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varde 잡담

2020년은 나의 해

2020년 2월 2일. 며칠 전에 나는 새벽 2시 22분에 깼고, 그날 밤 22시 22분에 자러갔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오후 시간을 13시~23시로 센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프랑스에 온지 2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지난 한 해, 내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한 해 결산을 해보자. 

한국에서 공학사를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고, 프랑스에서 석사 2개를 가진 학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작년 이맘 때 나는 오로지 환경을 위한다는 순진한 의지와 사람을 좋아하는 순진무구함,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모든 걸 참겠노라며 유기농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순진하기보다는 무식하게. 직장 분위기는 점점 악화되었고, 그렇게 꾸역구역 다니던 직장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상보다 2개월 일찍 그만 두었다. 프랑스 노동청에 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드라마틱하게 직장을 나왔으니 그곳에 다시 돌아가도 내 상사들은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또한 모든 것이 내가 창조한 상황이었고, 환골탈태하는 고마운 시점이 되었다. 다시는 월급을 받으며 살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으니까. 

2018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밤, 나는 혼자였다. 파티에 오라는 제안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일 자체는 괜찮은데 상사의 구박이 한계를 넘어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 건 내가 뭘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는게 나를 막막함과 자괴감으로 이끌었다.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어김없이 2019년 1월 1일 해가 밝았고, 며칠 후 기도에 답을 받았다. '바로 이거라면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걸 찾았다. 같은 때 쯤, 내가 돈 관리에 전혀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눈물을 흘렸다. 은행에 돈을 맡긴 지난 30년간 왜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한국 은행에서는 은행 직원이 해주기도 하는데, 프랑스 은행은 정말이지 이자율도 쥐꼬리만하고 각종 서비스 요금으로 고객의 돈을 빼간다. 그리고 어떤 상품이 있는지 전화해서 소개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고, 그 시간이란 스스로 불러오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제일 먼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돈을 갖고 나름대로 재무정리하는 걸 했다. 프랑스는 한국같지 않아서 가장 높은 은행 이자가 1%를 넘지 않는다. 그래도 은행에 있는 돈을 다 교통정리를 하고나니 지난 19년 동안 매년 받던 은행이자보다 연말이며 그것의 8배에 해당하는 은행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금은 그 은행 연이자를 한 달만에 버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사용수수료가 많은 카드로 잘랐다. 그건 정말이지 배보다 배꼽이 큰 카드였다. 내가 은행이자를 받는 것보다 월등한 액수의 수수료가 나갔으니까. 

프랑스에서 석사를 두 개 땄다고는 해도 예술학 석사와 예술행정 석사기 때문에 커리어가 10년 중단된 40대 중반의 동양인이 프랑스에서 그걸로 안정된 일 찾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내가 프랑스인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프랑스인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렇게 고민하면 찾은 답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거였다. 내 대답에 프랑스 문화계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은 잘 나가는, 나보다 15살 정도 어린 한국인 후배가 '그걸로 밥벌이가 되겠냐?'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그 후배는 평소에도 나에게 연락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이 우리가 같이 먹은 마지막 점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배도 이해는 된다. 한국어 과외 학생이 1명, 많으면 2명이었으니까. 

월급쟁이를 4월말에 그만 둔 뒤, 지난 6월 중순, 통역일이 들어왔다. 200유로, 한화로 33만원 정도? 그게 그달 번 총액이었다. 아이는 둘 있었고, 퇴사하면서 두 달치 월급은 받고 나왔지만 그돈으로 한국에 갔다왔고, 한국에서 오면서 삼성 노트북을 사왔으니 남은 돈은 없었다.

완벽한 백수가 됐고, 사막을 걷는 시간들이었다. 여름 바캉스철이 다가오는데 2018년까지 받아왔던 여름휴가용 사회복지혜택을 작년 여름에는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 복지혜택 덕분에 1주일간 아이들과 바캉스를 떠날 수 있었다. 1주일에 해당하는 바캉스 숙소를 국가에서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음식은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교통비만 내면 됐는데 작년에는 국가에서 한 계산에 의하면 과년대비 나의 소득 포인트가 하나 높아졌다는 게 이유였다. 작년에 내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단지 그 계산 때문에! 아이들 방학은 두 달이었고, 나와 지내는 시간은 한 달. 애들 데리고 어디 갔다와야하지 않겠느냐며 전 시어머니께서 돈을 보태주셨다. 그걸로 거짓말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 완벽한 숙소를 예약했다. 그것도 2주일치를! 6개월 전에 예약해야 그 가격에 찾을 수 있는 숙소였는데, 6월말, 여름 바캉스가 시작되는 시기에 그렇게 좋은 숙소가 싼 값에 내 눈에 떨어진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렇게 쓰면 얼마나 길어질 지 모르겠네.. 건너뛰자.) 작년에 나는 한 마디로 인생뒤집기에 성공했다. 작년 말 매달 백만장자를 한 명씩 만나게 되었고, 나의 새로운 관심분야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 밥벌이 직장 때보다 더 적은 시간동안 일하고, 그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게다가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나한테 감사하다고 너무 좋아하며 인사를 해온다. 그리고 버는 족족 나는 옷, 신발, 화장품, 미용실에 쓸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는데, 아니다. 난 그런데 아예 관심이 없다. e-book을 팔아서 번 돈의 자그마치 10%를 환경 NGO에 기부했다. 그리고 내가 버는 족족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사는데 돈을 썼다. 번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써서 은행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 나에게 투자하는 돈을 펑펑 쓰고도 통장에 돈이 남은 것에 정말 감사한다. "아직도 돈이 있네?" 하면서. 5년 전의 나는 예술행정 석사 프로그램에 거의 같은 액수를 지불하면서 은행 빚을 졌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내고도 통장에 돈이 남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마케팅에 눈을 돌렸고, 내가 마케팅을 좋아한다는 것도, 마케팅적 끼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리고 남자를 보는 눈도 생겼다. 큰애가 청소년이 된 이제서야 !!!!! 이걸 모두 이뤘다니 정말 대단한 한 해 아닌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재테크, 커리어, 연애, 세 가지면에서 급반전을 이룬 2019년를 지나온 내가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올해의 목표는 작년에 투자한 교육 프로그램을 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고,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다수의 프랑스인들에게 기쁨, 감동, 자신감을 나누는 것이다. 지금 나는 작년보다 한 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 높은 수준으로 로켓 비상 중이다. 몇 년 내로 한국 사람들과도 기쁨, 감동, 기적, 자신감을 나누는 완벽한 시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

'Bavarde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은 나의 해  (0) 2020.02.02
프랑스에서 정규직, 그리고 실직  (2) 2019.05.21
말과 언어, 그 저편에 있는 진실  (0) 2017.10.19
2017년 새해를 앞두고  (0) 2016.12.3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