을 수 없이 진행된다. 남편과 종교와 인종과 언어가 달라도 유대 명절에 명절음식을 만들어내놓는건 다름아닌 엄마다. 전통음식이 나오면 음식만 먹나?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면서 '얘들아, 이 음식은 말이지, 기원 전 몇 년에 우리 선조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때를 기리기 위해서 먹는거란다'라며 역사 얘기가 나온다. 이건 내가 유대인과 하우스 메이트를 하면서 (좋은 말로 해서) 버르장머리 없던 유대 하우스 메이트와 보낸 어느날의 단편이다. 유대민족이 역사적으로 오래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지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다!

만일 이 시스템을 아프리카에 적용시켜보면 어떻게 될까? 16세기에 아프리카인들이 어느날 자기네 땅에 배를 타고 내린 외지인들에게 어처구니없이 잡혀 끌려가 인신매매를 당해갖고는 유럽과 미대륙으로 팔려갔다. 이들에게 '아프로'라는 토착종교가 있으며, 이들 토착종교 안에는 신으로부터 선택된 '선민사상'이 기저를 이룬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아프로인은 모계를 통해 전해진다는 2번째 가설을 정한다. 지난 500년간 이 세상에 퍼진 아프로인은 몇 명일까 생각을 해보잔 말이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 다시 아프리카 땅을 찾아 나라를 세워야한다는 믿음을 엄마로부터 받으며 크는 아프로인들. 실제로 계산을 못해봐도 이들 중 상당수가 부를 축적했거나 유명세를 얻었을 것이다. 단지 '알/수/없/을/뿐'이지.

이스라엘은 500년의 네 곱절, 2000년을 나라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들이 발 닿는데마다 퍼뜨린 유대인이 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선조가 누군지 유대인이라는 명명을 통해서 인지되는 이들이 아크로인들보다 4배 많아진다. 예컨대, 내 자식은 엄마가 한국인이라는걸 알지만 2대, 3대로 내려가면 희미해질 것이다. 4대, 5대, 10대, 즉 300년 후에는 그들은 더이상 한국인이 아닐 것이고, 조상 중에 한국인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일 유대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300년 후에 내 후손이 유대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다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다른 기준으로인해 명명된 명칭은 세대를 거치면서 사라질 수 있지만 유대인이란 명칭은 그 "명칭"이 존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때문에 유대인이 몇 명이 된다고 세는게 가능하다. 유대인이 특별하고 우수해서 노벨상 수상자의 1/3을 차지하는게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명명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추적을 하지 못할 뿐이라는거다.

여기에 더불어서 그들은 '나는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산다. 남들이 그걸 믿든 안 믿든간에. 운이 억수로 좋게도 신약까지 더해져 업그레이드된 기독교와 천주교는 구 이스라엘이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라는 지역적인 전설을 세계 곳곳에 정설인양 퍼뜨린다. 성경은 스테디셀러 1위이다.

미국을 흔드는 유대인의 돈. 유대인은 왜 돈이 많을까? 아니, 돈을 잘 벌까? 똑똑해서? 절대 아니다. 신이 사랑해서? 그것도 절대 아니다. 그건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던 시절, 현세에서 돈은 더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교는 하늘에 부를 쌓아야 하늘나라가 너희 것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서 하늘이란
선을 뜻하기도 하지만 교회에 헌금을 뜻하기도 했다. 일반 그리스도교인들이 천시하는 돈을 유대인들이 만졌다. 당시 부의 척도는 땅이였는데 이스라엘인들에겐 땅이 없었다. 땅으로 부를 축적하는게 금지된 그들이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었다. 동전, 지폐, 수표 등 돈으로 이룰 수 있는 경제체계를 유대인들이 만들어갔다. 화폐의 유통이 활성해지자 돈을 꾸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에게 유대인들은 그간의 분풀이로 고리대금을 받고 돈을 빌려줬다. 반면에 유대인들끼리는 무이자로 빌려줬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갚을 돈이 없자 '엉덩이의 살이라도 달라'며 떼어가려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가 바로 유대인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후대에 은행가들이 된다.

난 유대인에 대한 통설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선조들의 혈통을 일일이 다 기록하고 현재까지 명명하지 않을 뿐이다. 유대인이 그 어느 어떤 인종이나 민족보다 더 위대하지도 더 똑똑하지도 않다. 그들이 기술좋게 만든 가계도로 인해 유대인이라는 인지가 확연해질 뿐인거다. 내 아들이 유대인이랑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내 손자가 노벨상을 타면, 그애는 한국인의 피를 받아 노벨상을 탔다고 떠들어대는게 아니라 (한국에서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언론에서 인터뷰가 마구 들어오겠지만) 모든 언론에서, 역사에서는 '역시' 유대인이라 노벨상을 탔다고 기록되는 거란 말이다. 유대인 신성화하기에 일조한 다른 인종과 민족들이 "우리는 뭐야?!"하며 아깝다는 생각이 슬슬 들지 않는가말이다. 유대인이 우수하다는 설은 다름아닌 유대인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확신한다. 어느 피가 우수할 수는 없다. 그들이 조상의 역사를 배우고, 토라를 암송하고 읽은 내용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교육적 효과가 나타났다면 모를까.

무엇보다 유대인은 그 어느 민족보다 절대 관대하지 않다! 나라를 잃고 2천년간 돌아다니고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자신들의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돈에 집착하고, 신민의식에 젖은 망상가들이다. 다만 '너는 신이 선택한 민족의 아이야'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자라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믿는, 유대인은 이렇다하고 믿던 것이 거짓이라는걸 알게되면 유대인에 대한 환상은 깨진다. 유대인의 신화 만들기에 일조하지 말자. 유대인 프레임을 과감히 떠나라. 

이 글을 쓰고나서 프랑스 친구랑 얘기를 나눴다. 자기는 유대인이 우월하다는 얘기를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어느 부류의 사람들을 일반화시키는건 부당하며 위험한 사고라고 덧붙였다. 유대인이 우수하고 때문에 유대인식 교육에 대한 책이 한국에 출판되는건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과 집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 아이 어떻게 똑똑하게 키울까요? 물어오는 엄마들이 혹시나 있을까 싶어 내 의견을 적자면, 아이에게 5천년의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자연과 주변 사물에 호기심을 키우도록하고, 아이와 많이 놀아주고 많이 안아주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열린 시각으로 토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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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유아학교(école maternelle; 3년과정)를 마치고, 9월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이제 책가방 메고 등교해서, 하교하면 숙제부터 하는 시절이 시작되는거다. 아이는 아빠 나라의 언어인 불어와 엄마 나라의 언어인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읽을 줄 안다. 3년 전에 연재했던 국제커플의 언어교육의 중간보고를 해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처음 가던 한글학교

지난 해 가을, 아이를 한글학교에 데려가던 첫날, 아이가 유아학교에도 안 갖고가는 책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으며 내게 던진 질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 엄마도 나만할 때 한글학교에 갔어? » 미소.

지난 9, 5살이었던 딸애를 처음으로 파리 한글학교에 등록시켰다. 약간 늦은 감이 있기는 했다. 집에서 한글학교까지 1시간반이나 걸리기 때문에 우선 아이가 많이 피곤해할 것 같았고, 둘째를 데리고 다녀야했기 때문에 둘째가 크기를 기다렸던게 이유였다.

나와는 늘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에 일상회화는 잘 하지만 집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설명하는게 서툴렀던 지라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중간으로 보고 어학당에 배치해달라고 했다. 다른 한국 엄마들은 우리 애가 뭐를 뭐를 잘해요. 한 단계 높은 반으로 배치시켜주세요.’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판에 나는 동년배의 다른 반보다 쓰기 숙제가 적고 수업의 강도가 덜한 반으로 배정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얌전하다고 소문난 애니까 한글학교에서만큼은 얌전하다는 말을 애 앞에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저 나이 때 애들은 명랑하고 씩씩하게 아무하고도 잘 어울려 놀아야지 얌전한게 칭찬인줄 알고 계속 얌전하기만 하면 안되니 절대 애 앞에서 너 참 얌전하구나라고 하면 그게 칭찬인줄 안다고.

어학당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랑스 유아학교에서도 나오지 않던 쓰기 숙제가 매번 나왔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한글을 떼야해서 집에서 한글 가르치느라 아주 힘들어 죽겠다고 한국 엄마들이 혀를 차는 그 한글쓰기를 배우다가 한국어 어렵다고 때려칠까봐 난 맘이 조마조마했다. « 숙제가 많은거 아닌가요? » ㅠㅠ 했더니 어학당 담임선생님은 동년배의 토끼반에 비하면 숙제가 반 밖에 안되는거라고 위로하셨다.

유모차를 끌고 파리 시내에 전철타고 나갔다 오는 미친 짓을 1주일에 한 번은 해야하는 내 상황은 차치하고, 4존에서 파리까지 자동차가 아닌 기차와 전철로 이동하는게 피곤하고 다리 아프다고 투덜대지는 않을까, 숙제가 많다고 하기 싫다고 하지는 않을까, 아이를 한글학교에 데려가는 첫날 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첫날 한글학교에 갔다오더니 재밌다고, 수요일마다 여기 오겠다고 아주 신이 났다.

어학당에서 토끼반으로

놀멘 놀멘하면서 말이나 많이 늘어라는 기대로 어학당에 배정을 부탁하고 돌아선 뒤 아차차 ! 내가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과소평가했구나 !’라고 깨달은 건 2012년 설이 되어서였다. 그전까지도 아이가 한글학교 수업을 좋아하고 잘 따라간다는건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 한글학교에서 다른 애들은 선생님~ !’라고 부른 뒤에 질문을 불어로 하는데, 나만 선생님~ !’하고 부른 다음에 질문도 한국말로 해. » 아이를 대견해하면서도 다들 지 새끼가 잘난 줄 아는거려니 했는데..

평소에는 애들을 교실에 데려다주고 뿔뿔이 흩어지던 보호자들이 설 잔치 때는 다 모여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보모나 할머니가 데리고 왔던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하루 휴가를 얻은 엄마나 아빠가 동행했다. 어학당 반 아이들과 부 혹은 모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자녀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집은 우리밖에 없었다. 딸애와 우리말로 얘기하는 걸 옆에서 보던 한 엄마가 말했다. « 어머, 한국애처럼 한국어를 하네 ! 한국말을 저렇게 잘 하는 애가 왜 어학당에 있어요? »  실은 나도 놀랐다.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은 한국인인 집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고 어떻게 아이가 1주일에 4시간 밖에 안되는 수업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걸까? 외지에 나와 살면서 아이가 한국말을 하기를 바라면 부/모가 한국어로 대화를 유도하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프랑스에서 아이가 1주일에 4시간 밖에 안되는 수업을 통해 배운 한글을 집에서조차 쓰지 않으면 어디서 쓰라고? 언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이잖은가말이다.

설 잔치가 끝난 뒤, 한글학교에 반을 바꿀 수 있겠냐고 의뢰드렸다. 내가 학기 초에 아이의 한국어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2월 방학에 한국에 갔다오면 아이의 한국말이 부쩍 늘텐데 프랑스에 돌아와 아이가 어학당 수업을 지루해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평소에도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는데 내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아이가 먼저 숙제를 들고 내게 올 정도로 적극적이다,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한국어 동요들이 있기 때문에 반을 바꾸어도 아이가 어렵지않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으니 좀더 어려운 반으로 반을 옮길 수 있겠느냐고. 무엇보다, 어학당에 친구가 있었다면 반을 바꾸려하지 않았을꺼다. 하지만 너무~얌전했~기에~~ ㅠㅠ

교사회의가 몇 주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주에 토끼반 청강을 해보라며 학교측에서 배려를 해주셨다. 나이대는 똑같지만 쓰기숙제가 많고 아이든 선생님이든 불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는 토끼반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토끼반 선생님의 판단과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 저희 반이 사실 정원이 넘어서 다른 반 아이들을 안 받고 있어요. 오늘 다른 반 아이들 두 명이 저희 반에서 청강을 했는데, 한 아이는 기존 반으로 돌려보낼꺼고, 따님은 토끼반에 있어야되는게 맞아요. 토끼반에 있어야돼요. »

한글쓰기 진도는 어학당과 토끼반이 같았지만, 쓰기숙제는 2배가 늘었다. 그래도 딸애는 재밌다고 한다. 아직 복모음, 받침 등을 다 배우지 않았지만 1년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만큼은 쓰기도 곧잘하고 책이나 인터넷 화면 상에서 더듬더듬 아는 글자를 찾아읽기도 한다. 유아학교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있어서 헤깔릴까봐 한글을 가르칠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한글학교에서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아이가 능숙하게 하는 언어는 불어다. 한국말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 엄마인 나하고 얘기할 때 외에는 한국말을 쓸 일이 없는 아이가 이만큼 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 지 모른다. 게다가 한글학교에서 하는 받아쓰기도 잘하고 글씨도 예쁘게 쓰고. 오늘도 시어머님이 '이제 초등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불어로) 읽는걸 배울텐데 한글학교까지 가서 한글 읽는걸 동시에 배우려면 애가 많이 힘들겠구나.' 하시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애가 '아니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하니 얼마나 기특하던지. 

아, 여기까지 이렇게 쓰고나니 자화자찬이구나. 타지에서 한국어를 잘 교육시키는 비법 등을 쓰자니 얼굴이 간지럽겠고나. 아직은 아이도 어리고, 무엇보다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텐데.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고 정리.


관련 포스팅 )

  1. 2009/04/26 국제커플의 언어교육: 니도 애 커봐
  2. 2009/03/04 국제커플의 언어교육: "한국말로 해!"
  3. 2008/09/02 국제커플 자녀의 언어교육 : 어느 언어로 말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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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2012.08.02 03:16 신고

    안녕하세요.
    딸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왠지(그니까 제 딸 얘기도 아닌데..) 마음 흐뭇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에꼴로 님 글 보게 된 지는 오랜데, 처음 댓글 남기네요.
    제가 블로그를 안 하다 보니, 소통에 좀 자신이 없어서요.;;;
    휴가 가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즐거운 여름 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이은주님.
      용기내어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은주님도 딸이 있으시군요. 주저주저하다 어떤 마음으로 댓글을 다셨을까.. 생각하니 저도 흐뭇합니다. :)

      저 글을 올렸을 때 바닷가로 휴가 가있었어요. 이번 달엔 산에 1주일간 데려가려구요. 아이들을 어머니 자연에 데리고 가면 아이들이 스스로 놀 것을 찾아서 놀더라구요. 그걸 보며 자연 속에서 쉬는 저나 노는 아이들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지요.

      아이 키우느라 바쁘시겠지만 가끔 놀러오시고 덧글이든 방명록이든 남겨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

  • 와 우연히 들어와 관련글들 읽다보니, 같은 고민의 국제커플이 정말 적지않구나 싶네요. 저는 더치와 약혼한 사이거든요. 내년쯤 결혼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런 김칫국부터 마시고 그러네요 하하. 저나 남친이나 상대언어를 애기수준으로밖엔 못하거든요. 공통어는 영어. 하지만 둘 다 서로 미래 아기한텐 모국어만 쓰자고 이미 약속(!)까지 했네요 하하.. 영어야 저나 남친처럼 알아서 어디선가 다 배울테니.. 특히 더치는 영어와 닮은 점이 정말 많아서 더치 알면 금방 는다고 하구요. 앞으로도 연재(?)하시는 글 관심있게 볼게요 :)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오늘은 6월의 첫일요일, '어머니의 날(fête des mères)'이다. 곧 만 6세가 되는 딸애가 유아학교(école maternelle)에서 만든 선물을 금요일부터 자기 책상 밑에 꽁꽁 숨겨놓고 안 보여주더니 (뭔지 보기는 다 봤다만 안 본 척, 아니 못 본 척~했다), 오늘 아침 마당에 나가 태극권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부른다. 태극권 끝내고 들어오니 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는 선물. 그림을 그려 손으로 만든 카드와 베고니아, 화분마저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올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래미, 그림도 글씨도 꼼꼼함도 해가 갈수록 발전한다. 왼쪽에 짧은 머리의 큰 여자는 엄마고, 오른쪽에 긴 머리의 작은 여자는 자기인가보다. 난 보통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는데, 지난 주말에 입었던 원피스가 인상적이었는지 원피스 입은 내 모습을 그렸다. 그 위에 하트모양의 꽃이 웃고 있고, (늘 그렇듯이) 파란 하늘에 해가 반짝. 



학교에서 화분까지 준비해 베고니아를 나눠준 배려가 참 고맙다. 베고니아는 키우기 무척 쉽고, 꽃도 서리가 내릴 때까지 오래 핀다. 참고로, 프랑스에선 어머니날/아버지날에 정해진 특정한 꽃은 없다. 가만히 베고니아 화분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 있을 때, 어버이날이면 댕강 모가지가 잘려나갔던 수 천 만 송이의 카네이션이 떠오른다. '어버이 날'엔 학교에서 늘 편지쓰기를 시켰다. 그게 강제적으로 느껴져서 왜 그렇게 싫었던지. 카네이션과 함께 편지를 드리는 걸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고, 머리가 크면서 편지쓰기는 건너뛰었던 것 같다. 엄마는 편지를 받지 못해서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말못한 사연은 제껴두고 감사했던 기억만 추려내어 수업시간에 편지쓰기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홀가분했던지! (추가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군인에게 편지를 쓰라는 시간도 정말 싫었다.) 여튼 편지는 없이 카네이션만 드리다가 더 커서는 가슴에 카네이션도 안 달아드려 저녁에 입이 이만큼 나온 엄마를 식당으로 모시고가 (물론 내 돈이 아니라 오빠 돈으로) 비싸고 맛난거 사먹는 걸로 대치되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휘릭휘릭 지나간다.

6월의 셋째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fête des pères)'이다. 딸아, 머리 쥐어짜지말고 네가 평소에 느끼는 마음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표현하렴. 내가 받아온 교육과 다른 교육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 그래서 좋은 부모, 좋은 엄마가 되는게 과연 무엇인지 아직도 고민하며 노력하는 엄마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위해 P&G에서 만든 '어머니 날' 캠페인 - 찡한 동영상 꼭 보시길.

자는 아이를 깨우며 시작하는 하루,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침에 애들 깨워 학교 보내기 쉽지 않구나. ㅎㅎ


Le métier le plus difficile et le plus beau    가장 힘들고, 가장 아름다운 직업

Merci, maman.               고마와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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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도, 덧신을 신은 발가락도 시려오는 겨울입니다. 여긴 온돌이 아니라서 발이 쉬 시려와요. 오래 전에 올려 까마득히 잊어버린 뜨개질 포스팅에 어느 분이 덧글을 다셨어요. 이 참에 손뜨개 작품들을 다 불러 한데 모아봅니다. 모이~~!!!


카탈로그에 나온 도안을 보고 털실을 주문해서 뜬거에요.

몇 년 전 사진이라 볼이 포동포동하군요. 머리는 엄마가 잘라준게 티가 나고. ^^;



새털처럼 가볍고, 비단처럼 부드럽고, 엄마 품처럼 따뜻한 앙고라 스웨터!

앙고라 털을 떠리로 팔길래 '이게 왠 떡!' 몽창 업어와서 이걸로 뭘 만드나.. 후고민.

도안없이 제가 아이의 신체 치수를 재서 만들어본 첫작품이에요. 

이제 작아져서 못 입고 내년쯤엔 동생에게 물려줘야죠.



<바둑이> (높이 약 20cm)

인형을 손수 만들어주고 싶어서 해본건데, 손이 징하게 많이 가더군요! ㅠㅠ

아이가 방방 뛰고 좋아하는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방방뜀이 오래 안 간다는게 함정.



겨울철에도 치마입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볼레로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탈로그 몇 권을 뒤져도 맘에 맞는 볼레로 도안이 없길래 제가 도안을 그려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이에요. 원피스에 이걸 입혀놓으면 정말 깜찍하고 예뻤어요. 무엇보다 산타 복장같아서 성탄 느낌이 물씬나죠. 지금이야 작아져서 못 입지만... 손때 묻은거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 싫어요.



겨울이 끝나갈 무렵, 무척 부드러운 합성 털실을 떠리로 팔길래 봄냄새 폴폴 나는 뭔가를 만들면 좋겠다싶어서 업어온 털실로 가디건을 만들었습니다. 초록색은 반짝이가 들어있고, 노란털은 강아지털처럼 포실포실해요. 이것도 기존도안없이 제가 만든 순수창작품이에요. 그러고보니 도안대로 한 작품이 거의 없네요. 도안을 직접 만들면 머리에선 쥐가 나지만 그게 훨씬 뿌듯하고 무엇보다 맘에 드는 디자인이 나와서 좋아요. 딸애가 제일 좋아하는 가디건이에요. 입혀놓으면 꼭 한 마리 병아리같죠. ^^ 오늘 아침에 이거 입고 학교에 보냈는데, 소매단에서 5cm 껑충 올라가네요. ㅠㅠㅋ



이건 친구 아들녀석에게 주려고 떴다 맘에 안 들면 풀고, 떴다 풀고 떴다 풀고를 여러 번 하며 정성들여 만든건데, 그 친구하고 틀어져서 다시 제 손으로 들어온 사연있는 무지개 스웨터에요. 맨 위에 있는 목도리를 뜨고 남은 털실을 활용하기 위해서 어떤 도안을 할까.. 몇 줄을 올려야 남은 털실을 다 쓸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 털실이 무척 따뜻하고 색이 또렷해서 배치해놓으면 베네통 분위기가 나는게 아주 예쁘거든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에 흰색 털실을 더 주문해서 소매를 만들었죠.




이제 둘째를 위해 만든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큰맘먹고 '둘째는 밤에도 면기저귀를 채워야지!'하는 생각에서 임신 중에 양모 기저귀 팬티를 2장 만들었어요. 근데 결국 밤에는 종이기저귀를 써서 양모 기저귀 팬티를 입힌 적이 몇 밤 되지 않아요. ^^;;



둘째를 낳고 집에 돌아와 쉬면서 3일만에 뚝딱해서 만든 신생아 모자에요.

끈 달린 모자를 처음 만들어 보느라 전체 모양만 도안을 참고했어요. 모노톤으로 가면 밋밋해서 위 기저귀 팬티만들고 남은 파란 실을 중간중간 넣어 스티치를 주기로 했죠. 저 모자 한 3주 썼나? 애기들은 참 빨리 빨리 커요. 


인증샷~!


둘째를 기다리면서 재봉틀 돌려 뚝딱~ 아기 이불을 하나 만들었어요.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위 모자 사진과 아래 덧신 사진 바탕으로 깔린게 그 아기 이불의 안쪽 면이에요. 겉면에 쓴 천은 노아의 방주를 일러스트레이션한 한 폭의 큰 그림이 있어요. 아기 이불로 쓰다가 애들이 다 크면 벽걸이 장식으로 쓰려구요. 겉면 찍어둔 사진이 없네요. 여튼 뜨개가 아니니까 넘어가고~



이건 딸애가 밤에 신고 자는 덧신이랍니다. 덧신 처음 떠봤어요.

낮에 신고 다니다간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져서 밤에만 신지요. ㅎㅎ



올초에 완성한 분홍색 볼레로는 무용을 배우는 딸애가 겨울에 춥다고해서 만들었어요. 이것도 -늘 그렇듯이- 맘에 드는 도안이 카탈로그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구상한대로 만들었어요. 옷 위에 걸쳐입어 앞으로 묶어도 되고, 무용복 위에 입으면 등 뒤에서 끈을 묶을 수가 있어요.



요건 저를 위해서 만든 핸드폰 주머니에요.

이런건 도안없이 뚝딱~ 해치워주는 센스!


저를 아는 인간들은 제가 뜨개질하고, 재봉틀 돌려 옷 만드는 사실을 알면 '믿을 수가 없다!'며 까무러쳐요.어릴 때, 엄마가 우리를 위해 뜨개질해주던 기억이 내 안에서 살아나는가봐요. 엄마가 떠준 스웨터와 바지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거든요. 뜨개질을 하고 있노라면 명상상태로 빠져들어서 좋아요. 뜨개질을 하다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몇 년 뜨개에서 손을 놨네요. #겨울은_손뜨개의_계절



멋지다, 잘 만들었다,시는 분들은 아래 추천 버튼 눌러보세요. 새해에 행운이 찾아올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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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는데 딸애가 '내가 학교에서 제일 얌전하고 착해(sage)'라길래 '누가 그래?'했더니 같은 반 애가 그랬댄다. 그리고 선생님도 말썽 잘 피우는 아이한테 우리 딸을 가리키면서 '쟤처럼 착해봐'라고 했댄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놀아'라고 흔히들 하는 말, 난 애들한테 안한다. 아이를 피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도 애한테 '착한게 좋은게 아니야'라고 말했다가 엄청나게 울렸다.

딸아, 착하다는 칭찬에 좋아하지말고, 착한 이미지를 갖기 위해 참지도 마.
난 그저 네가 너 다웠으면 좋겠어.
누가 널 못살게 굴면 너도 가서 한 대 때리고, 누가 널 밀면 울지만 말고 너도 확 밀어버려.
'착하지 않다'고해서 '못됐다'는 말이 아니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건 착해지는게 아니라, 네가 뭘 해야되는지, 네가 뭘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거야.
난 네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길 바래.

라고 말했더니 그러면 학교에서 벌 받는다면서 엉엉 운다.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조장해서 아이들을 길들이는 선생님들이 순간 미워졌다. 아이가 유아학교에 들어간 첫해, 반에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가 하나 있다고 아이가 말해줬다. 거긴 말썽피우는 아이들이 올라서는, 벌받는 의자라고한다. 문제는, 그 의자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말하자면 착한아이가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꾹꾹 참았다가 집에 들어와서 하루종일 쌓였던 스트레스를 푼다. 때로는 내가 야단칠 때, 학교에서 말썽피우는 못된 아이들의 행동을 집에서 흉내내기까지 한다. "이딴 버르장머리를 어디서 배웠어?!!"

애가 말 안 들을 땐 머리에 꼭지가 열리며 이성을 잃고 화를 내던 때가 있었다. 화가 가라앉은 뒤엔 무척 우울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화내던 내 모습이 나 어릴 때, 내  부모의 모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랭이같이, 불같이 화내는 부모의 모습이 증오에 가깝도록 싫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코. 야단을 치더라도 내가 싫어했던 모습으로는 야단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옳은 교육이 아니라는걸 체험으로 알기에. 내 대에서 끊어야 후대에 반복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건 내가 나를 다시 보는 과정이다. 육아하느라 프로페셔널한 경력에 공식적인 공백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잠옷으로 갈아입히는 동안 아이가 반에서 말썽을 많이 피우는 급우 얘기를 한다. 애들을 밀고, 때린다고. 걔는 착한 애가 아니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제 엄마가 너 이해해" 아이가 마음이 풀렸는지 가슴에 안긴다. 착한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건 만 다섯 살의 아이에게는 교육된 관념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개념인 것 같다. 청소년이 되기까지 기다려야할까? 스스로 터득하도록 놔둬야할까? 보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다시 얘기를 하는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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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두빛 2011.09.14 06:49 신고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 착하아이를 보면 바보처럼 보일 때가 있죠...
    자기주장도 못세우고 양보만 하고, 네 맞아요. 가슴에 담아두고...
    그저 성품이 고운 아이뿐인데 선생님이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착한척 하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리네요...

    • 맞아요. 선생님이 애들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착한 척 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근데 사실 통제를 하려고 해도 대다수의 어린애들이 통제가 안돼죠.

      "학교에서 누가 널 밀면 어떻게 대응하니?" 했더니 '하지말라'고 말로 한데요. "학교에서 누가 너한테 '못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하니?"했더니 팔짱 끼고 째려본데요. 애가 성숙한건지 얌전한건지... 한번은 남편하고 자기방어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복싱 포지션을 일러준 적도 있을 정도에요. ㅎㅎ 웃기죠?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친척들이 다 모여서 식당에 갔는데 큰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어쩜 애가 이렇게 얌전하냐, 애가 있는 줄을 모르겠다'구요. 친척 중에 또래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궁댕이를 붙이고 가만 앉아있지를 못했었거든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아이, 억세지 않은 아이, 성품이 고운 아이를 둬서 내가 복받은거려니... 생각하고 잘 키워야지 어쩌겠어요. 이러다가도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풀 때는 뚜껑이 열렸다 말았다... ㅎㅎ

  • 연두빛 2011.09.14 12:18 신고

    내가 뭘 해야하는지 아는 것(사고와 도덕성의 발달)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것(감정의 발달)
    그리고 교우관계(사회성의 발달)와 가족관계(안정감)까지.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에 참 어렵습니다.

    엄마의 자리에는 있어보지 않았으나
    아이의 자리와 교사의 자리에 있어본 저는요.

    아이가 즐겁고 재미있게 학교를 다닌다면 계속 보내시고.
    아이가 왠지 모르게 불편해하고 힘들어한다면 옮겨 보심이 어떨지요?
    물론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 아이도 참여하게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마음은 스타이너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거리상의 문제와 금전상의 문제로 보내질 못하고 있네요. 그 학교가 아니면 다른 국립학교로 옮긴다고해도 달라질 것 같진 같아요.

  • 착한아이컴플렉스 2012.05.29 22:13 신고

    "둘도 없이 착한아이"로 자라온 저 자신을 돌아보며, 언젠가 제 아이를 갖게 되면 절대로 착한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착한아이"로 지내기 위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것을 참았고, 착하지 않은 동생을 언제나 부러워했고, 심지어 천애 고아였다면 착하지 않아도 될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고, 착하지 않은 길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스스로를 보며, 만약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는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10대초반부터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한테 맞고 뺏겨도 때릴 줄 모르고 집에 오는 저를 보고 엄마가 "착해빠져"선 안된다고 하며 혼내던 날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7살에 입학했고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이니 한국나이로 6살이었습니다. "착해빠져서" 엄마한테 말한적은 없지만, 그 어린나이에도 솔직히 착해빠진 저 때문에 엄마가 다른 엄마에 비해서 훨씬 편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내 "착함"의 수혜자(?)였던 엄마가, 착하다는 이유로 화를 낼 때 어찌나 서러웠던지요..

    30대 중반이 된 지금, 여전히 아이는 없지만, 그리고 여전히 습관처럼 남은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저를 힘들게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른 생각입니다. 모든 작은 것들을 희생하며 자랐지만, 남들같으면 안할 희생을 위해 멀리 돌아가더라도 정작 인생에 중요한 것들은 제 의지대로 관철해 왔고, 그 바탕에는 열가지 백가지를 두고 생각해보고 갖고 싶어도 포기할 수 있는 거라면 양보해 온 마음이 열가지 백가지 중에 딱 하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그동안 포기해온 마음을 다 합해 지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착해빠져서, 남한테 - 심지어는 부모님께도 -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독립적인 결정을 하기에도 수월했구요. 반면에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착하지 않아서 모든 것을 언니한테 빼앗았던 동생은 결과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큰 결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피동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착한아이로 사는 것은, 본인에게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 간접 경험을 통해, 그렇게 착할 필요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의지라는 것도 깨우치게 마련입니다. 여러 기억이 떠올라 쓸데 없이 길게 주절주절 썼지만, 그로 인해 고민 하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제 현재의 결론은 본인이 깨우치게 마련이고,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건, 그냥, 내가 착하건 착하지 않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믿어줄 거라는 확신.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무엇이 아이를 착한 울타리에 넣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제 주변의 착한아이로 커온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론 강한 자아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하고 그것이 착한아이 울타리에 들어가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착한아이의 울타리가 견딜만 하다면, 그 울타리를 키워가면서 강한 사람이 되는것도 살아가는 좋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을지 몰라도 울타리가 충분히 크고 강해지면,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냥 아이의 강함을 믿고 아이가 착하건 착하지 않건, 예쁘건 예쁘지 않건 변함없이 사랑해 줄 사람이라는 것만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성의있는 긴 댓글을 받기는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님의 성장기를 바탕으로한 착한아이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보니 제 마음에 조용하게 잔잔한 파동으로 다가오는게 있네요.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을 턱~! 치는게 '그래, 그게 정답이야!' 싶었어요. 어쩜 이렇게 차근차근 글을 잘 쓰시는지요. 감사합니다. 아이에게 제가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아낌없이 줄께요. 가끔 놀러오셔서 말씀 남겨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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