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애가 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성별의 자녀를 둔 것을 '왕의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왕? ㅎㅎ 딸애의 한국 이름은 '바다'고, 아들은 '나무'다. 바다는 아무거나 잘 먹는 반면에 나무는 가리는 것이 많은 편이다. 밥상머리에서 밥숟갈도 뜨지않고 안 먹겠다고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내미는 건 늘 나무다. 나무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은 파, 양파, 당근, 가지, 호박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식성도 그지같이 까다로와서 제육볶음을 해주면고기와 밥을 섞으면 안되고, 옥수수 오믈렛을 해주면 송송 썰은 파를 오믈렛과 섞으면 안된다. 

한번은 바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 보양식으로 양파스프를 해줬는데, 나무는 배는 고프다면서 양파 스프를 안 먹겠다고 버텼다. 우리는 한 그릇을 거의 비워갈 쯤, '더도말고 딱 한 입만 먹어보라'고 국물을 떠줬더니 인상을 쓰면서 받아먹더니만 금세 자기 스프를 다 먹어치웠다. 마지막 양파스프 한 그릇이 남아서 '이건 누가 먹을래?'하니까 바다가 손을 번쩍, 나무는 슬그머니 머리 뒤로 손을 올렸다.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남은 한 그릇을 두 먹새가 다 먹어치웠다. 

어제는 프랑스 전체 파업이라서 초등학교에서 급식이 안 나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하루 휴가를 받아 나무를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 수업에 데려다줬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줘서 잘 먹었고, 문제는 디저트에서 제동이 걸렸다. 내가 제안하는 모든 디저트를 거절하면서 점점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디저트가 없다니 할 수 없구나'하며 밥상을 치우자 애가 인상을 쓰고, 걷는 게 시끄러웠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밥상을 차려줬는데 애가 심통을 부르니 나도 화가 났다. 

"엄마가 너 점심 준비해주느라고 회사 안 간 거 알지?" -네. 

"너는 엄마가 해주는 모든 서비스가 당연하다고 여기니? 엄마는 너에게 모든 걸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니?"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게 뭐라고 생각하니?" -?????

"엄마가 너한테 하는 서비스나 희생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라거나 댓가를 바라든?" - 아니. 

"엄마가 너한테 바라는 건 너의 행복이야. 네가 행복하고 즐겁길 원해. 다른 사람에게 네 점심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점심 먹기를 싫어해서 엄마가 휴가를 냈고, 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했어. 그런데 고작 디저트 때문에 네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실망스러워." 

"네가 먹는 모든 음식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 마. 너는 먹고 싶은 것만 가려먹으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먹을 게 정말 없어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어. 그것도 매 6초마다! 네가 먹는 음식에 늘 감사해야해.  그 음식이 너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했는 지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해.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미안해. 근데 나는 요리와 화장에 시간 보내는 걸 싫어해서 요리에 30분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네가 이것저것 가려먹을꺼면 너 이제 곧 만 9살이 되니까 앞으로 엄마가 장 볼 때, 너 먹고 싶은 거 네가 사와서 네가 직접 요리를 해. 요리가 네 입에 안 맞으면 네가 네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걸 배우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네 장바구니 예산은 내가 줄께. 누나는 만 12살부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는 가리는 게 많으니까 조금 일찍 시작하자. 부엌살림은 나눠서 쓰고, 대신 불판과 요리기구를 어떻게 다루는 지는 내가 가르쳐줄께." -...........................................

"밥 먹을 때마다 투덜대는 거 엄마는 지겨운데, 너는 어떠니?" -...... 

"이유가 뭔거 같아?" - 모르겠어. 

"엄마는 네가 감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네 앞에 온 음식에 감사하고, 너를 위해서 휴가를 낸 엄마에게 감사하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 오믈렛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 감사하면 네가 고작 마음에 드는 디저트가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통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

"먼저 엄마한테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가기 전에 '나는 긍정적이다'라고 열 번만 쓰고 가자." -10번은 너무 많아!

"난 이걸로 협상하지 않아. 10번을 쓰고 학교에 가든 지, 아니면 지각을 하든 결석을 하든 지, 네가 결정해." 

해서 아이는 '나는 긍정적이다'는 문장을 10번 쓰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가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이렇게 해보라. 

첫째, 일부러 따라다니며 먹이지 마라. 
한 두 끼 굶었다고 죽지 않고, 성장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밥 먹고 크는 걸 부모가 원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기가 밥을 먹지 않으면 부모가 걱정한다는 걸도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으로 협상을 하려고 드는데, 그 협상이 먹힌다는 걸 알면 아이들은 종종 같은 방법으로 협상을 하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심통을 부리며 먹지 않겠다고 하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하고 밥상을 치워라. 아이가 밥을 먹고 안 먹고는 협상의 대상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둘째, 식사 시간을 정하라. 
아이가 밥상에서 투정을 부리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고 밥도 국도 다 식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면 밥상을 정성껏 준비한 엄마는 더 신경질을 받게 된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식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만 식사하고, 식사시간 외에는 일체 군것질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모든 식구들이 엄수해야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기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가 투정을 부르면서 밥을 안 먹으면,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밥상을 치워라. 몇 시간 뒤, 배 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밥도 군것질도 주지 말라. 그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식구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설명하라. 배 고픈 아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주면 다음 번 식사시간에 밥을 먹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간식시간이 정해져있다면 그 시간에 간식을 주는 것은 예외다. 

셋째, 밥 대신 군것질을 주지 말라. 
밥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과자, 비스켓, 케익,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상기한 먹거리들은 버터와 설탕이 많기 때문에 영양가 있는 한 끼 식단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식사 시간에 절대로 버터와 설탕으로 범벅된 먹거리를 주지 말라. 게다가 훗날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기름지고 단 음식으로 위로받으려는 어른으로 성장할 확률이 커진다.  

넷째, 아이는 부모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제1의 교육자다. 청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의 언행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는 언행으로 받아쳐서는 안된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보면서 아이는 배운다.  '아, 화가 날 때는 저렇게 대처하면 되는구나! 소리지르고 나이로, 힘으로 누르면 이기는 거구나!'하고. 어미 게가 아무리 '앞으로 똑바로 걸어'해도 어미 게가 옆으로 걷는 모습을 보고 걷는 걸 배우듯이 아이는 부모의 '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에게 교육이니 사랑이니 이런 그럴듯한 이름으로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이같은 행동에 다름아니다. 내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 관찰해보라. 화가 나면 나와 먼저 대화를 하고, 나의 화를 가라앉히고나서 아이와 대화하라. 


다섯째, 아이에게 경청하라. 
아이가 밥을 전제로 시위를 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어주라. 아이의 문제나 불만을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공감'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봄날 눈 녹듯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 


그 어떤 순간에서든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면 아이와 생기는 마찰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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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밤 11시부터 새벽 3~4시까지 글을 쓰는 여성 소설가에게 아이 아침밥은 어떻게 해주냐고 물었더니 소설가는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라고 답했고 인터뷰를 했던 김지영씨는 '초월적이고 독자적인 답변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했다. 그 글은 한국 방송통신대학보에 실렸고, 김지영씨의 페북 사이트에도 올라있다. 지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공유되었던 글이라 나는 김지영씨 포스팅에 덧글을 남기고 싶어도 페친이 아니기 때문에 덧글을 달 수가 없어서 내 의견을 블로그에 적는다. 


김지영씨의 글 보기


"에유... 니들만 없으면 밥상 안 차려도 될텐데." 


사실 우리 엄마도 곧잘 이 말을 하셨다. 나랑 오빠만 없으면 밥상 차릴 수고를 덜 수 있을텐데 우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밥상을 차리느라 당신 몸을 일으키는게 피곤하셨던게다.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의 밥을 '얻어먹는다'는 짐을 지며 살았다. 내가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오빠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밥을 차리기는 싫었다. 남들 다 아침먹고 밥상까지 물린 뒤에 일어났던 오빠는 나보고 밥상 좀 차려달라고 했다.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다 냉장고에 있으니 찾아서 꺼내먹으라고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 밥상 차려주는게 그렇게 싫으니?'하는 구사리와 함께 엄마의 싸늘한 눈매가 날아왔고, 엄마는 불평할꺼면 하지말라며 당신이 몸을 일으켜 아침 10시에 오빠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셨다. 오빠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면 엄마는 그 밥상을 치워주셨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없으면 내가 밥을 후지게 먹는다는 걸 발견했다. 애들이 있으면 손톱만큼이라도 정성을 들여서 밥상을 차리고 나도 잘 먹게 되는데, 애들이 없으면 내가 폐인처럼 먹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제멋대로고 아예 끼니를 건너뛰기도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엄마가 "니들 덕에 나도 제대로 챙겨먹게 되는구나.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고. 자식을 낳아서 왜 자식이 평생 당신의 짐인 듯한 말씀을 그렇게 자주 하셨을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어서 행복하다고, 너희들 덕에 엄마가 이런 저런 요리도 해서 나도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노라고 자주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하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자식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애들이 없으면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겨 배가 고파야나 치우지도 않은 상에서 대충 대충 챙겨서 그야말로 "끼니"를 때운다. 이날은 그나마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여러 개 사왔던 터라 밥하고 숟갈만 놓으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 수퍼에서 반찬을 사온다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이라 기념사진을 찍어뒀었다. ㅎㅎ



여성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지영씨나 그분의 글에 공감하면서 댓글을 단 여성분들이 갖는 고충은 아이들의 밥상을 차려주는데 있는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 배를 곯아서 학교를 보내선 안된다. 그건 분명 여성 소설가가 잘못하고 있는거다.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운다고 그 자유로움과 당당함에 만세를 불러서 안된다. 그 집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고, 애아빠랑 같이 사는지 엄마 혼자 키우는지 등은 모르겠는데, 만 10살이면 혼자서 아침 차려서 먹고 나갈 수 있는 나이다. 밥통에 있는 밥 푸거나 아니면 렌지에 띵~ 데우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개 꺼내서 먹고,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개수대에 치우고, 반찬은 다시 냉장고에 넣고 가라고 교육시키면 된다. 아침밥 안 챙겨주면 아침밥 안 먹고 나가는 피동적인 아이로 키울게 아니라, 밥은 엄마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칠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찾아먹고 치우고 나가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만 15세가 되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장도 볼 줄 알고, 요리해서 다른 사람 먹일 수 있을만큼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라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밥상을 차리는 상대가 아니라 밥상을 '누가' 차리느냐하는 주체에 있다. 한국 사회는 유독 남자에게 밥상에 관련된 자율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 큰 남자가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어머니에게 헌사를 보내는건 인텔리젼트한 책을 몇 권을 써냈건간에 그 평론가는 한 어른으로서 바보병신이다. 헌사를 보내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헌사를 보냄으로해서 여성은 부엌일, 남성은 글쟁이라는 이분적인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헌사는 여성을 부엌이란 비가시적인 감옥에 붙들어두는 가시에 지나지 않는다. 

김지영씨는 그 비가시적인 감옥에서 탈출한 여성 소설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맞아!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되는구나! 그걸 몰랐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엌없이 사냥과 채집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아무도 없다! 문제는 여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부엌일을 전담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부엌에는 남성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하며, 어느 정도 큰 아이도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한다는 걸 김지영씨는 깨달아야 했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일을 하지 않는 당당함에 기립박수를 보내기 전에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문제의 핵심을 집고 방법을 찾든 공격을 하든 해야하는거다. 여성 소설가는 여성이란 이름으로 얽매어진 굴레를 벗어던짐과 동시에 부모로서 해야할 본분을 져버렸다. 



"너희들은 돼지야."


'돼지책'이란 동화가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남편은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밥 달라고 하고,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로 간다. 그들이 떠나고나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간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면 밥 달라고 하고, 아이 둘도 돌아와 밥 달라고 하고, 그것도 '빨리', 셋은 TV를 본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먹을 것을 조금 더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동화를 쓴 사람은 여성의 가사노동에 쪄들고 피곤한 한국 여성이 아니고 영국 남성, 앤소니 브라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를 작년에 여기 아동도서전에서 만나서 얼마나 반가왔던지! 딸과 아내와 함께 도서전에 사인회에 나오셨길래 "저희 아이들보다 제가 선생님 팬이에요!"하고 사인을 받아왔더랬다. '돼지책'이란 명저를 반드시 식구들과 돌려 읽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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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글을 우리말과 불어로 기고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기자들을 도와 한불 번역작업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연재 '전환을 향해서'), 녹색평론, 녹색전환연구소, 귀농통문, KBS Green, 지오리포트, 네이버 파워블로거(2008~2009). 기고, 통번역, 코디 등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에 남겨주세요.